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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나안 땅의 축복 (수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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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땅의 축복

할렐루야! 반갑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큰 은혜, 큰 사랑을 함께 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웃어야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웃어야 사람입니다. 짐승은 웃지를 못합니다.
한 선교사가 어느 대륙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원주민들이 모두 옷을 벗고 있고 온 몸에 난 털 때문에 도대체 사람인지 원숭이인지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본국에 전보를 쳤습니다. ‘사람인지 동물인지 도무지 구별할 수 없는데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 얼마 후에 전보가 도착했습니다. 「 웃는 것은 사람이고 웃지 않는 것은 동물이다 」

여러분 사람만이 웃고 짐승은 웃을 수 없습니다. “웃음은 사람만이 가진 자산입니다.”(아산병원 김종성교수) 사람에겐 왼쪽 대뇌 4㎝ 크기의 ‘웃음보’가 있습니다.(미국 켈리포니아대 이차크프리드 박사) 웃음보를 자극하게 되면 웃음이 나오는 것입니다. 환경과는 아무관계가 없습니다. 전쟁터에서조차도 웃음을 선택하면, 긍정적이고 재미있는 생각을 하면, 극한 상황 속에서도 웃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웃는다는 것은 상황이나 소유에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면에서 진짜 사람입니다. 성경에 보면 병들어도 웃을 수 있는, 가난해도 웃을 수 있는, 상황이 아주 급박해도 웃을 수 있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오늘 성경, 여호수아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려고 12명의 정탐꾼을 보냈다가 실패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신세대는 이 요단강을 건너가고 성공하고 승리를 했습니다. 승리한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때와 달라진 점이 무엇이냐? 오늘 우리가 그것을 생각하면서 은혜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여러분 40년 전에 실패, 40년 후의 교육의 결과, 이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가나안 땅의 축복, 전쟁의 축복은 어떤 사람이 할 수 있습니까?

1. 자존감을 가져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적이 얼마나 나보다 강한지 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얼마만큼의 자존감이 있느냐하는 문제입니다. 자기 자신을 잘 아느냐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가나안 족속과의 전쟁터입니다. 하지만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자만이 적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세계를 정복한 몽골의 징기스칸은 자기를 이기는 자가 상대를 이길 수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적은 밖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있었다!’ 라고 하면서 자기를 이기는 자가 상대를 이길 수 있다고 합니다. 내 안의 적! 세계를 정복한 징기스칸의 말입니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내 일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그림자말고는 친구도 없고 병사로만 10만
백성은 어린애, 노인까지 합쳐 2백만도 되지 않았다.

배운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아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 버렸다.
나를 극복하자! 나는 태무진이라는 이름대신에
나는 징기스칸이 되었다

징기스칸은 ‘하늘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칸’은 ‘왕’이란 말이고 ‘칭기스’는 ‘하늘의 아들’, ‘신의 아들’ 자존감입니다. 그 자존감이 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그로 하여금 세계를 정복하고 승리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징기스칸을 세상적인 가치판단으로 하면 아버지가 없고, 가난하고 작은 나라 백성이고 무식하고 화살과 감옥에 갇혀서 칼을 쓰는 운이 나쁘고 아무것도 없고 내세울 것이 없지만 내가 누구냐? 자존감만은 분명했습니다. 나는 ‘하늘의 아들’이라는 자존감을 가진 사람으로써 이 세계를 정복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간 우리들이 그 자존감을 회복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자존감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이스라엘이 누굽니까? 애굽의 노예였습니다. 그래서 그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항상 ‘애굽으로 돌아가자, 거기가면 먹을 것이 많다. 거기가면 쉴 곳이 있다, 애굽이 가장 좋다’고 말했습니다. 왜? 지금 힘이 드니까요. 그런데 노예생활이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신음소리가 하늘의 하나님께 들렸습니다. 오늘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지나간 것에 연연합니다. 이것이 노예근성입니다. 생각을 할 줄을 모릅니다. 그런데 광야 40년 출애굽 세대는 애굽에서 금은보화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성막을 지을 때 가지고 나온 것이 많으니까 이들이 금은 보화를 바쳤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들 아버지 세대들이 다 죽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세대입니다. 이들은 광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자랐습니다. 여러분 광야가 어떤 곳인지 아십니까?

