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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내 한계와 좁은 틀을 깨고, 무한히 지경을 넓히는 2007년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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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신년예배를 드린 지도 벌써 일주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신년의 기운이 가시지 않았고, 또한 이번주일은 신년의 첫 번째 주일이라 많은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벌써 며칠을 지나오면서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계획을 했지만 잘 안’돼’ 하고 생각되는 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날마다 새로이 시작하는 사람들이고 언제든지 출발하는 그 자리에서 새로운 역사를 이루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지난 며칠을 어떻게 지냈다라는 것은 우리에게 큰 결정적인 일들은 아닙니다.
특별히 오늘은 신년의 첫 번째 주일을 맞이해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가지고 내 좁은 한계와 내 좁은 틀을 깨고 무한한 지경으로 나아가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2007년도가 되길 원해서 오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2007년도 표어를 정해 보았습니다. 주의를 기울여 한 번에 외웁시다.
첫 번째는 한 사람이 천명을 돕는 사람이 되자.
두 번째는 한 번 더 참고 한 번 더 애쓰자.
세 번째는 정한 목표는 흔들리지 말자.

여러분 잘 외우시는 것을 보니 올해 틀림없이 하나님의 큰 은혜를 이루실 줄을 믿습니다.
여러분 오늘 적어도 열 번이상은 해 보세요. 자다가도 세 가지 2007년도 표어가 우리 성도들의 마음속에 새겨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마 이 내용에 대해서는 제가 설명하지 않아도 여러분들이 간명하게 요약된 문장을 통해서 이해하시리라고 믿습니다.
우리 믿음의 백성은 자신들이 이제까지 살아온 과거의 삶의 습관, 경험, 그리고 체험의 틀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을 한계 짓지 않고 자기 한계를 깨고 자기의 고정된 그릇된 관념, 그리고 틀을 깨고 무한히 지경을 넓혀가는 은혜의 성도들이 돼야 합니다.
원대한 꿈을 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한 번 더 끝까지 참고 한 번 더 끝까지 애쓰는 성도들, 하나님 앞에 정한 목표는 흔들림 없이 어떠한 바람과 어떠한 눈, 비 에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올 해 새로운 삶의 용기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꿈을 바라보며 마침내 달려가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합니다. 오순절 성령 충만을 받고나서 베드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됩니다. 이전에는 예수님의 면전에서 예수님을 욕하고 부인하며 자신의 목숨을 부지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순절 성령 충만한 체험을 하고 보니 한 번 나가서 외칠 때 삼천 명이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성전 미문에 않아있는 앉은뱅이 걸인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몰려들 때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 이번에는 오천 명이 회개했습니다.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에게 잡혀가 문초를 당합니다. 감옥에 갇히기도 합니다. 그들을 풀어주면서 다시는 예수의 이름을 전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그들에게 담대히 대답하고 나와서 지속적으로 복음을 전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초반부에는 베드로 행전이라고 말할 정도로 베드로의 사역이 기록되어져 있고 후반부에는 바울 행전이라고 말할 만큼 바울의 기록이 되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초반부에 대부분의 내용이 베드로의 행전으로 기록되어질 만큼 베드로는 출중한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에게도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그릇된 관념, 그릇된 틀과 고정적인 관념을 깨지 못하고 갇혀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베드로는 유대주의의 관념을 깨치지 못하고 베드로는 복음을 전하되 오직 유대인만을 위해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는데 베드로는 아직까지 유대인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기점으로 하여서 베드로가 유대인의 관문을 넘어서 이방인에게까지 전하는 복음의 포문이 열려지게 된 것을 봅니다.

