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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한손엔 일을 한손엔 병기를 (느 4: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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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처럼 놀이기구가 많지 않았을 때에 온 동네 사람들에게 가장 큰 즐거움을 준 날은 가을 운동회였습니다. 이 때가 되면 아이들만의 축제가 아니라 온 동네, 심지어 이웃마을까지도 초청될 만큼 즐거운 날이었고 유일한 놀이였습니다.
운동회의 클라이막스는 언제나 동네대항 아니면 청백대항 줄다리깁니다.
이 경기는 그 팀간의 단합을 과시하고 하나됨을 느낄 수 있는 놀이기 때문에 줄다리기는 늘 마지막에 함으로 운동회의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줄 달리기를 얼마나 잘하느냐 따라 지금까지 승패가 그대로 결정될 수가 있고, 반대로 역전승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에 양 팀은 그야말로 사력을 다하여 싸우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 줄다리기는 몇 몇 사람이 힘이 세다고 이길 수 있는 경기가 아닙니다.
그 팀의 구성원들간에 호흡이 맞아야 하고/ 줄을 잡고 당기는 자세가 좋아야 하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옆에서 깃발 들고 장단에 맞게 응원해 주는 응원단. 이런 구비요건이 갖추어질 때 비로소 줄다리기에서 이길 수가 있는 것이죠.

오랫동안 페르시아에서 지냈던 느헤미야가, 황폐한 조국 이스라엘에 돌아와 첫 번째 한일은 무너진 성벽을 쌓는 일이었습니다. 과거에 성전을 둘러싼 성벽이 있었지만 이스라엘이 멸망할 때 성벽은 무너졌고 성전도 훼파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느헤미야는 성벽을 쌓는 일이 가장 시급한 일인줄 알고 그 일을 먼저 시작한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지금까지 무너져 있던 성벽을 다시 쌓음으로 해서,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성벽 쌓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그것은 돈이 없어서도 아니고 일군이 없어서도 아니라, 바로 안팎으로 다가오는 위협과 시험의 도전이었습니다.
밖에서의 도전은 이스라엘의 부흥을 싫어하는 이방인들의 위협이었었고, 안으로의 어려움은 백성들의 불평과 불만이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에, 은혜를 사모하거나 또는 특별한 일에 헌신하기를 원할 때 반드시 일어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단의 유혹과 속삭임입니다. 지금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필요가 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면 꼭 생각지 않는 어려움이 생기고, 참석지 못할 이유가 생기게 됩니다. 그것은 마귀의 작전입니다. 특별집회 때가 되면 꼭 시집이나 친정에서 누가 찾아오거나 잘 놀던 아이가 아픕니다. 새벽기도 나갈려고 하면 꼭 남편이 반대하거나, 아이가 웁니다.
그냥 있으면 괜찮아요. 그냥 신앙생활 대충하면 괜찮아요, 안 믿는 남편도 좋아하고 아이도 좋아하고 가정도 편안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 하고 새벽기도, 철야기도 참석하고 신앙의 한 단계를 높이려고 하면 그렇게 좋던 남편이 이상하게 덤빕니다. 아이가 달라집니다. 가정에 분란이 생길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이 단계를 넘어서야 합니다.
느헤미야가 와서 성벽을 쌓기 전에는 좀 불편했지만 살기는 괜찮았고, 시험과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벽을 쌓고 다시 영적인 부흥을 꾀하려고 할 때, 안팎으로 대적들의 도전과 위협이 다가오는 것이지요. 그러나 느헤미야는 여기서 굴하지 않고 성벽을 쌓기 시작합니다.

첫 번째로 살펴볼 것은, 느헤미야가 하는 일입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쌓으려고 할 때 지속적으로 집요하게 반대하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방사람들인 산발랏과 도비야와 그들의 추종세력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느헤미야가 성벽을 쌓는 일에 목숨을 걸고 반대하고, 그 계획을 무너뜨리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했습니다. 왜 그 사람들은 그렇게 성벽쌓는 일을 반대했을까요?
성벽을 쌓는 다는 것은 한 건물이 완공된다는 의미 외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정신적인 힘이 다시 결집된다는 놀라운 영적인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에게 좋을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벽이 완공됨으로 인해,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은혜로 무너진 조국을 건설할 수 있고, 다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는 신앙과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영적인 계기가 될 수 있는 일이었기에, 그들은 그것을 막기 위해 혈안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들의 모든 계획을 미리 알아채리고, 다시 저들의 습격에 대비하여 계획을 세우고 백성들을 독려합니다.
#15절 “우리의 대적이 자기의 뜻을 우리가 알았다 함을 들으니라. 하나님이 저희의 꾀를 폐하셨으므로 우리가 다 성에 들어와서 각각 역사하였는데 그때로부터 내종자의 절반은 역사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으며 민장은 유다 족속의 뒤에 있었으며”
대적들의 집요한 공격과 음모를 하나님의 은혜로 물리친 다음, 지금의 상황은 어떻게 보면 폭풍우가 지나간 다음의 적막한 상황과도 같았습니다.
백성들은 언제 다시 처들어올까 긴장하고 있었고, 성벽을 건축하느라고 너무나도 심신으로 지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는 방어의 자세를 늦추지 않습니다.
“이제 됐다 푹 쉬어라, 한번 물리쳤으니 다시 오기 힘들 것이다”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방심하지 않는 것이죠. 오히려 더 조직적으로 방어하고 다시 공격해올 것에 대한 준비를 철저하게 한 것입니다. 그 대비책이 반은 공사 현장에 투입하고 반은 공격에 대비하는 것이었습다.

