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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흥 (느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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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2007년은 평양 대 부흥운동이 일어 난지 100년이 되는 뜻 깊은 해 입니다. 교계의 동향을 보면 여기 저기에서 100년전의 대 부흥이 다시금 재현 되기를 위해 갈망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오늘 주일은 공교롭게도 100전 부흥이 일어난 주일과 일치합니다. 1907년 1월2일부터 15일까지 평양에서 남자 사경회가 열렸습니다. 사경회와 연결된 저녁 집회에는 15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1907년 1월14일 월요일 정오 기도회에서 선교사들은 성령의 강림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바로 그날 저녁 집회에서 윌리엄 헌트의 설교가 있은 후 그레함 리 선교사가 회중들에게 통성기도를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때 한국의 오순절의 역사가 강력하게 일어났습니다. 백년 전 오늘 이었습니다.
통렬한 회개와 흐느낌과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8시에 시작한 집회는 새벽2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 다음날 길선주 장로를 강사로 다시금 저녁집회가 열렸습니다. 길선주 장로는 회개와 고백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선포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얼굴은 대단한 위엄과 능력의 얼굴 순결과 거룩으로 불타오르는 얼굴이었습니다.
성령의 거룩한 역사가 임하자 수많은 청중들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였습니다. 성령의 역사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고꾸라져 회개의 바다를 이루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평양 대 부흥의 역사는 서울, 만주, 제주도 까지 온 나라 안에 퍼져서 마침내 온 나라에 하나님이 거룩한 역사가 이어졌습니다. 오늘 우리는 100전의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오늘 날의 사회 모습을 보아도 100전의 그때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100전 부흥의 역사가 있던 그때의 한국사를 보면 암담하기 그지없습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엽까지 조용한 아침의 나라. 은둔의 나라 조선은 중국,일본,러시아.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각축장이 되는 나라였습니다. 한국을 강탈하고자 하는 쟁탈전이 극치를 달하던 시기 였습니다. 반 강제적으로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동학란과 함께 청일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명성황후의 시해 사건과 러일전쟁과 을사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1906년에는 이토 히로부미가 서울로 부임하면서 고종황제가 퇴임하였습니다.

1907년 평양 대 부흥 운동이 일어나기 전 조선은 아수라장이었고, 이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절대 절명의 역사였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1097년 평양 대 부흥이 일어났고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한 소망임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만이 복음만이 절망에 빠진 이 나라와 민족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대안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놀라운 역사는 이제 100년 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금 이 땅은 100전의 그때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정치는 혼란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목적지가 없는 여행자처럼 표류하고 있고, 경제는 곤두박질하여 생계가 위협당하고 있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문제는 여전히 우리에게 불리한 정세에 놓여 있습니다.
지금 이 땅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 입니다. 한국 교회는 크고 놀라운 은총을 입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과 이 민족을 너무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세계 3대 부흥운동의 주역이 되는 나라가 되게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다시금 100전의 성령의 역사를 간절히 사모하여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 땅을 다시 살리실 수 있습니다. 주님께로 돌아가면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시고 다시 살리시는 은혜, 무너진 모든 것을 일으켜 세우시는 은혜를 입습니다.
영적 부흥은 이 나라와 이 민족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을 역전 시키실 분은 하나님, 그분을 찾는 것입니다.
다. 이 땅에 거룩한 부흥의 역사가 다시금 재현되기를 소망하면서 부흥의 원리들을 찾아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있어야 합니다.

느헤미야 시대에도 영적 부흥이 있었습니다. 바벨론 포로기에서 1,2,3차에 걸쳐서 돌아와서 성벽을 재건하였습니다. 막상 울타리를 만들고 나서 더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돌아온 백성들의 마음과 가슴에 살아계신 하나님이 새겨지는 것이었습니다. 오랜 포로생활로 인해 그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희미해 져 있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이 되었는데 정작 중요한 영적 생활은 황량한 상태 이었습니다.