오늘 본문을 보게 되면 베드로에게 환상이 보여 지게 됩니다. 베드로가 제 육시쯤 돼서 기도를 하게 되는데 사장하여서 그가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때였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있는데 보자기가 네 군데 붙잡아 매여 있고 그 가운데 동물들이 있는데 네발짐승, 기는 것 그리고 하늘을 나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무어라고 말씀하시냐면 하늘의 소리가 들려서 잡아먹으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것을 먹을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그것은 당시 유대인의 정결법으로는 먹지 못하는 것들이었습니다. 먹지 못하는 짐승들이 있어서 나는 이제까지 정결하게 살아왔는데 이것을 먹을 수 없습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또 소리가 들립니다. 잡아먹으라. 저는 못합니다. 저는 이제까지 깨끗하게 살았습니다. 베드로는 세 번이나 거절합니다. 하늘에서 들리는 음성을 세 번이나 거절하는데 그것으로 말미암아 환상은 지나가고 베드로는 그것이 무슨 뜻인가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한 편 베드로가 이와 같은 환상을 보고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 미리 가아샤라에 사는 고넬료라는 사람에게 미리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셨습니다. 고넬료는 우리가 지난번에 말씀 드린 대로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고 온 집안으로 더불어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배드리는 사람이요 구제를 많이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세 가지 하나님을 경외하고 온 집안으로 예배를 드리고 그리고 구제를 많이 하는 사람, 성경에서는 이것을 경건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런 경건한 사람이었는데 베드로는 하나님에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지금 네가 네 사람을 욥바로 보내거라 베드로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을 초청하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고넬료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서 욥바로 베드로를 초청하려고 하는데 베드로에게는 이런 환상이 보여졌고 그 뜻이 무엇인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의 집에 고넬료가 보낸 사람이 도착하였습니다.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라, 의심하지 말고 가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유숙하게 하고 이제 베드로가 그 사람들을 따라서 욥바에서 가아샤라로 갔을 때에 거기서 누가 기다리고 있느냐면 바로 고넬료와 그 주변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방인이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이제까지 이방인에게 말씀을 전해본적이 없는데 이방인에게 말씀을 전해 이방인에 대한 복음의 포문을 열기 시작합니다. 그 때 하늘에서 성령이 임하게 되고 그들이 모두 은혜를 받고 그들이 세례를 받게 되는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베드로의 유대주의의 관문은 깨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을 감당하는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베드로가 가지고 있는 고정적인 관념, 베드로가 가지고 있는 자신의 한계, 베드로가 가지고 있는 틀이 깨어지고 이제 그의 지경이 넓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 이 문제를 생각해 보면서 주님 앞에 아름다운 복음의 역사를 위해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내가 살아서 느끼고 있는 삶의 모든 틀, 그리고 삶의 한계, 내 능력의 한계,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과 지식의 한계들을 깨뜨리고 우리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은혜의 세계로 우리의 삶의 지경을 넓혀가기 원해 오늘 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이제까지의 내 능력, 내 형편, 이제까지 나의 삶의 지경, 내가 할 수 있었던 범위, 그리고 내가 이제까지 한계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깨뜨리고 그 지경을 넘어 우리는 광활한 대지를 향하여 달려가고 창공을 날아오르는 웅대한 비상의 역사가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한 사람을 돕는다는 것이 구호와 멀리 있는 희망적인 얘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한 사람으로서 천명을 돕는다는 것이 우리 삶의 실제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는 나 하나 살기위하여 허덕거리는 사람이 아니라 분명한 삶의 사명이 있어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달려갈 때 우리는 숨가빠하며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뻐서 더 달려갈 수 있는 이와 같은 믿음의 백성들이 돼야 합니다.
오늘 이와 같은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모습을 잠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자신의 이제까지의 의와 경험과 지식의 틀을 가지고 하나님의 역사까지 한계 지으며 거절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가슴 아픈 한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말씀해도 그 말씀을 안 듣는 경우가 있어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모세에게 내 민족을 구하라고 모세를 부르셨을 때 모세는 “나는 할 수 없습니다.”라고 거절하였습니다. 그건 모세의 겸손이 아니라 모세의 사실이었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왕궁에서 왕자로서 40년 동안이나 양육받아 장대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40년 목동으로 묻혀 있을 때 모세의 능력은 이전의 것이 되었어요.

