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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흥 시리즈(3) : 이런 교회 되게 하소서 (행 2: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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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 최고?

어떤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을 모아 놓고 물었습니다. "여러분 아빠는 어떤 분이지요?" 그러자 한 아이가 자신 있다는 듯 대답합니다. "우리 아빠는 큰 회사 사장님이에요." 이에 질세라 또 한 아이가 말합니다. "우리 아빠는 의사예요." 또 한 아이가 대답합니다. "우리 아빠는 대학 교수님이에요." 그런데 유독 한 아이만 아무 말도 안 하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너희 아빠는 뭐 하는 분이니?" 아이가 한참 주저하더니 이렇게 대답합니다. "우리 아빠는요... 사람은 착해요." 한창 우리나라에 IMF 한파가 몰아쳐 수많은 사람들이 대량해고를 당할 때 나온 이야기입니다. 조금은 서글픈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포항에서 예수 믿는 사람끼리 모여 자기 교회 자랑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어떤 사람은 "우리 교회가 포항에서 제일 크다."고 자랑할 테고, 또 어떤 사람은 "우리 교회는 이번에 근사하게 교회 새로 지었다."고 자랑할 테고, 또 어떤 분은 자기 교회 담임목사를 자랑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우리 효자교회 성도들은 무엇을 자랑할 수 있을까? 그냥 "우리 교회는 사람들 착해." 하고 말할까? 아니면 뭔가 남들 앞에서 자신 있게 자랑할 만한 것이 있을까? 참 궁금합니다. 오늘 본문은 지난주에 이어 사도행전 2장 말씀입니다. 지난주에 사도행전 2장에서 초대교회가 성령강림사건으로 시작되어 점점 부흥해 가는 것을 살펴보았는데 오늘은 같은 사도행전 2장 본문을 통해 초대교회가 구체적으로 어떤 특성을 가진 교회였는지, 과연 어떤 것을 자랑할 만한 교회였는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여섯 가지를 말씀드릴 텐데 오늘 이 여섯 가지를 들으면서 과연 우리는 교회는 초대교회에 견주어 어떤 교회인지, 무엇을 자랑하고 내세울만한 교회인지 깊이 생각하면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첫째, 열심히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교회

초대교회는 첫 번째로 말씀을 열심히 가르치고 배우는 교회였습니다. 42절에 보면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라고 나오는데 초대교회에서 사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가르치고 성도들은 그 말씀을 열심히 배운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 번 강조했지만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말씀이 기초가 되지 못하면 결코 교회는 바로 설 수 없습니다. 목회자는 초대교회 사도들처럼 설교를 열심히 하고, 말씀을 열심히 가르쳐야 합니다. 제가 작년부터 토요일에는 포항을 벗어난 결혼 주례를 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여러분이 얼마든지 섭섭해 하거나 왜 그러느냐고 따질 수도 있을 텐데, 제가 토요일에 온전히 말씀 준비에 전념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설명할 때 이해해 주신 것 깊이 감사드립니다. 사실 저도 그런 결정을 하기까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결혼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데 토요일에는 다른 곳에 가서 주례 안 한다고 하니 여러분이 얼마나 섭섭해 할까 싶어 몹시 주저했습니다. 하지만 목사가 결혼주례도 중요하고, 장례도 중요하고, 심방도 다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목회자에게 주신 사명 중 제일은 설교라는 생각에 결단을 내린 것이고, 여러분이 너그러이 이런 제 마음을 헤아려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토요일에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설교준비와 기도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이렇게 목회자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가 말씀이 가장 중요하다고 깨닫고 열심히 설교하고 가르치고 열심히 배울 때 그 교회는 초대교회처럼 역사가 일어나는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초대교회처럼 말씀이 살아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올 한해 전 성도가 성경일독 꼭 하시고, 저도 세상의 어떤 다른 목사들보다 더 열심히 설교 준비해서 뜨겁게 전하겠습니다.

