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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는 내것이라 (사 4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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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물체는 고유의 진동주파수를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외부로부터 전달되는 특정 주파수에 진동 반응을 보입니다. 이 진동 현상을 우리는 공명이라고 부릅니다. 꼭 같은 소리굽쇠를 나란히 세워놓고 한 소리굽쇠를 때리면 잠시 후 다른 소리굽쇠도 덩달아 울리게 됩니다. 때린 소리굽쇠를 통해 전달되어 나가는 주파수가 다른 소리굽쇠의 고유 진동주파수와 일치하기 때문에 발생한 공명 현상입니다.

그런데 어떤 물체가 이 공명 주파수로 진동할 때는 진폭이 급상승하여 가공할만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1940년 7월 1일에 개통된 미국 워싱톤 주의 타코마 협교가 불과 4개월만에 붕괴되는 사고가 터졌습니다. 이 사고의 원인은 놀랍게도 불어온 가벼운 돌풍이었습니다. 돌풍의 주파수가 우연히도 다리가 갖고 있는 고유의 진동 주파수와 일치하는 바람에 진폭이 점점 커졌고, 끝내 다리는 엿가락처럼 휘어지다가 무너진 것입니다. 이 사고는 공명현상으로 생긴 자연재해로 유명해졌습니다.

우리는 이 원리를 영적 세계에 적용해보고자 합니다. 만일 하나님 마음에 우리 생애가 그리고 우리 교회의 사역이 공명해간다면, 다시 말해 하나님의 주파수에 맞춰진 생을 살고, 사역을 감당한다면, 하나님의 최대 영적 에너지가 우리 각자와 우리 교회를 통해 이 세상에 방출될 것입니다.

여러분! 질문하고 싶습니다. 우리들은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떤 처지에도 불구하고 솟아나는 구원의 감사와 감격이 지금 우리들에게 조금이라도 남아 있습니까? 어떤 조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 때문에 터져 나오는 희열이 지금 우리들에게 조금이라도 느껴집니까? 목숨을 바쳐서라도 감당하고 싶은 사명감이 지금 우리들에게 조그맣게라도 타오르고 있습니까?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인데, 단지 행복하고 좋기만한 인생이나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께 붙들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위대한 생애와 교회를 이루려는 소망이 지금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까? 그리고 지금 우리들은 세상을 변화시켜내는 삶을 살고 있다고 과연 말할 수 있습니까? 한마디로 지금 우리들은 하나님과 공명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까? 만일 아니라면 오늘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셔야 합니다.

공명된 삶을 위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첫 번째 사실은 1.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언가 말씀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1절) “지금 말씀하시느니라.”지금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숭배하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지금 말씀해오고 계십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인간이 불순종하기 시작했다고 해서 이 세상과 인간을 내동댕이쳐 놓고 수수방관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죄인 된 우리에게 다가와서 지금도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더 나아가 반드시 성취해 가실 하나님의 꿈과 비전을 지금도 들려주길 원하십니다. (히 1:1-2)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인간 전체 역사에 대해서도 그러하지만 우리 개개인의 생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과 교제에 힘쓰는 사람들이 복 있다고 가르칩니다. 시 1:2에서는 복 있는 자들은“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라고 하였고, 잠 8:34에서는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가 복이 있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공명된 삶을 위해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알아차리는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사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교제를 통해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짐작하고 추측만할 때 얼마나 많은 오해가 싹트는지 모릅니다. 개인적으로 그리 친하지 않았던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쳐다보는데 턱의 각도가 사람을 참 불편하게 만듭니다. 거만하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친해지고 나서 자연스런 기회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눈이 워낙 바빠서 쓰고 있는 안경의 렌즈의 아래 부분으로 사람을 쳐다 보아야 더 잘 보이기 때문에 습관이 되어버렸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제가 잘못 판단해왔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은 채, 거만한 사람이라고 속단하였던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저의 잘못된 판단을 경솔하게 말하지 않았던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마음에 친숙해지고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확인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최소한의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의 마음을 정하실 것을 도전하고 싶습니다. 하루 중 언제 얼마정도 어떻게 주님과 교제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계획 세우시길 바랍니다. 구체적인 계획 없이 구체적인 실천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공명된 삶의 기초요 출발점입니다.