여러분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40년 지났는데 그것이 지금도 능력이 될 수 있을까요?
여러분 40년 전에 공부한 것 지금도 능력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 40년 전에 무엇을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도 그것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겠습니까?
모세가 하나님 앞에 나는 못합니다라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사실이었습니다. 모세는 겸손해서 겸양으로 말 한 것이 아니라 정말 두려워 자신을 정말 그 일을 할 자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 그들을 구원하라.”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요나는 거절했습니다. 니느웨는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는 앗수르의 수도였습니다.
내 민족을 괴롭히는 그 사람들을 내가 구원해야 하겠습니까? 요나는 자기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민족에 대한 애국심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그는 거절했던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의,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경험, 지식, 한계의 틀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거절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베드로는 자기는 의롭게 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가 그것을 거절하는 것은 의로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까지도 거절했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살아오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인가 요청하는 것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그의 역사를 이루시겠다고 하는 것이 있을 때 우리는 내가 가지고 있는 내 자신의 한계 그것 때문에 나 자신을 구획 짓고 하나님 앞에 응답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경우는 있지 않은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달라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그들의 삶은 전혀 다른 장면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말 그대로 어부로 물고기 잡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베드로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서 성경 베드로 전서와 후서를 쓰는 사람이 되었고, 초대교회의 교부가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과 후의 삶은 달라졌으며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믿음대로 산다고 고백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순절 성령 충만을 체험한 이전과 이후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것을 보면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을 만남으로 말미암아 어느 날 사명을 부여받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우리에게 능력이 되는 순간 우리의 삶은 전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전 까지는 우리는 한계 속에 갇혀서 사는 겁니다. 주의 일을 한다고 하지만 베드로는 오늘 본분을 보니 오순절이후에도 복음을 전하고 능력을 행하는 사람이었지만 그가 가진 한계는 또 있었는데 그와 같은 한계가 한 가지 한 가지 무너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더 큰 원대한 역사를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 달라진 우리의 위상을 느끼고 누려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살아온 과정과 한계가 주님의 뜻을 부인하는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기쁜 일이 많았을 때 기쁜 일을 놓칠 것 같습니다. 슬픈 일이 많았을 때 나는 슬픔밖에 모르는 내 삶이 무슨 내가 큰일을 할 수 있겠는가 하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기쁨과 슬픔이 우리를 가로막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쁨을 뺏는 분도 아니고 우리의 슬픔을 방치시켜 놓는 분도 아닙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는 것은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부분을 하나님께서는 사용하시고 우리의 실패와 아픈 부분들을 하나님께서는 활용하셔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번 주님의 관점에서 우리 자신을 보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고자 하는 삶의 재설정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내 능력에 기인하지 말고 나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능력을 사용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사람 앞에서 자기가 살아보기 위해서 예수님을 욕하고 부인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순절 성령 충만하니까 앉은뱅이 걸인을 일으켜 세웠단 말입니다. 베드로가 능력 있어서 일으켜 세운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네가 만약 일어나라고 했을 때 못 일어나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나는 한 번 외쳤을 때 삼천 명이 변화 받은 사람인데 나는 주의 일을 못하게 되지 않는가 하는 마음의 두려움이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 가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베드로는 담대한 마음으로 일어나라라고 명했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능력이 있어서 명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 속에 그는 도취되었던 것이고 그와 같은 것을 통해서 그의 마음에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의 역사만이 어른거렸던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는 새로운 역사를 이룬 것입니다. 베드로가 그 일을 이룸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역사 속에 그는 동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까지 우리가 살아오면서 나는 이정도 수준 밖에 못 살았어 라고 생각되시는 분 있습니까? 내가 인생의 최전성기라고 생각하던 그 때도 나는 요지경밖에 못 됐어 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우리 삶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가 가진 것은 이것밖에 없고 내 능력은 이것밖에 안되고 내 주변여건도 이것밖에 안되고 내가 이제까지 최고의 능력을 발휘해도 그것밖에 안됐어.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보다 큰 지경까지 나아갈 것인가. 여러분 이렇게 회의하십니까?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방에 그런 것이 다 있겠지만 제 방에도 컴퓨터가 있고 그 옆에 프린터가 달려있습니다. 언젠가 보니까 이게 프린터를 하는데 너무 천천히 나와서 다시 설정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똑같은 프린터인데 척척 금방 나오더라고요. 이 비밀도 모르는 사람이 있나요?
따라서 합시다. <재설정>
다시 설정하면 됩니다. 여러분 인생에 과거에 어떤 능력이고, 어떤 수준까지 어떻게 되어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재설정하는 겁니다. 오늘 여러분 돌아가시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오늘 한 단어만 가져가세요.
<재설정>
내 인생을 다시 설정합니다. 우리인생에 있어서 언젠가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부터 우리 인생이 다시 셋팅 되어 집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부터, 내가 사명을 받는 순간부터, 내가 달려갈 분명한 삶의 사명이 보이는 순간부터, 내가 저기까지 가야된다는 분명한 목표가 생기는 순간부터 우리 삶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다윗이라는 사람의 생각은 정말 기가 막힙니다. 다윗은 전쟁에 뽑혀나가지도 못했어요. 그래서 형들에게 위문품이나 갖다 주려고 갔던 사람입니다. 빵과 치즈 덩어리 갖다 주려고 갔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골리앗이라는 사람을 만나서 골리앗을 넘어뜨리고 민족에게 영웅이 될 줄 그는 꿈도 못 꿨어요. 더욱이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은 사울이라는 왕이 뚜렷이 버티고 있어요. 다윗이 예수님의 계보에 속한다고 그는 꿈도 못 꿨어요.

