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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축복의 시대를 여는 교회 (행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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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의 시대를 여는 교회(행10:1-8)

우리는 우리의 말을 알아듣지만 남들은 우리가 하는 말을 잘 모르잖아요. 남들이 하는 얘기가 정답인 것처럼 교회는 이래야한다고 하면 하나님의 뜻과 생각은 관심들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 홈페이지는 잘못 운영이 되는 것입니다. 홈페이지를 통해서 은혜를 나누려면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 부흥회를 마치면서 여러분들이 열심히 참석하고 은혜 받은 것들, 저도 많은 은혜 받고 기뻤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이어가면 좋겠는가? 생각을 하다가 이번 부흥회 때 말씀을 열심히 적으신 분들이 적지 않으시더라구요. 그런 분들이 적은 내용, 요약한 내용을 올려주세요. 그리고 부흥회 설교테잎이 나오면 테잎을 열심히 들으시면서, 워드작업하시면 은혜를 더 받습니다. 그 타이핑한 내용을 올려놓고 모든 성도들이 같이 보면서 또 한번 은혜를 나눌 때 그 부흥회 때의 축복이 계속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부흥회 은혜 중에서 최고의 은혜는 삶의 변화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정말 “내 잔이 넘치나이다.” 오늘 그 목사님이 전해 주신 말씀처럼, 바디매오처럼 은혜를 받기 위해서 간절히 부르짖고 또 예수님을 만나고 또 성령충만한 삶을 살게 되어야 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믿음에 진단을 하고 믿음이 바로 서야하겠고 또 기도생활을 할 때 우리가 성령충만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성령에 이끌리어 사는 삶! 그것이 진정한 은혜 받은 자의 증거요, 축복받은 사람의 삶 인줄로 믿습니다. 꼭 여러분들에게 그런 은혜가 있기를 바라고 우리교회 홈페이지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의 마음이 다 은혜 받은 자세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우리들을 기억하시고 축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지난여름에 미국에 갈 때 비행기를 타고 갔습니다. 태평양바다를 건너서 13시간을 가니 미국 땅이였습니다. 가면서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비행기를 타고 넓은 태평양 바다를 건너면서, 가도 가도 끝이 없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러면서 생각하기를 지금부터 100년전 만 해도 이 비행기 같은 것은 상상도 못했잖아요. 배를 타고 다닐 때니까 그 배를 타고 미국이라는 나라를 갈 때,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한 달을 갔다고 하더라구요.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이 미국의 선교사들이 한국에 오려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겠습니까? 그래서 그 배에서 멀미를 해서 한국에 도착해서는 풍토병에 걸려서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나신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여기까지 왔다고 하니..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그 당시에 미국에서 유럽을 가려도 해도 대서양을 건너야 하는데 그것도 2-3주 걸렸다고 합니다.

