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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셉의 믿음의 간증 (히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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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믿음의 삶을 살았기에, 사람들은 예수님의 그림자라고 말한다. 요셉은 꿈꾸는 자였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이루기 위해, 수많은 어려움을 당했지만, 결국 승리했다. 형들이 애굽에 종으로 팔았지만, 형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또한 장군의 아내가 유혹해도 “내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여호와의 목전에서 득죄하리요?”하며, 하나님의 눈을 두려워하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 결과 감옥에 투옥되었다. 감옥은 일반적으로 죄인이 들어가지만, 그는 의로웠기에 감옥에 들어갔다. 하나님을 향한 충성 때문에 감옥에 갔다.

  이쯤 되면 “하나님께 순종했는데, 이럴 수 있느냐?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다”고 원망할 수 있지만, 그때도 묵묵히 하나님만 신뢰하며, 고통스런 감옥에서 승리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인자를 더하시어,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도록 하셨다. 그래서 나중에 애굽의 총리가 되도록 하셨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자신들을 팔아먹은 형들을 만났다. 형들은 죽었던 요셉인 줄 알자, 자신들을 죽일 줄 알고 벌벌 떨지만, 그는 형들에게 “근심하지 마소서, 염려하지 마소서, 나를 이곳에 보내신 것은 당신들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친히 나를 이곳에 보내셨다”고 말하였다.

  이렇게 놀라운 믿음의 간증을 남긴 요셉인데, 그의 생애를 한 마디로 줄여 간증하면, 본문과 같다.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 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을 떠날 것을 말하고,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으며” 본문은 요셉이 믿음을 따라, 어떻게 살았는지에,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단지 그가 믿음을 따라 죽었다는 사실만 말씀한다. 그 이유는 믿음을 따라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믿음을 따라 죽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12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가룟유다는, 3년 동안 예수님 뒤를 따라다녔다. 믿음으로 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예수님을 배반하고, 은 30에 예수님을 팔았다.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매달아 죽었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믿음을 따라 죽지 못해, 불행한 사람이 되었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사람은 모두 다 죽는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칙이기에,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 천국과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 따라서 믿음을 따라 살다가, 믿음을 따라 죽어야 한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날, 아름답게 삶을 마감할 수 있는 모습이 되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준비하면서 살자.

  하나님께서 언제 우리를 부르시더라도, 우리의 믿음이 더욱더 아름답게 빛나기를 바란다. 그러면 요셉의 믿음은 어떤 간증을 남겼나요?

1.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한 믿음

당시 요셉은 애굽의 총리였다. 그에게 애굽은 성공의 땅이었다. 그런데 후손들에게 애굽에 머물지 말고, 가나안 땅을 행해 떠나야 한다고 유언을 남겼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다.

  (창15:13-14)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고 하였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 언약을 이삭에게 전했고, 이삭은 야곱에게, 야곱은 요셉에게 전했다.

  이렇게 사람은 모두 다 왔다가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남는다.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히 이루어진다. 요셉의 위대한 점이 여기에 있다. 그는 하나님께서 언약을 붙들고 살았다. 이 약속을 기억했기에, 그는 자기 동족들에게, 고통의 때가 가까웠음을 알고 있었다.

  요셉 자신이 죽은 후에, 후손들은 시온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의 믿음은 막연한 믿음이 아니었다. 자기 스스로 만들어 낸 신념이나, 자기 암시가 아니었다. 요셉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다. (창50:24-25)을 보라.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여기서 정녕이라는 말은, 반드시 그렇게 맡기신다는 말이다. 이렇게 확신에 찬 말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만, 믿음이 생긴다. (롬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그러나 이렇게 확신에 찬 유언을 남기려면, 용기가 필요했다. 그는 애굽 땅에서 성공한 사람이다. 바로 빼놓고는 제일 높은 권력과, 최고의 영화를 누렸다. 그의 후손들이 성공한 이 땅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신다는 믿음이 있었다. 과연 요셉의 믿음대로 이루어졌다.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 땅에서, 하나님의 축복 속에 크게 번창했다. 큰 민족을 이루었다. 하나님은 모세를 들어, 그들을 출애굽 시키셨다. 그들에게 약속의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마5:18)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절대적인 권위를 두셨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므로, 말씀에 절대적인 권위를 두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자.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붙들어 준다. 따라서 참된 신앙의 선택을 위해서는, 언제나 말씀을 알아야 한다. 주님의 언약을 알아야, 믿고 순종할 수 있다. 따라서 성경을 읽고 연구하면, 요셉처럼 어떤 환경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 인생이 된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믿음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다. 기적을 보고서 믿는 믿음이 아니다. 기적을 보지 않아도, 약속의 말씀만 의지해서 믿는 믿음을 기뻐하신다. 사람은 표적을 보기를 원하지만, 주님은 말씀에 근거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감격하셨다.