둘째, 기도하기에 힘쓰는 교회

두 번째로 초대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였습니다. 42절 뒷부분에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라는 말이 나옵니다. "전혀 힘쓴다."는 표현이 조금 어색한데 개역개정판성경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그 교회가 어디에 힘쓰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떤 교회는 친교에 힘씁니다. 사람들이 열심히 모여 야유회 가고 회식하고 친교합니다. 어떤 교회는 사회봉사에 힘씁니다. 지역에서 노인대학을 운영하고 노숙자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습니다. 어떤 교회는 전도에 힘씁니다. 그 교회 성도들은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 전합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이 모든 것보다 기도하기에 가장 힘썼습니다. 아니, 기도하기에 힘쓰는 정도가 아니라 개역개정판성경의 표현처럼 '오로지' 기도하는 데 힘썼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친교도 중요하고 사회봉사도 중요하고 전도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기도 없이 이루어지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기도 없는 친교는 세상 사람들의 계모임이나 친목회와 다를 바 없습니다. 기도 없는 사회봉사는 자기 의를 드러내는 행위에 불과합니다. 기도 없는 전도는 공허한 말장난이 될 뿐 결코 생명구원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무엇보다 앞서 교회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에 전심전력하고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러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 교회도 초대교회처럼 기도하기에 힘쓰는 교회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모였다 하면 수다 떨고 남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모였다 하면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야유회나 회식 시간이 아니라 새벽기도 시간이 차고 넘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목회자가 가장 뜨겁게 기도하고, 장로님들과 교회 중직자들이 기도하면 그 기도를 듣는 성도들 마음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기도로 이루어가는 기적을 만드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모여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다 이루어지는(요 15:7)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병자들이 치유되고, 실패하여 넘어진 자 다시 일어서고, 교회가 꿈꾸는 모든 계획이 성취되는 기도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 모이기에 힘쓰는 교회

세 번째로 초대교회는 모이기에 힘쓰는 교회였습니다. 46절에 보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교회가 잘 되려면 무엇보다 모이기에 힘써야 합니다. 목회하면서 보면 성도들은 성전에 머무는 시간이 길수록 은혜를 받더군요. 그러니까 띄엄띄엄 교회 나오는 사람보다 매주 주일성수 하는 사람이 더 은혜를 받는 것이고, 주일 낮에만 나오는 사람보다 주일저녁에 나오는 사람이 더 복을 받고, 수요일도, 새벽도 교회 와서 교회 머무는 시간이 많은 사람일수록 은혜를 더 받더라는 것입니다. 틀림없습니다. 반대로 교회에 모이는 일을 잘 못하고, 교회 머무는 것을 힘들어 하거나 아까워하는 사람들은 은혜도 복도 받기가 참 힘듭니다. 세상 친구 만날 때는 제일 앞장서 나가면서 교회 가자고 하면 꽁무니를 빼거나 걸음이 무거워지는 분들이 있습니다. 표현이 좀 심하지만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억지로 교회 가는 분들이 어떻게 교회 와서 은혜를 받겠습니까? 교회 와서도 예배드리는 한 시간이 아깝고 지겨워 연신 시계를 들여다보며 왜 이리 시간이 안 가느냐고, 노래방에서 노래할 때는 한 시간이 왜 그리 빨리도 지나가는지, 그런데 교회 예배는 한 시간이 왜 이리 긴지, 이렇게 느끼는 분은 은혜 받을 방법이 없습니다. 입시 준비하는 학생이 예배는 참석해야겠고, 와서 앉아 있노라니 이 시간에 다른 경쟁자들은 한 문제라도 더 풀 텐데 하는 아까운 마음으로 앉아 있다면 그 시간은 정말 헛된 낭비가 되고 말 것입니다.

제가 아는 성도님 중에 이런 분이 있었습니다. 교회 다닌 지는 오래 되었지만 솔직히 주일마다 교회 가기가 너무 지겹고 그 시간이 아까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덜컥 큰 병에 걸려 집밖에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되고 보니 제일 가고 싶은 곳이 어디냐? 참 이상하게도 교회에 제일 가고 싶더라는 것입니다. 그제야 시편 84편에 나온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1절)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10절) 하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깨달아지더라는 것입니다. 성도가 신앙생활 잘 하고 은혜 받으려면 우선 교회 잘 오고, 잘 모여야 합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교회를 사모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깁니다. 그래서 자꾸 교회 가고 싶고 매일 퇴근하는 길에 교회 한 번 들르고, 교회 담이라도 한 번 만져보고 싶고, 그것도 안 되면 먼발치에서라도 한 번 교회 보고 집에 가야 마음이 편합니다. 이런 때가 바로 은혜 받는 때입니다. 또 이런 성도들이 많아서 교회가 주일뿐 아니라 수요일도, 매일 새벽도, 평일도 이런저런 모임으로 시끌벅적 하고, 모임이 많아야 교회가 삽니다. 주일만 와글와글 하고 평일엔 쥐죽은 듯 조용한 교회가 있는데 이런 교회 절대 부흥 못합니다. 우리 교회도 초대교회처럼 성도들이 교회를 사모하고, 모이기를 힘쓰고, 이런 모임을 통해 은혜를 체험하고 나누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넷째, 나눔과 교제가 있는 교회