한 남자가 미국여행을 하려고 준비를 하는데 여행 가방을 사서 치즈와 비스켓을 가방에 채우고 나니 돈이 바닥이 났다고 합니다. 배에 오르니까 다른 승객들은 크고 화려한 식당에 모여서 맛있는 음식을 먹지만 이 사람은 한쪽구석에 가서 자신이 싸온 치즈와 비스켓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며칠 동안 그는 식당에서 풍겨오는 맛있는 음식냄새를 맡으며 부러워했습니다. 식당 안에 있는 사람들이 배를 쓰다듬으면서 이번 여행이 끝나면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는 말을 할 때마다 정말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그도 식당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습니다. 밤에 자리에 누워도 식당 안에서 배불리 먹는 상상을 면 어느새 잠은 저만치 달아나 있었습니다. 항해가 끝날 무렵에 한 사람이 그에게 다가와 물었습니다. “선생님, 식사시간마다 저기에서 치즈와 비스켓을 드시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연회장에 들어와서 우리랑 같이 드시지 않습니까?” 이 말에 남자는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배를 타는 승선권만 겨우 샀습니다. 좋은 음식을 먹을 여유가 안됩니다.” 그러자 상대편의 눈이 놀라움으로 동그래졌습니다. 그는 갸우뚱하며 말을 했습니다. “선생님, 승선권에 음식값이 포함된 것을 정말 모르셨어요? 음식값을 이미 다 지불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 자신의 모습이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핸드폰을 가지고 다닙니다. 제 핸드폰에는 카메라는 없지만 기능이 다양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전화 걸고 받는 것, 문자 보내는 정도이지 그 이상은 별로 사용하지도 못하고 할 수도 없습니다. 이미 핸드폰을 살 때는 수없이 많은 기능을 샀지만 사용치 않는 것입니다. 아니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뭐 그리 자랑스러운지 ‘난 핸드폰의 전화 걸고 받기만 해...’ 얼마나 부족하다는 말입니까? 있는 것도 쓰지 못하면서 젊은이들은 다릅니다. 눈감고도 문자를 보내고 받고, 어떤 사람은 버스를 탈 때 버스비도 냅니다. 신기합니다. TV도 봅니다. 사진도 찍고 음악도 듣습니다. 우리 장로님 한분 차를 탔더니 핸드폰을 네비게이션으로도 사용을 하십니다.

여러분 세상은 이렇게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생활이 변하고 문화도 변하고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일 년, 한 달이 아니라 자고 일어나면 변합니다. 그것이 요즘 세상입니다. 그래서 요즘 화두 중 하나가 「 변해야 산다 」는 것이지요.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변하지 않고 생존할 수 없는 것이 요즘 세상의 모습니다. 기업은 물론 비즈니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가하면 교회도 과감한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변화를 두려워하고 더딘 것이 다름 아닌 교회입니다. 세상은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데 제일 모르는 사람들이 목회자, 장로리더십입니다. 변하긴 해야하는 데 “나 때에는 변할 수 없다” 그래서 교회가 조금만 변화를 시도해도 세상에 물든 것처럼, 세속화된 것처럼 ‘안된다’ ‘안다닙니다.’ 오래된 교회일수록 전통적인 교회일수록, 변화는 죽기만큼 힘듭니다. 무엇을 중시하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전통과 문화? 전통과 문화는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전통과 문화는 그 자체가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드럼을 치고 찬양을 하는 것, 있을 수 있습니까? 20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악은 이 오르간이나 피아노를 통해서만 하나님 앞에 드려져야지 어떻게 이런 기타나 드럼을 통해서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것은 문화입니다. 여러분 진리가 그 시대의 전통과 문화를 통해서 계속되고 전해지는 것이지 이것이 우리의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전통과 문화는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재해석되고 적용되어야 합니다. 변화하지 않는 교회는 미래에 살아남지 못합니다. 생존한다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하고 말 것입니다.

교회는 진리의 복음을 전하고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변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이 변해야 합니다. 패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 새로운 안목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정관념의 벽을 깨야 합니다. 벽이 깨지는 것은 창조적 파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벽이라고 하는 것은 보호하는 측면이 있어서 벽이 높으면 높을수록 안전합니다. 그렇지만 벽의 또 하나의 측면은 우리를 가두고 억압하기도 한다는 사실도 주의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역할을 받지 않게 하려고 자녀를 지키고 보호하려고 벽을 높이 쌓습니다.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하면 안되고 TV도 보면 안되고 컴퓨터도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런다고 아이들이 안합니까? 중요한 것은 분별력을 키워주는 일입니다. 롬 12:2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세상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도록 분별력을 키워줘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의 역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복음의 역사를 가두고 억압하는 벽은 부서져야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오늘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말씀입니다. 그 벽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역사적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복음이 전해지는데 가장 먼저 부서져야 할 벽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유대주의적인 신앙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을 얻으려면 먼저 유대인이 되어야 합니다. ‘유대인이 되어야만 예수를 믿고 천국갈 수 있다’ 라고 믿었습니다. 이런 고정관념이 깨어지지 않으면 복음은 이방인에게 온 세상에 전해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고정관념을 부수는 작업을 하셨습니다. 복음이 온 세상, 민족에게 전해지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를 위해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 집나간 자식, 잃어버린 자식을 찾으시는 아버지의 그 사랑의 마음을 누가 말릴 수 있겠습니까? 이런 작업을 하시는데 한 사람은 선택하셨습니다. 바로 고넬료 입니다. 이방인, 로마군대의 백부장이지만 하나님이 선택하셨습니다. 우상 숭배자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것처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고넬료와 같이 축복의 시대를 여는 사람으로 살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축복의 시대를 여는 인생이 가장 행복한 인생입니다. 나를 통해서 새로운 하나님의 축복이 시작되고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정한 축복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받았느냐? 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을 어떻게, 다른 사람과 어떻게 나누었냐는 것이 진정한 축복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축복의 시작으로 누구나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그 가운데 고넬료가 이방인을 향한 복음의 물고를 트는데 축복의 시대를 열도록 선택된 사람인 것처럼 오늘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야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선택하신 고넬료는 어떤 사람입니까?