여러분 기생 라합이라는 여인이 예수님의 인간적 계보속에 속한다고 꿈이나 꿨겠습니까?
룻이라고 하는 이방여인이 주님의 계보 속에 속하리라고 꿈이나 꿨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끝을 몰라요. 우리가 어떻게 흘러갈지 우리는 전혀 모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에게 하나님의 역사 속에 우리를 포함시켜 주실 때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 전혀 몰라요.
어느 날 우리는 다시 설정되는 것입니다. 다시 만들어지는 겁니다. 다시 창조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끝까지 예수님을 부인하며 목숨하나 부지해 보겠다고 그가 그렇게 따르던 예수님을 면전에서 욕하고 저주하고 자기 목숨하나 건진 사람입니다.
그의 삶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우리 인생은 달라지는 겁니다.

두 번째 하나님은 인간이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어도 그 한계를 넘게 하시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게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맡기면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속에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우리는 자꾸 내 손에 뭐가 들려졌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것으로 우리 자신을 한계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새롭게 하시며 새로운 은혜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능력이 달라지기 위해서는 우리는 분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대가를 치르는 능력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포도즙 틀에서 몰래 밀이나 까불어서 먹고 있던 기드온에게 나타나셨어요. 기드온은 도저히 자신이 없었어요. 두려웠어요. 하나님 내게 증거를 보여주십시오. 또 증거를 보여주십시오.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에게 확신을 주셨을 때 그는 담대히 가서 바알의 신당을 깨뜨리고 여룹바알이라고 불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삼만 이천 명의 군사들이 올 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삼만 천 칠백 명을 돌려보냈어요. 삼백 명을 데리고 횃불항아리 나팔을 가지고 미디안의 대군을 쳐 부셨던 사람이 됐던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어서도 하나님은 그 한계를 넘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한계를 넘는 것은 나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 안에서 새롭게 시작하므로 우리는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늘 한번하면 능력이라고 말씀드리죠? 한번하면 정말 능력이에요. 여러분 한번하면 그다음부터는 그건 우리에게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니에요. 제가 올해 신년도 교역자, 직원들 시무예배를 드리면서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2007년도 올해는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까지 우리는 간다. 이제까지 한 번도 체험해보지 못한 세계를 체험하며 이제까지 우리가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일들을 하게 될 것이다. 믿고 따라오면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라고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면 우리가 체험해보지 못한 세계를 체험할 겁니다. 가보지 못한 지점까지 갈 겁니다. 이제까지 내가 생각하지 못한 지점까지 갈 겁니다. 말씀드렸지요. 다윗은 자기가 골리앗을 쳐부수리라는 꿈도 못 꿨어요. 왕이 된다는 꿈은 가져보지도 못했어요.
모세가 민족의 지도자가 돼서 그 민족을 광야에서 40년 동안 인도하리라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모세가 홍해를 가르리라고 꿈이나 꿨겠어요?

