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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간절히 바라라 (시 3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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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 전 소흑산도에 집회를 갔습니다. 당시 어민들의 가난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어요. 식사시간에 혼자 해산물로 대접을 받습니다. 앞에 대여섯 살 난 남자 아이가 앉아있습니다. 그러다가 별안간 울음을 터뜨립니다. 뒹굴며 난리를 부립니다. 한참 뒤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본래 가만히 앉아있지 않던 아이가 얌전히 앉아있었어요.

어민은 전복을 먹지 못합니다. 쌀밥도 먹지 못합니다.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모처럼 강사가 와서 남겨줄 줄 알았어요. 그래서 점잖이 앉아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전복을 먹습니다. 밥을 국에 말아버립니다. 모든 소망이 다 사라집니다. 그래서 난동을 부린 겁니다. 그러니까 아이입니다. 더 밝게 앞으로 좋은 음식을 먹는 사람이 되리라 소망해야지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을 소망은 마음은 밝게 빛나게 합니다. 삶도 힘을 갖습니다. 소망이 사라지면 마음의 빛도 꺼지고 삶도 행동도 그렇게 됩니다. 힘없이 재미없이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왜 우울하고 왜 의욕이 없을까요? 소원의 성취가 희박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면 아예 소원도 없어요. 어떻게 하면 밝은 소망 속에 살 수 있을까요?

1. 하나님처럼 원하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아이와 같은지 몰라요. 이 어린 아이는 누구나의 속에 다 들어 앉아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원하는 대로 모습을 갖춥니다. 아름다운 처녀를 원하는 총각, 돈을 벌려는 사업가, 성공을 원하는 사람들, 그러다가 원하는 대로 안 되면 어린 애처럼 화를 내고 낙심합니다. 반복되면서 삶의 기대치가 낮아집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저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기로 했습니다. 아무리 원해도 좋은 것은 모두 남이 가져갑니다. 운이 없어요. 무엇을 간절히 원하면 실망만 더하고 말 거예요. 그러니까 아예 바라지 않는거죠.” 불교는 그래서 욕심을 다 버리라고 합니다. 욕심을 버리려는 욕심도 버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욕망을 다 버리면 삶 자체도 꺼지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은 욕심을 가지라고 합니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말하면 예수의 이름으로 준다고 합니다. 이것저것 다 주고 영원한 생명도 준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생명이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생명의 의욕이 넘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왜 죽으셨나요? 자기 생명을 주려는 것입니다. “살라, 살되 영원히 행복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생명만 우리 속에 주지 않으세요. 자신의 소원을 넣어주십니다.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놀랍지 않나요? 우리 속에 하나님의 소원이 있습니다.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면 하나님의 소원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꿈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소원을 찾아냈습니다.

하나님은 소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세상이 없을 때 아름다운 세상을 소원하셨습니다. 그 세상이 나타나지 않고 혼돈과 무질서와 흑암만이 지배해도 낙심하지 않고 소원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배신하고 범죄해도 구원을 소원하셨습니다. 수천 년 동안 치밀한 계획으로 아들을 보내 죽게 하셨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잘되기를 소원하신 겁니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신자라면 하나님처럼 소원이 넘칩니다. 기도 안 할 수 없어요. 잘 먹고 잘 살기를 원하세요. 건강을 원하세요. 하지만 왜 그러는지도 살펴보고 하나님처럼 소원하세요. 같은 소원도 목표에 따라서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모신 사람은 생명을 얻었고요, 그 증거로 좋은 욕심이 일어납니다. 좋은 질의 삶을 원합니다.

모든 소원이 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아닙니다. 나쁜 질의 삶은 죽음 같아요. 나쁜 욕망을 가집니다. 죽이고 싶습니다. 빼앗고 싶어요. 훔쳐서라도 돈을 가지고 싶어요. 밉고 귀찮아요. 다 그만 두고 싶어요. 우울합니다. 병들고 아픕니다. 슬퍼요. 죽고 싶어요. 육신의 소원은 결국 죽음으로 인도합니다. 허무와 방탕으로 갑니다. 성령의 소원은 생명입니다.

생명의 소원은 무엇일까요? 엄격함과 희생과 계명인가요? 금식과 절제와 즐거움을 포기한 고행의 길인가요? 아니, 아름다운 소원으로 가득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랑과 기대로 빛납니다. 선한 마음에서 나오는 추구는 다 좋습니다. 과감하게 최고를 소원하세요. 최고의 행복, 밝고 풍요로움을 끝까지 소원하세요. 좋은 질의 삶이란 증거입니다.

2. 믿음으로 바라라

룻이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모압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왔을 때 대항한 민족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히 저주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한 가족이 기근을 피해 그 지역으로 이주해 왔습니다. 부모와 남자 형제입니다. 룻이 그 형제중 하나와 결혼한 뒤에 얼마 못가 남자들은 다 죽고 과부만 셋이 남게 됩니다. 당시로서는 처참한 상황입니다.

