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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 지라! (눅 1:3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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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 지라!
(눅 1:39~56)

시작하는 말

러시아 방방곡곡에 아기 울음소리가 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둘째 출산시 918만원을 정부 장려금으로 지급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러시아 정부가 작년 5월부터 예고했던 “출산 장려금 지급 정책”이 올 들어 본격 실시되면서, 러시아 곳곳에서 아기 출산이 부쩍 늘고 있다고 일간지 이즈베스티야가 26일 보도했습니다.

시베리아의 최대 도시인 인구 150만 명의 “노보시비르스크”의 산부인과들은 정초부터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룬다고 합니다. 7개의 대형 산부인과 병원에서 태어나는 아기는 하루 평균 100명, 바로 작년 12월의 하루 평균 30여명과 비교하면 현격하게 늘었다고 합니다. 시 당국은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 신생아 수가 작년(1만4400명)의 3배 이상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좋은 현상임에 틀림없습니다. (조선일보)

오늘 본문에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는 세례요한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게 나옵니다. 복중에서 뛰노는 오늘은 세례요한의 복중 생활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가랴와 엘리사벳 !

우리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7:16-18절에서 “①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②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③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에덴동산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생명과를 맺을 수 없고, 생명나무가 절대 선악을 알게 하는 선악과를 맺을 수 없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선악과를, 생명나무는 생명과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2:1-2 절에서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고 말했습니다.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러 그 도성의 넓은 거리 한 가운데로 흘러갔습니다. 강 좌우에는 생명나무가 있었고, 생명나무는 12가지 실과를 맺었습니다. 달마다 실과를 맺었습니다. 생명의 하나님,  생명수, 생명강, 생명나무, 생명과일, 생명의 역사가 영원히 일어납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성령이 충만했기 때문에(눅1:41, 67)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고,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에 더욱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우리는 성령 충만을 잘 이해하여야 합니다.

칼빈은 그의 저서 “기독교강요” 제1권 9장에서 “성경을 떠나 직접 계시로 비약하는 광신자들은 경건의 모든 원리를 파괴한다.”라고 말하면서 성령 충만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성령은 “자의로 말하지 않는 영으로서 예수님께서 친히 과거에 말씀하신 것들을 저들의 마음속에 넣어 주시며 암시해 주시는 영인 것이다(요16:13). 그러므로 우리에게 약속된 성령의 임무는 아직 들어보지도 못한 새로운 계시를 만들어 내거나 어떤 새로운 교리 자체를 날조하여 용인된 복음의 교리에서 우리를 떠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복음이 말하는 바로 그 교리를 우리의 마음에 인쳐 주시는 데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유다왕 아하스(Ahaz, B. C. 741-726, 대하28장, 왕하16장)는 예루살렘에서 16년간 통치하면서 조상의 정책에 반항하는 젊고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바알 우상을 들여오고, 몰록숭배를 시작하고, 그의 아들을 불에 태웠습니다. 그 결과 북에서는 앗수르와 이스라엘이, 동에서 에돔이, 서에서 블레셋이 공격했습니다.

이렇게 악한 왕 아하스에서 극히 선한 왕 히스기야 (Hezekiah, B. C.726-797, 대하29-32장, 왕하18-20장)가 태어나 예루살렘에서 29년 동안 통치했습니다. 히스기야는 큰 개혁을 이루었습니다. 아비 아하스가 세운 우상을 파괴했고, 성전을 다시 열고 청소를 했습니다. 하나님을 다시 경배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셔서 번영했고, 앗수르에서 독립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의 예언을 절대 불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개는 좋은 부모 밑에서 좋은 자식이 나오고, 나쁜 부모 밑에서 나쁜 자식이 나올 확률은 굉장히 높습니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 충만한 부모를 택하신 이유는 성령 충만한 하나님의 종, 예수  그리스도의 선구자를 얻고자 하심이었습니다. 성령 충만한 어미에게서 성령 충만한 딸이 나올 것이며, 성령 충만한 아비 밑에서 성령 충만한 아들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자녀들이 성령 충만하기를 바란다면 자신이 먼저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①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느낍니다. ②예배의 삶이 바뀌게 됩니다. ③기도의 삶이 바뀌게 됩니다. ④말씀의 삶이 바뀝니다. ⑤죄에 대하여 민감해 집니다. ⑥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 나타납니다(갈5:22-23).

모태에서 성령 충만한 세례요한 !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에 성령 충만하지 않은 자들을 쓰시는 법이 없으십니다. 구약을 살펴보면은 광야의 지도자들, 성막을 섬기는 자들, 가나안의 사사들, 열왕시대의 예언자들은 전부가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자들이었습니다.

메시아의 선구자는 그 어느 직분 보다 더 요긴한 직분이었습니다. 성령 충만 없이는 절대 선구자의 역할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례요한을 모태에서부터 성령 충만으로 무장시키셨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사가랴에게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눅1:15-16)고 말했습니다.

태아는 모태에서 할 짓은 다 합니다. 숨쉬고, 하품하고, 잠자고, 놀고, 먹고 마시고, 꿈꾸고, 생각하고, 듣고, 울고 웃고 합니다. 감정적인 표현을 다하고 있습니다.

생리적인 생활을 한다면 영적인 생활도 합니다. 부모를 통해 성령의 충만을 받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는 다는 것은 성령에 점령을 당한 다는 겁니다. 모태에서 성령에 충만하여 태아가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성령에 충만하여 자라게 하는 겁니다.

태아는 모체가 건강하면 건강하게 자랍니다. 모체가 즐거우면 즐겁습니다. 모체가 슬프면 슬픕니다. 모체가 괴로우면 괴롭습니다. 모체가 우울하면 우울합니다.

모체가 기도하면 함께 기도합니다. 모체가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의 말씀의 영향을 받습니다. 모체가 찬송을 부르면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모체가 성령 충만하면 함께 성령의 충만함을 받습니다.

복중에서 아이가 기쁨으로 뛰노는지라 !

태아는 어미의 복중에서 어미와 한 몸 되어 태아가 어미 안에, 어미가 태아 안에서 생활합니다. 조그마한 궁궐 안에서 상천하지의 유아독존으로 생활합니다.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고, 누구를 지배하지도 않고 10달 동안 생활합니다. 어쩌면 천국의 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태아인 세례요한이 6개월 되던 어느 날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여 자기 집을 방문했습니다. 엉특한 세례요한, 성령이  충만한 세례요한은 마리아의 태중의 아이를 알아보았습니다. 그 아이는 바로 인류가 기다리던 메시아 즉 그리스도라는 것을 성령의 지혜로 알아보았습니다.

누가복음 1:41절에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고 했습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세례요한은 복중에서부터 메시아 즉 예수 그리스도만을 기뻐했습니다.  복중에서 요한은 자기의 주군을 알아 보았습니다. 자기가 모셔야 할 분임을 알아보았습니다. 즐거워서 뛰놀았습니다. 엘리사벳은 신령했기 때문에 세례요한의 움직임을 알아보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여자가 낳은 자 중 가장 큰 자는 복중에서부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여성들이 알아두어야 할 말씀입니다. 세상의 모든 어미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세상의 모든 산모들이 생각해 두어야 할 말씀입니다.

끝맺는 말

예수 그리스도의 선구자는 태중에서부터 자기가 모셔야 할 메시아를 알아보고 기뻐했습니다.  우리가 바라기는 세례요한이 엄마들의 태중에서 쑥쑥 자라주어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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