네 번째로 초대교회는 나눔과 교제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42절에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었다."고 했고 46절에도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고 합니다. 초대교회는 모여서 말씀 배우고 기도한 후에는 항상 떡을 떼며 음식을 나누어 먹는 교제가 있었습니다. 음식을 각자 싸와서 혼자 먹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어 먹었습니다. 교회에는 반드시 나눔과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물론 말씀 듣고 기도한 후에 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기도 없이, 말씀 없이 교제만 하면 참된 교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작을 때는 비교적 나눔과 교제가 잘 됩니다. 성도 수가 얼마 안 되기 때문에 모든 성도가 서로를 알고, 그 집 자녀들도 알고, 어느 집에 밥숟가락 몇 개인지도 알 정도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점점 커지면서 이것이 어려워집니다. 교인끼리 서로 이름도 얼굴조차도 모르고, 몇 년 가야 밥 한 번 같이 먹을 일이 없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주일날 식당에서 밥 같이 먹는 일이 중요합니다. 학교 다닐 때도 꼭 혼자 도시락 먹는 친구들이 있는데 대개 외톨이들입니다. 밥 같이 먹는 데서 친구도 생기는 것 아닙니까?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식사를 준비하는 구역은 점점 힘들어지지만 주일날 식당에서 식사하는 인원이 늘수록 저는 신이 납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하지만 더 좋아지려면 가족끼리만, 아는 사람끼리만 식사하지 말고 모르는 사람이나 새가족과도 함께 식사하며 서로 소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얼굴 모르는 분, 이름 모르는 분이 꽤 많지 않습니까? 물론 우리 교회 오늘 처음 나온 분도 있겠지만 그 가운데는 우리 교회 출석한 지 꽤 오래 된 분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저 사람 모른다 한다면 이건 큰 문제입니다. 그만큼 우리가 관심이 없었다는 뜻이며 우리 효자교회 안에 나눔과 교제가 없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라도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서로 인사하고 서로를 소개하십시오. 그리고 가능하다면 초청해서 함께 식사도 하십시오. 우리가 교회 먼저 나온 것은 특권이 아니라 책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선민이 된 것은 특권이 아니라 먼저 선택 받은 자로서 책임을 지고 이방인들을 인도하라는 뜻인데도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잘못된 선민의식,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다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늘 우리도 효자교회에 하루라도 먼저 출석한 것이 특권이 아니요 책임인 것을 깨닫고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내가 먼저 다가가고, 내가 먼저 나누어야 합니다. 먼저 나온 여러분도 효자교회 처음 나오던 때가 있었지요? 얼마나 서먹서먹하고 쑥스러웠습니까? 그럴 때 누군가 친절하게 아는 척 해주고, 안내해주고, 함께 식사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교회 나갔다가 아이들이 아는 척도 안 하고 자기들끼리 예배 잘 드리고, 자기들끼리 웃고 노는 것을 보고 "다시는 교회 안 간다."고 다짐했던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 나눔과 교제가 없으면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다섯째, 지역에서 인정받는 교회

