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비 내리는 구름 (유 1:11~12, 잠 25:14)

  • 잡초 잡초
  • 541
  • 0

첨부 1


비 내리는 구름 (유다서1:11~12, 잠언25:14)

아프리카의 얼굴은 두 얼굴이었다. 5년 전, 건기 때 아프리카를 방문했을 때에는 황량한 벌판, 눈을 뜰 수 없는 먼지, 메마른 당으로 이어지는 이 지역은 황색의 얼굴이었다. 그런데 그 뜨거운 아프리카 땅을 지난주 밟았을 때 푸른 초원, 그림같이 펼쳐진 아름다운 땅이었다. 어떻게 아프리카 땅이 그린 필드로 보일 수 있는가? 그건 바로 하늘로부터 내리는 비 때문이었다.

맛사이 부족들의 땅에 자리잡은 엘레라이 선교센터에 도착하여 잠을 자는 밤에 비가 밤새도록 내렸다. 실로 엄청난 여름 장마비처럼 내려붓는데 하늘의 지붕이 뚫린 듯 하였다. 우리 선교단 일행이 도착한 날에 비를 몰고 왔기에 맛사이 부족 사람들에겐 축복을 몰고 온 셈이다. 비가 내리니 풀들은 힘을 얻고 사람 사는 땅이 넉넉해 보였다. 7~8개월이라는 긴 기간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건기를 지나다보니 사람들이 죽고 동물들이 죽고 산천초목이 죽는 것이지 비가 내리는 우기만 되면 풀은 쑥쑥 자라나고 땅은 비옥하여 모든 생명체에 먹이를 제공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프리카! 그 땅은 비가 오기마나 하면 모든 것도 살려내는 땅이 된다. 비만 내리면 누구든지 먹고 살 수 있는 땅이 된다. 교회의 봉헌식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었다.

첫째, 사람의 심령 위에도 성령의 단비가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죽어가는 생명체가 하늘에서 내리는 비만 기다리다가 비가 쏟아지면 살아나듯 나의 영혼이 살아나는 비결은 성령의 단비를 맞는 것이다. 강팍하여 찢어진 내 심령, 완악하고 독한 것을 내뿜는 심령이 부드러워지는 길은 은혜의 비를 바라보는데 있다.

우리 청년들은 하루 일정을 마치고 집회를 가지면서 찬양을 불렀다.

“주의 자비가 내려와 내려와 / 주의 자비가 봄비같이 / 주의 자비가 내려와 나를 덮네.”

그렇다. 봄비같은 주의 자비, 장마비같은 주의 은혜, 가을비 같은 주의 사랑, 겨울비같은 주의 인애, 사람의 심령도 이런 단비가 내려야 산다. 사랑의 비, 은혜의 비, 자비의 비가 심령 가운데 내리면 상처가 아문다. 약한 자가 힘을 얻는다. 아픈 자가 위로를 얻고 살아난다. 영혼이 소생하여 일어선다. 더러운 것을 씻겨서 정결한 영혼이 되고 새 마음, 부드러운 마음이 된다.

겔36:24을 보라.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서 취하여 내고 열국 중에서 모아 데리고 고토에 들어가서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하였다.

하나님이 비를 내리셔야 한다. 정결케 하는 물을 뿌려 주셔야 한다. 성령의 단비를 사모하자.


둘째, 우리 교회와 민족 위에 비가 내려야 한다.

1907년 1월 6일, 1907년 2월 10일, 평양 대부흥이 일어난 것은 100년 전 이 땅 위에 하나님이 성령의 단비를 내리셨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위로부터 내리는 비를 통해 어둠 속에 있던 이 민족, 일본에게 주권을 도둑맞은 이 민족이 살리심을 입었다. 새로운 기쁨과 감격 속에서 삶의 용기를 내고 소망을 품는 민족이 된 것은 위로부터 내리신 은혜의 소낙비 때문이었다. 우리 민족은 일제 36년, 해방 이후 분단의 아픔, 그리고 동족간의 6.25전쟁, 광주 사태 등 크고 작은 격량 속에서도 다시 일어선 것은 은혜의 비 때문이다.

탄자니아에 가서 알게 된 것은 동아프리카에 복음이 우리나라보다 조금 더 빨리 들어왔다는 것이다.

“비가 모여”라는 곳에 가서 복음이 처음 들어온 해변에 세워둔 기념비 앞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복음의 역사가 비슷한대 왜 이 탄자니아 땅은 교회들이 흥왕하지 않았을까? 왜 이 탄자니아 땅은 우리나라 6.25이후의 처참한 가난의 시절과도 같은 삶을 사는 것일까? 탄자니아와 우리 민족의 차이는 아무 것도 없다. 아프리카와 아시아라는 명칭 이외에 다른 것이 없다. 다만 위로부터 내리는 성령의 단비, 은혜의 단비의 차이이다. 나는 탄자니아 땅에 부흥의 은혜가 임하길 기도했다. 비만 내리면 사물들이 살아나듯 하나님의 부흥의 단비만 임하면 아프리카도 일어난다고 믿게 되었다.

