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인정받는 지도자가 되라! (행 6:1-6)

  • 잡초 잡초
  • 231
  • 0

첨부 1


인정받는 지도자가 되라!
사도행전 6:1-6

오늘도 풍성한 은혜를 사모하면서 주님의 전을 찾아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하늘의 풍성한 은혜로 능력 있는 삶을 살겠다는 거룩한 마음을 품으십시오.  우리의 인생은 일회적이고 일방적입니다.  지나온 인생을 다시 돌이킬 수 없고, 다시 살아줄 수도 없습니다.  그런 반면에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손으로 빗으시고 만드신 너무 너무 존귀한 존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짧은 인생 여정을 비천하고 비굴하게 살기에는 너무 귀중한 존재들입니다.  시간을 의미 없이 허송세월 보내기에는 너무 아까운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하늘의 능력으로 힘차게 일어나 도전과 선택의 크고 놀라운 꿈을 꾸십시오.  도전하는 사람에게 세계가 열립니다.  도전하는 민족에게 세계가 열립니다.  기억하십시오.  도전하지 않는 사람은 취할 것도 없습니다.  도전하지 않는 민족은 역사 속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성경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은 인류 역사 이래로 특별한 유형의 사람을 계속해서 찾고 계십니다.  사람들이 아니라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집단이 아니라 개인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의 역사 충족을 위해서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를 찾으십니다.  그의 두드러진 결점과 인간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다고 인정되면 그를 갑자기 들어서 사용하십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고 민족과 나라를 일으키는 일에 지도자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도자를 통해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꿈을 꾸어야 합니다.  비전을 품으셔야 합니다.
'이제 이후로 나는 사람을 구원하고 이 땅을 일으키는 일에 지도자가 되리라!'

성경에 보면, 그가 지도자로 세움을 받고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았던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과 함께 했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39장 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요셉이 애굽의 노예라고 하는 험난한 인생 길에서 애굽의 총리대신이 될 수 있었고, 존귀한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의 인생 길에 동행하시고 인도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과 함께 했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세우셔서 가정을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굶주림과 기근과 상처와 분열로 무너져가던 가문을 일으키게 하셨습니다.  한 시대에 한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나는 일평생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리라!"는 믿음의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살겠다는 자기 선언을 하시기 바랍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자, 그는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자, 그의 가정은 반드시 하늘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자, 그를 통해서 그의 가문은 믿음의 가문으로 이름을 떨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내가 그렇게 선언을 하고 꿈을 꾼다고 해서 모든 인생이 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는 언제나 조건적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세상의 어떤 일들보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일을 먼저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십니다.  존귀한 자로 나를 세워주십니다.  나의 가는 길을 형통하게 해 주십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것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서는 관심이 바뀌어야 합니다.  세속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이제는 거룩한 것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세상적인 것에서 영적인 것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나 자신에 대한 것에서 하나님과 교회를 위한 것으로 관심의 대상이 바뀌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관심의 대상이 바뀌지 않고서는 절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하늘의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은 어느 시대나 어느 때나 여호와의 신에 감동된 사람을 찾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신에 감동된 사람이 이 땅을 변화시키고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여호와의 신에 감동된 그가 가정을 일으켰습니다.  가문을 일으켰습니다.  민족을 일으켰습니다.  그가 가는 곳에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감동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들의 삶 속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간혹 보면, 내가 사람들을 감동시키겠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자신을 보면 바짝 메마른 장작나무와 같습니다.  그저 남에게 잘 보이고자 거짓의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마치 어떤 의무감에 잡힌 것처럼 선을 행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자신에게는 어떤 감동과 감화도 없습니다.  거룩한 하늘의 감정이 메말라버렸습니다.  이런 사람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내가 먼저 하늘의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내가 먼저 여호와의 신에 감동되어야 합니다.  시간마다 때마다 성령의 권능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성령에 감동되어 적극적인 자기 표현이 일어나야 합니다.  내 영혼 깊은 곳에서 성령의 생수의 강물이 철철 넘쳐흘러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그 믿음의 증거들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주의 성령이 임하시면 포로된 자가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눈먼 자가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눌린 자들이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축복을 받는 길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 중에는 세 가지 부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 믿는 것이 점점 재미있어지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다음은 예수를 믿는 은혜의 생활이 점점 퇴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믿음이 좋아졌다 나빠졌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예수를 믿는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감격이 되고 은혜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계신 가나 혼인 잔치의 포도주는 나중이 더 좋아졌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도 처음에는 그저 그런 것 같아도 점점 더 좋아져야 합니다.  예수 안에서의 삶이 점점 더 풍성한 하늘의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아버지의 집에 오신 여러분, 하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십시오.  나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누리십시오.

사도행전에 나오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그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나음을 받은 증거가 무엇입니까?  먼저 그는 하나님의 전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집에 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함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다.  내 안에 역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세상 속에서 시위하십시다.  내 심령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십시다.