제가 성지 순례 갔을 때 애굽에서 이스라엘까지 가는 이 광야길을 가 보았습니다. 거기는 모래사막입니다. 거기는 우리의 백사장의 모래가 아니라 먼지모래입니다. 지나가노라하면 그 먼지가 숨을 콱콱 막히게 합니다. 바람이 불면 한순간에 여기에 산이 생기고 저쪽에서 바람이 불면 산이 이쪽에 생기는 그런 열악한 환경입니다. 또 돌산으로 가득합니다. 거기에는 나무 하나 없습니다. 지금도 몇몇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굉장히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도저히 사람이 살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게 광야입니다. 그런데 이 신세대 사람들은 그런 광야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그들이 먹는 것은 하나님이 주셨다고 하지만 만나와 메추라기 이상의 잔치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근근이 연명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들이 입은 옷은 스스로 지어서 만든 옷이 아니라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옷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옷을 헤지지 않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목욕이나 제대로 했겠습니까? 빨래나 제대로 했겠습니까? 머리에 기름이나 제대로 바를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세상적으로 보면 보잘 것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들을 향해서 “내가 너희와 함께 할 것이니라. 내가 모세와 함께 한 것처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5절)”

세상적으로 보면, 특히 신세대들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보잘것없는 하찮은 인생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해서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 “너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다. 네가 그 자존감을 가지면 너는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징기스칸, 태무진보다 더 어려운 상황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을 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 부자에게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고 지식인들에게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신세대의 가난하고 어려운 세대들과 함께 하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왕이신 하나님의 가족이니 우리는 하늘나라 로얄 패밀리입니다. 우리에게 과연 그런 자존감이 있습니까? 아직까지도 우리 자신을 바라볼 때 우리는 가진 것이 없다는 것, 내가 병들었다는 것, 나는 실패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가난안 땅의 축복을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 자존감이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들 무슨 역사가 있겠습니까? 회개하시기를 바랍니다. 언제까지 세상적인 가치를 가지고 우리를 판단하고 우리를 비판하고 우리를 세우는 이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과연 우리는 그런 자존감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교회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하겠다면서도 우리는 예배가 끝나고 돌아서면 불평하고 원망하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을 합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가 이러나겠습니까?

여호수아 5장에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 가지 명령을 하십니다.

첫째는 ‘할례를 받아라’는 것인데 할례를 받는 것은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이 되는 예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을 하는 예식이 할례입니다. 우리는 이미 세례를 받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유월절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유월절이 무엇입니까? 애굽땅에서부터 구출해 낸 사건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날입니다. 유월절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마음에 기대가 있습니다. 너희는 종이 아니라 자유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로얄패밀리요, 출애굽기 19장 6절에 있는 말씀대로 제사장 나라라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말한 대로 왕같은 제사장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유월절을 지키게 하면서 깨닫게 하시는 것은 ‘너는 하나님이 보낸 제사장이요, 하나님을 대신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너는 백성들의 대표로써 내가 너희를 만나고 너희를 통해서 이땅을 축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자존감의 회복, 오늘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인 줄로 믿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나는 하늘나라 로얄패밀리다. 나는 제사장이다.” 이 시대의 리더입니다. 하나님이 온 민족으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온 땅에 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을 이렇게 귀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세상적인 가치로 우리를 논하지 말고 불평하지도 말고 낙심하지도 말고 하나님이 주신 자존감을 가지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가나안을 향해서 나아가시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그 땅을 차지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 인생이 끝나는 그날, 당신은 뭐했소? 하면 우리는 딱 한가지 「나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다. 」