우리 인생에는 우리가 이제까지 꿈도 꾸지 못한 일들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그 일을 이룰 수 있는 겁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모두가 능력이 있어서 뽑힌 사람들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에 능력이 생긴 사람들입니다. 마침내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역사를 이룬 사람들입니다. 늘 말씀드리지요. 우린 우리를 믿어야 돼요. 우리를 기대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를 믿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믿고 기대하고 소망하는 것입니다. 자신 있고 담대하고 당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하면 하나님께 대해 소망하며 자신이 생기는 것입니다.

언젠가 수요일에 어떤 청년이 수요일마다 저녁에 나오더라고요. 보니까 걱정이 많은 것 같아요. 어느 날 제가 인사하고 나가는데 “목사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러더라고요. 제가 보니까 걱정되는 것이 많은가 보더라고요. 청년인데. 그래서 잠깐 이쪽으로 와서 무릎을 꿇으라고 해서 제가 안수해서 기도를 해드렸습니다. 그 뒤에도 계속 수요일 날 나와요. 저희 교회 낮에도 나오는지 잘 모르겠는데 수요일만 시간이 되어서 나오는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해 드렸어요. 그 청년을 볼 때마다 제 마음에 드는 생각이 뭔지 압니까? 요새도 계속 수요일에 나옵니다. 언젠가 저 청년이 지금은 어떤 정말 애틋한 마음의 소원이 있어서 하나님 앞에서 기도 할 지 모르지만 언젠가 저 청년이 “내가 그때 어려운 문제가 있고 하나님께 소원하는 것이 있어서 수요일마다 가서 기도했는데 내가 어느 날 목사님께 기도를 한 번 받은 적이 있는데 또 그것이 기회가 돼서 내가 하나님 앞에 이런 은혜를 입었다.”라는 것을 간증하게 될 날일 반드시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기도한 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저는 기도한 것을 기대해요.
그렇게 된다고 믿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기대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쁨으로 은혜로 채워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우린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우리 자신을 기대해요.
여러분은 여러분자신을 기대합니까? 기대해야 돼요.
우리를 믿습니까? 믿어야 돼요.
우리 인간적인 사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서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를 통해서 이루신다는 것을 우리는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생각도 못한 일을 이루게 될 겁니다.

한 번 따라서 합시다.
한 번도 가지 못한 곳에 가게 되며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지경까지 우리는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 안에 하나님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믿음의 백성입니다.
2007년이라는 것은 달력이 바뀌어서 새로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기 때문에 새로운 것입니다.
저희는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우리는 한 사람이 천명을 돕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하고 또 우리는 그것을 위해서 한 번 더 참고 한 번 더 애쓰는 겁니다.
어떤 흔들림이 있어도 어떠한 바람이 불어도 어떠한 눈, 비가 있어도 우리는 정한 목표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마지막까지 끝까지 가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힘 있게 들것입니다.

세 번째는 내 한계와 좁은 틀을 깨고 무한한 은혜의 역사와 장면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지경을 넓혀가야 합니다. 내 자신의 생각의 틀을 깨뜨려야 합니다. 내 자신의 틀을 깨뜨리고 더 넓은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넘어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한한 기대를 가지고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내 한계라고 생각했던 영역을 우리는 확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성경의 모든 인물들, 누구도 자신이 어떤 일을 하리라고 생각도 못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그에게 사명을 주시는 순간 그들은 달라졌던 거예요. 이사야 선지자는 나는 아직 아이라 아무것도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정결의식을 이루어주실 때 내가 여기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그는 담대히 외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소심하게 밤에 몰래 음식이나 먹기 위해서 그 포도즙 틀에서 밀이나 타작해서 먹던 기드온이 미디안의 대군을 향하여 ‘기드온의 칼이라, 여호와의 칼이라’ 담대하게 나가서 그들에게 승리하는 역사를 기드온이 꿈이나 꿨겠습니까?
여러분, 우리 이제까지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도, 내가 가보지 못했던 곳도, 내가 거기까지 꿈도 못 꿨던 일들도 우린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이룰 수 있는 한 해가 될 것입니다.