1. 고넬료는 경건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의식하며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몇 년 전 서울 안동교회에서 오르간 연주회가 있어서 초청을 받아서 갔었습니다. 이 교회가 예배당을 새로 짓고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했습니다. 이 파이프 오르간은 수억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독일에서 공부하고 온 유명한 오르간 연주자를 모시고 음악회를 했는데 저는 그때 그 연주회를 참석하면서 파이프 오르간소리가 이렇게 아름다운지 처음 알았습니다. 참 감명 받았습니다.

지금부터 200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독일의 유명한 음악가 작곡가, 연주자로 유명한 멘델스존이 유럽에서 최상의 작곡가요, 오르간 연주자입니다. 이분이 하루는 당시에 최고의 오르간을 가진 예배당을 방문을 했습니다. 예배당에 들어서니 그 교회에 오르가니스트가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꽤 든 사람이었습니다. 찾아가서 부탁을 했습니다.
“한번 연주를 해보면 안되겠습니까?”
그러자 그 교회 오르가니스트가 “나 당신을 모르는데 어떻게 오르간을 연주할 수 있습니까? 안됩니다.”
멘델스존, 음악의 거장이지만 사정을 해서 겨우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멘델스존의 손가락이 건반위에 놓는 순간, 손가락이 건반 위를 달려가고, 발은 페달을 밟았는데 그때 그 예배당 안에는 이 오르가니스트가 지금까지 들어 본적이 없는 굉장한 멜로디로 가득 찼습니다.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오르가니스트는 멘델스존에게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누구시기에 이렇게 좋은 음악을 만드실 수가 있습니까?”
음악의 거장은 조용히 대답을 했습니다. “멘델스존입니다.” 그때 나이 많은 오르가니스트는 놀라면서
“멘델스존, 당신같이 당대 최고의 연주자에게 오르간을 연주하지 못하게 했으니 늙은 나는 얼마나 멍청합니까?”
하면서 멘델스존을 몰라봤던 것을 사과하고 동시에 무릎을 꿇으면서 부탁을 합니다. “부족한 사람이지만 한수 가르쳐주시지요.”