시어머니 과부인 나오미가 이스라엘로 돌아가면서 젊은 며느리들에게 새로 시집가라고 강하게 권합니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를 따르겠다고 선언합니다. “어머니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 머무는 곳에 나도 머물겠습니다. 어머니의 백성은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여기에 룻의 간절한 소원이 나타납니다.

하나님 믿는 신앙에 접하면서 아름다운 소원이 일어납니다. 하나님 백성이 되고 싶습니다. 비록 모압 사람이라도 하나님은 받으시리라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룻의 동서인 다른 며느리도 같은 소원을 가졌습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가족과 혼인했습니다. 그러나 소원뿐이었습니다.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소원을 포기합니다.

이스라엘로 가 보았자 가난한 시어머니 나오미에게서는 아무 것도 기대할 게 없습니다. 현실이 너무 아프기에 소원에 대한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룻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굶더라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은혜 속에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로 따라갑니다. 소원에 믿음이 더해지면 삶이 힘이 일어납니다. 소원에 접근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에서 극빈자의 삶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믿음의 소원은 그를 부자 청년 보아스를 만나게 합니다. 보아스가 말합니다. “남편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모르는 백성에게 온 이야기를 들었다.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고 그의 날개 아래 보호 받으러온 네게 온전한 상주시기를 원하노라.”

결국에 룻은 자신의 소원을 이룹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됩니다. 그뿐 아닙니다. 이름만 택한 백성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잘 사는 사람이 됩니다. 룻이 나은 아들은 다윗의 할아버지가 됩니다. 그러니까 왕의 시조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됩니다. 그래서 저주 받은 백성에서 하늘의 복을 받는 위대한 존재로 영원히 빛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늘 기뻐해야 합니다. 그가 내 소원을 이루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신다.”(시37:5) 이렇게 확실하게 약속했으니 소원해야 합니다. 악한 것을 사모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믿는 사람은 하나님 수준의 아름다운 소원을 일으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믿는 사람에게 소원을 주십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믿고 그 소원을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그 믿음이 우리를 소원으로 이끌어줍니다. 수백만의 인구 가운데 꼭 필요한 사람을 만나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기 위해 아름다운 목표를 세우세요. 그리고 어떻게 할까요?

3. 간절히 밝히라.

하나님 믿는 사람은 반드시 아름다운 소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의 소원을 이루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셨으며 그의 입술의 요구를 거절하지 아니하셨나이다.”(시21:2) 룻을 복되게 만든 근거입니다. 전복과 쌀밥이나 먹는 정도로 낙심하고 절망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풍성하신 하나님과 그 말씀을 가지고 소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음과 간절함을 요구하십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끌어냅니다. 간절함은 마음을 밝혀 믿음을 더하고 목표로 우리를 끌어줍니다. 지난 금요일 유태영박사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머슴의 아들인 그는 가난한 산골에서 자라났습니다. 극심한 가난과 불운함 가운데 끼니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믿고 공부를 원했습니다.

신자의 소원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모든 역경을 극복합니다. 가난함도 박해도 다 극복합니다. 간절함을 버리지 마세요. 그보다 더 강한 힘은 없습니다. 룻이 한 일은 단지 하나님을 믿고 아름다운 목표를 간절히 소원하며 소원을 향해 한 걸음씩 나간 것뿐입니다. 유태영박사도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대부분 포기할 일을 그는 해내고야 맙니다.

18살에 중학교를 갔다고 했습니다. 공업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고학하느라 안 해 본 게 없었고 식사는 한 끼에 국화빵 10개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간절한 소원은 그 모든 시련을 이길 힘을 주었습니다. 아프지도 않았고 마음이 약해지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새마을 운동의 지도자로 위대한 삶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우리 앞에 룻을 비롯한 셀 수 없이 많은 인물들이 있습니다. 유태영 박사 같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얼마나 많이 이루었는지 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마음을 밝히고 있는 소원의 힘입니다. 소원을 가지고 있을 때 사람은 빛이 납니다. 행복합니다. 소원이 하나님처럼 같으면 하나님처럼 힘이 있고 아름다워집니다. 확인하세요. 어떤 소원을 내가 가졌나?

아름다운 소원은 간절해야 합니다. 하나님처럼 간절하세요. 그러면 반드시 옵니다. 파불로 카잘스는 95세에도 아름다운 연주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등소평은 77세인데도 포기 안하고 조국의 번영을 간절히 원해 주석이 됩니다. 백 살이 넘어서 훌륭한 회사를 세워 봉사한 분도 있어요. 아름다운 삶을 간절히 원하세요. 그렇게 생명의 빛을 높이세요.

오늘도 주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무엇이든 바라라. 죄가 아니고 선한 것이면 바라라. 그래야 소망의 빛이 일어난다. 삶의 의욕도 생긴다. 믿음도 삶도 성장한다. 무엇이건 원하는 대로 예수 이름으로 요청하라. 그리고 간절히 원하라. 끝까지 소망으로 마음을 밝혀라. 그러면 되리라.” 이 말씀 믿습니까? 믿음이 좀 부족해도 마음에 가지고 실천하세요.
(김기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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