리빙스톤이 16년동안 아프리카선교를 하면서 27번 풍토병에 걸려서 죽다가 살아났습니다. 그 엄청난 죽음의 순간! 사자에게 팔을 하나 잃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노예상인들과 흑인들 사이에서 많은 오해도 받았습니다. 그때마다 그를 지켜준 자존감! “나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다.” 여러분 성경에서 요셉, 다니엘이 성공을 했던 것은 무엇입니까? 요셉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으로 노예, 죄수였으나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다니엘도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기에 전쟁포로였으나 바벨론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목동이었으나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으로 골리앗을 이겼습니다. 애굽의 국무총리와 바벨론의 국무총리, 그리고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내 처지와 상황을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자존감을 가지고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말씀을 가져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며 그 안에 기록된대로 지키고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일 평탄 할 것이며 네 길이 형통하리라” 평탄과 형통입니다. 평탄은 걸림돌이 없이 평탄하다는 것이고 형통은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이번 2006년 아시안 게임 유도에서 금메달을 딴 이원희 선수에 대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이번에 유도에서 그랜드 슬럼을 했다고 방송과 신문에 대서특필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선수를 신앙적으로 보면서 참 하나님 앞에 감사를 합니다. 왜냐면 그가 좋은 신앙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시합에서 이겨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는 것도 귀한 일이지만 이 선수가 이번 아시안 게임을 하고 신앙을 고백하는 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이원희 선수는 아테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난 다음에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그는 이 슬럼프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내가 챔피온이 됐다고 생각을 하니까, 다 이루었다고 생각을 하니까, 그 다음에는 허탈감에 빠졌습니다.” 그 슬럼프에 빠지니까 부상에 잦아지더랍니다. 그는 아시안 대표선수 선발전에 나갔을 때 1차 선발에 떨어지고 2선발에 떨어져서 안됐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말을 했습니다. “이제 이원희는 끝났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을 했더랍니다.
왜? 이 슬럼프를 극복할 만한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는 다리 골절 때문에 지난 겨울까지 다리를 질질 끌고 다녔다는 것입니다. 아시안게임 선발전에도 이 다리 때문에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내가 시합에 나가서 승리를 하고 참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싶은데 왜 제 다리를 고쳐주시지 않으십니까? 다리 고쳐주세요” 다리가 고쳐지지 않더랍니다.

어느날 기도하는 가운데 사도바울이 생각이 나더랍니다. 하나님이 위대하게 쓰시는 사도 아닙니까? 주의 종 아닙니까? 그는 삼층천까지 올라가서 경험하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그에게 손가락질을 합니다. “당신, 당신병이나 고치시오, 남의 병 고치지 말고” 그는 두통 때문에 안질 때문에, 간질 때문에 위대한 사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쓰시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조롱의 대상이었고 그것이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그는 육체의 가시를 벗겨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고쳐주시지 않으십니다. 그때 사도바울에게 깨닫게 하시는데 “아 그렇구나 하나님이 나에게 많은 일을 하게 하시는데 나로 하여금 교만하지 않게,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이러한 병도 아픔도 내게 남겨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 순간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는데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 하나님 이게 무슨 은혜입니까? 그랬더니 내가 약할 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 안에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건강해서 모든 것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능력이 내 안에 거함으로 하나님으로 모든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인줄로 믿습니다. 약한 자를 들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어리석은 자를 들어서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 아니십니까?