여러분 당연한 것 아닙니까? 저는 이야기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닙니까?” 위대한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그 하나님을 알아봅니까? 그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면서 “하나님 내게 한수를 가르쳐 주십시오. 나는 정말 당신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성경에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정말 우리는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는 것은 이런 것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습니까? 혹시 그것이 먹고 사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습니까? 그것이 설령 우리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그러니까 우리 주님이 말씀을 하시잖아요. “너희 가족보다 나를 더 사랑하지 않는 자는 나를 사랑할 수 없다”하나님만을 사랑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만이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마음으로 주일에 예배당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헌금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에스더처럼 하나님을 향한 마음으로 헌금을 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로마군인, 백부장, 1OO명의 군인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점령군의 사령관으로써 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얄팍한 지식과 몇 푼 안되는 재물을 가지고 자기가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고 봅니다. 솔직히 열심히 교회에 나오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행동하며, 사람을 업신여기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업신여깁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나 고넬료에게는 경건의 은혜가 흐르고 있습니다.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너무나 겸손했습니다. 이 고넬료가 천사의 말을 듣고 그리고 자기의 하인과 부하 중에서 경건한 사람 한사람을 불러서 옆방에 있는 베드로에게 보냈습니다. 적어도 그 하인까지도 경건한 사람이 있습니다. 고넬료가 경건하니까 그 부하들도, 하인들도 경건했습니다. 얼마나 멋있는 사람입니까? 베드로가 이 고넬료의 집에 오게 될 때, 하나님이 이 고넬료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도 수제자를 보내셨을까? 베드로가 온다는 소식을 들은 고넬료가 어떻게 합니까? 고넬료가 그 친구들과 가까운 친인척들을 모아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마침 베드로가 들어오니 고넬료가 직접 마중 나와 그 발 앞에 엎드려 절하니 적어도 경건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베드로는 대할 때도 베드로를 대하는 것이 아니고 그의 가진 재산으로 대하는 것도 아니고 그가 가진 실력으로 대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라고 하는 그 믿음 앞에 겸손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교회생활이 겸손해야합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있는 모든 것에 겸손을 해야 합니다. 미국대통령만 대단합니까? 미국대통령주변의 사람들도 다 대단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삶의 모습이 겸손했다면 그 경건, 그런 경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의 시대를 여는 열쇠가 하나님의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고넬료는 긍휼한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백성들을 많이 구제했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권력을 가지고 과시하기 위해서 칭찬받고 구제한 것이 아닙니다. 긍휼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강대상에서 말씀을 전할 때, 한때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설교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습니다만 지금은 아닙니다. “주님! 하나님이 주신 이 말씀을 가지고 증거할 때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이 위로받기를 원합니다. 치유받기를 원합니다. 강한자 되기를 원합니다.” 마음속에는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누군가의 마음을 변화시키겠다? 그런 마음이 얼마나 가겠습니까? 그런 마음을 가진지고 산들 뭐가 그리 기쁘겠습니까? 말씀을 전하고 증거하는 이유는 긍휼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찬양대 하는 여러분들의 마음속에는 어떤 마음이 있습니까? 물론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지요. 그러나 여러분의 마음속에 이 찬양을 통해서 성도들이 은혜받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성전을 청소하면서 어떤 마음으로 하십니까? 꽃꽂이를 하면서, 식당에서 식사를 준비하면서 어떤 마음으로 하십니까? 물론 어렵습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보다 앞서는 것은 긍휼히 여기는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이일을 통해서 은혜받기를 원하기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의식이 정말 축복의 손길이 아니겠습니까? 긍휼한 마음을 가지는 것! 이런 마음을 가지고 가정에서 남편을 대하고 자식을 대하는 것, 부모를 대할 때 그 가정은 달라집니다. 직장에서도 사장이 나에게 얼마를 주느냐가 아니라 내가 사장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사장님은 직원들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이런 긍휼한 마음으로 일할 때 그 직장이 축복받고 대한민국이 축복받을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고,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위로를 받고 싶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땅에 모든 사람들이 상처를 받았습니다. 이 땅에 있는 한 그렇습니다. 긍휼한 마음을 가지세요.