‘내가 무슨 천명을 도와, 나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그것은 어리석은 우리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생각은 달라지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기도하고 내가 하나님 앞에 소원을 가지는 한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이루는 겁니다. 여러분 절대 이런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나는 여자기 때문에, 나는 나이가 많아서, 나는 현재 이제까지 내가 쌓아온 모든 능력과 실력이 안돼서, 그건 아니에요.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언제나 새로운 겁니다.

나는 이쯤 되니까 여기서 방어적으로 인생을 잘 마무리 해야지 하고 생각하시면 안돼요. 지금 이 위치에서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일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이제까지 내 삶을 이렇게 살게 하셔서 수많은 경험과 실패와 성공과 모든 것들을 이루게 하셨던 그것이 무엇인가 하나님나라에 갈 때까지 우리에게는 기회가 있는 거예요.
우리는 그 일을 이루어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의 그릇을 키워야 합니다. 우리는 그릇을 세련하기 전에 먼저 그릇을 키우는 연습부터 하자고 말씀드렸지요.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언제나 새로운 시작을 이룰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쓰일 바를 생각하며 오늘도 준비하고, 준비만 하다 우리인생 끝날 수 없으니 우리는 실행하고 주님을 위한 삶에 온전히 우리를 드려야 합니다.

저는 느헤미아서를 보면 참 마음에 은혜를 받아요. 뭐냐 하면 느헤미아가 백성들과 더불어 예루살렘성벽을 수축하는데 산발랏과 도비야 일당이 끊임없이 괴롭혀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거기 나오는 방법의 가지 수만 해도 무궁무진하잖아요. 성벽을 짓고 있는데 이방의 군사들이 쳐들어온다 이런 말을 해요. 그러니까 그들이 어떻게 하죠? 저는 그 장면이 그렇게 은혜가 되던데요. <한 손에는 병기를 들고, 한 손에는 건축의 도구를 들고> 한 쪽에는 이방의 군사들이 쳐들어오면 방어할 준비를 하고, 한 쪽에는 끊임없이 예루살렘 성벽의 건축을 이뤄가는 거예요. 저는 그 장면이 너무 너무 은혜가 돼요. 한 손에는 병기를 들고 방어하며, 한 쪽에는 그들이 하는 건축의 역사를 끊이지 않고 지속해가는 거예요. 우리의 모든 삶에는 우리가 실패도 하고 또 어려움도 있고 눈물 나는 장면도 있지만 한 편으로는 그것을 감당하며 한 편으로는 끊임없이 우리의 소망을 향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내 삶에 어떤 어려운 장벽이 있어도 우리는 그것을 감당하며 우리는 가는 거예요. 한 편으로는 가슴 아파도 한 편으로는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달려가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는 따라서 날마다 소망을 가지며 주의 역사를 이루는 거예요. 오늘 베드로는 그의 한계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자신이 깨뜨린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깨뜨려 주신 거예요. 하나님이 깨뜨려 주신 것을 그는 수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한계를 깨뜨려야 해요. 내 나이가, 나는 여잔데, 나는 지금 하는 일이 별로 없는데, 나는 나의 모든 하는 일을 상실했는데, 우린 거기서 새롭게 시작하는 겁니다. 다시 설정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주의 역사를 이루는 거예요. 내가 이제까지 평생 동안 해 본 게 이건데 내가 무슨 일을 이룰까가 아니에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주시는 거예요. 성경의 인물은 적어도 그렇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믿고, 읽고, 지금도 늘 생각하는 성경은 그렇게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오늘 주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백성들 우리 모두는 2007년을 맞이하여 달력이 새롭게 바뀐 것이 모두가 바뀐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이 새롭게 바뀌고 이제까지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으며 새로운 소망가운데 주의 역사를 이루셔야 합니다. 자 우리 한 번 따라서 합시다.

이제까지 가지 못했던 세계를 가며, 체험하지 못한 것들을 체험하며, 우리 한계를 넓히고 넓혀 새로운 지경을 이뤄나갑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에게 우리의 한계의 지경을 넓혀가는 은혜의 백성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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