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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함께 걸어갈 사람이 필요합니다.(전 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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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걸어갈 사람이 필요하다.(전4:9-12)


일본 국가대표 축구선수인 나카타가 독일월드컵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일본 축구협회와 국민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은퇴를 선언한 나카타는 그들을 향해 “인생은 여행이다”는 말로 자신의 은퇴소감을 말했다. 그에게 있어서 축구는 인생의 하나의 과정에 불과했다.

여행에는 목적이 있다.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든, 사람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떠나는 신혼여행이든 여행에는 목적이 있다. 물론 때에 따라 목적없이 그냥 떠나는 여행을 할 수도 있다.

제가 몇 년 전에 목적이 없이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아무 생각없이 고속버스를 타고 속초에 갔다. 속초 터미널에 내려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속초 끝에서 끝까지 3번을 왔다 갔다 한 적이 있다. 터벅터벅 걸어가면서 상점도 구경하고, 사람도 구경했다. 그리고 저녁에 되었다. 사람들은 다들 집으로 돌아가는데 전 갈 데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막차타고 서울로 올라 온 적이 있다. 이것도 나름대로의 의미여행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힘들고 외로운 여행이었다. 목적으로 모르고 떠나는 여행만큼 힘들고 외로운 여행이 없다. 그러므로 여행의 목적을 알고 떠나야 의미있고 재미있는 여행을 할 수 있다.

성경은 우리의 삶을 ‘여행’ 에 자주 비유하곤 한다. 우리의 삶은 목적있는 여행이다. 우리의 여행은 여러 번 갈 수 있는 여행이나 아무 생각없이 떠나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다. 목적을 알고 떠나야 하는 중요한 여행이며, 일생에 한번 밖에 없는 여행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의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여행의 목적을 알아야 한다.

  릭웨런 목사가 쓴 ‘목적이 이끄는 삶’이란 책이 270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기독교인든, 비기독교인든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다. 세미나가 수차례 열렸고 여러 교회에서 ‘목적이 이끄는 삶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성도 여러분! 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주목하고 있는가? 인생의 진정한 목적을 알기 위해서이다.
왜 많은 사람들이 방황하고 실패하는 인생의 여행을 살아가고 있는가?  인생여행의 진정한 목적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릭웨런 목사는 자신의 책에서 “우리가 목적이 이끄는 삶,- 저는 이것을 목적이 이끄는 여행이라고 표현한다. - 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다섯 가지 유익이 있다”고 했다.

첫째, 여행의 목적을 아는 것은 삶의 의미를 부여해준다. 둘째, 목적을 알면 우리의 삶은 단순해진다. 셋째, 목적을 알면 초점을 맞춘 삶을 살게 된다. 넷째, 목적을 알 때, 삶의 동기가 유발된다. 다섯째, 목적을 앎으로써 영생을 준비할 수 있다.

그렇다. 목적을 아는 것은 중요한다. 에베소서 5장17절에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라고 했다. 목적을 알아 짧은 기간 내에 영원을 위하여 효율적으로 살 수 있다. 열정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집중할 수 있다.
우리는 앞으로 소그룹 모임을 통해서 ‘목적이 이끄는 삶’, ‘목적이 이끄는 교회’, ‘생명 의 공동체를 세우는 삶’을 시리즈로 공부하게 될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하여 여러분 각자의 삶의 목적을 다시 한번 점검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란다.

성도 여러분! 인생여행의 목적을 아는 사람이 해야 할 다음 단계는 목적을 기초로 인생의 목적지을 정하는 것이다. 인생의 목적은 삶의 방향(가치 또는 비전)을 말한다. 그리고 인생의 목적지는 이루어야 할 일 또는 사명을 의미한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인생여행의 목적을 알고 목적지를 정하는 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목적지까지 결코 혼자 걸어가기를 원치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여러 장면들을 통해서 이런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창2:18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시고 독처하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아, 하와를 창조하셨다. 아담과 하와는 인생여행의 동반자였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전도여행을 명령하셨을 때, 어떻게 하셨는가? 둘씩 짝지어 내어 보내셨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사도들의 동행자들을 보라. 그들 대부분의 둘씩 다녔다. 베드로와 요한이 함께 다녔다. 바울과 실라가 함께 다녔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우리가 홀로 인생의 길을 걸어가기를 원치 않으시는가? 우리가 함께 걸어가야 할 세 가지 이유를 통해서 해답을 찾고자 한다.