4절에 보면 기도할 때에 주의 사자가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기억하심바 되었다”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칭찬받는 구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기억되어지는 구제를 했다는 말입니다. 상대방의 아픔을 공감하며 동참했습니다, 따뜻한 날을 가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구제하는 사람을 통해서 축복의 시대를 여는 사람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사람으로 사용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고넬료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웃자고 하는 얘기 가운데 술집에서 ‘집사님!’하고 불으면 절반이 뒤를 돌아본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는 절반은 아니고 조금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중에 담배를 피우시고 술을 죄의식 없이 마시는 분들이 더러 계십니다.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속에는 구원이후에 구원받은 새 성품과 죄악된 옛 성품이 함께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술을 마실수록 옛 성품에 거름을 더 뿌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 성품에 물과 거름을 더 주면 믿음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독초와 술이라는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의 보혈을 내게 바르고 의롭게 사는 백성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교회는 부흥을 하고 대한민국은 더 잘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항상 선택을 해야합니다. 나의 옛성품에 거름과 물을 줄 것이냐? 아니면 주님의 내게 주신 받은바 의로움의 거름과 물을 줘서 새 성품을 키울 것인가? 순간순간 결정을 해야 합니다. 나를 생각합니까? 그렇다면 기도만큼 축복이 없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기도를 우리를 채우는 것입니다.

고넬료는 하나님께 항상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병들면, 실패하면, 억울하면 꼭 기도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기도는, 힘이 되는 기도는 항상 기도하라고 합니다. 일이 있건 없건 간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왜? 기도가 호흡이고 대화고 우리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온 집이 더불어 같이 앉아서 하나님 앞에 한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기도 중에 환상을 보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으시지요? 눈으로 볼 수 없는 환상과 비전을 보고 싶으십니까? 엎드려야 합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해야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정성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습니까? 환상을 볼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많은 능력을 베푸셨습니다. 능력의 원동력은 예수님도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새벽미명에 기도하사고 광야에서 금식기도하시고 홀로 산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 사건 앞에서도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위대한 사역위에는 하나님과 1:1로 만나는 기도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기도가 삶 자체이셨습니다.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1:1로 만나는 기도생활이 있는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약한 사람입니다. 약할 때 강함 되시는 주님의 능력은 기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기도가 살아 있습니까? 남아도는 시간에 기도하는 것 아닙니다. 자기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을 드려 하나님의 앞에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교회의 119기도를 시작을 하면서 119기도는 기도의 불씨입니다. 이것을 하게 되면 기도하게 되어있습니다. 보면 별것 아닙니다. 그런데 시작이 반입니다. 들고 기도하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 부흥회 강사로 오신 이용남목사님께서 이것을 보시더니 이렇게 좋은 게 있었냐면서 내년부터 본교회에서 사용하신다고 가지고 가셨습니다. 제가 119기도를 하면서 우리교회 교역자들한테도 말을 했습니다. “이 119기도의 불씨가 한국교회의 기도운동에 불씨가 되기를 바랍니다.” 세계교회로 수출이 되기를 바랍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한 두주전인데 전화가 한통이 왔습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목사님이세요? 저에요. 아시겠어요?” 하시는 것입니다. 알 수 있습니까? 그 목소리만 듣고 말이죠. 말을 시켜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샌프란시스코에 이민을 가진 조정희 집사님이 전화를 하신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을 하고 계셔서 그러는데 목사님께서 가셔서 기도 좀 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누가 전화를 했는데 나를 딱 알아보면 얼마나 기분이 좋겠습니까?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겠습니까? 저에게도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생각하면 미소짓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저녁을 누구하고 먹을까? 누구하고 기쁨과 이 슬픔을 나눌까?’ 하고 생각을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지만 아무리 사람이 기억해도 하나님이 기억하지 못하며 끝난 인생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의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기억하실 것, 하나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고넬료가 그렇습니다. 그의 경건이 기억되고 그의 긍휼한 마음의 구제가 기억이 되고 그리고 항상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께 기억이 됩니다. 그는 이방인입니다. 그는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 이렇게 귀한 사람이 있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 자신이 불쌍하게 보이더라구요. 여러분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변화되어야 합니다. 축복의 시대를 여는 열쇠와 같은 교회가 성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교회 창립42주년을 맞이해서 우리는 새로운 변화를 향해서 앞을 향해 나아갈 때, 하나님이 기쁘게 축복하실 줄로 믿습니다. 또 성탄절을 맞이해서 과거하는 다른 고넬료와 같은 심정으로 주님의 성탄을 준비할 때 성탄의 진정한 축복과 은혜가 우리에게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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