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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이웃과 나누며 갑절로 부흥하는 해 (행 2: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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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바람을 뺍시다>
자동차로 사막길을 가다가 바퀴가 모래에 빠져서
꼼짝달싹 못하게 되었을 때 빠져나오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그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고 합니다.
자동차 타이어의 바람을 살짝 빼내고서 다시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 모래 수렁을 쉽게 벗어나올 수 있다고 합니다.

오늘 이 세상에는 수많은 문제와 위기가 있습니다.
그 때마다 문제를 해결하고 위기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할 때가 있습니다.
바람을 약간만 빼는 것입니다.
바람이 가득 차서 팽팽할 때 바람을 살짝 빼는 것이지요.

요즈음 우리나라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매우 심각하다고들 합니다.
옛날과 달리 중산층이 붕괴되고 국민의 절반 정도가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한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부자들이 자동차 바퀴의
바람을 빼듯이 욕심의 바람을 조금만 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자기보다 못 먹고 헐벗는 이웃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치하지 않고 자비와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자신의 행복과 향락만 생각하고 빡빡하게 살면 나라 전체가 어렵게 됩니다.
또한 그와 같이 팽팽하고 빡빡한 삶은 언제 어떻게 터질지도 모릅니다.

<나눔과 부흥을 지향하는 건강한 교회>
2007년도 우리 교회의 목표는「이웃과 나누며 갑절로 부흥하는 해」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시간과 물질과 봉사의 실천을 이웃과
나누는 동시에 교회도 배가 부흥하자는 것이지요. 

살아 있는 생명체는 물론이거니와 모든 기관은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꾸만 쇠퇴하고 죽어 가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이 있음이 분명합니다.
우리 교회도 건강하고 생명력이 충만하면 자라나야 합니다.
교인수도 자라나야 하고 예산도 늘어나야 합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양적 성장과 질적 성숙은 함께 가야 합니다.
사춘기 자녀가 키와 덩치만 커가고 내적인 실력을 기르지 못하면 정상이 아니듯이
교회 역시 양적으로 자라나는 동시에 내적인 실력도 함께 길러야 합니다.

작년 한 해 동안 우리 교회는 크게 부흥했습니다.
재정도 예산을 세운 것 그 이상으로 크게 초과되었고 교인수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여러분들의 기도와 희생 덕분입니다.
금년 한 해 동안 우리 교회는 더욱 크게 부흥해보자는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예배에 출석하는 인원수를 갑절로 늘여보자는 꿈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와 같은 교회 성장을 이웃과의 나눔을 통해서 이루어보려고 합니다.

한 나라의 경제도 성장과 분배가 함께 가야하듯이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장은 했는데 자기 살림살이나 자기 세력의 확대에만
집착하게 될 때 한 나라의 경제나 교회 모두 병들게 됩니다.
사회적인 지탄을 피할 수 없습니다.

성장이 된 만큼 이웃과 나누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늘날 일부 대기업들과 대형교회들이 왜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습니까?
문어발 식으로 자기 회사의 세 불리기에만 관심이 있을 뿐
사회에 부를 환원하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까? 
예배당 건물은 엄청 크게 짓고 교세는 엄청 불어났는데
나누고 베푸는 일에 인색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교회는 세상 한 가운데 있기 때문에 사회적 책임이 있습니다.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고 사랑과 자비를 나누어 줄 책임이 있습니다.
단지 우리끼리 넉넉하게, 또 재미있게 잘해보자 하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듯이
이웃에게 베풀고 나누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사실 목회를 해보면 넉넉할 때는 한 번도 없습니다.
써야 할 곳, 내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항상 쪼들리기 마련입니다.
남 보기에 대형교회인 것처럼 보여도 이것저것 하다 보면 언제나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 속담에 "콩 한 쪽도 나누어 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어려울수록 더 베풀고 나누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하면 신기하게도 하나님께서 더 풍성하게 채워주십니다.

금년 한 해 동안 우리 내리교회에 속한 성도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어떻게 하면 이웃을 도울 수 있을까,
궁리하면서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저절로 부흥시켜주실 줄로 믿습니다!
재정도 더욱 더 풍성한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네 가지 특징>
오늘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전 세계 모든 교회들의
어머니 교회가 되는 예루살렘 교회의 특징에 대해서 읽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도대체 어떤 교회였을까요?
본문 말씀에 요약된 예루살렘 교회는 한 마디로 말해서
'이웃과 나누며 부흥하는 교회'였습니다.

