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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현실적 자아를 극복하는 믿음 (막 10:4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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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부부가 함께 서커스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멋진 몸매의 여자가 아슬아슬한 옷을 입고 등장하더니 공중 그네에 매달려 연기를 시작합니다. 순간 아내는 감탄하는 목소리로“어머, 아래 아무것도 없네.”합니다. 이 말을 들은 남편이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여자를 한참 살피더니 실망한 목소리로 부인에게“에이 아니잖아! 아래 살색 속옷을 입었잖아.”하더랍니다. 부인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그네 아래 그물이 없다는 얘긴데 당신 무슨 생각을 한 거야!”하며 황당해 했다는 이야깁니다.

인간은 참 이해하기 힘든 동물입니다. 세상이 복잡하다 합니다만 그 세상을 복잡하게 만드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복잡한 구조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복잡한 세상을 만들어갑니다. 식당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 가만히 연구해보면 식사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차원에서도 복잡한 구조를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 감정주도(感情主導)의 인간유형(人間類型)입니다. 이 사람은 음식보다 음식을 가져온 사람의 얼굴을 중시합니다. 그 종업원의 얼굴에 웃음이 있느냐 없느냐, 음식을 가져 온 사람의 기분이 좋으냐 나쁘냐에 따라서 입맛을 좌우하고 심지어 소화가 되게도 하고 안 되게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쁜 종업원이 있고 친절한 집이면 무조건 음식 맛과는 상관없이 갑니다. 어지간히 감상적이고 까다롭습니다.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으면 되는데 그릇이 어떻고 음식 가져오는 사람의 분위기가 이 사람의 입맛을 좌우합니다.

둘째, 감각주도(感覺主導)의 인간유형(人間類型)입니다. 이런 사람은 음식을 누가 주느냐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입니다. 다만 음식 맛이 어떤지, 영양가가 어떤지, 이런 것만을 생각하고 먹는 사람입니다. 미식가(美食家)입니다. 뚝배기 보다 장맛입니다. 아무리 허물어져 가는 움막집이라 하더라도 오직 자기 입맛에 배인 대로 그 맛 때문에 늘 그곳을 찾아듭니다.

셋째 유형의 사람은 음식 맛, 영양가, 분위기 다 상관이 없습니다. 살아야 하겠으니 먹어야 하겠고 일해야 하겠으니 먹어야 하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음식이 좋든 나쁘든 상관없습니다. 주는 대로 먹습니다. 쓰면 약으로 알고 먹고, 달면 달구나 하면서 먹는 것이지 까다롭게 입맛을 가리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을 생계 주도적 인간형(生計 主導的 人間型)이라고 합니다.
먹는 것보다는 사는 것 자체에 더 큰 의미를 두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먹는 것에서부터 이렇게 사람이 복잡한 동물입니다. 이게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실 복잡하고 정교한 부속품이 많이 든 기계일수록 비싸고 중요한 것이거든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복잡한 만큼 귀한 존재가 사람입니다. 귀한 존재가 아니라면 아무것이나 먹고 대충 살다가 때가 되면 죽는 그런 동물에 지나지 않겠지만 귀한 존재이기에 그만큼 가치를 두고 사는 것이거든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간이 소중한 것은 하나님의 작품 중에 가장 뛰어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뛰어난 작품인가 보시겠습니까? 보통 사람이 하루 평균 2,500칼로리의 열을 발산하는데 이 열이면 하루에 25잔의 커피를 끓일 수 있는 열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사람의 뇌에는 약 천 만개의 신경세포가 있습니다. 이 신경세포는 0.07볼트의 전기를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눈은 약 30만 개의 회로로 대뇌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눈은 세계에서 가장 비싸고 좋다고 하는 카메라 보다 훨씬 훌륭한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피아노 한 대에는 여든 여덟 개의 키보드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귀에는 천오백 개의 키보드가 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사람 몸의 중심 기구는 심장입니다. 이 심장이 무슨 일을 합니까? 계속 우리 몸 전체에 피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몸 안에 있는 혈관을 다 연결하면 약 1.6km가 넘는데,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심장이 하루 평균 십만 번 이상 펌프질을 합니다. <인공지능>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만 기계로는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인간이란 이렇게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모든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해야만 온전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어느 것 하나라도 고장이 나거나 병이 생기면 세상 살아가기가 여간 불편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인간은 영적인 동물이라고 하는데 영적인 동물이란 생각 할 줄 알고, 그 생각을 준 영원한 존재가 누구인가를 인식 할 줄 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이라고 하는 완벽한 작품의 주인이 누군지를 아는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입니다.