느헤미야의 지도력으로 성벽은 52일 만에 건축이 끝났습니다. 이제 도둑이나 침략자로부터 안전합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영적 문제 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율법에 정통한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합니다. 칠월 칠일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와서 수문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오정까지 말씀을 강론합니다.
특별히 말씀을 강론할 단이 나무로 만들어졌습니다. 단 중앙에는 제사장들이 섰습니다. 왼쪽에 6명 오른쪽에 7명이 서고 에스라가 중앙에 섰습니다. 학사 에스라가 율법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나 경외감을 표하였습니다. 그리고 광대하신 여호와를 찬양할 때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으로 영광 돌리며 몸을 굽혀 여호와를 경배합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이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깨닫게 하였습니다.
백성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울기 시작합니다.
말씀에 비추어볼 때 자신의 죄악이 너무나 큰 것을 발견합니다. 죄악으로 인하여 견딜 수 없는 슬픔이 밀려오는 것입니다. 율법책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은 어떻게 사랑하셨는가를 알게 됩니다.
자신들이 율법을 얼마나 범하였고 말씀의 기준에서 얼마나 빗나간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어서 소리 내어 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부흥은 죄를 회개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회복될 때 그곳에 통회하는 심령의 깨어짐이 있습니다.
영혼과 말씀이 부딪칠 때 우리는 자신의 비참한 영적 상태를 똑 바로 보게 됩니다.
스스로 보기에 의롭다고 여기는 바리새인들은 부흥도 없고 회개도 없습니다. 자기 의에 만족하는 사람은 말씀의 감격이 없습니다. 스스로가 잘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말씀을 경외하지 않습니다.
심령의 강팍함과 딱딱함은 말씀이 뿌리 내리지 못하고 깨어지게 합니다. 흩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베뢰아 사람이 나옵니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 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결과를 낳습니까? 17장 12절에 보면 그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않다고 기록합니다. 말씀과 영혼이 부딪치는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영혼을 적시는 그런 영적 은총이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 심령이 가난하게 됩니다. 천국을 사모하게 되고 그리스도를 높이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온 땅에 이루어지길 소망하는 열정이 솟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호세아 시대를 진단해 보았습니다. 백성들이 죽어 가고 있고 망해 가고 있습니다. 원인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4장1-2절에 보면 이 땅에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다고 합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전무하니까 무엇이 있습니까?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 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 밖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한 마다로 총체적으로 망해 간다는 것입니다. 있어야 할 것 -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없으니까 없어야 할 것 - 온갖 죄악이 가득차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다시 찾으십시요. 다윗처럼 내가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주의 말씀이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이빛 됨을 다시 회복하시길 축원합니다.

두 번째는 여호와를 기뻐하는 힘입니다.

진리의 말씀이 선포되자 백성들은 죄에 대해 슬퍼서 울었습니다. 이때 에스라와 레위 사람들이 그들에게 울지 말고 슬퍼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성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섰을 때 회개의 역사도 있지만 기쁨의 은혜도 있습니다. 즐거움이 회복됩니다. 읽어 들린 말을 확실히 깨닫기 때문에 기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압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합니다. 하나님이 다시 살리시고 받아 주셨다는 것을 밝히 알기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12절을 보시면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이 참된 부흥이고 참된 교회의 모습입니다. 말씀을 듣는데 근심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항상 기쁜 것입니다.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고 주님이 주시는 충만한 은혜로 얼굴이 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이든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 하나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충만해 져서 곡이 절로 떠오른다. 하나님이 내게 기쁜 마음을 주시기 때문이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항상 기뻐하는 것이 성도의 특권입니다. 어떠한 상황이든지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볼 때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충만한 은혜로 얼굴에 광채가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힘과 방패와 기쁨의 근원이 되십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그 한순간에 한 번 더 힘을 내어 하나님을 바라보시기바랍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전도하다가 바울과 실라는 깊은 지하 감옥에 갇힙니다. 많이 맞아서 온 몸이 엉망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간수들이 듣도록 큰 소리로 기도하고 찬양하였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 감옥터가 무너지고 문이 열렸습니다. 도저히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뻐할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사울왕의 칼날을 피해 광야와 황무지를 달리던 다윗도
“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시 46편에 보면 “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하나님이 그 성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 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도다.
