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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흥 시리즈(2) : 우리가 어찌할꼬? (행 2:3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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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탄생과 부흥

제 선배 목사님 한 분이 개척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기도한 후 우선 적당한 건물을 찾아 전세계약을 하고, 강대상과 장의자를 구입하고, 큰 희망을 가지고 힘차게 시작했습니다. 기도 덕분인지 개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한 사람 두 사람 모이기 시작하더니 금세 몇 십 명이 모이는 제법 모양을 갖춘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부터가 참 힘들더라는 것입니다. 몇 십 명이 모인 후부터 차츰 정체가 시작되더니 교인 수는 좀처럼 늘지 않고 오랜 시간 침체를 겪게 되었습니다. 설교가 문제인가 싶어 설교준비에 더 최선을 다해보았는데도 소용이 없고, 시설이 부족한가 싶어 없는 돈 털고 빚내어 시설을 갖추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결국 그 목사님 하는 말이 “기도 밖에는 길이 없더구먼.” 하면서 매일 부부가 철야기도를 하는 것을 보고 저는 포항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선배 목사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새 힘들었는지 얼굴이 무척 수척해진 그 목사님,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개척, 참 멀고도 힘든 길이야. 누군가 개척한다고 하면 나는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말리고 싶어.” 얼마나 힘들면 이런 말을 할까요? 여러분, 우리는 이미 자리를 잡은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느라 잘 모르지만 이렇게 교회를 개척하는 일은 참 어렵고 더군다나 교회를 부흥시킨다는 것은 참 어렵고도 먼 길입니다. 누구나 우리 교회가 부흥하기 원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좀 쉬운 방법을 찾기도 합니다.

며칠 전 라디오에서 기독교 교계소식을 듣는 중에 모 교단이 올해 소속 교회 배가운동을 한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2천 교회를 4천 교회로 늘리겠다는 것이지요. 참 좋은 계획이다 싶었는데 바로 그 다음 순간 참 실망스러운 말이 이어집니다. 소속 교회를 배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다른 군소교단을 흡수 통합하겠다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에게 부지런히 전도해서 교회를 새로 세우고 교단을 부흥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손쉽게 다른 작은 교단을 통합하겠다니 참 실망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그만큼 교회 부흥은 힘들다는 뜻도 됩니다. 정말 이렇게 힘든 교회개척과 부흥,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요? 어떻게 하면 교회가 새로 많이 생겨나고 아름답게 부흥할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사도행전 2장에서는 교회의 탄생(교회개척)과 부흥의 과정을 정말 다이내믹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을 읽으면서 초대교회가 탄생하고 부흥해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특히 교회의 부흥은 개척교회뿐 아니라 오늘 우리 효자교회도, 그리고 모든 교회가 가장 큰 관심을 가지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사도행전 2장을 주목해서 볼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사도행전 2장은 교회의 탄생과 부흥의 방법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사도행전 2장 전체를 다섯 단계로 나누어 교회의 탄생과 부흥의 과정을 살펴봅니다.




1. 성령강림

가장 먼저 초대교회는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으로 시작됩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 하신 후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1:13)에 모여 열심히 기도합니다. 2장 1절을 함께 읽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때는 오순절이었습니다. 유대인의 3대 절기 중 하나인 오순절은 ‘칠칠절’ 혹은 ‘맥추절,’ ‘초실절’이라고도 부르는데 오늘날 추수감사절에 해당되는 절기입니다. 이 오순절 때 저희, 즉 예수님의 제자들과 120문도(1:15)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하기 위해 모였을까요? 물론 기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미 초대교회가 생기기 전부터 이들은 모여서 기도운동의 불을 붙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모든 성도가 함께 모여 기도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2~3절을 봅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이들이 모여 기도할 때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와 함께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나타나 성도들 위에 임하게 됩니다. 이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은 바로 성령님의 임재를 뜻합니다. 오순절 다락방에 바람같이 불같이 강력한 성령의 임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예루살렘 초대교회는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임 속에 성령께서 강림하셔서 시작된 것입니다. 교회는 건물을 마련하고 성구를 사들이고 십자가를 단다고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반드시 기도의 공동체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입니까? 초대교회처럼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여 기도하는” 그런 공동체입니까? 이것이 중요합니다. 또 이 기도하는 공동체 위해 성령이 강림하실 때 교회는 시작됩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성도의 공동체요, 성령공동체입니다. 성령이 임하지 않으시면 교회는 시작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질문을 또 해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성령이 강력하게 임하셔서 역사하시는 성령공동체입니까? 아니면 사람만 모인 사람 공동체입니까?