첫째로, 함께 걸을 때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밤에 혼자 길을 걸어 보신 적이 있는가? 전 군대에 있을 때, 혼자 밤길을 많이 걸어 다녔다. 내무반에서 대공초소까지 이동하려며 산 중턱을 따라 공동묘지를 하나 지나가야 된다. 천둥,번개가 치면서 비오는 날 그곳을 지나갈려고 하면 좀 으스스한다. 그럴 때, 찬송을 부른다.

여러분! 밤길이나 산길을 가다가 귀신을 만나면 찬송을 부르세요. 어떤 찬송을 부르면 좋을까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그러면 귀신이 감동받는다. 귀신에게 축복송을 불러주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모두가 다 무서워하며 도망간다. 그런데 도망가지 않고 축복송을 불러줘봐라, 감동받는다. 그러면서 귀신이 여러분에게 답가를 부를 것이다. 
  “감사해요~ 깨닫지 못했었는데...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라는 걸....”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이...

질흙같이 어두운 밤에 인적이 없는 곳을 혼자 걸어보라. 누구나 무서움을 느끼게 된다. 인생이란 여정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인생이 늘 밝은 대낮과 같은 시간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시편1편의 말씀처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야 할 때도 있다. 낭떠리지의 길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가야 할 경우도 있다. 한 밤중과 같은 어두움 속에서, 낭떠러지길에서 누군가 우리와 함께 걸어줄 사람이 있다면, 우리가 가는 길은 더 안전할 것이다.

자매 여러분! 남편이 출장을 가고 집에 홀로 있는 부인과 아이들과 함께 있는 부인의 심리적인 상태는 같을까? 아니다. 아이가 없는 것보다 있는 집의 부인의 마음이 더 안정적이다.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었을 때, 어떤 능력도 발휘할 수 없는 연약한 아이지만 그래도 함께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그 위안이 된다. 하물며 나와 같은 목적과 목적지를 향하여 같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마음에 큰 위로와 안정감을 경험하게 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여러분! 내가 힘들고 지쳤을 때, 나를 돌봐주고, 내가 겪게 될지도 모를 위험이 존재함을 사전에 알려주고, 나의 잘못에 대해 진실하게 이야기해 줄 사람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사람들이 필요하다. 괴테는 “고난은 함께 나눌 사람만 있다면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고 했다. 결혼식 때 미국의 목사님들은 “두 사람이 결합함으로 슬픔은 반으로 줄고 기쁨은 갑절이 된다”라는 예식문을 읽는다고 한다.

성도 여러분! 고난을 함께 나누고,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눌 사람을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이 앉자있는, 그리고 예배드리고, 봉사하고, 교제하는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구역모임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일대일의 교제를 통해서 만날 수 있다.

적자생존의 법칙이 철저하게 적용되는 동물의 세계를 보라. 약한 동물들이 강한 동물들 사이에서 생명을 어떻게 지켜나가는가? 모이는 데 있다. 흩어지지 않고 모인다. 모임을 통해서 서로가 서로를 보호해 준다. 약할수록 모여야 안전하다. 내 믿음이 약할수록 공동체 속으로 깊이 들어가 함께 걸어갈 동행인을 찾아야 한다.

2. 더 멀리 걸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혼자 뛰면 빨리 뜁니다. 하지만 함께 뛰면 멀리 뜁니다.”라는 잠비아 속담이 있습니다. 장거리 달리기를 해 본 적이 있습니까? 오랫동안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숨이 막히고 옆구리에 통증이 오면서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이 때 만약 옆에 여러분과 함께 뛰고 있는 사람이 없다면, 결코 여러분은 계속해서 뛸 수 없을 것입니다. 산책도 마찬가지이다. 둘이 대화를 하면서 걸으면 아주 멀리까지 갈 수 있다. 그러나 혼자가면 멀리가지 못한다.