  백부장은 다만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낫겠다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마8:8), 왕의 신하가 말씀만 믿고 가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요4:50), 그의 신앙을 칭찬하셨다. 요셉처럼 말씀을 잘 듣고, 말씀을 믿고 따르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 바란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다.

2. 자손들의 유익을 생각한 믿음이다.

요셉은 믿음으로, 그의 직계 자손들과, 이스라엘 자손이 떠나도록 유언을 남겼다. 이 유언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공동체를 위해서였다.

  요셉의 시신을 애굽 땅에 남겨두면, 자손들은 자꾸 애굽을 돌아보게 된다. 청개구리도 비가 오면, 어머니의 무덤을 생각하게 되는데, 하물며 믿음의 영웅이 묻혀 있는 땅을, 돌보지 않겠는가? 그래서 또 자기 해골을 들고 갈 것을 명했다.

  신약 교회는 2천 년 동안, 다른 민족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성공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부터,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데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자기 후손 대대에, 혹은 민족 대대로 복음을 전수하고, 믿음을 전수하는 데는 성공했다고 볼 수 없다.

  그러니까 기독교는 수백 년 동안, 한 민족에게서 부흥의 꽃을 피웠다가 쇠퇴기를 맞고, 하나님이 부흥의 촛대를 다른 민족으로 옮겨버리는, 반복의 역사가 신약교회의 역사였다. 미국도 300여 년 동안 부흥의 꽃을 피우다가, 지금은 서서히 쇠퇴기를 맞고 있다.

  한국은 복음을 받은 지, 겨우 100년이 지나서 전성기가 지나가고 있다. 신앙의 전통을 자랑하던 가정들도, 엊그제 이야기지, 오늘날에는 그런 모습을 보기 어렵다. 믿음의 후손들도, 이제는 믿음이 식어가고 있다.

  그러나 유대인을 보면, 다른 것은 모두 다 빼앗겼어도, 심지어는 600만 명의 생명을 빼앗긴 수난시대에서도, 자손 대대로 말씀을 전수시키고, 믿음을 전수시키는 데는 실패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갈수록 민족적인 부흥을 경험하고 있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민족으로 일어서고 있다.

  따라서 가정 복음화가 이뤄져야 한다. 아무리 위대한 믿음의 삶을 살아도, 당대에 끝나면 안 된다. 복음과 믿음은, 반드시 자녀들과 손자들에게 전수되어야만 한다. 그 사람 당대에서 끝나버린다면, 그 신앙이 아무리 위대하고 위대한 삶을 살았다 해도, 결코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손 대대로 지켜지고 이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제1순위 선교지는 자녀라고 할 수 있다. 청교도들은 영국국교회의 탄압과 핍박 때문에, 순수한 신앙의 자유를 그리워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을 향해 떠났다. 그들이 항구에 도착했을 때는, 초겨울이었다. 엄청 추었다.

  그곳에 모여 의논했다. “먼저 튼튼한 집을 지을 것인가, 아니면 땅 경작부터 할 것인가?” 그들은 먼저 하나님의 성전부터 건축하기로 결정했다. 자기들이 살집이야, 우선은 움막을 짓고, 다음에 잘 지으면 되므로, 먼저 하나님께 예배할 성전부터 짓기로 했다.

  그들은 예배당을 짓는 동안, 추위와 풍토병으로 많은 형제가 죽어갔다. 그래서 그 일을 계속했다. 타고 왔던 메이플라워호 선장이, 영국으로 다시 배를 가지고 가기 전, 풍토병과 다른 질병으로 고생하는 청교도들을 향해, 이렇게 물어보았다.

  “여러분 중에 영국으로 돌아가, 깨끗하고 좋은 환경에서 치료받고 싶은 사람은 없나요? 영국으로 돌아가면, 얼마든지 치료받고 살 수 있다. 저와 함께 영국으로 돌아갑시다” 그러나 그들은 선장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요, 그래도 우리는 이곳이 감사하다. 하나님을 마음껏 섬기고, 경배할 수 있는 이곳에 우리는 남아 있겠다. 이곳에서 죽을지라도, 끝까지 남아 마지막까지 하나님만 섬기며, 우리 자손들에게 이 믿음을 전수시켜 주겠다”

  이들의 믿음을 전수 받은 자손들은, 미국 땅에서 위대한 거목으로 자랐다. 그래서 영광의 가문을 이루고, 전 세계를 이끌어 가고 있다. 그들은 자손 대대로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는 것이, 생애목표요 과업이었다. 그런데 복음이 미국에 뿌려진지, 300년이 지난 오늘에 쇠퇴하고 있다.

