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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라를 지나 엘림까지 (출 15: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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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본문은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첫 번째 지나게 될 수르 광야의 마라와 엘림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살펴볼 것은 물 때문에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모세의 인도로 홍해를 잘 건너왔습니다. 다 죽을 줄로만 알았는데, 물에 빠져 죽던지 아니면 애굽군대에 잡혀서 죽든지 들 중의 하나였는데, 생각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로 홍해를 마른땅 같이 지나왔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을 죽이려던 애굽군인들은 거기에 다 빠져 죽은 것입니다.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이제 자신들은 자유로운 사람이 된 줄 알았습니다. 고된 일도 이제 하지 않아도 되고 열심히 일한 것도 이제 바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과 장래에 대한 환상으로 홍해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쁨도 얼마가지 못하고 그들에게 당장 어려움이 닥쳐왔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실 물이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22절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그들에게 당장 닥친 문제는 물 문제였습니다. 애굽에서 급히 나올 때 가지고 나온 물은 다 마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늙은 부모님과 어린아이들 뿐만아니라 수많은 짐승들도 있었습니다. 이 모두다 물이 없으면 죽을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다가 마라라는 곳에 이르게 되었는데, 마라의 물은 너무 써서 먹지 못하였습니다.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너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그래서 ‘마라’의 뜻은 ‘써다, 괴롭다’라는 뜻을 가진 지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이 말라 얼마나 물을 찾았습니까? 물이 최고다 물만 있으면 된다. 그런데 그들이 찾은 물은 먹지 못하는 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에게 불평했습니다.
#24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시리이까 하매”
그들이 힘든 중에, 고생 중에서 첫 번째 한 일은 무엇입니까? 원망하는 일이었습니다. 불평하는 일이었습니다.
불과 사흘 전에 홍해의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당장물 때문에 불평불만하게 된 것입니다. 모세를 원망했다는 말은 하나님을 원망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물은 무엇입니까?
살아가면서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특히 사막에서는 물이 없으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살아갈 때 가장 필요한 것 바로 물.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이 더 급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 그 권능, 체험, 다 물 앞에는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애굽에서 430년 동안이나 지켜주셨던 그 하나님의 은혜, 홍해를 건넌 후에 불렀던 감사 찬양, 당장 눈앞에 보이는 물 앞에는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그것 필요 없다 물달라하는 것입니다.

예배 중에 받았던 하나님에 대한 은혜, 세상 나가면 아무것도 아니구나, 부흥회 때 받았던 성령충만함, 직장에서 사업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돈 앞에는 하나님도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래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돈이 최고야, 돈이 있고 신앙이 있지 돈 없으면 교회도 못다닌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진 생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어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모르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인도해 내셨는데 그것도 준비하지 않으셨겠어요?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모세에 대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불평한 것이지요.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마라의 쓴 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습니까? 물이 없어서 괴로워하고 있습니까? 환경으로 인해 절망하고 있습니까? 불평하지 마십시오, 보이는 물 때문에, 살아가면서 눈에 보이는 필요한 것, 급한 것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 은혜, 감사 찬양 잊지 마십시오, 사실은 그것이 더 급하고 필요한 것입니다. 문제는 그 능력의 하나님을 믿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십니다.

두 번째는 쓴 물을 단물로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모세가 쓴 물 때문에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을 듣고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는 이상한 행동을 하라고 계십니다.
#25절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하나님께서는 기도 소리를 들으시고 그냥 물을 달게 하시지 않고 한 나무를 가리키시면서 그 나무를 그 써서 먹지 못하는 물에 던져 넣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한 나무가 무엇이고 무엇을 상징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를 따라 이상한 상징을 보이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교육하셨습니다.
#민수기 21장: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다 불 뱀에 물려 / 놋뱀 장대 위에 달라
#열왕기하 2장: 엘리사가 여리고, 먹지 못하는 물에 소금을 넣었더니 다시 먹을 수 있었다.