2. 성령강림의 결과

그런데 이렇게 강력한 성령이 임재하시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4절을 봅니다.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께서 강림하시자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납니다. 첫째는 “저희가 다 성령 충만함을 받은 것”입니다. 둘째로는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분명히 알아두십시오. 어떤 분들은 성령강림과 성령 충만을 같은 것으로 이해하는 분도 있는데, 성경을 잘 읽어보면 두 가지가 분명히 다릅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믿는 자들 안에 임하셔서 거하십니다. 즉,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그 순간, 성령께서 내 안에 내주하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신다고 해서 모두가 성령 충만한 것은 아닙니다. ‘성령 충만’이란 말 그대로 내가 성령에 의해 가득 채워지는 것을 뜻합니다. 내 영이 성령으로 가득하고, 그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지시하심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을 뜻합니다. 반대로 성령이 나에게 임하셔서 분명히 내 안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성령 충만하지 못해서 성령님은 뒷방 시어머니처럼 저 구석으로 밀려나 있고, 대신 나 자신이나 세상적인 것들이 내 안에 가득하고 그 기준을 따라 살아간다면 우리는 성령 충만이 아닌 자아 충만, 세속 충만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따라서 물론 성령이 강림하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부흥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성령 충만한 교회인가? 물론 모든 교회마다 성령이 임하셔서 함께 하십니다만 성령 충만하여 교회와 성도 전체가 성령으로 가득차고 모든 일을 할 때 기도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성령은 계셔도 충만하지 못한 교회가 있습니다. 당연히 성령 충만한 교회만이 참된 부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성령 강림의 두 번째 현상은 방언입니다. 성령이 강림하시자 그 결과로 모든 성도가 방언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고 오늘도 성령이 충만하면 모든 성도가 무조건 방언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방언은 성령충만의 결과지만 수많은 은사 중 하나일 뿐입니다. 로마서 12장과 고린도전서 12장에는 은사목록이 나오는데 은사에는 방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은사가 있습니다. 물론 오순절 다락방에서는 성령충만으로 방언이 일어나지만 오늘날 교회에서는 성령충만을 경험하면 여러 가지 은사를 받게 됩니다. 또한 그 은사를 받은 것으로만 끝나지 않고 성도들 각자가 내가 받은 은사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교회를 섬기고 성도들을 섬기게 됩니다. 즉 은사운동이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우리 교회도 이 초대교회처럼 성령충만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충만의 결과로 받은 다양한 은사를 가지고 성도들이 앞 다투어 교회를 섬기고 성도를 섬기는 은사운동이 일어나면 우리 교회는 놀라운 부흥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3. 말씀운동

세 번째로 성령 충만 이후 초대교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5절에 보니 오순절 당시 예루살렘에는 세계 각국에서 순례하기 위해 모여든 경건한 유대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방언 소리를 듣고 모여들어 신기한 눈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다가 그 중에 한 사람이 “저 사람들 대낮부터 새 술에 취했나보다.”라고 조롱합니다. 그 때 이 소리를 듣고 베드로와 열한 사도들이 일어나는데 그 중에 베드로가 대표로 설교를 시작합니다. 15절부터 36절이 이 설교인데 그 내용은 바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나사렛 예수님이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라는 ‘복음’입니다. 초대교회에 성령 충만이 일어나고 방언과 은사를 체험하자 곧바로 말씀운동이 일어납니다. 말씀이 기초가 되지 않고는 절대 교회 부흥도 없습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지만 세계의 모든 부흥운동은 말씀운동에서 시작되었고,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도 말씀 듣는 사경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즉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고 말씀운동이 일어나야만 그 교회가 부흥한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우리 교회는 말씀 충만한 교회인가? 질문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효자교회 목사님 설교가 참 좋대” 하고 소문이 나야 우리 교회를 찾아옵니다. 교회에 와보니 건물과 시설은 최고고, 주차시설도 좋고 모든 것이 다 좋은데 정장 말씀의 능력이 없다 하면 다시는 그 교회 안 옵니다. 저도 이 사실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제 목회력의 대부분을 말씀준비에 쏟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더욱 많은 시간과 기도를 설교준비에 쏟겠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효자교회는 말씀 좋은 교회”라고 소문나게 만들 것입니다. 하지만 제 노력으로만 그쳐서는 안 되고 모든 성도가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또 오늘도 주보 광고에 나왔지만 성도들 모두가 올해 성경일독 하겠다고 마음먹고 전 교인이 말씀에 매달리는 말씀운동이 일어나야 부흥이 찾아옵니다. 효자교회가 다른 무엇을 잘하는 교회로 소문나기보다 말씀이 역사하는 교회, 말씀의 능력에 사로잡힌 교회로 소문나기 바랍니다.




