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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정해년(丁亥年), 돼지가 주는 교훈 (마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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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금돼지?

성도 여러분, 돼지해를 맞아 돼지꿈을 꾸셨습니까? 좋은 꿈, 좋은 일이 있을 꿈으로 일반적으로 돼지꿈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저만 해도 지금까지 꾼 꿈 중에서 가장 아까운 꿈이 돼지꿈인데, 그것도 돼지가 똥밭에 뒹구는 꿈을 꾼 일인데, 그때 뭔가를 사든지 뭔가를 했어야 하는데 말이죠.

우리가 다 아는 대로 올 해는 정해년(丁亥年)인데, 600년 만에 돌아오는 ‘황금돼지’ 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어느 문서나 역사적인 자료에도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황금돼지 해에 아이를 낳으면 잘 될 것이라든지, 황금돼지 해라서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든지, 하다못해 붉은색 돼지 저금통마저도 황금돼지 저금통으로 바뀌는 것이 오늘 우리나라의 모습입니다. 어느 경제학자는 이러한 모습을 한국 국민의 “집단우울증세”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즉 정치가 엉망이고, 경제가 어렵고, 사회가 혼란하며, 안보가 불안한 때인지라, 모든 국민이 우울증에 빠져있어서, 뭐든 위안이 될 만한 것을 붙들게 되어 있는데, 그것이 마침 돼지해라서 유독 “황금돼지”에 매달린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황금돼지에 매이는 우리 국민들을 긍휼한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2. 성경이 말하는 돼지

그렇다면 성경은 이 돼지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돼지는 구약 성경에 여섯 번, 신약 성경에 열세 번 나옵니다. 이렇게 신구약 합쳐서 열아홉 번 언급된 돼지에 대해서 성경은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을까요? 즉 성경이 돼지를 언급할 때 그 의미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첫째로 성경에서 돼지는 개와 마찬가지로 부정한 동물이며,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금지된 음식이었습니다. “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레11:7).” “돼지는 굽은 갈라졌으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런 것의 고기를 먹지 말 것이며 그 사체(死體)도 만지지 말 것이니라(신14:8).”

둘째로 돼지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곧바로 돼지고기를 먹는 사람들에 대한 심판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거룩히 구별하며 스스로를 정결케 하고 동산에 들어가서 그 가운데 있는 자를 따라 돼지고기와 가증한 물건과 쥐를 먹는 자가 다 함께 망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66:17).”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돼지고기를 먹는 것을 금하셨고, 돼지고기를 먹는 이들은 소멸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타락할 때마다 이들의 식탁에서 금방 표시가 났습니다. 만약 유대인으로서 누군가 돼지고기를 먹으면 사람들은 그를 유대인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구약 중간 시대의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Antriochus Epiphanes)는 이스라엘의 신앙의 포기 및 배교의 증표로 돼지고기를 먹도록 강요했습니다. 돼지고기를 먹는 순간 그는 신앙과 민족성을 포기한 사람이라는 표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유대인들이 돼지고기를 먹는 것은 단지 ‘음식, 육식’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포기요, 민족성의 포기를 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신구약 중간 시대의 어느 율법사는 자기 입에 강제로 돼지고기를 집어넣자, 돼지고기로 자신을 더럽히느니 차라리 명예롭게 죽는 것이 낫다며 고기를 뱉아버리고 태형대로 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셋째로 돼지는 분별이 없는 사람을 상징했습니다. 잠언 11:22에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 코에 금고리 같으니라”고 합니다. 여자의 외적 아름다움은 금장식과 같은 것입니다. 분별력이 없을 때, 그것은 마치 돼지 코에 붙은 금장식과 같게 됩니다. 이것은 굳이 여성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무리 겉을 잘 꾸며도 분별력이 없을 때 그의 꾸민 것이 돼지 코에 금으로 된 금 고리를 달고 있는 것처럼 어울리지 않고 우스꽝스런 모습이 된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돼지는 귀신에 들린 유일한 가축입니다. 신약 성경에 보면 귀신들이 예수님께 자신들을 돼지에게 들어가게 해 달라는 부탁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귀신에 들려 공동묘지에 거주하던 두 사람에게서 나온 귀신들이 가까이 있던 ‘돼지 떼에게 들어가게 해 달라’고 예수님께 간청하자, 예수님께서 “가라” 하시니 그리로 들어가 돼지떼와 함께 물 속에 빠져 죽는 장면이 나옵니다.

