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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령과 진정 (요 4: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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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Jesus declared, "Believe me, woman, a time is coming when you will worship the Father neither on this mountain nor in Jerusalem.
You Samaritans worship what you do not know; we worship what we do know, for salvation is from the Jews.
Yet a time is coming and has now come when the true worshipers will worship the Father in spirit and truth, for they are the kind of worshipers the Father seeks.
God is spirit, and his worshipers must worship in spirit and in truth."
요한 4:21-24


막대기는 그 자체로 가치가 없습니다.
그 막대기가 어떤 일에 사용되느냐? 그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막대기의 가치평가를 내릴 수가 없습니다.

집 짓는 건축자재로 쓰인다면 귀하겠지만, 사람을 치는 몽둥이라면 아닙니다. 같은 건축자재라도 하나님의 성전은 다른 어떤 목적의 건물보다 귀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막대기는 그 자체가 아니라, 누가 그 막대기를 손에 잡느냐? 이 문제가 막대기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사실이 분명합니다.

사람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됨됨이는 그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학력, 재력, 건강, 이 모두는 그저 ‘옵션’에 불과합니다. 보다 많은 옵션이 있다고 좋은 차가 아니라, 누구를 태워 어디를 가느냐?가 차의 좋고 나쁨을 결정하듯, 사람의 옵션은 그저 옵션입니다.

마귀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들려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죄가 우리에게 남아있다면 마귀는 우리를 잡고 조종합니다.
그러나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마귀와 상관이 없습니다.
죄 사함 받은 우리는 부족하나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역설적이게도, 부족하면 할수록 더 귀합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께 온전한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중요합니다.
예배는 막대기에 불과한 우리 인생을 하나님의 손에 돌려드리는 행위입니다. 참된 예배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통과하실 때, 어떤 여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사마리아 여자는 마침 물을 길러 나온 때였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만나 뵐 수 있었다니! 그것도 일대일로!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 중에 이런 “은혜”를 입은 사람은 그 수가 극히 적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병을 고침 받았습니다. 심지어 죽었던 사람들도 살아났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에 대한 구체적인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가르침을 통하여,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소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거듭난 것입니다.

누구나 예수님을 만나면, 예수님께로부터 “가장 귀한 선물”을 받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만난다면,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고 귀한 것”을 선물 받을 것입니다. 설령 우리 스스로는 무엇이 귀한 것인지를 모른다고 해도, 주님을 만나면 그것이 분명해집니다.

      #1
      예수님을 만나면 깨닫게 되는 것:     
      1. 아하, 내게 소중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2. 내게 결핍되었던 것이 이 문제였구나.
      3. 앞으로는 이것을 위해 살아야겠구나!

그렇다면 오늘 이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으로부터 어떤 은혜를 입게 되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자에게 가장 귀한 교훈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신령과 진정의 예배”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온전한 예배입니다. 

그런데 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도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나에게만 소중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보물’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신령과 진정의 예배는 확실히 그 사마리아 여자에게 가장 필요한 은혜였습니다. 그의 삶을 뒤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예배는 사마리아 동네 사람들의 삶을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팔레스타인 모든 지역을 거쳐 로마제국 전역으로 퍼졌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로 확산되었고, 2천년이 지난 오늘까지 온 세상에 전파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되었습니다.

      #2
      이스라엘=사마리아 여자
      사마리아 여자=그리스도인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사마리아 여자에게 해 주신 말씀을 어디서 우리는 들어본 적 있어 보입니다. 어디서였나요?

애굽에서 노예생활 하던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들을 구원해 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성소를 짓고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예배를 어떻게 드릴 것인가? 이것은 “모세오경”의 핵심입니다. 다른 모든 문제는 하나님께서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3
      무엇을 먹을까?            메추라기와 만나를 주셨습니다.
      무엇을 마실까?            반석에서 물을 내어 주셨습니다.
      무엇을 입을까?            옷이 해어지지 않게 해 주셨습니다.

산상수훈에 주님께서 “염려하지 말라!” 하신 내용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가지시는 가장 큰 관심은 “예배를 어떻게 드릴 것인가?”입니다.
바른 예배를 드리기만 하면, 다른 모든 것은 다 주십니다.