다섯 번째로 초대교회는 지역에서 인정받는 교회였습니다. 47절에 보니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했습니다. 초대교회가 온 백성들에게, 불신자에게까지 칭찬 받고 인정받았다는 말입니다. 모름지기 좋은 교회는 성도들끼리만 아니라 그 지역의 불신자들에게도 인정받고 칭찬 받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이사 와서 길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제가 이 동네에 처음 이사 와서 그런데 어디 교회 갈만한 데 없습니까?" 바로 그 때 그 사람이 말하기를 "저는 교회 안 다니지만 저 효자교회가 참 좋습니다. 거기 가세요." 안 믿는 분들이 교회에 관심 없을 것 같지만 아닙니다. 그분들도 교회 분위기 잘 압니다. 매일 다투고 분란 일어나는 교회라면 금세 소문나서 "다른 교회는 몰라도 저 교회는 절대 가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역사회를 잘 섬기고 좋은 소문이 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야 전도의 문이 열립니다. 3년 전부터 매년 한 차례씩 이 지역의 경찰관, 동사무소, 우체국, 소방서 직원 등을 초청해 "지역봉사자 초청 잔치"를 열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환경미화원들도 초청하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 일을 하고 난 후부터 효자교회가 지역에서 참 좋은 소문이 나고 있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작은 일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렇게 교회가 지역을 잘 섬기고, 지역에 기여할 때 좋은 소문이 나고, 칭찬과 인정을 받고, 전도의 문은 열리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극작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소설 <페스트>(La Peste)에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프랑스의 마르세이유에 페스트(흑사병)가 유행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갈 때 마르세이유의 주교 벨쥐스는 자기가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먹을 것을 준비해서 벽을 높이 쌓고 집에 틀어박힙니다. 그런데 그를 우상화하고 있었던 주민들은 이러한 주교의 행동에 분개해서 주교에게도 페스트를 전염시키기 위해 그의 집 둘레에 시체를 쌓아올렸고, 더 확실하게 죽게 하기 위해 담 안으로 시체들을 던져 넣기까지 합니다. 이것을 일개 무신론자가 쓴 소설 속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로 치부하지 말고 세상이야 망하든 말든 담을 높이 쌓고 우리만 잘 되면 족하다는 그릇된 사고를 가지고 있다면 교회는 결국 망할 수밖에 없다는 준엄한 지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효자교회는 지역사회를 향해 담을 높이 쌓는 교회가 아니라 그 담을 헐고 문을 열고 나아가 그들을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안에 흑사병 같은 죽음이 아닌 참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여섯째, 구원 받는 자가 날마다 늘어나는 교회

마지막으로 초대교회는 구원 받는 자가 날마다 늘어나는 교회였습니다. 47절 뒷부분에 보면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부흥입니다. 그런데 이 부흥은 지난 주 설교한 대로 교회가 좋은 교회 되고, 교회 체질이 바뀌니 자연스럽게 따라온 결과입니다. 의도적으로 부흥을 이룬 것이 아니라 앞에 나오는 조건들, 즉 말씀과 기도에 힘쓰고, 모이기에 힘쓰고, 나눔과 교제가 있고, 지역사회에서 인정받게 되니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사람들이 찾아오고 모여들어 수적 부흥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이 부흥이 바로 2007년 효자교회 3대 목표 중 첫 번째인 '부흥'입니다. 초대교회처럼 날마다 성장하는 교회, 날마다 믿는 자의 숫자가 늘어나는 교회가 되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수적 부흥은 두 번째 목표인 전도, 영혼 구원에 집중하는 교회가 되어야만 가능하고, 또 전도를 해서 아무리 많은 사람을 데리고 와도 그들을 신앙적으로 잘 키우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양육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 앞문으로 들어왔다가 뒷문으로 빠져나가는 허탈한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전도하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도록 양육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엡 4:13).

우리 한 번 따라합시다. "주여, 효자교회가 초대교회 같은 교회 되게 하소서." "주여, 효자교회가 말씀 충만, 기도 충만한 교회 되게 하소서." "주여, 효자교회가 모이기에 힘쓰는 교회 되게 하소서." "주여, 효자교회가 나눔과 교제가 있는 교회 되게 하소서." "주여, 효자교회가 불신자들에게도 인정받는 교회 되게 하소서." 마지막입니다. "주여, 우리 교회가 날마다 성장하는 교회 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의 소망을 들어주셔서 분명히 이런 교회 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에서 분란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집사님 한 분이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목사님, 전도를 못하겠어요. 우리 교회 오면 매일 다투고 싸우는데 어떻게 이런 교회 나오라고 전도를 하겠어요? 전도는 하고 싶은데 정말 괴로워 죽겠습니다." 어디 가서 자기 교회를 자랑할 수 있다는 것은 참 큰 은혜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당당하게 우리 교회 한 번 와보라고 권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한 성도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런 행복한 교회 되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이런 행복한 성도 되기 바랍니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이 교회에 대해 긍지와 자부심 넘쳐서 누구에게나 자신 있게 와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교회 되게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하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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