4. 회개운동

네 번째로, 베드로가 설교를 하고 나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37절을 함께 읽습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저희가 베드로의 설교를 듣자 어떤 일이 생깁니까? 마음이 찔렸습니다.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니 마음이 찔립니다. 이 ‘찔린다’는 말은 원어로 그냥 살짝 찔리는 것이 아니라 콱 박혀서 몸을 관통해 버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갭니다(히 4:12).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온 순간, 내 심령이 찔려 관통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말씀이 들어오면 더러운 죄로 죽었던 내 양심이 다시 살아나 찔리게 됩니다. 이렇게 찔릴 때 어떤 사람들은 그 자리를 피해버립니다. 아예 죄를 더 많이 지어 양심을 다시 묻어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날 모였던 유대인들은 피하거나 숨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찔리자 베드로와 사도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우리가 어찌할꼬?”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드러난 이 추악한 죄를 어찌해야 씻을 수 있겠냐는 질문입니다. 바로 회개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죄 앞에 애통한 심정으로 사도들의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 사경회에서 말씀을 들은 성도들은 오늘 이 유대인들처럼 자신의 심령이 격하게 찔리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너나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 이 더럽고 추악한 죄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외치며 몸부림치고 부르짖습니다. 선교사들이 “하나님, 제가 조선인들을 깔보고 우월감에 젖어 선교했습니다.” 하고 먼저 회개하자 길선주장로가 “저는 친구의 돈을 떼먹었습니다.”라고 회개하고 앞 다투어 돈을 떼먹은 죄, 간음하고 방탕한 죄, 남을 미워한 죄, 심지어 전쟁 통에 자식이 귀찮아 업은 채로 나무에 부딪혀 죽게 한 일까지 앞 다투어 고백하기 시작합니다. 성령이 임하시고 말씀이 들어오니 놀라운 회개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우리가 어찌할꼬?” 하는 회개운동이 대부흥운동의 초석이 됩니다.

우리 교회 안에도 회개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여러분을 불신하거나 미워하거나 깔본 일이 있다면 다 회개하겠습니다. 목회자와 성도가 서로 불신하거나 미워한 일을 회개하고 성도들 사이에 서로 미워하거나 아픔을 준 일을 회개하고, 내가 하나님께 더 충성하고 바른 신앙생활 못 한 것 회개하고, 신앙에 게을렀던 것도 회개하고,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거나 가족에게 잘못한 모든 것을 회개하면서 너도 나도 자발적인 회개운동이 일어날 때 교회가 변화되고 가정이 변화되어 바로 이 “내가 어찌할꼬”라는 회개운동을 통해 참된 부흥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5. 부흥, 그리고 우리의 부흥

이제 마지막으로 이 모든 일들의 결과는 무엇인가? 41절을 봅니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사람들은 대개 사도행전 2장 전체에서 이 41절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도 하루에 새 신자들이 삼천 명씩 오는 교회가 될 수 있을까?” 그런데 이런 생각은 큰 착각입니다. 이렇게 초대교회가 하루에 삼천 명씩 믿는 교회가 된 것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기도운동과 성령운동과 은사운동과 말씀운동과 회개운동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즉, 오늘날 교회의 양적부흥에만 관심을 갖고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가 양적으로 수적으로 커지고 부흥할까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먼저 근본으로 돌아가 교회 안에 5대 운동, 즉 기도운동과 성령운동과 은사운동, 말씀운동, 회개운동이 일어나면 그 결과로 자연스럽게 교회의 양적 성장과 부흥이 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저는 효자교회 담임목사로서 늘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가 부흥 성장할까?”에 관심을 갖고 삽니다. 자나 깨나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제 마음에는 이 열망 하나뿐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사도행전 2장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아, 이게 아니로구나. 교회 성장은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가 되느냐의 결과일 뿐 결코 교회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로구나.” 하는 깨달음입니다. 여러분, 초대교회가 왜 위대한 교회이며 왜 모든 교회의 모범인지 아시겠습니까?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든 교회가 최근 급성장한 몇몇 초대형 교회들을 부러움의 눈초리로 쳐다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저렇게 큰 교회가 될까?” 그야말로 이 몇몇 교회들이 모든 교회의 모범이 되고 목표가 되었습니다. 아마 포항의 많은 교회도 수천 명 모이는 교회들을 보면서 똑같은 생각을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도행전 2장을 보십시오. 예루살렘 초대교회가 날마다 삼천 명씩 새로 온 교회라서 위대한 교회가 되고 모범이 된 것이 아닙니다. 초대교회야말로 오늘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가 되어야 진정 위대한 교회가 되고, 모범적인 교회가 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바로 초대교회 안에 위대한 5대 운동, 기도운동, 성령운동, 은사운동, 말씀운동, 그리고 특별히 회개운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단순히 ‘좋은 교회’가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제가 4년 전 처음 부임했을 때 “좋은 교회 효자교회”라는 표어를 제창했지만 이제 우리 효자교회는 ‘좋은 교회’를 넘어서 ‘위대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초대교회처럼 모든 다른 교회가 따를만한 모범이 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이 사명을 함께 이루어 갑시다. 2007년 새해는 분명 하나님이 우리 효자교회를 위대한 교회로 세워나가시는 한 해가 될 줄로 믿고 우리 성도들이 성령 충만하여 우리의 심령에 회개의 물결이 일어나며 무엇보다 기도와 말씀에 붙잡히는 한 해가 될 줄로 또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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