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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과의 관계(창 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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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의 관계  창세기2:8-14
신년 예배에 저는 금년 한해 우리 신앙인이 꿈꾸는 이상적인 곳 곧 에덴의 축복이 우리들의 가정에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에덴의 축복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에덴에서 시작된 물이 동산을 적셔 네 강으로 흘렀는데 그 강들을 통하여 에덴의 동산이 얼마나 축복받은 곳인가를 알게 되었고, 우리 신풍교회 성도님들도 금년한해 이러한 에덴의 축복이 넘쳤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즉 비손 강을 통해서, 에덴의 동산이 건강한 몸과 정신으로 열심히 땀 흘릴 수 있는 곳이었던 것처럼, 금년 우리 성도들의 삶이 건강한 축복된 삶이되기를 바랬고,
기혼 강을 통해서, 에덴의 동산은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곳이었던 것처럼, 우리 성도들의 각 가정과 삶이 은혜의 삶이되기를 바랬으며,
힛데겔 강을 통해서, 에덴의 동산이 하나님의 능력이 있는 곳으로 어떤 불가능도 능히 정복할 수 있는 곳이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 성도들의 삶에서 찾아오는 예상치 못한 어려운 환경이 닥친다고 할지라도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능력을 힘입으므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축복이 임하기를 바랬으며, 
유브라데 강을 통하여 에덴의 동산이 풍성한 결실이 넘치는 축복의 땅이었던 것처럼, 우리 성도님들의 모든 삶의 현장에 결실이 항상 풍성하기를 간절히 바래는 마음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금년 우리 성도들의 가정에도 이러한 에덴동산이 가지는 축복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이렇게 에덴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할 일이 있습니다.
제가 지난번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에덴이 우리가 살고 있는 것과 여러 가지 환경이 더 나은 것이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곳에서도 우리가 살고 있는 것과 별반 차이 없이 악이 존재하고, 그것으로부터 유혹이 끊임이 없습니다.  여전히 사람의 욕심과 불만족 그리고 분쟁이 존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덴의 동산이 축복의 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는 금년 한해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축복의 열쇠가 되기도 합니다. 

그것은 바로 연결입니다.  기독교의 교회적인 용어로 관계입니다.  에덴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동산에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산을 적시고, 그리고 그것이 네 갈래로 축복의 강이 되어 흘러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축복의 물이 에덴에서 시작하여 동산까지 연결되어 흘러내렸고, 그로 인하여 축복의 강물이 되어서 온 세계로 흘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덴은 장소적인 개념이 아니라, 관계적인 개념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있어야만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축복의 물이 우리의 가정을 적시고, 그리고 세상으로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관건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지므로 축복의 강물이 우리의 삶을 적시고 세상에 축복의 모습으로 나타낼 수 있을까?하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a) 하나님과의 신뢰가 돈독할 때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우정을 쌓아간다든지, 혹은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과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을 믿을 수 없거나, 믿지 못한다고 한다면 올바른 관계가 될 수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떻게 해서 무너졌습니까?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벌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렇게 믿었고 하나님과의 신뢰에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간교하기로 소문난 뱀이 그렇지 않다고 유혹을 합니다.  그 유혹에 그만 하나님과의 신뢰에 금이 가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유혹을 받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그런데 유혹이 오고, 시험이 닥칠 때에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에 금이 갑니다.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리하게 하고 이것이 에덴의 축복에서 멀어지게 되는 이유가 됩니다.
이는 우리의 삶에도 이와 같은 비슷한 경험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는 일마다 때마다 자신들의 뜻대로 잘되고, 원하는대로 잘 응답될 때에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잘  따르는데,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하는 일마다 잘 되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의 대한 신뢰가 무너집니다.  이때에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심각한 위기로 가게 됩니다.
신뢰라는 것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이 신뢰입니다.

시편13편을 보겠습니다.
또한 28장을 보십시다.  왠지 모르게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무엇이 다릅니다.  끝까지 신뢰했다는 것이 다릅니다.
다윗이 참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기에, 때로는 하나님께 탄식하며, 탄원하면서도 시편의 마지막에 보면,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였기에 그는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금년한해 어떠한 환경에도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시므로 하나님과 관계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축복으로 적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거나 지금 못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지 않았나 생각해야 할 줄 압니다.