하나님을 기뻐하십시요, 전적으로 의지하며 바라볼 때 심령의 부흥과 환경의 변화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부흥의 증거는 순종과 회복입니다.
13절에 보시면 그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뭇 백성들이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에게 와서 말씀을 더 듣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율법을 보니까 7월에는 초막에서 거하는 초막절의 절기가 있는 것입니다. 초막절은 7월15일에서 21일 까지 일주일 동안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추억하며 지내는 기간입니다. 또 이 기간에는 감사의 제사도 드립니다.
17절에 보니까 여호수아 때부터 지금까지 절기를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모든 성읍에 공포하고 초막을 짓고 절기를 지키는 것을 회복합니다. 초막절을 지키게 된 것은 말씀을 통하여 잘못된 것을 알고 말씀에 순종하여 변화된 것입니다.
부흥관 바로 세우기”라는 책에서 이안 머레이는 부흥의 때에 나타나는 것으로 “인간 책임과, 순종과, 진리에 대한 믿음” 이라고 말합니다. 부흥이 오려면 말씀에 대한 철저한 순종과 진리의 말씀과 거기에 대한 믿음의 실천적 반응이 뒤 따라야 한다고 합니다. 영적 부흥의 증거는 하나님의 일들이, 하나님의 법들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철저히 따르는 것입니다.
히스기야 시대에도 말씀을 통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말씀을 통해 그들이 믿음의 실천을 한 것은 바로 우상을 제거하는 것과 유월절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잊어버린 , 무시한, 도외시한 , 하나님의 법을 회복하고 거기에 전적인 순종으로 응답할 때 크고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히스기야 시대에, 느헤미야 시대에 펼쳐진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에게서 회복되어야 하고 순종되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말씀으로 인해 내가 변화되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지금 외면하고 지키지 않는 하나님의 법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에게 변화되라고 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찾아야 할 하나님의 사역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서원을 잊어 버리지는 않았습니까?
그러한 모든 것을 다시 회복하셔야 합니다. 다시 찾아서 거역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순종의 길을 걸으셔야 합니다.
억지로가 아닌. 형식이 아닌 순전함과 기쁨으로 잊어버린 하나님의 법들을 다시 찾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창 35장에 나오는 야곱처럼 모든 우상을 버리고 다시금 하나님을 처음 만났던 벧엘을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바울의 선포처럼 “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되시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마가복음 4장26-33절에 보면 하나님 나라의 비유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씨를 땅에 뿌려서 처음에는 싹이요, 이삭이요, 충실한 곡식이 되어 열매가 익으면 낫을 대어 추수합니다.
겨자씨 한 알 같지 작지만 심긴 후에는 모든 나물보다 커서 공중의 새들이 깃들일 만큼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왕성하게 일어 나야 합니다.
지금 현 시대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왕성하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백년전의 부흥의 역사가 이 땅에 다시금 일어나는 것 만이 유일한 대안 입니다.
18절에 보시면“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이레 동안 절기를 지키고 여덟째 날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의 첫날부터 끝날까지 하나님을 높이고 거룩과 성결로 이 땅에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을 오게 하는 하나님의 전령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이 설교는 마무리가 없습니다. 사도행전은 28장에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주 오시는 날까지 복음 행전은 지속적이고 연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부흥의 거룩한 역사도 똑 같습니다. 이 땅을 다시 살리는 거룩한 부흥의 역사에 주연으로 쓰임되길 축원합니다. (박춘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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