이원희 선수가 이 말씀 안에서 무릎을 꿇면서 “하나님! 나는 다리 고쳐달라는 말은 안하겠습니다. 내가 약할 때에 하나님 내 속에서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3차 선발전에 나가서 이겼습니다. 다들 놀랬습니다. 그런데 국제대회에 출전한 경험이 있고 실적이 있기 때문에 가산점이 더해져서 이번 아시안 게임에 대표선수로 나가게 된 것입니다. 부상의 안목은 계속 시달리지만 옆에서 뒤에서 염려하는 것들을 다 뒤로 하고 하나님 내가 약할 때에 하나님 강함으로 역사할 줄로 믿었습니다. 결승전에서도 그런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약할 때에 강함을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갈 때에 그는 한판승에 승리를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이 모르는 이 아름다운 신앙의 간증을 이 아들이, 젊은이가 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적으로 볼 때에 마귀가 그렇습니다. 세상이 그렇습니다. 육체가 그렇습니다. 다 뭐라고 합니까? ‘있어야 산다. 없으면 망한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약해서 하나님이 내게 역사하시고 은혜주실 때에 우리는 승리하는 사람이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세상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계적인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으로 판단하고 권력으로 위치를 구별합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사람은 하나님이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민족에게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는 세계의 리더로 우리를 세워주셨음을 믿습니다. 우리는 이 믿음으로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수원기독초등학교에 교목인 김요셉 목사님, 김장환 목사님(수원중앙교회)의 아들이신데 이분이 쓴 책이 있는데 “삶으로 가르치는 것만 낫는다.”라는 책을 보았습니다. 이 학교가 시작할 때입니다. 학교가 처음 시작을 하면 많이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학생들까지도 생수 통을 하나 놓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건축헌금을 했다고 합니다. 선생님가운데는 학교가 끝나면 저녁에 밖에서 군고구마 장사를 해서 그 수익금으로 헌금을 하기고 해서 오천만원이 모금이 됐다고 합니다. 오천만원이 모여졌을 때에 목사님이 하는 말씀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는데 우리가 여기서 십일조를 합시다.” 그래서 오백을 떼어서 분당에 기독초등학교를 하겠다는 교회를 찾아가서 예배를 드리면서 헌금을 드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달이 지난 후 그 수원기독초등학교에 편지가 한 장 날아왔는데 미국에 뉴욕에서 온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 하고 편지 내용을 보았더니 분당의 기독초등학교를 한다는 초등학교를 찾아가서 헌금을 하면서 자초지종을 말한 그날, 그 예배에 참석하신 분이 그 얘기를 들은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명령을 하시는데 “네가 그 수원기독초등학교를 채워줘라” 그래서 “얼마를 채울까요?”를 물었더니 “열배를 채워라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오만달러를 헌금을 하셨습니다. 이 일을 통해서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온 교사들과 학생들이 은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무늬만 기독초등학교가 아니라 자기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주일 성수의 축복이 무엇이며 십일조의 축복이 무엇이며 말씀안의 축복이 무엇이며 기도하는 자의 승리가 무엇인지를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가르치지 못하는 것을 가르치는 학교입니다. 그 학교의 규모가 얼마가 되든 간에 하나님이 이런 학교를 인정하시고 축복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 축복의 얘기가 그 책에 다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형편은 어떻습니까? 저는 얼마되지 않는 외국이지만 나갈 때마다 미국에 가서도 우리나라 잘 산다, 우리나라 참 축복받았다하는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여러분 제가 어렸을 때는 지나가는 미군트럭을 ‘초꼬레뜨 기브미’ 하면서 쫓아갔습니다. 송탄에 사는 제 친구는 ‘초꼬레뜨 기브미’ 하면 주는 미군들이 있는가하면 못된 사람은 그것을 가시덤불 속에 집어 던졌습니다. 그 안에 들어가서 그것을 주워 먹는 그렇게 힘들게 살았습니다. 50년도 안된 세월에 세계가 놀라고 우리 자신들이 놀라는 그런 일을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난하다고 하지만 제가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대로 정말 가난을 아십니까? 미얀마에 가보면 우리의 가난이 그들에게는 엄청난 부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쓰레기 냄새조차도 안나는 곳에서 사는 그들이 바로 우리교회가 세운 딴린교회의 사람들입니다.

지난주간 신문에 보니까 오천칠백만원만 가져도 세계 10%의 상위그룹에 속하는 부자라고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부자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가난다고 한탄하면서 사시겠습니까? 얼마나 잘 먹어야, 얼마나 일을 해야 잘 산다고 생각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뒤로 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사는 자가 기록된 대로 지켜 행하는, 주야로 묵상하고 그리하면 내 길이 평탄하게 되고 내가 형통하게 된다는 그 말씀을 기억하고 우리들이 다시 한 번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선진국은 앞서가는 나라고 후진국은 따라가는 나라입니다. 미국은 우리보다 선진국입니다. 교회도 선진국입니다. 19세기 미국은 선교사를 세계에 얼마나 많이 보냈습니까. 그리고 우리나라는 얼마나 많은 선교사이 왔습니까? 교회가 엄청 부흥했습니다. 그때에 미국은 선교학교 운동도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일이 없어졌습니다. 우리는 우리교회가 부흥하면서 한국교회가 부흥하면서 미국교회가 죽었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교회가 죽은 것이 아니고 미국교회는 둘 중의 하나로 갈립니다. 300명이하의 교회와 3000명이상의 교회로 갈리고 있습니다. 교회성장학자들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라고 말을 합니다. 지금 현재 교회 사학적으로 보면 300명 모이는 교회는 중형교회 500명이 모이는 교회는 대형교회, 1000명이 모이는 교회는 초대형교회, 2000명이상이 모이는 교회는 기가형 교회라고 합니다. 우리교회는 기회로 서있습니다. 300명이하의 교회로 갈 것이냐, 3000명이하의 교회로 갈 것이냐? 우리가 3000명의 교회로 하자고 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고 성장의 비전을 가지고 3000명의 교회와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그 길을 향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생명력을 불어 넣는 것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 앞에 겸손힌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교회 부흥은 말씀의 회복에 있습니다. 여러분 부흥회가 여러분에게 말씀의 회복의 기회가 되고 축복의 기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로얄 패밀리입니다. 우리는 자존감을 가져야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형편과 상황에 맞춰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앞으로 우리에게 주실 놀라운 축복을 생각하면서 웃을 수 있는 진정한 사람이요, 진정한 크리스찬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가나안땅의 축복에 나아가서 그런 승리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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