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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소원의 시작 (마 6: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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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은 어떻게 기도할지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자기 소원으로 직접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뜻은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면 하나님의 힘으로 살아야 한다는 복음적 원리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예수 안에 있는 게 아니라 밖에 있는 것이지요. 결과적으로 기도의 힘도 열매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고생만 하고 이루지 못해요.

기도는 주안에서 합니다. 성경은 주안에서 모든 일을 하라고 합니다. 주안에서 기뻐하고 주안에서 감사하고 주안에서 평안하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를 믿고 의지하여 예수가 주는 힘으로 합니다. 기도도 당연히 그렇습니다. 주 안에서 해야 합니다. 주의 인도로 주가 주시는 힘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면 기도는 분명한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예수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가르쳐주십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구하라 하십니다. 그러나 그 앞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큰 틀 속에 내 소원을 맞추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에 참여합니다. 그래서 합당하고 확실히 응답되는 기도를 합니다. 내 소원보다 먼저 소원할 게 무엇일까요?

1. 하나님 이름 거룩히 여기기

무슨 일 하건 반드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언어 행동 아니 삶 전체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입니다. 그 이름은 거룩합니다. 그 이름이 손상되지 않을 뿐 아니라 높아져야 합니다. 성경에는 예수에게 또는 사도들에게 고침 받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들의 공통된 모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그 이름이 거룩히 여겨집니다.

얼마 전에 어떤 할머니에게 전도를 했더니 자기는 불교를 믿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종교 전체를 의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분은 우면동 비닐하우스 촌에 삽니다. 모두가 무허가로 남의 땅을 무단 점거하고들 그렇게 사는데 거기도 또 사람들이 세 들어 삽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서로 도우며 살면 얼마나 좋겠어요. 서로 싸운답니다.

그 안에 교회도 여럿이랍니다. 절에 나가는 사람 성당 나가는 사람 다 있어요. 그런데 이 분 말이 종교인들이 아무 것도 다른 점이 없답니다. 목사건 신부건 스님이건 아무 차이가 없답니다. 자기가 왜 믿어야 하느냐고 물어요. 저도 할 말이 없었어요. 모두가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지만 믿는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도 영광스럽지 않은 겁니다.

그 분 옆에 사는 교회 다니는 사람은 자꾸만 자기 쪽 비닐하우스로 물건을 쌓아 밀고 들어온답니다. 그래서 문이 안 열리는 거예요. 교회 다니는 사람이 예수께서 가르쳐준 기도로 기도한다면 그럴 수 없지요. 무슨 행동을 하건 하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신자라고 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전혀 안 그러는 겁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 일조가 그것입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이뇨?” 대답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니라.”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그 힘으로 사는데 남이 괴로운 줄 알면서 하겠어요? 그리고 그렇게 살아 하나님 이름이 존경 받겠어요? 하나님 영화롭게는 내 힘으로 못해요. 하나님 힘으로만 합니다.

우리가 매사에 생각할 것은 “하나님 이름”입니다. 나로 인해 그 이름이 어떻게 될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존경 받게 되려면 하나님처럼 살면 됩니다. 슬퍼하고 우울해 하지 않아요. 욕하고 싸우지 않아요. 남에게 손해를 주지 않아요. 오히려 나를 희생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요. 그래서 주기도의 첫 번 소원이 하나님 이름 높임입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게 질서를 잡습니다. 가장 우선으로 내세울 게 하나님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자식인 내가 하나님 모습을 보여주면 다 되는 겁니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가요? 사실상 불가능입니다. 그러기위해서는 한 가지 길 밖에 없어요. 하나님의 힘으로 그렇게 하면 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즐겨야 합니다. 그래서 그 다음 소원이 나옵니다.

2. 하나님 나라 일으키기

하나님 힘으로 살기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일으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 백성입니다. 그 나라가 어디 있나요? 이 세상과 함께 있고요 더욱 구체적으로는 우리 속에 있어요. 예수께서 그러셨어요. “하나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고”요. 왕권과 능력과 권세와 부가 다 나라에 포함되고요, 그 나라가 성령과 함께 내 속에 들어왔어요.

우리는 이 세상 나라에 살지만 동시에 하늘나라에 살고 있어요. 그런데 많은 신자들은 세상 나라에만 시민 노릇을 합니다. 이 세상은 살기가 어려워요. 그리고 잘 살 힘이 우리에게는 없어요. 그래서 자주 슬퍼하고 힘들어합니다. 몸도 아프고요 돈도 부족해요. 세상 나라는 자원이 정해져 있어요. 사람은 많고요. 그래서 모든 게 늘 부족하기만 해요.