우리 민족은 현재 수출 3,000억불을 달성하는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아프리카 전 지역의 수출액을 합한 것보다도 더 많은 수출 성장국이 되었다. 이는 한국의 기적이고 교회의 기적이다. 40년 전, 내가 중학교 다니던 때만 하더라도 펜촉 하나 만들지 못하는 나라라고 교실에서 귀가 아프도록 민족의 기술 없음에 대하여 들었다. 탄자니아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교회에 성령의 단비를 내리고 민족 앞에 은혜의 단비를 내리셨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이 엄청난 축복의 열매를 내버려둔 채 너무나도 분열되고 무엇을 해야될 지 모르는 머뭇거림 속에 있다. 확실한 목적과 미래의 비젼을 제시하는 이정표가 보이지 않고 파도 속에 감추고 암초에 부딪혀 파선될 위기를 안고 있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바로 은혜의 단비이다. 메마른 대지, 메마른 민족과 교회 위에 다시 단비가 쏟아져야 한다. 그 1907년의 부흥이 2007년에 새로운 부흥과 회복의 영광으로 임하도록 비가 내려야 한다.

겔34:26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내 산 사면 모든 곳도 복되게 하여 때를 따라 비를 내리되 복된 장마비를 내리리라.”

은혜의 비가 우리 교회를 살린다. 우리 민족을 살린다. 복을 받는 것은 땅이 비옥해서가 아니라 하늘에서 내리는 은혜의 달려 있다. 우리가 훌륭하고 못나고 자본과 기술의 유무보다 하늘에서 부어주시는 복에 달려 있다.


셋째, 나와 여러분이 비 내리는 구름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은혜의 사람들이다. 새벽 아침 풀들이 깨끗한 이슬을 머금고 있듯 우리는 은혜에 젖고 사랑에 젖은 사람들이다. 하나님 때문에 살아난 우리는 사람을 살려내는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은 비를 내리는 구름이 되는 일이다. 하늘에 구름의 모양이 있어서 구름을 쳐다보며 비가 내리는 가보다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비가 내리지 않는 비 없는 구름이라면 얼마나 건조하고 답답할 것인가? 비 없는 구름은 기대를 어긋나게 하는 구름이다. 실망을 가져다주는 구름이다. 은혜의 비를 경험한 크리스챤의 모습은 비 없는 구름 같아서는 안된다.

유1:12을 보니까 이런 크리스챤은 크리스챤이 아니다. 겉모양만 크리스챤이지 가짜 크리스챤이다. 오히려 가인의 길에 행하는 살인자!, 발람의 어그러진 길을 가는 우상 숭배자!, 고라의 반역을 쫓아가는 반역자요, 이런 자는 비 없는 구름, 바람에 불려가는 물없는 구름인 것이다.

잠25:14에 비 없는 구름을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거짓 자랑하는 자가 비 없는 구름이라 하였다. 즉 비 없는 구름같은 크리스챤이란 말만 무성하다는 말이다. 우리의 주변을 보라. 경건의 모습이 있다. 예배의 모습이 있다. 기도의 모습이 있다. 그러나 경건의 모습이 있으면 경건의 능력이 나타나야 하고 예배의 모습이 있으면 헌신의 영광이 나타나야 한다. 기도의 모습이 있으면 기쁨과 감격의 응답이 나타나야 하고 약속의 모습이 있으면 실천의 행동이 나타나야 한다. 그것이 비를 내리는 구름, 물을 가져오는 구름의 참모습이다.

그러므로 우리 오목천 성도들은 비 내리는 구름이 되어야 한다. 왕상18:42~46을 보면 지중해에서 떠오른 손바닥만한 구름을 통해서 엘리야는 비를 내리는 기도를 한다. 3년 6개월 간의 가뭄을 끝내고 축복의 장마비를 대지에 쏟아붓는 일곱 번의 기도를 한다. 엘리야처럼 우리도 할 수 있다. 우리 크리스챤들과 엘리야는 다른 점이 없다. 야5: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든지 비를 내리는 구름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살려내는 사람, 살려내는 성도가 되는 것이다.

이 시대에 비를 내리는 구름의 역할은 무엇인가?

1. 복음의 기대를 채워주는 역할이다.
2. 영혼을 소성시켜 생명의 힘을 주는 역할이다.
3. 넉넉함과 자유로움을 주는 역할이다.
4. 맡겨진 일에 책을 다하는 역할이다.
5. 말한대로 실천하는 역할이다.

결국 비를 내리는 구름으로 산다는 것은 진정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 진정으로 살려내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안찬호 선교사, 그는 광부로서 술 먹고 싸움만 하는 메마른 인생이었다. 그가 술병에 맞아 머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을 했다가 간호원을 만나게 되고 자중에 변하여 은혜를 받아 선교사가 되었다. 무용한 안찬호가 지금은 아프리카에 비를 내리는 사람이 되었다. 맛사이가 두르게 되고 있다. 그 자신도 살아나고 남을 살리고 있다.

이제 우리는 외형만 가진 생활에 대해 자랑만 늘어놓고 실천이 없는 생활을 청산하자. 그것이 회개이다. 그리고 하루에 한 시간을 정하여 비 내리는 구름같은 삶을 위해 기도하기를 축원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