b) 우리의 삶의 방향이 하나님이 추구하는 것과 같을 때에 관계를 이루어갑니다.
사실 성경을 읽어보다 보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제게도 그러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을 불러놓고 발을 씻기시던 장면입니다.  발을 씻기시던 예수님은 베드로의 차례가 되자 주님과의 가장 가까운 관계를 가졌던 베드로는 스승 앞에 차마 자신의 발을 내 놓을 수 없었으므로 주님께 자신의 발은 씻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때 주님은 만일 이 일을 허락지 않으면 네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했습니다.
왜 발을 씻지 않겠다는데, 주님은 이 일로 인하여 관계까지 들먹이시는가?
요한복음 15:14절에 그 말씀의 해답이 나오는데, 주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내가 명한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고 했습니다.
곧 주님과의 방향이 같을 때에 친구로써의 관계가 형성될 수 있었으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너희도 이와 같아야 상관이 있는 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방향이 같아야 관계가 지속됩니다.  전혀 다른 삶의 목표와 지향하고 추구하는 방향이 달라서는 관계를 지속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한 친구는 동으로 가야하는데, 다른 친구는 서로 간다고 한다면 그 관계는 원만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일을 해야만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주님이 살아오신 삶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주님을 내려 보내셔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떠한 삶을 살아야할 것인가를 모델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삶을 좇아 살므로 하나님이 추구하는 방향과 같으므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시길 바랍니다.

c) 알려는(친밀) 노력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만 간다.
관계는 참으로 소중합니다. 그러나 관계가 참다운 관계로 발전될 수 있기 위하여, 그 관계위에 관계의 대상에 대한 바른 앎이 수반되어야만 합니다. 바른 앎이 결여된 건성의 관계는 차라리 만나지 아니함만 못합니다. 그와 같은 만남은 도움이 되기는커녕 필시 사람의 관계를, 편견과 오해로 해쳐 버리는 까닭입니다. 내가 만난 이를 더 잘 알기 위해 부단히 나를 개방하는 것이 곧 인격이요, 포용력입니다.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주님과의 만남은 이 세상의 그 어떤 만남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분에 대해 바른 앎을 필요로 하지 않는 만남이라면, 그것은 오히려 그분과의 진정한 만남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될 뿐입니다. 우리가 만난 주님을 바르게 그리고 더 잘 알기 위한 애씀, 그것이 곧 그리스도인의 바른 믿음이요, 참된 모습이며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명암을 줍니다.  그런데 그 명암을 꼬깃꼬깃해서 버린다든지, 혹은 “됐거든”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과의 관계가 원만해지지 않습니다.

그럼 하나님과 친밀해 지려면,첫 번째, 하나님을 생각하라!사랑하려면, 사랑한다면 한순간도 놓지 말고 생각해야합니다.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야말로 앉으나 서나 당신생각입니다.  그 생각에서 잠시도 떠나지 않습니다.  잠시 이러면 안된다고 하면서도 어느샌가 그 사람에게 사로잡혀 있습니다.  참으로 친밀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직장에서 상사에게 싫은 소리를 들었다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 말고 그 순간 하나님을 생각해야합니다.  사업에 어려움이 오면,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생각해야합니다.  하나님과 친밀하기만 하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형성되면, 믿음이 생기므로 환경을 극복할 수 있게 됩니다.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가져야하는 것은 바로 온전한 “한 시간(Quality Time)"을 가지는 것입니다. 부부관계에서도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 가기 위하여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되고 헌신된 시간이 필요합니다. 서로를 향한 시간을 규칙적으로 정규적으로 가질 때에 친밀함이 싹이 터갑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의 친밀함의 핵심도 하나님께 온전한 시간을 드리는 것입니다. 다른 목적으로 인하여 나눠지지 않은 시간, 나는 하나님께만 집중하고 하나님도 나에게만 집중하시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 시간을 온전히 내어드리고 그 안에서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해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을 생각하는 시간이 적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만나라!
친밀해지기 위해서는 우리는 먼저 만나야합니다.  만나는 횟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친밀감은 더해집니다.  반대로 만남이 멀어지면 자연히 친밀감도 멀어집니다.  옛말에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멀리 있다 보면 자연이 멀어지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뭐 헤어질 때에는 우리의 우정은 변치말자는 둥 영원히 기억하고 간직하자는 둥 여러 별소리를 다하여도 결국 멀리 있고 얼굴을 보지 못하면, 자연히 멀어지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간혹 너무 바빠서 하나님을 만나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있습니다. 
에펠탑 효과(Eiffel Tower Effect)라는 말이 있습니다. 1889년 3월 31일, 프랑스 파리에서는 프랑스대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에펠탑을 건립했습니다. 그런데 탑이 세워지기 전 건립계획과 설계도가 발표되었을 당시, 파리의 예술가들과 시민들은 탑 건립을 결사적으로 반대했다고 합니다. 시민들은 거대한 철제구조물이 고풍스러운 파리의 분위기를 완전히 망쳐 놓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시인 베들렌은 흉측한 에펠탑이 보기도 싫다면서 에펠탑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고, 모파상은 몽소 공원에 세워진 자신의 동상이 에펠탑을 보지 못하게 등을 돌려 세워놓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또한 에펠탑 철거를 위한 '300인 선언'이 발표되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지금 에펠탑은 천박한 흉물이 아니라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파리의 명물이 되어 있습니다. 세계의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드리는 매력 있는 구조물이 되었습니다. 파리의 시민들은 점점 에펠탑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들은 눈만 뜨면 장대한 탑을 보아야 했고 보다 보니 정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대상이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사람들은 그 대상에 대해 점차 우호적인 반응을 갖게 됩니다. 삶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먼저 관계를 다시한번 살펴보아야 합니다.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우호적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한 경제 연구소에서 한국의 최고 경영자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인지능이 그들을 그 자리에 오르게 한 제 1 요인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지속적으로 만나면 사람 뿐 아니라 하나님도 낯설지 않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지속적인 만남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바라본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일인가?하나님을 바라보아야한다.굳이 하나님의 얼굴을 상상할 필요까지 있겠는가?그냥 하나님을 상상해보라, 하늘을 처다보라, 멀리 보이는 산을 보라, 흘러가는 강을 보라, 여기저기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라, 하나님은 어디에도 계신다.
 