이제 주님께 공명되길 원하는 우리 모두에게 말씀해주시길 원하시는 핵심 내용은 2. 주님께서는 죄로 인해 심판 가운데 있는 우리들을 여전히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정도로 사랑하시는가 하면, 지명하여 불러내고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사랑하십니다. 미국 유학중에 존경하는 은사께서 집회 인도 차, 제가 살던 곳을 방문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집회가 끝나고 다과를 나누는 시간에 교계 어르신들이 은사님을 에워싸고 덕담을 주고받았습니다. 저는 멀찌감치 서서 은사님을 바라보면서 다과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새 제 옆에 오셔서, 투박한 사투리로 “이 목사 잘 지냈나?”말씀하시는 거 아닙니까? 사람들 틈사이로 저를 발견하고 일부러 찾아오셔서 제 이름 불러가며 안부를 물어 오시는 은사님! 제가 존경하는 은사님께 저는 수많은 사람들 중의 단지 한사람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특별히 기억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젊은이들 표현으로 감동 먹었습니다. 전능하시고 위대하시고 광대하신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의 이름을 불러가며 구원하셨습니다! 어찌 감격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 각자의 이름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또한 우리가 불쌍하기 때문에 마지못해 자비를 베풀어주시는 정도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을 귀하게 여기시면서 사랑하십니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4절)”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을 억지로 사랑하겠습니까?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자녀입니까? 하물며 하늘에 계신 우리들의 천부께서 얼마나 우리를 소중히 여기시는지 모릅니다. 하여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 아끼지 않고 내어주시며 우리를 구원하신 것 아닙니까?

이 때문에 우리가 환난을 만나도 책임져 주십니다. “내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않을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2절)”인생 길에 어찌 환난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환난이 밀려와서 약간의 고통이 있다할 찌라도 그것 때문에 망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보호해주십니다. 여러분 기억하시지요?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아멘!

끝으로 하나님께서는 3. 하나님께 공명된 삶을 살기 원하는 우리 모두를 영혼 구속하는 성역에 동역자로 세워주십니다. 7절“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하나님은 일하기 원하십니다. 이 땅을 창조하신 다음, 어그러진 세계를 방치하는 분이 아닙니다. 영혼들에게 새 생명을 주실 뿐 아니라, 자유와 자활의 길을 열어주십니다. 직접 역사하실 수도 있지만, 대개는 하나님께 공명된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길 기뻐하십니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엘리야, 그리고 12제자 등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부족하다시면서 일꾼을 찾고 계십니다. 먼저 받은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뿐 아니라, 세상에 붙은 미미한 욕심을 버리고 자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물질까지 기꺼이 희생하며, 주님께 거룩한 산제사로 드릴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위대한 일이 우리의 일생을 통해 이루어져 가는 것을 목도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사명을 감당하기로 결단한 자가 기억할 주님의 음성은 5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입니다. 인간의 유능성과 탁월성은 사실 한계가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과 어찌 비하겠습니까? 내가 얼마나 뛰어나는 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고 계시는가가 결정적입니다. 비록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비천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우리들은 위대하게 쓰임 받는 위대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만 함께 해주실 하나님을 겸손히 의지하면서 최선을 다해 충성해가면 결과와 열매는 주님께서 책임지실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공명된 삶을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말씀해 오시는 하나님께 귀를 여십시다. 눈을 열어 그의 행하심을 목격하도록 깨어 있으십시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힘써 아십시다. 아침마다 날마다 묵상하고 확신하십시다. 끝으로 영혼구원, 자활, 갱생의 성역에 자신을 조금이라도 희생하십시다. 그리할 때, 우리의 생애는 하나님께 공명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위대한 영적 에너지가 방출되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이장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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