사역도 마찬가지이다. 효과적인 사역을 위해서는 함께함이 필요하다. 선교학자 헐버트 케인은 “혼자서 선교한다고 생각하는 것,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이다”라고 했다. 선교는 함께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홀로 성취할 수가 없다.
혼자서 이룰 수 있는 일은 세상에 많지 않다. 세계의 역사를 보라. 철저하게 협력의 역사였다. 석기시대의 인간들이 거대한 맘모스 사냥을 어떻게 했는가? 서로 함께 협력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오늘날 여러 국가들은 아셈, G-7, UN이란 특별한 기구를 만드는 이유가 무엇인가? 어떤 일에 함께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서이다.
고사성어에 ‘오월동주(吳越同舟)’라는 말이 있다. 서로 원수지간인 오나라와 월나라가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말이다. 어떤 일에 대해서는 함께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성경의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사도행전의 역사를 보라. 하나의 팀으로 이루어 사역을 했다. 그들은 ‘누가 리더가 되느냐’대해 고민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 협력하여 복음의 사역을 이루어 나갈 것인가를 고민했다.

인생이라는 여정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장거리 경주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을 후원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여러분은 결코 멀리 뛸 수 없을 것입니다. 기러기가 V자형으로 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이렇게 나는 이유는 그 형태가 상승기류를 형성해 덜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서로를 후원해 줄 수 있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한 시인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상대의 존재는 자신에게 마치 새의 날개와 같은 것이다”라고 했다. 새는 날개를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는다. 그 날개 때문에 새는 더 높이 오를 수 있는 것이다. 내 옆에 있는 형제, 자매가 여러분의 날개이다. 내가 속해있는 부서나 구역이 나의 날개이다.

3. 더 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잠언 26장 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 없을 정도로 현명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함께 할 때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성취할 수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낚시를 배울 때, ‘월간 붕어’ ‘낚시 춘추’라는 책을 가지고 혼자 배웠다. 그러다가 한번 큰동서와 함께 충추호로 낚시를 간적이 있다. 저, 그 때에 저 혼자서 일년 동안 배워야 할 거, 1박2일 동안에 다 배우고 왔다. 함께할 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여러분! 함께 배운다고 하는 것은 단순한 친구 이상을 의미한다. 여러분과 진정한 교제를 나눌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신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그 사실을 알려줄 수 있는 그런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여러분의 주변에 이런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여러분은 그만큼 현명해 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속한 소그룹은 여러분을 더욱더 현명하게 만들게 될 것이다.

부인이나 남편과 함께 호숫가를 거닐어 본 적이 있는가? 저희 집은 주로 일렬 횡대로 걸어간다. 내가 앞에 서고 그 다음에 사모가 그리고 성은이, 가은이 순으로 약1.5미터 정도의 간격을 두고 걸을 때가 많다.
함께 걸으면, 평소 자신이 걷던 것보다 느리게 걷거나 빠르게 걷게 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다른 걷는 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모두 다른 속도로 걷는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걸을 때, 혼자 걸을 때는 배우지 못했던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를 더욱더 안전하고, 멀리 걸을 수 있게, 그리고 현명하게 만들게 될 것이다.

전도서 7장16절에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가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케 하겠느냐?”라고 했다. 이 말은 완전한 자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불완전한 곳에서 적당히 어리석은 자로 살아가는 존재이다. 어떤 부분은 지혜로운 것 같지만 또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지나치게 어리석은 사고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함께함을 통해서, 이런 부분들을 잘 알게 되고 서로 보완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에서 여자 주인공 핼린 헌터가 “나를 칭찬하는 말을 해 달라”라고 부탁하자, 남자 주인공 잭 니콜슨이 “당신과의 만남이 나를 더 좋은 남자가 되게 만들었서”라고 대답했다. 저와 여러분의 삶에도 이런 고백이 있기를 원한다.

우리 한번 서로에게 고백해 볼까요? “당신과의 만남이 나를 더 좋은 성도가 되게 만들었어”

인생의 목적지를 아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목적지를 안다고 해도 여러분과 함께 걸어갈 사람이 없다면 여러분은 그 곳에 도착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모두가 함께 걸어갈 사람이 필요하다. 함께 전도할 사람이 필요하다. 함께 기도할 사람이 필요하다. 함께 사랑을 나눌 사람이 필요하다. 함께 교회를 세워갈 사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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