      #3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So do not worry, saying, 'What shall we eat?' or 'What shall we drink?' or 'What shall we wear?' For the pagans run after all these things, and your heavenly Father knows that you need them. But seek first his kingdom and  his righteousness, and all these things will be given to you as well.  Therefore do not worry about tomorrow, for tomorrow will worry about itself. Each day has enough trouble of its own.
      마태 6:31-34

1. 이스라엘을 광야에 이끌어 내 주시고, 만나 주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거룩한 예배드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머지 모두는 다 ‘거저’ 주셨습니다.

2. 사마리아 여자를 만나 주신 예수님께서,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틀림없이 이 여자는 예수님 만나고 나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을 것입니다.
숨어 지내던 처지를 버리고, 동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참된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인간관계는 물론 물질의 모든 것도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따지고 보면, 물질이란 “관계”의 산물 아닙니까? 하나님-인간, 그리고 인간-인간의?

3. 주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를 만나십니다.
우리에게 참된 예배를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십니다. 영적인 만족부터 누리게 해 주십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배우고, 세상에 나아가 전파하는 것은 “바른 예배”입니다.

일생을 돌아보면, 예배의 기쁨을 위해 살아갑니다.
우리 자신을 볼 때, 예배가 가장 기쁩니다.

우리는 천국을 사모합니다.
천국에서는 “예배”가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은혜와 사랑이 넘치는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사모합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영원토록 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흔히 “이순신 장군이 천국에 갔을까?” “그렇게 선하신 분이니까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받아주셨을 거야!” 그렇게 주장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영원토록 드리는 천국예배에서 이순신 장군이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눈물과 감격에 젖을까? 의문입니다.

세상은 고통과 슬픔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예배드리는 사람들은 “이미”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참된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천국의 소망을 품습니다.

우리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지난 주중에 가수요 탤런트였던 “유니”가 자살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는 결손가정 출신입니다. 우울증이 심했다고도 했습니다. 듣기로는 ‘악플’ 때문에 상처를 주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었으나, 신앙이 그의 생명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인기에 집착하고, 사람들의 평판에 좌우되는 삶이라면, 그의 신앙은 약합니다. 신앙의 궁극적인 모습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6장에서 주신 말씀은, “너희가 내 이름으로 살면,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않는다!”입니다. 우리를 험담하는 사람들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누구에게도 나쁜 소리를 듣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좋은 소리만 듣고 살려고 애쓰다 보면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게 되고, 결국 사람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온전한 분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부인 사모님을 인터뷰한 기사가 났습니다.
“목사님은 항상 집에서도 천사와 같으셨겠지요?”
“아닙니다. 그냥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가정은 문제가 없는 가정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에 문제 없는 가정이 어디 있습니까? 천국에 가야 그런 가정을 만납니다. 다만,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가정은 “은혜”가 있는 가정이었습니다. 은혜가 문제를 다 극복하였습니다.

누구나 예배의 기쁨에 사로잡히는 ‘은혜’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약점이 극복됩니다.
은혜가 시련과 문제를 이깁니다.
문제가 있고 없고는 문제가 아닙니다.
은혜가 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명의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예배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가장 깊고 가장 은혜가 넘치는 예배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할아버지를 압니다.
그분은 만나는 사람마다, 그에게 가장 좋은 것을 줍니다.
어떻게 그 사정을 잘 아는지, 놀랍습니다.
사람마다 똑같은 것을 나누어 주시 않습니다.
사람의 사정을 잘 고려합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만나시면 가장 좋은 것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해 주실 가장 좋은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여자는 남편을 많이 두었었지만 만족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남자를 소개해 주셨습니까?
그 여자는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친구를 보내주셨습니까?
틀림없이 그 여자는 경제적으로 쪼들린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돈을 보태주셨습니까?

이 여자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예배”라고 보셨습니다. 그것은 바른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른 예배를 드리는 방법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를 찾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 그것이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가장 잘 해 주신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가정은 그런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떠난 가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늘 함께 계시는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릴 수 있을 때입니다.

신령과 진정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 즉 성령과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 만나기.

예수님을 만난 그 여자는 마을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여자의 말을 듣고 예수님께로 달려 나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그들이 여자에게 한 말을 들어봅시다.

      #4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요한복음 4:42절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결과입니다.

유대 베들레헴에서 “아기로 탄생”하심으로써 “성육신”하신 예수님의 사역으로부터, 유대 온 지역, 그리고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는 “전도의 행진” “전도의 물결”이 이뤄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에 “사마리아 선교”를 “최초로” 시작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하신 주님의 명령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한마디로 “전도”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 봅시다.