세 번째, 대화하라!하나님과의 친밀감을 가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대화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그 어떠한 활동보다도,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으로 초대받았음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기도는 “우리가 함께하고 있는 것에 대해 하나님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더욱더 친밀감을 더해줍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시 145:18)”

저는 한국의 전통 가요 가운데 가장 슬픈 노래가 바로 갑돌이와 갑순이입니다.
그들은 한 마을에 살았고 누구보다도 사랑했지만, 결혼을 하지 못했습니다.  왜입니까?  말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화를 못했기 때문에 서로 사랑을 했지만 결혼 관계를 유지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가장 흥분되고 설레어야할 첫 날 밤에 달을 보고 울고, 별을 보고 울었습니다.  왜 이들이 관계를 갖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안그런척 했기” 때문에 곧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있으면서도 안그런척 했기 때문에 관계를 갖지 못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흠모하고 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을 숨기고 안그런척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어느 소년이 하나 있었습니다. 엄마가 그 애를 자세히 보니 유치원에 나가기 시작한 이후 하나의 이상한 습관이 생겼습니다. 집에 들어와서 잠 잘 시 간이 되면 신발을 한 짝 벗어서 침대 밑에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엄마가 하루는 그 애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애야! 왜 너는 저녁마다 신발을 한 짝 침대 밑에다가 던지고 자니?" 그 애는 대답하기를 "엄마! 우리 유치원 선생님이 이렇게 하라고 하셨어요. 저녁 마다 신발을 한 짝 침 대 밑에 던지고 그것을 꺼낼 때마다 무릎을 꿇어야 하니까 기도를 하라고요. 그래서 이것을 꺼낼 때마다 무릎을 꿇으니까 기도를 해요." 참 지혜가 있는 선생님이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이 이 야기를 보면서 우리는 몇 가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고 또한 친밀함을 가질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역을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든 사역에 앞서서 가장 추구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가질 수 있는 기도입니다. 겸손하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편안하지만 무례하지 않은 하나님과의 관계, 그 관계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회복되고 하나님의 도구로 쓰일 수가 있게 되는 것은 바로 우리의 기도입니다.

결론)
흔히 농사를 지어보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 여름에 가장 중요한 일은 논에 물대러 가는 일입니다.  저수지나 혹은 산위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자신의 논이나 밭에 물이 잘 들어가는가 보는 것입니다.  왜냐면, 가끔은 흙이 쓸려 내려와서 골을 막을 때도 있고, 또 나뭇가지나 기타 여러 가지 불순물이 그 물골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떨때에는 물 도둑질 하는 사람이 물길을 따른 곳으로 흐르게 하므로 물이 흘러내리지 않게 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농부는 늘 논에 물길을 살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영혼의 물길을 살피는 은혜가 있어야합니다.  혹시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속에 불순물이 끼지는 않았는지, 너무 내가 교만해서 하나님과의 관계의 골이 막혀버리지 않았는지, 혹은 사단의 유혹에 넘어져서 딴 방향으로 물길이 흘러 전혀 적셔지지 않았는지 점검하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한때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에서 빌 클린턴이라는 대통령이 백악관 인턴으로 있던 루윈스킨이라는 여인과의 스캔들로 전 세계를 도덕적인 혼란에 빠뜨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빌은 자신의 윤리적인 잘못을 시인하며 인터뷰를 했는데, “아주 부적절한 관계 (Inappropriate relationship)" 사과 했습니다. 

여러분과 저가 금년 한해에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통해서 축복의 물이 하나님으로부터 끊임없이 흘러 우리의 삶을 적시고, 이로 인해 영육간의 강건한 축복을 누리며, 은혜가 충만한 감사한 삶을 살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는 일마다 결실을 맺게 되는 풍성한 한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뉴욕신풍교회
이종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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