한국에는 옛날부터 유명한 장군과 장수들이 많은데, 세계적으로 그 전술과 전략 인품이 인정받는 사람 중에 탁월한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이순신 장군입니다./ 몇 년전에 영국해군에서 세계 해전사상 유명한 장군을 몇 명 뽑았는데, 그 중에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이순신 장군이 뽑혔습니다..
물론 이순신 장군이 수십척으로 일본의 수백척을 무찌른 전술도 훌륭하지만, 영국 군사전문가들이 인정하는 이순신 장군의 탁월한 점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부터 배를 만들고 거북선을 만들어서 적의 침략에 준비했을 뿐만 아니라, 원균에게 모함을 받고 나서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본군이 쳐들어 올 줄 알고 백의종군하면서 준비했다는 점을 더 높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한번의 공격을 물리친 후에, 그 조용할 때에 그 다음의 준비를 한 것입니다.

교회가 가만히 있고 아무일하지 않을 때는 조용합니다. 그러나 어떤 계획을 세우고 어떤 목표를 가지고 기도하고, 열심을 내고 일하려고 하면 반드시 마귀는 교회를 시험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하고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사단은 집중적으로 우리를 공격합니다. 우리는 한번의 공격을 이겨내기란 쉽습니다.
교회나 가정도 조용할 때 준비하고 힘을 길러야 합니다. 교회가 평안하고 가정이 안전할 때, 우리의 말씀으로 영적인 힘을 기르고, 기도에 힘을 쓰고, 전도에 힘을 기울이고, 경건의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우리교회는 지금이 바로 기도할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때 입니다.
저는 우리 모든 교우들이, 교회와 가정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능히 마귀의 궤계를 물리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뿐만 아니라 느헤미야는 백성들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생활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일체감을 나타내 주는 단어나 숙어들이 굉장히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 #15절- 3번/ 19절-1번/20절-3번/21절-1번/22절-1번/23절에도 동일한 의미/총 10번
느헤미야는 백성들과 다르지 않다는 삶으로 보여 준 것입니다. 나는 너희들과 똑같다.
비록 총독이고 지도자의 자리에 있었지만 그는 말만 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이 고생할 때 같이 고생했고 일할 때 같이 했습니다.
백성들은 언제 지도자의 말에 영향력을 받습니까? 자신들의 삶을 이해하고 같이 사는 폼만 잡아줘도 은혜 받습니다.
여호수아도 요단강을 건널 때는 백성들과 같이 생활햇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같이 자고 먹었습.
느헤미야는 성벽을 건축해야한다는 확고한 목표가 있었고, 적의 공격에 대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특별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백성들과 호흡을 같이 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의 작은 지도자들인 구역장들과 권찰, 각 기관의 임원들, 모든 사역자들이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구역과 기관의 부흥을 위해서 가져야 할 생각은 무엇입니까?
같은 생각을 가지는 것입니다. 같은 꿈을 꾸는 것입니다. 같은 환상을 보며, 비전을 향하여 같이 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언제 교회가 부흥합니까?
목사님의 꿈을 장로님들이 같이 꾸고, 항존직들의 비전을 모든 사역자들이 동일한 생각으로 같이 가질 때, 모든 교인들이 하나된 목표와 동일한 비전을 가지고 힘을 합칠때 바로 그때입니다.
어떤 가정이 행복합니까?
부모님의 생각을 자녀들이 이해하고, 자녀들의 꿈을 부모들이 밀어주고 기도할 때 바로 그때입니다.

