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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 (마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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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청결”이란 용어를 사용하셨는데, 이 용어는 3가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1)깨끗함, clean, 곧 더럽고 부정한 것이 없는 상태를 가르킨다.
2)정직함, honest, 곧 일관성 있는 성실함, 표리부동하지 않는 마음 자세.
3)순수함, purity,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상태를 가르킨다.

이 말을 종합한다면 신체적으로, 도덕적으로, 정신적으로 깨끗하고, 정직하고, 순결한 사람을 가르킨다.

그렇다면 과연 이와 같은 사람이 있겠는가? 성경은 그런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렘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했고,
다윗은
시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하였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롬3:10,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증거하였다.

이와 같은 말씀에 근거한다면 부패하고 부정한 인간들이 하나님을 뵈올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많은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뵈옵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살았다. 히브리서 11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많은 믿음의 사람들, 노아, 아브라함, 모세, 욥, 엘리야, 베드로, 바울등 많은 믿음 선진들이 하나님을 체험했다.

그들의 인간적인 허물과 부패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뵈옵고 그의 음성을 들으며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일에 일군으로 쓰임을 받았다.

1.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음이 청결한 자”는 어떤 심령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가?

1)단순한 마음을 가진 사람.
단순한 마음은 하나님께로 향한 성도의 마음 자세이다. 하나님 앞에서 이중적 행위를 갖는 것, 곧 두 마음을 품는 것이 불결한 것이다. 왜냐하면 두 마음을 가짐으로 인해 마음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여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고생할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대한 거룩한 환상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이 있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다. 그들 앞에 나타난 불가항력적 장애물 앞에서도 그들은 가나안을 향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끝까지 한 마음을 품었던 사람들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뵈옵는 일에 실패하는 이유는 두 마음을 품기 때문이다. 하나님도 소유하고 세상 재미도 보겠다는 사람의 눈에는 결코 하나님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을 향하여 한 마음, 곧 단순한 마음을 갖는 자가 청결한 자요 그 마음을 갖는 사람이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2)주님의 마음을 품는 사람.
히7: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자라.”

머리 속에 계산이 많은 사람은 하나님을 볼 수 없다. 하나님께로 향한 단순한 마음은 그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흠모하게 된다. 그의 거룩하심, 악과 두려움이 없고 죄에서 떠나 계신 분을 바라보게 된다. 그분을 닮게 된다.

벧전1:15-16,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일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니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면 주님의 거룩하심에 동참해야 한다. 그런 의지를 가져야 한다.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은 자, 그 사람이 마음이 청결한 자이다.

3)죄를 미워하는 자가 마음이 청결한 자이다.
시119:104, “주의 법도로 인하여 내가 명철케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죄를 미워한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몸을 성전이라고 했다. 성전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집이다.
고전3:16-17,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가운데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이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죄와 적당히 타협하고 범죄하는 일에 함께 동참하면서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는 짓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사59: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웠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발함이라.”

주님은 우리의 죄악된 본성을 책망하지 않으신다. 도리어 불쌍히 여기신다. 그러나 죄악된 길로 걸어가는 것에 대하여는 책망하신다. 왜 책망하시는가? 죄를 미워하시기 때문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란 죄 없이 깨끗한 자, 완전한 자를 뜻하지 않는다. 마음이 청결한 자란? 자기 죄에 대하여 애통해 하며, 죄를 미워하고 멀리하려고 몸무림치는 자를 가리킨다. 죄를 미워하는 자를 마음이 청결한 자라고 말씀하신다.


2.어떻게 하면 마음의 청결한을 이룰 수 있는가?

1)성령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태어날 때 거룩한 성품을 주셨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은 성령님의 단독적인 역사이다. 이 자리에 모여 앉은 여러분들은 이미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난 자임을 믿으시기 바란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주실 거룩한 씨를 받은 사람들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씼기실 때, 베드로가 거부했다.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합니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몸이 깨끗하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었다. 나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백성이다. 거룩한 씨가 내 속에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2)그리스도와 연합으로 청결한 마음을 소유할 수 있다.
롬6:3-4,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세례란? 그리스도와 연합을 의미한다. 성령께서 우리를 인치시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의 자리로 들어간 자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옛 사람은 이미 죽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므로 새 생명을 얻게 되었다. 새 생명을 얻은 자는 새 생명 가운데서 살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롬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한 몸 이룬 거룩한 존재인 것을 알 때 청결한 마음을 소유할 수 있다.