  그래도 그런 미국을 이끌어 가는 사람은, 모두 청교도의 후예이지만, 남미는 유럽인들이 황금과 다이아몬드를 캐러 갔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황금을 더 사랑했고, 이 자녀들에게 믿음의 유산보다 황금을 물려주었다. 또한 엄청난 부동산들도 남겨 주었다.

  그러나 결과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가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녀에게 무엇을 남기겠나? 여러 채의 아파트와 빌딩보다, 더 복된 믿음의 유산을 남겨주시기 바란다. 그러려면 하나님 말씀을 잘 알고, 거기에 인생을 투자하시기 바란다.

3. 천국을 사모하는 신앙이다.

요셉은 자기를 애굽 땅에 묻지 말고, 가나안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였다. 그가 지혜롭게, 덕스럽게 통치를 잘해서, 애굽 사람은 7년의 대 흉년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따라서 요셉은 자기가 죽을 때, “나의 무덤을 피라미드처럼 크게 만들고, 나의 공적을 기리는, 큰 기념비를 내 무덤 앞에 세워라.” 이렇게 명령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출애굽 할 때, 자기 해골을 메고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가나안을 향해서 올라가라고 명했다.

  그는 부귀영화의 땅, 애굽을 그의 소망으로 삼지 않고, 약속의 땅을 소망으로 삼았다. 믿음의 사람이 보여주는 삶의 특징은, 땅엣 것을 사모하지 않고, 위엣 것을 바라보며 산다. 우리는 일시적인 땅엣 것을 푯대로 삼지 않고, 위에 것을 푯대로 삼는 사람들이다. 땅엣 것은 일시적이고, 육신에 속한다.

  그러나 위엣 것은 영원하며, 신령하다. 만약 요셉이 애굽 땅에 묻혔다면, 그도 별수 없이 애굽의 부요와 향락에 타협한 인간이란 결론이 내려지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애굽인으로 착각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후 죽음을 통해, 그의 신앙은 하나님을 향하여 있었음을 보여준다.

  늘 위엣 것을 사모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영원한 가나안 복지를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천국을 사모하는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되기 바란다. 따스한 봄이 되면, 강남으로 갔던 제비들이 되돌아온다. 그러다가 추어지면, 다시 따뜻한 강남으로 떠나간다.

  하루는 제비 한 마리가, 강남으로 가다가 갑자기 소낙비를 만났다. 마침 눈앞에 큰 동굴이 보였다. 제비는 동굴 속에 들어가서 비를 피했다. 동굴 속에는 박쥐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제비는 비를 피하는 사이에 박쥐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제비가 박쥐들에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너희는 왜 이렇게 어둡고, 습기찬 동굴에 모여 사느냐?” 박쥐 가운데 한 마리가 이렇게 대답을 했다. “여기가 안전하기 때문이란다. 여기에는 우리를 잡아먹는 매도 없고, 독수리도 없지 않느냐? 우리는 그저 안전하게 밤에만 몰래 나가서, 필요한 것을 구해 온단다.”

  그 소리를 듣고 제비는 측은한 듯이 말했다. “그러면 너희는 하늘이 얼마나 푸르고 아름다운지를 모르겠구나. 그리고 언제나 사시사철 아름다운 꽃이, 만발하는 강남도 모르겠구나.” 그러자 박쥐는 신기한 듯이 물었다. “그래? 그런 곳이 정말 있니? 그런 곳은 어떻게 가니?”

  제비는 대답을 했다. “그야 훨훨 날기만 하면 돼.” 그러자 박쥐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떨어져 죽으면 어떻게 하니? 또한 날아 가다가, 매나 독수리에게 잡혀 먹히면 어떻게 하니?” 그러는 가운데 소낙비가 그쳤다. 제비는 그 자리를 뜨면서 말했다.

  “너희들 말이 맞기는 맞아. 죽을 수도 있어. 그래도 나는 강남으로 간다. 잘 있어라.” 그리고 푸른 하늘을 향해 높이 자신의 몸을 솟구쳤다. 이처럼 땅엣 것이 우리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찬란한 하나님의 도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위엣 것을 바라보면서, 거기에 소망을 두면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란다. 요셉은 믿음을 따라서, 변함 없는 신앙을 가지고 살았고, 더 중요한 것은 믿음을 따라서 죽었다.

  결론이다.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붙들고 살았다. 하나님의 말씀은 꼭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았다. 요셉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면서 살아가자. 요셉은 애굽에 소망을 두지 않았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복지를 바라보면서, 밝은 소망 가운데 살았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그 날, 우리도 믿음을 따라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영원한 주님 품에 안길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란다. 특별히 아름다운 믿음의 유산을, 우리 자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성도들이 되기 바란다.

  우리도 이 땅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영원한 가나안 복지를 소망으로 삼고 살기 바란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의 복을 더하시기 바란다. 반석과 같은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믿음을 따라서 살다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그 날, 아름다운 믿음으로 우리의 삶을 마무리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서,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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