'이기주의'라는 굳은 껍질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을 먼저 배려하고
자기 가진 것을 이웃과 함께 나누었더니 온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았고, 결국 그 결과로서 저절로 자라난 교회였습니다.
한국의 어머니 교회인 내리교회는 전 세계의 모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의 이런 모습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더 정확하게 말해서 예루살렘 교회는 어떤 교회였을까요?
예루살렘 교회는 네 가지 특징을 가졌습니다.

첫째로, 사도들의 가르침에 충실한 교회였습니다.
42절 초반부를 보세요.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또한 43절을 보세요.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행 4: 33절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초대 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에 충실했습니다.
베드로를 위시한 사도들이 가르치는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가르칠 때마다
성도들은 그 가르침에 몰두하며 잘 따랐던 것입니다.

금년 한 해 동안 우리 내리교회가 건강하게 부흥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목사님들의 가르침에 몰두하여 잘 순종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은 선생님의 가르침을 잘 따라야 하고,
병원에서 환자들은 의사 선생님의 지시를 잘 준수해야 하듯이,
교회에서 교인들은 영적 지도자인 목사님의 가르침에 잘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함께 베풀고 나누는 공동체 정신이 풍부한 교회였습니다.
42절 두 번째 부분을 보세요.
"서로 교제하며."
44-45절도 보세요.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행 4: 32절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초대 교회의 두드러진 특징 중에 하나는 공동체 생활입니다.
자기 소유를 완전히 포기하고 모든 재산을 교회 공동체에
기부했는지 아니면 사적인 소유권을 갖되 공동의 필요에
따라 사유 재산을 출자했는지는 논란거리가 됩니다.
중요한 것은 함께 베풀고 나누는 공동체 정신이 왕성한 교회였다는 사실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있으면 함께 돕고 기꺼이 나누는 사랑과 자비의 공동체였습니다.

우리 내리교회도 함께 베풀고 나누는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이기심에만 몰두하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이웃을 배려하고 베풀고 나눌 때 행복해집니다.

비에 샐래자(Bea Salazar)라고 하는 미국 여성은
척추 수술을 받은 뒤 허리를 제대로 쓰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심한 우울증에 걸려서 하루하루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쓰레기를 버리기 위하여 밖에 나갔다가 한 어린 소년이
쓰레기장을 이리저리 뒤지면서 먹을 것을 찾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불쌍한 마음이 든 샐래자는 그 소년을
집에 데리고 들어가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샌드위치를 게눈 감추듯이 맛있게 먹어치운 소년이
집을 나간 뒤 불과 15분도 지나지 않아서 자기 친구를 여섯 명이나 더 데리고 왔습니다.
아이들이 물었습니다.
"아줌마가 샌드위치를 공짜로 준다는데 사실인가요?"

샐래자는 이 동네에 많은 부모들이 일에 시달려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아이들이 비렁뱅이처럼 동네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런 사실을 발견한 샐래자는 지역 사회의 여러 교회들에게
이러한 현실을 알리고 자원 봉사자들과 구호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이런 선행에 감동을 받은 사람 한 분이 아파트를 기증했습니다. 
그리고 이 아파트에 매일 100여명의 방황하던 어린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10년이 지난 뒤 이 아이들 가운데 5명이 가난한 가정
환경에도 불구하고 전문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샐래자는 나중에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저는 샌드위치 하나가 내 인생은 물론이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바꾸게 될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누군가의 고통만 온통 생각하다보니 제 자신의 고통은 쉽게 잊어버리게 되었지요. 
그러므로 당신이 누군가를 도와줄 때 그것은 실상
바로 당신 자신을 돕는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옳습니다.
우리 주변에 우리보다 불행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 자신의 문제에만 골몰하면 실망스럽고 권태와 우울증이
찾아오지만 어려운 이웃을 향하여 관심을 돌릴 때
우리의 삶은 훨씬 더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삶이 될 것입니다.

셋째로, 성만찬을 통하여 예배에 힘쓰는 교회였습니다.
42절 셋째 부분을 보세요.
"떡을 떼며."
46절을 후반부를 보세요.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떡을 뗐다는 말은 성만찬을 나누었다는 뜻입니다.

초대교회는 아직 독립 건물을 예배당으로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house church,' 집집마다 돌아가며 가정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때마다 어김없이 떡을 떼고 포도즙을 나누며 주님이 명령하신
그대로 주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기억하고 기념했습니다.