하나님 나라는 영적입니다. 이 세상을 포함하는 더 큰 우주입니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으로 믿는 사람 속에 인격적인 실체로 들어와 있습니다. 예수가 바로 하나님 나라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모든 게 다 있습니다. 생명과 권세와 부가 다 있습니다. 우리가 무력하거나 약하거나 사는 게 힘들다면 간단해요. 그 유익을 사용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합니다. “나라가 임하기 바랍니다.” 무슨 뜻인가요? “내게 주어진 하늘 백성의 권리를 사용하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 힘으로 눈에 보이는 세상을 지배하게 해 주십시오.” 다윗은 사울왕에게 십여 년을 쫓겨 다녔습니다. 이 세상의 현실은 쫓기는 자요, 틀림없이 잡힐 자요, 죽을 자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그는 비참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나라, 영원한 천국의 백성으로 그는 그렇게 힘든 것만은 아닙니다. 이 세상 백성은 천국 백성을 절대로 이기지 못합니다. 왕의 권세로 모든 세력을 다 동원해도 찾지 못합니다. 그리고 더 찾지도 못하게 자신의 삶이 힘들어집니다. 결국 세상왕은 망하고 죽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 왕인 다윗이 이 세상 왕으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자 사울의 손자를 찾습니다. 사울 가문은 완전히 망해 씨가 말랐습니다. 한 때 온 세상을 지배하였는데 말입니다. 손자 므비보셋만 양다리가 불구로 살아남았습니다. 다윗이 찾자 그는 공포에 질립니다. “할아버지에게 당했으니 당연히 내게 복수하겠구나. 나는 죽었다.” 그러나 다윗은 말합니다. “네 아버지 요나단 때문에 네게 은혜를 베풀겠다.”

사울의 엄청난 재산 다 돌려주고 왕자들과 함께 식사할 특권을 줍니다. 므비보셋은 말합니다. “제가 무엇인데 죽은 개 같은 나를 돌보시나이까?” 여기 그의 자아상이 나옵니다. 죽은 개 패배자 거지입니다. 왕의 혈통이고 아버지 요나단과 다윗이 형제의 의를 맺었음을 알면서도 자신을 그렇게 봅니다. 하늘나라의 왕의 혈통인 우리도 그와 같아요.

다윗이 므비보셋을 왜 그렇게 사랑했나요? 그의 아버지 요나단이 갖은 고생하며 다윗 목숨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므비보셋은 시골에서 가난하게 숨어 지낼 필요가 없었습니다. 다윗에게 나와 아버지와의 언약을 상기시키면 됩니다. 우리도 그래요. 예수께서 모든 빚을 갚고 죽었습니다. 하나님께 당당하게 권리 주장하려고 다음 것을 소원합니다.

3. 하나님 뜻 이루기

하늘나라 왕의 자녀라면 그 권한을 주장하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 뜻을 이룹니다. 그것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내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지배하게 하는 것과 그 나라가 나를 통해 더 왕성해 지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나라에 속한 나도 더욱 왕성해 지는 것 아니겠어요? 다시 말해 내가 믿음으로 일어나고 내가 속한 나라를 돕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은 내가 잘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과 능력으로 잘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비닐하우스 동네에서도 양보하고 사랑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거기서도 영광스럽게 자랑스럽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거기서 벗어나 더 잘 살고 큰 동네 가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울하고 짜증나고 살 의욕도 힘도 없다면 신자라도 그냥 세상나라의 백성입니다. 하늘나라 백성은 하늘에서 힘을 공급 받습니다. 아무 것도 없어도 하늘 위로와 기쁨, 평안과 소망을 공급 받습니다. 그렇게 요구하고 그렇게 믿고 행동하는 겁니다. 주 안에서 감사하고 주 안에서 행복하게 느낍니다. 하늘의 힘은 영적으로 공급되고 있어요. 믿으세요.

많은 신자들이 기도할 때 바로 일용할 양식을 요구합니다. 힘들다고 하고 괴롭다고 합니다. 그러니 도와 달라 합니다. 이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 즉 내가 속한 더 크고 영원한 나라는 간데없고 단지 이 세상에 속해서 세상 것만을 구해야 하나요? 그러면 그것들이 영원한 나라나 내 영혼에 무슨 유익이 있나요? 그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나요?

이랜드 박성수회장을 보세요. 그분도 회사가 잘되기를 소원합니다. 처음 시작은 500만원으로 이대 앞에서의 작은 가게였어요. 그러나 이제는 까르푸를 사들였어요. 대재벌입니다. 2001 아울렛도 엄청난 매출을 올립니다. 그런데도 주일은 쉽니다. 수십 년간의 시련을 극복한 그분의 목표가 바로 이것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IMF때 부도 날 뻔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외국인 회사가 5천만 불을 지원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정직입니다. 다른 회사들은 장부가 둘인데 여기는 하나밖에 없어요. 뇌물이 없고요, 세금도 정확하게 계산해서 냅니다. 회사가 잘 되는 것이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에 이어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도 교회적으로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아버지 이름이 아름다운교회를 통해 거룩하게 되소서. 내 속에서 아버지 나라가 일어나고 아버지의 뜻이 나를 통해 이루어지소서. 거기 맞추어 내 소원도 이루소서.” 그러면서 각자의 소원을 여기 덧붙이기 바랍니다. 금년 표어는 이것입니다. “아름다운 교회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하늘나라 시민은 하늘나라 시민의 힘으로 삽니다. 그의 간절한 소원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무슨 일을 하건 하나님 위해 하나님의 힘으로 되기를 기도합니다. 일용할 양식, 즉 사업 확장하고 가정을 일으키는 이유도 그러합니다. 오직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꾸준히 그러면 세상이 알지 못하는 힘으로 일어납니다.

QT를 위한 질문

1. 예수는 일용할 양식 즉 세상에서 필요한 것을 어떻게 구하라고 하시나요? (서/3, 3/4,5)
2.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는 어떻게 가능한가요? (1/6,7)
3.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임하게 되나요? (2/1,4)
4. 자신과 무비보셋이 닮은 점이 없나 살펴보세요. (2/7,8)
5.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어떤 것인지 말해 보세요.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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