다섯째로 돼지는 타락한 성도의 친구를 상징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 비유’에 보면,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먼 타국에 간 둘째 아들이 돈이 다 떨어지자 먹고 살기 위해 겨우 겨우 얻은 직업이 돼지치기였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최대의 굴욕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한 굴욕은 그가 돼지들이 먹는 쥐엄열매로 배를 채우려 해도, 주는 사람이 없어, 그것조차도 먹지 못하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돼지는 인간의 타락과 가장 낮은 생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를 떠난 아들의 모습, 즉 타락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마지막 여섯 번째는 이와 연결되는 것으로 돼지는 옛 생활로 돌아간 성도를 상징합니다.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벧후2:22).” 성경은 이전 생활, 옛 생활로 돌아간 배교자들, 타락한 자들은 개와 돼지라고 말합니다. 씻겨진 돼지가 깨끗하여졌으나 곧 다시 더러운 구덩이에 가서 뒹굴어서 더러워지는 것과 같이, 성도들이 세상과 육신, 죄악의 쾌락으로 빠져들 때 그는 어린 양이 아니라 돼지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상에서처럼 성경에 언급되는 돼지는 결코 긍정적이거나 좋은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제물이 될 수 없는 부정한 동물,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사람을 상징했으며, 또한 하나님의 백성인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타락한 경우를 일컫는 짐승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이와 같은 관점으로 보아야 합니다.

3. 본문이 말하는 돼지의 교훈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1) 돼지에게 던져진 진주

우선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개에게 주어진 “거룩한 것”과 돼지에게 던져진 “진주”가 뭐냐 하는 것입니다. 먼저 “거룩한 것”은 하나님께 드렸던 제물이나, 제사 후에 제사장들의 소유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려진 제물이요, 그 후에 오직 제사장들만 취할 수 있는 제물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진주”는 무엇을 상징하는 말일까요? 진주는 아득한 옛날부터 진귀한 보석으로 여겨져왔습니다. 그 자체의 고운 빛과 모양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진주가 자기 속에 들어온 이물질을 자신의 살과 피로써 가장 영롱한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진주의 가치는 더욱 높아졌습니다. 조개가 자기 안에 들어온 이물질을 둥글고 빛 고운 진주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아픔을 참았을까요? 따라서 바로 이 진주야말로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잘 상징해 주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조개의 아픔처럼 그보다 더 고통스러우셨던 우리 주님의 희생의 십자가, 그러나 영롱한 진주처럼, 아니 그보다 빛나고 효력 있는 능력의 십자가의 복음! 정말 진주야말로 십자가의 무한한 가치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의 진주는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2) 본문의 돼지는 누구?

먼저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개”는 배교자를 가리키기도 하고, 때로는 배로써 하나님을 삼는 거짓 일군들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바울도 거짓 일군을 "개"라고 했습니다(빌3:2). 즉, 그들은 먹는 것과 대접 받는 것을 비롯하여 이 땅의 부와 명예와 성공을 더 좋아하면서 겉으로는 ‘주님의 일군입네’, ‘거룩한 일을 합네’ 가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주님과 주님의 복음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는 것이죠. 다만 그것을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이용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돼지는 누구를 상징하는 말일까요?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은 모든 이방인들에 돼지를 빗대어 호칭했습니다. 당시의 기준에서 볼 때 이방인-이교도를 개나 돼지로 부르는 것은 일상적인 관행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오늘 본문이 유대인들에게 전해 내려오던 말씀을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것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도 단순히 혈통적인 이방인들을 돼지라고 하셨을까요?