3)그리스도의 보혈로 청결함을 이룰 수 있다.
죄인이 죄를 씻어 정결케 되는 방법은 목욕한다고 깨끗게 되지 않는다. 참회의 눈물로도 되지 않는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만 깨끗게 될 수 있다.

히10:11-14,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기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찬송가 138장 2절의 후렴,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보혈의 공로를 깨달을 때 청결한 심령을 소유할 수 있다.

4)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의 마음을 청결하게 하신다.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자신의 내면 속에 끊임없는 죄와의 다툼, 육신적 욕구로 말미암아 빚어내는 갈등은 성도의 삶을 지치게 한다. 사도 바울의 깊은 탄식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절망감 속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의 해답을 찾았을 때 그는 기뻐하며 감격하였다.

(롬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성령께 의지할 때 우리는 비로소 청결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청년시절,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했을 때, 정말 하나님을 보기 원했다. 꿈에서 보든, 음성으로 들어보든, 하나님을 만나보길 원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이지 않았다. 그 답답함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

독립문성결교회 임영재목사님, 처음 참석한 부흥회에서 은혜를 받았다. 깊은 회개와 함께 내게 임하신 성령의 충만함이 나의 심령을 새롭게 하였고, 눈으로 하나님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 이후로 주님을 느낄 수 있었고 가까이서 그의 임재를 경험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물론 우리가 도덕적으로 깨끗한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성령의 도우심, 성령의 역사함으로 마음의 청결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을 하고자 하기 전에 먼저 성령께서 내게 임하시므로 이뤄진 일들, 그리고 이루실 일들에 대하여 바르게 알고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다.


3.마음이 청결한 자가 받는 복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이 복은 현재적이면서 또한 미래적이다. 훗날 우리는 역사의 심판자이신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청결한 자는 현세에서도 하나님을 뵈옵는 은혜를 입게 된다. 그렇다면 그 은혜는 무엇인가?

1)하나님과 친밀한 관계가 이뤄진다.
하나님을 보고자 하는 욕구는 모든 사람에게 있다. 그러나 육안으로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 빌립이 여쭸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그렇다면 하나님을 볼 것이라는 말씀은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의미한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이뤄지면 굳이 육안으로 하나님을 보려고 하지 않아도 본 것과 같은 만족을 얻게 된다.

마음이 청결한 자의 마음 속에는 자연스럽게 그리스도로 채워지며,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과 사랑을 느끼게 된다.
시16: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2)영적인 분별력을 얻게 된다.
엡1:18-19,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위대한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 그의 저서 [역사의 연구]에서 결론.
“모든 것은 변하고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저 바다 끝을 바라본다. 그 때 거기 한 수면에는 한 영상이 떠오른다. 이 영상은 온 수평선을 뒤엎는다. 그것은 바로 구세주의 환상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이 세대를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안목을 가질 뿐만아니라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는 소망으로 충만케 된다. 세상의 소란함 속에서도 요동치 않으며 세속에 물들지도 아니하며 예수님을 바라보며 자기의 길을 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마음이 청결한 자가 받는 복이다.

여러분 낙심하지 말라. 좌절하지 말라. 만약 우리의 내면 속에서 일어나는 죄의 욕구로 인해 탄식하고 애통해 하고 있다면 그 심령은 가능성이 있는 심령이다.

그 심령은 이미 하나님을 향하여 바라보는 청결한 마음을 가진 자라 할 수 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하나님을 좀 더 분명하게 바라 볼 수 있도록 우리의 영안을 닦는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마 15: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 15: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우리를 더럽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원인이 무엇인가도 알아야 한다. 사도 바울이 말했다.
(갈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 5: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분별력을 상실해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땅의 것에 매여 살며 온갖 추태를 다 보이고 있다. 양다리 걸친채 천국 티켓과 함께 세상적 쾌락도 즐기려 하는 세속주의 신앙이 깊이 침투해 오고 있다. 지금 우리가 영적 위기시대에 살고 있음을 깨닫고 주님께로 더욱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 성령께 더욱 의지하며 우리의 심령이 더욱 순수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윤동주의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우리의 마음을 흐리는 것들을 버리라. 하나님을 향하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소망하는 순수한 마음이 되기를 갈망하는 거룩한 아픔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히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여러분의 심령 속에 하나님이 보일 것이다. 날마다 날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 보는 복된 심령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원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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