      #5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마가복음 1:38

사마리아 여자는 “예배”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그는 혼자 예배를 드리지 않고 세상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소개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님을 뵙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이제 사마리아 그 마을은 “예배를 드리는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의 예배는 무엇입니까?
신령은 하나님의 성령입니다.
진정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영과 말씀. 이 두 가지가 ‘모두’ 있는 예배가 진정한 예배입니다.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찾으십니다.

      #6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Yet a time is coming and has now come when the true worshipers will worship the Father in spirit and truth, for they are the kind of worshipers the Father seeks.
      요 4:23

어떤 사람이 묻습니다. “나 같은 죄인도 예배드릴 자격이 있나요?” “교회 나올 때마다 마음에 부담이 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신 이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7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마가복음 2:17.

우리는 병든 자입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우리가 만일 병이 없고, 죄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해입니다.
그런 오해를 품고 있으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시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병든 사람을 고쳐 주시러 오셨고, 죄인을 회개시켜 용서해 주시러 오셨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려야 할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우리를 불러 거룩하게 하시는 주 예수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거룩한 영적 불만족”에 대해 생각해 보셨습니까?
빌립보서 3:10 이하입니다. 

      #8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I want to know Christ and the power of his resurrection and the fellowship of sharing in his sufferings, becoming like him in his death,
      and so, somehow, to attain to the resurrection from the dead.
      Not that I have already obtained all this, or have already been made perfect, but I press on to take hold of that for which Christ Jesus took hold of me.
      Brothers, I do not consider myself yet to have taken hold of it. But one thing I do: Forgetting what is behind and straining toward what is ahead,
      I press on toward the goal to win the prize for which God has called me heavenward in Christ Jesus.
      All of us who are mature should take such a view of things. And if on some point you think differently, that too God will make clear to you.
      Only let us live up to what we have already attained.
      빌립보서 3:10-16

산상수훈의 8복과 연결하여 생각해 봅니다.

과연 바울은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 예수님의 심정을 그대로 배웠습니다.
그는 로마의 감옥에 갇힌 몸으로 “영적인 갈급함”에 사로잡혔습니다.

나는 배가 고픕니다. 나는 갈급합니다. 나는 가난하며, 나는 목이 마릅니다. 내 모든 가난함과 갈급함 깊은 곳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예수님을 그리워하는 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강렬한 기다림이 있습니다.

말씀을 읽고 또 읽습니다. 만족함으로 “이제 그만 하자. 많이 읽었다!” 하는 심정이 아닙니다. 읽고 또 읽고, 묵상하고 또 묵상해도 ‘불만족’이 가슴에 찹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이런 영적인 불만족에 차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물을 길러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자기에게 영적인 갈급함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주님을 만나고 나서, 그 속 깊은 곳, “영혼의 갈망”을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는 영적인 갈급함에 솔직하게 되었습니다.
영적인 need를 채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9     
      조금만 더 성경 읽고
      조금만 더 기도하자.
      조금만 더 예수님 생각하자.
      조금만 더 사랑하자.
     

남들은 칭찬하고, 남들은 부러워해도, 성도들에게는 이런 “거룩한 불만족”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을 충만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거룩한 불만족이 우리를 죄와 시험에서 건지는 것입니다. 

금문 성도 여러분. 나는 여러분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여러분이 이런 “거룩한 불만족에 사로잡히기를” 간구합니다. 열심히 식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늘 불타오르기를 바랍니다.

의를 위해 주리고
의를 위해 목마르며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불타오르는 성도가 되시기를 빕니다.
그런 성도들이 모여 드리는 예배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입니다.
신령은 하나님의 영이며,
진정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0     
      말씀과 영이 함께 역사하는 예배,
      거룩한 배고픔이,
      거룩한 갈증이,
      거룩한 슬픔이 가득한 예배,
      이런 예배가 진정한 예배입니다.

우리는 선택 받은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온 세상의 빛이 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마리아 여자처럼 전도의 길을 나서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목숨을 바친 믿음의 선배들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새로운 사명을 주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과 찬송을 돌려드립니다.

기도

은혜의 주님. 감사드립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저희들을 살려주시고,
온전한 마음으로, 갈급한 심령으로 살아가게 하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앞으로의 인생은
주님을 위한 헌신의 길이 되게 하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은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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