①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와 주님의 복음이 어떤 사람들에게 거부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심한 경우는 박해까지 받았으며, 박해를 받던 성도들은 더 이상 어쩔 수 없어 순교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 주님의 사랑의 복음은 사람들에게 거절되었을 뿐 아니라, 때로는 사람들이 그 복음을 훼손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돼지로 비유된 사람들은 복음을 받을 준비가 안 된 사람들, 복음을 반대하는 사람들, 복음을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사람들, 그리고 탐욕과 죄악을 즐기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② 두 번째로 그들이 복음을 거절한다고 해서 그들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물론 복음을 거절하는 사람들 중에는 악을 저지르는 범법자들도 있지만, 대개는 선량한 사람들입니다. 가족 중에도 전도가 안 되는 식구들이 많습니다. 기독교가 정의하는 죄와 악은 실정법을 기준 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의 '거역' 입니다. 복음을 거절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아주 큰 죄악입니다. 그건 개나 돼지에 비유되는 잘못입니다. 개나 돼지는 오직 '먹이' 만 알뿐, '거룩한 것' 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이 말하는 돼지는 비록 인간적으로 선할지라도 주님과 그 복음을 거절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본문에서 돼지로 비유된 사람들에게는 복음을 받아 들일만한 영적인 자리가 없습니다. 오직 세상적이고 인간적이고, 그리고 이기적인 일에만 관심하는, 다른 것에는 의미를 두지 않는, 본능적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돼지는 세속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이기적인 욕망에 충실한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신령한 것, 우리 주님과 주님의 복음, 그 거룩하고 신령한 것을 바라고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돼지와 같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올 한 해, 어떤 삶을 사시겠습니까?

③ 그런데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이 말하는 돼지가, 그리고 진주를 가치 있게 보지 못하는 태도가 신자에게도, 여러분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즉 오늘 본문의 돼지는 성도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복음을 주셨고, 교회를 주셨고, 셀 수 없는 은혜와 감동과 눈물, 그리고 시간과 이 세상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성도가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에 대한 감동이 없다면, 주님이 주신 것에 대한 감사가 없다면, 바로 그것이 돼지의 삶이라는 것이죠.

광야에서 40년을 보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특징은 한 마디로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가 없고 감동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에 매사에 불평과 원망만 있었습니다. 날마다 만나가 내리고, 밤에는 불기둥, 낮에는 구름기둥을 그들을 인도하는 매일 매순간이 기적인 삶을 살면서도, 그들은 돼지처럼 늘 먹는 문제, 물 문제, 심지어 야채나 뭔가 색다른 것이 먹고 싶다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삿대질을 하면서 데모를 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모두 사막 가운데 묻히고 말았습니다.

무감동, 무감사의 삶은 죄입니다. 오늘 본문의 돼지가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진주를 더러운 발로 밟는 것이 죄이듯 하나님이 주신 이 놀라운 은혜, 2007년이라고 하는 선물, 그리고 이 감동적인 세상을 무감동으로 사는 것도 큰 죄입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이 살아 숨쉬고 있음과 이 세상과 가정과 받은 바 은혜로 인하여 늘 감동하고 또 감사하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4. 돼지를 통해 주시는 메시지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말은 아무리 좋고 귀한 것을 가지고 있어도 그의 살아가는 모습이나 행동이 엉망이면 그것이 그 사람의 추함이 되고 욕이 된다는 말입니다. 또한 좋은 자리에 앉은 사람이 그 자리에 맞게 행동하지 못하는 것에도 적용이 되는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오늘 본문의 말씀은 가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아무리 고귀한 것을 주어봐야 소용이 없다는 뜻이며, 사람이 받은 은혜에 합당하게 살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이나 불신자들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먼저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진주보다 더한 복음과 다양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얼마나 은혜 받은 자답게 사는가?’‘얼마나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가?’하는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하여 물어야 합니다.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는 어리석은 행동, 그리고 그렇게 하고서는 후회하는 사람처럼, 혹시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면서 그런 후회를 하고 계시는 않을까요?

복음에 합당하게 삽시다! 주님께 받은 것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가지고 삽시다. 이것이 돼지해에, 돼지에 관한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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