초대교회에 있어서 성만찬은 예배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초대교인들은 예배 생활에 만전을 기했습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 생활입니다.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하나님을 찬미하고 경배하는 것은 성도의 기본적인 의무입니다.

2007년도 한 해 동안 우리 내리교회 교인 모두는 예배 생활에 정성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주일성수는 물론이고 모든 집회에 어김없이 참석해서 큰 은혜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예배가 살고 은혜가 넘치면 우리 교회는 저절로 부흥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넷째로, 기도에 힘쓰는 교회였습니다. 
42절 맨 마지막 부분을 보세요.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46절 초반부를 보세요.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초대교회는 무엇보다도 기도에 전무한 교회였습니다.
하루에 수 천명씩 주님 앞에 돌아온 것도 기도 때문이었고
그 엄청난 환난과 핍박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기도 때문이었습니다.
그야말로 기도는 초대교인들에게 모든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발전소와 같았습니다.

금년 한 해 동안도 우리 내리교인들은 기도하기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금년부터 새로 시작된 매일 밤 10시의 겟세마네 기도회에도 나와서 열심히 기도하십시오.
새벽기도회와 중보기도회에 나와서도 힘써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이와 같이 초대교회가 사도들의 가르침에 충실했고,
함께 베풀고 나누는 공동체 정신이 풍부했고,
성만찬을 통한 예배에 정성을 다했고,
기도에 전념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났습니까?

47절을 보세요.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초대교회의 생활은 위로 하나님을 찬미하고
아래로 온 백성에게 칭찬 받는 생활이었습니다.
이렇게 위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리고
아래로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과 칭찬을 받으니
구원받은 숫자가 날마다 더하여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금년 한 해 동안 우리 내리교회가 이런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무녀리 교회'를 꿈꾸며>
지난 금요 심야 기도회에 제 친구 목사님이 오셔서
말씀을 전하셨는데 큰 은혜를 받은 대목이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무녀리'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소설가 '이문열'의 이름은 알았어도 '무녀리'라는 말은 그 날 처음 들었습니다.

무녀리의 본딧말은 '문(門)열이'로서 문을 처음 연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짐승의 한 태에 있는 여러 새끼들 가운데 가장 먼저
태의 문을 열고 나온 첫 새끼를 의미하는 말이지요. 

그런데 이 무녀리라는 말은 언어 행동이 좀 모자란 듯이
보이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데에도 쓰여진다고 합니다. 
이 말을 알고 난 다음에 우리 집안도 그렇고, 장남이나 장녀는
대부분 키도 작고 체력이 약한 것처럼 생각이 되었습니다.

돼지가 새끼를 한 열 마리쯤 낳으면 그 중에서 제일 먼저
태어난 놈이 가장 못나고 비실비실 하기 마련입니다.
어머니 태문을 열고 처음 나오느라고 용도 쓰고
머리도 부딪히고 하다보니 온전치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무녀리라는 새끼 돼지를 팔 때마다 제값을 못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무녀리를 그런 돼지값이나 따지는 이기심이 아닌
맑고 깨끗한 눈으로 보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이 무녀리가 여러 마리의 새끼들 가운데 가장 먼저 나오기 때문에
다른 형제 자매들이 쉽게 태문을 열고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몸을 다쳐가며 비실비실 고생을 하기에 다른 새끼들이 편안하게 나온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많은 새끼들이 엄마 젖을 먹으려고 아귀다툼을
할 때 무녀리는 기운이 세지 못해 항상 뒤로 쳐집니다.
태어날 때뿐만 아니라 태어나서도 빌빌거리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무녀리 때문에 다른 형제들이 기운차게 자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무녀리에게서 이와 같이 자기는 변변치 못하고
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하지만 남에게 먼저 베풀고
나누는 아름다운 희생과 겸양의 정신을 배울 수 있습니다.

교회로 치면 우리 교회도 한국의 첫 교회이니 무녀리 교회인 셈입니다.
금년 한 해 동안 우리 교회도 무녀리 정신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비실비실 기운이 없어 보여도 실상은 이웃과 어려운 교회를
돕고 지탱해주는 무녀리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꾸벅꾸벅 양보를 잘 해도 그 양보 때문에 이웃이 기뻐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때문에 이웃이 살고 어려운 교회들이
기쁨과 소망을 찾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김흥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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