지금은 죄악으로 가득한 이 땅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더 많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나사렛 예수 이름의 권세와 성령의 능력으로 이 땅을 뒤덮고 있는 어둠의 세력들을 몰아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어느 시대나 어느 역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나라를 바로 잡았다고 하는 일은 절대로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은 고난을 만나게 되면 그의 신앙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그의 인간됨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일거리를 보게 되면 일꾼됨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들 중에는 일들을 보고서 그 일이 내가 감당해야 할 것으로 알고 그 일을 사명으로 붙잡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일이 부담스러워서 물끄러미 뒤로 물러나 구경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들 앞에서 구경꾼이나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하는 사명자의 꿈을 꾸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시작하십시오.  단순한 꿈보다는 그 일을 실행에 옮기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것이 내가 하나님 앞에서 복을 받는 길입니다.

내가 언양 영신교회의 집사가 되고, 교인이 되었다고 하는 소속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참여입니다.  소속감에 만족하지 말고 그 일에 참여하십시오.  참여가 기적을 낳습니다.  단순히 머리로만 알아 가는 믿음보다는 그 믿음을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시간마다 증거하는 행동으로 옮기시기 바랍니다.  행동으로 표현하십시오.  차이점을 비판하지 말고, 내가 가는 길에 남과 다른 차이점을 행동으로 보여 주십시오.  주님의 일 앞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고유 영역이 있기 위해서 몸부림치십시오.  이것이 충성된 주님의 일꾼이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보면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일꾼을 세웠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도 일꾼을 세우려고 합니다.  교회가 일꾼을 세우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 분명히 축복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일꾼은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도 불행입니다.  잘 세워진 일꾼이 가정을 세우고, 교회 부흥의 밑거름이 됩니다.  그러나 잘못 세워진 일꾼은 가정과 교회를 무너뜨리는 가라지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인 저는 오늘 세워지는 일꾼들이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 훌륭하고 신실한 주님의 일꾼들이 되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착하고 충성된 일꾼으로 세워지기를 축복합니다.  동일하게 여러분 모두가 주님 앞에서 착하고 충성된 일꾼으로 세워지기를 축복합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일꾼을 세웠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사도들이 보다 원활하게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땅의 교회가 일꾼을 세우는 것은 목사들이 보다 목회를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입니다.

목회는 목사가 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일꾼으로 세움을 받은 여러분들은 목사가 보다 원활하게 목회를 할 수 있도록 도우셔야 합니다.  목사는 설교와 기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일꾼된 여러분은 전도와 봉사와 재정적인 부문에 전적으로 헌신하고 책임을 감당해 주셔야 합니다.  목회자들이 교회 행정이나 봉사하는 일에 시간을 다 보내면 말씀과 기도하는 일에는 소홀히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결국에는 성도 여러분들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부흥은 목회자들로 하여금 기도하는데 시간을 쓰게 해야 합니다.  목회자들로 하여금 성경을 연구하는데 시간을 쓰게 해야 합니다.  설교하는데 시간을 쓰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방법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교회 성장을 위해서 모두가 지켜야 할 교회의 질서입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교회의 질서도 무너집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교회의 성장은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에서 주님께 쓰임 받는 일꾼의 자격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참되고 충성된 일꾼은 세움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세워 가는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주 앞에서 참되고 충성된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노력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부단한 자기 성찰과 자기 노력이 없는 일꾼은 게으르고 나태했던 한 달란트 받은 종과 같이 주 앞에서 책망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오늘 세움을 받으려는 사람들이나, 우리 모두에게 지도자로서의 갖추어야 할 자격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먼저는,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사회적인 자격입니다.

과거에는 교회의 집사, 장로라고 하면 사회에서는 존경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거들떠보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교회의 지도자가 되려는 믿음의 사람들은 사회로부터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자신이 교회 안에서 공격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비난받는 상태에 있지도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을 가리켜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빛은 어둠에서는 밝히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빛된 하나님의 사람은 어두운 세상 속에 감추어진 사람이 아니라 밝히 드러난 사람들입니다.  더구나 지도자는 더더욱 드러난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더 쉽게 평가의 대상이 됩니다.  판단의 기준이 됩니다.  저들은 우리의 말과 행동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도자는 상대방에게 자기를 깎아 내리기 위해 헐뜯으려는 기회를 마련해 주어서는 안됩니다.  지도자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고, 헐뜯음의 기회를 만들어 준다면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른 사람들의 비난과 헐뜯음에 마음 아파하지 말고, 할 수만 있으면 선한 증거를 더 많이 얻으십시오.  세상 사람이 부러워하는 고상한 사고와 성품을 시위할 수 있어야 됩니다.

두 번째로,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도덕적인 자격입니다.

영적 지도자는 도덕적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 시대 속에서 제일 높은 도덕율을 가지고 부끄러움 없이 살아야 합니다.  지도자는 자신의 공적인 증언에 손상을 끼치거나 그 인격을 손상시킬 문제에 스스로 빠져서는 안됩니다.  높게 살아야 멀리 볼 수 있습니다.  깨끗하게 살아야 마음이 비칩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가지고 강력한 자기 도덕성의 회복이 있어야 됩니다.  분명한 예의범절과 에티켓이 있어야 됩니다.  예의범절은 남하고의 문제이지만 에티켓은 자기와의 문제입니다.  자기 관리를 하는 것입니다.  자기 내면의 관리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인간미를 상실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보고서 맛과 멋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맛을 보게 해야 합니다.