우리는 물론 다 같을 수는 없습니다. 환경이 같을 수도 없고, 삶의 처지는 더더욱 다릅니다. 그러나 꿈은 같이할 수 있습니다. 비전은 공유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나가려는 교회의 목표는 동일하게 마음에 품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우리교회에 소속된 모든 교우들이, 젖먹이에서부터 연세드신 어르신들까지 동일한 꿈을 가지기를 소망합니다.
교회의 부흥에 대한 동일한 소망을, 우리교회에 성령의 충만함이 있는 그런 예배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그런 영광을,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그런 가정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느헤미야의 지도를 따르는 백성들의 자세입니다.
느헤미야가 이런 어려운 환경속에서 앞서서 일을 추진하자, 많은 백성들이 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 말을 따랐습니다.
#17-18절 “성을 건축하는 자와 담부하는 자는 다 각각 한손으로 일을 하며 한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건축하는 자는 각각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느헤미야는 이런 어려움을 이겨나가기 위해서는, 일하면서 경계하고 경계하면서 일하자는 것이었습니다.
#23절 “내나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좇아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다 그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기계를 잡았느니라”
우리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있다, 그 일을 아직 마치지 않았다 같이 힘스고 같이 노력하자
이일은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 모두의 생존이 달려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역할을 분담해서 일하는 자는 일하고 경계하는 자는 경계하도록 하자.
이런 지도자 느헤미야의 지시에 모든 백성들이 동의하면서 따라주었다는 것이지요.

어느 기관이나 단체가 발전하고 성장하려면 지도자를 얼마나 믿고 따라 주느냐에 따라 달렸습니다. 우리 속담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단체나 어느 기관을 막론하고 전체 집단이 다 지도자를 따르고 존경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의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지도자의 말에 순종하는 일입니다. 따라주는 일입니다. 신중하게 생각해서 결정한 일이면 조금 불만이 있더라도 순종해야 하고 지지해 주어야 합니다.
오늘 느헤미야의 이 일에 반대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그들도 묵묵하게 따라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손으로 작업하고 한 손으로 병기를 잡았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공통된 목표를 위하여 더욱 열심히 일했다는 것입니다.
#21절에 보면 “무리의 절반은 동틀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창을 잡았고”
#22절 “사람마다 그 종자와 함께 예루살렘 안에서 잘찌니 밤에는 우리를 위하여 파수하겠고 낮에는 역사하리라”
#23절 “내나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좇아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다 그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기계를 잡았느니라”
이렇게 준비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에게는 느헤미야와 백성들이 같이 이루어 내야할 공통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벽완공, 이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하나님께서 다시 우리를 통하여 거룩한 일을 행하기를 원하시는 너무나도 확실하고 너무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지도자를 중심으로 철저하게 따르고 순종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에게는 눈앞에 보이는 분명한 목표가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부흥과 성령의 임재하심입니다.
모든 예배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기도에 불이 붙고 살아 움직이고 약동하는 교회를 이루어 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도자 한사람의 힘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그 지도자의 말과 비전에 얼마만큼 따라주고 기도해 주고, 협력해 주는가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혼자 잘해보세요, 장로님들끼리, 항존직끼리 직분자들끼리 잘해보세요, 방관하거나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말로만 그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후원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교회의 부흥은 모든 교우들이 같은 마음으로, 교회의 공통된 목표를 위해 같이 기도하고, 같이 무릎 꿇고, 같이 눈물 흘리고, 같이 고생할 때 그런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교회의 목표와 꿈과 비전에, 그렇게 동의해 주시고, 기도해주시고, 협력해 주시는 귀한 마음을 가지고 헌신하는 자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3.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이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15절 “하나님이 저희의 꾀를 폐하셨으므로” #20절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느헤미야와 온 백성들은, 상황이 이렇게 긴박하게 돌아가는 가운데서도 철두철미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손길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 어려움 중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신다. 우리의 계획을 이루어 주신다는 믿음을 잃지 않았던 것입니다.
교회부흥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가정의 평안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교회의 표어를 ‘성령이여 우리를 도우소서’라고 정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이루신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도와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가만히 있어도 됩니까?
성벽을 완공하기 위해서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손으론 일을 하고 한손에는 병기를 잡았습니다.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우리는 눈물 흘리며 기도하고 또 나가서 전도해야 합니다. 온교우들이 동일한 목적과 꿈을 가지고 부흥을 사모하며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 위에 임하는 것이지요.

귀국한 유대 백성들의 최대 목표였던 성벽재건의 완성은 느헤미야와 백성들간의 하나됨, 그리고 치우침 없는 준비와 노력,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 이 세 가지 요소가 있었기에 이루어 질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느헤미야에게 함께 해주셨던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함께 해주십니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교회에는 꿈이 있고 비전이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선하신 도움을 바라면서 우리의 해야 할 일들을 치우침 없이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성벽완공의 축복을 허락하셨듯이, 우리교회와 가정에도 부흥과 성장의 큰 역사를 베풀어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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