요즘 들어서 물 건강법이 굉장한 관심을 끌고 있습다. 어떤 분은 하루에 물을 열 잔씩 마셔야 한다, 어떤 분은 생수를 먹어야 좋은데, 어디 생수가 좋다느니 말들을. 또한 시중에는 새로운 방식의 정수기인 코오롱 정수기가 나와서 자사 제품을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물 문제가 심각한데 모든 나쁜 물에 나무 한 그루씩 넣으면 그 물이 다 좋아집니까? 오염된 낙동강 물에 나무 한 그루 던지면 그 물이 깨끗해집니까?
놋 뱀이 사람을 고칠 수 없고, 소금이 물을 맑게 하지는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나무 한 그루 던진다고 해서 쓴 물을 단물로 바뀌어 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놋 뱀과 소금과 나무를 통해서 역사하신 것뿐이고, 이것들은 단순한 도구였습니다.

이 나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습니다. 죄인을 의인으로 만들고, 병든 사람을 건강하게 하고, 가난한 자들을 부요하게 하고, 쓴 물을 단 물로 바꿉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이요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그들의 불평으로 인해 부르짖었을 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인 한 나무를 쓴 물에 던지게 하셔서 단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25-26절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들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라, 순종해라, 그래야 산다, 이런 것을 보면서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나님께서는 지속적으로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물론 앞에서 홍해 때의 일이 있었지만 그들이 깨닫지 못하니까 또다시 쓴 물을 단물로 고쳐 주시면서 알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인도해 줄 것이다. 광야생활 내가 인도해서 가나안까지 들어가게 해 줄 것이다. 너희들은 내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오너라, 순종해라 바로 그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의 능력과 하나님의 은혜는 어떻게 우리에게 임하여 집니까?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할 때입니다. 그 말씀에 순종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불평하고 원망할 때 하나님의 능력은 사라집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어렵고 힘들고 마라와 같은 삶이 계속 될 지라고 모세처럼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응답하시고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우리의 삶과 환경과 모든 것들을 변화시켜 주십니다.

세 번째는 엘림에서의 안식입니다.
마라에서의 일을 뒤로하고 그들은 드디어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엘림에 도착하게 됩니다.
#27절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샘 열둘과 중려 칠십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진을 치니라”
이 곳에 이르니 물 샘이 열 두개나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먹을 수 있는 물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큰 나무도 있어서 그들이 휴식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엘림’은 마라에서 남쪽으로 반나절 거리에 떨어져 있는 안식을 누리는 곳이었습니다. 엘림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그들은 장막을 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엘림은 하나님께서 준비해 둔 곳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해 두신 곳이 엘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로 눈앞에 엘림이 있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마라에서 원망하고 불평했던 것입니다.
자신들의 노력으로 물을 찾았을 때는 겨우 쓴 물 밖에 찾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신 곳은 충분한 물과 평안한 안식과 그들이 장막을 치고 쉴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평안은 어디에서 옵니까?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입니다.
#요한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우리의 인생의 여정 중에 마라는 어디이고 엘림은 어디입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서 있습니까? 마라 옆에 엘림이 있습니다.
우리가 고통스럽고 괴롭고 힘든 삶을 살 때, 주님께서는 바로 우리 앞에 우리가 찾고 소원하는 모든 것과 참 평안을 준비해 두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마라를 사신다고 원망하지 맙시다. 마라는 잠깐 지나는 곳입니다. 영원한 안식처가 아닙. 우리의 안식처는 엘림이고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신 곳입니다. 세상의 고통은 잠깐이고 하나님의 평안은 영원합니다.

우리의 삶을 주님께 맡깁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로 나올 때 아니 그 전부터 자신들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만나도 메추라기도 불기둥과 구름기둥도, 물도 다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셔야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입.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통해서 하십.
저는 앞서 말씀드린 개척교회 목사님의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얼마나 그랬으면 그런 일까지 했을까? 남의 일이 아닙니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든지 마라를 지나올 때가 있습니다. 또 마라를 지내야 엘림이 있기 때문에 누구라도 한번쯤은 마라를 지나오셔야 합니다. 그때 원망하지 말고 순종하며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그리고 마침내 엘림으로 인도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으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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