세 번째,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정신적인 자격입니다.

지도자는 언제나 건전한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매일 매일 자기 훈련을 통하여 내적으로 근신하는 성품이 나타나야 합니다.  이성과 지성과 감성의 굴레가 조화되어 나타나야 합니다.  예의 바르며 존경할만 해야 합니다.  그 삶에 언제나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지도자가 정신이 왜곡되거나 편협하면 안됩니다.  지도자가 정신이 병들면 안됩니다.

네 번째,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가정에서의 자격입니다.

영적 지도자는 자기 가정을 잘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그의 가정이 어수선할 뿐 아니라 자기 자녀들도 다스리지 못한다면 가치 있고 후한 대접을 베풀고자 하는 그의 능력이 크게 제한될 것입니다.  다른 가정들에게 끼치는 그의 영향력도 크게 감소하게 될 것입니다.

지도자는 모름지기 자기 가정에서부터 먼저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가정에서의 영적인 권위와 지도력이 행사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온 가정이 이를 위해 특별한 희생과 화합을 이루어야 합니다.

다섯 번째,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인간적인 자격입니다.

오늘 한국 교회의 교인들이 세상 속에 비추어진 아주 잘못된 모습은 예수를 믿는 연수가 길어지면서 점점 말쟁이가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쟁이가 되지 말고, 행동쟁이가 되십시오.  신앙은 앎의 문제가 아니라 누림의 문제입니다.  신앙은 논쟁이 아닙니다.  올바른 신앙은 논쟁의 문제가 아니라 해방의 문제입니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종교인이 큰 일을 한 적은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끝없이 교리적인 논쟁만을 일으켰습니다.  영적인 사람만이 하나님 역사의 맨 앞에 서서 그 많은 고통과 고난을 당당하게 맞서는 주역을 감당했습니다.

오늘 여러분도 영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끝없이 말장난만 일삼는 종교인이 아니라 성령으로 거듭난 영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얄팍한 지식을 자랑하지 말고,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간증하십시오.

영적 지도자는 논쟁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영적 지도자는 논쟁자가 아니라 영적 재치와 수완을 지닌 분별력을 지닌 사람입니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자가 훌륭한 지도자가 아닙니다.  세상은 아는 것이 없어도 인간적인 면이 있는 따뜻한 지도자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도자는 관용과 인정이 있어야 합니다.  너무 민감하거나 전혀 관용이 없이 완전주의만 주장하거나 불필요한 자기 변명에 급급한 사람은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완전하게 일을 하려다가 아무 것도 못하는 것보다는 좀 부족하더라도 일을 하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성숙에 대한 자격입니다.

영적 성숙이란 좋은 지도자의 필수 자격증입니다.  영적 성숙이란 타인에 반응의 정도입니다.  따라서 영적으로 성숙한 지도자는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결코 감정으로 반응하지 마십시오.  감정으로 반응하는 사람은 아직도 초등학문에 머물러 있는 사람입니다.  유아적인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반응하십시오.  소망으로 반응하십시오.  사랑으로 반응하십시오.  그가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요, 시대가 필요로 하는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성숙은 영적인 도량과 견해의 넓음을 나타냅니다.  사도 바울은 옹고집의 유대 종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한 넓은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수준 높은 요건들을 갖추어야 하는데, 신중하고 자신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며, 검소하고 고생과 고난을 견딜 줄 알아야 합니다.  부지런하고 성실해야 합니다.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한 가정의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언어의 표현력이 좋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성령이 충만하고 지혜로우며 평판이 좋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나쁜 버릇을 고쳐야 합니다.  나의 것을 버리고 주님의 것으로 채워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처럼 자기 발견을 통하여 세상 의식이나 자기 의식에서 하나님 의식으로 처리된 자아 모습을 나타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인격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 나타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주님 앞에서 세움을 받으려는 여러분, 그리고 사랑하는 영신 가족 여러분, 교회의 지도자는 세상의 지도자와는 달라야 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자기 역할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의 지도자는 높은 자리를 찾지만 교회의 지도자는 낮은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세상의 지도자는 섬김을 받으려 하지만, 교회의 지도자는 섬겨야 합니다.  세상의 지도자는 자신의 지식과 힘으로 일을 하려고 하지만, 그러나 교회의 지도자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주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자기 자리를 분명히 하십시오.  오늘 이 땅의 소수의 교회 평신도 지도자들이 목회자의 자리를 넘보려고 하다가 교회가 분열되는 현상들을 아픔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목회자들이 보다 더 은혜 가운데 목회를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분들입니다.  결코 목회자를 가르치려고 하거나 목회의 방해꾼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목사와 같은 말, 같은 뜻, 같은 마음을 품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붙잡고 달려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여러분,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에 붙잡히십시오.  그래서 제발 종교인이 되지 말고, 하나님의 권능에 붙잡힌 영적인 사람이 되어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오주철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