유명한 철학자인[마르틴 부버]는<나와 너>라는 책에서 현대인의 인간관계를 세 가지로 진단했습니다. 하나는<그것과 그것의 관계>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오늘날 사람들은 마치 물건처럼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고 차버립니다. 심지어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생명이 없는 무인격의 관계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나와 깊은 관계가 없는 단지<그것>에 지날 뿐이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관계로<나와 그것의 관계>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 말은 상대방이 나를 물건처럼 이용하고 버린다 해도 나는 상대방을 끝까지 인격으로 대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단계로 발전해야 할 관계가<나와 너의 관계>라고 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인격적으로 대할 때 올바른 인간관계가 형성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덧붙였습니다.“내가 당신을 인격으로 믿어 주고 당신이 나를 인격으로 믿어 주어도 우리들 사이에는 언제나 그 인격적인 관계가 깨질 수 있는 긴장이 있는데 이것은 인간성의 연약함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너 사이에는 언제나 이 인간관계를 중매하는 하나의 촉매자가 필요하다.”라고 말하면서 부버는 그 촉매자를<영원자 너>라고 했는데 바로 그<영원자 너>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이게 정말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인간과 인간으로 부딪칠 때 우리는 상대방에게서 얼마나 많은 단점을 발견합니까? 그러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바라본 내 아내, 또 그리스도를 통해서 바라본 내 남편, 그리스도를 통해 본 내 옆 사람은 어떻습니까?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함께 만날 때,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무릎을 꿇을 때에 비로소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는 놀라운 관계가 가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문제는 이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무엇일까요? 바로<믿음>입니다. 믿음이 이 모든 것을 수용하게 했습니다. 믿음이 복잡함을 넘어서서 하나님 앞의 단순한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 믿음이 우리를 살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 더욱 우리의 삶에 빛나기 위해서는 단회 적인 감격으로 끝나버려서는 안 되고 지속적이고 상승적(上昇的)이어야 합니다. 즉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야 되고, 실패의 자리에 머무르기보다는 승리의 자리로 나아가는 열정적인 믿음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런 믿음의 한 사람을 성경을 통해서 만납니다. 우리 같이 다소 복잡하긴 하지만 그러나 정밀한 귀한 존재인 인간으로서의 신체적 구조의 혜택을 잃어버리고 산 지 오래 된 사람입니다. 성경은 그를“거지맹인 바디매오”라고 소개합니다. 하지만 그는 오늘 우리에게 믿음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맹인이라는 현실적인 자아를 극복하는 그의 대단한 믿음을 우리는 배워야합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한번도 본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니 볼 수가 없지요. 그러나 소문만 듣고도 그 능력을 믿으며 그 동안 예수님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자라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오늘까지 기다린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자 자기의 겉옷을 벗어 던지고 나갔습니다. 여기 이 겉옷이란 바디매오에게 지금까지 너무나 중요한 재산이었습니다. 밤낮의 기온차가 심한 이스라엘에서는 낮에는 외투로 사용하지만 밤에는 기온이 뚝 떨어지기 때문에 이불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니까 맹인이요 더군다나 거지인 바디매오에게 겉옷 외에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도 이 겉옷을 벗어 던졌다는 장면에서 그의 믿음이 얼마나 확신에 찬 믿음인가를 보게 합니다. 이제 그렇게 소원하던 예수님을 만났으니 눈을 뜨게 될 것이고 눈만 뜨면 냄새나는 거지 유니폼인 겉옷은 필요 없다는 현실적 자아를 극복하는 확신에 찬 바디매오의 믿음이 어떤 믿음인가를 생각해 봐야합니다.

먼저, 현실 속에서 자기의 가능성을 극대화 할 줄 아는 믿음이 지혜입니다. 오늘 바디매오는<맹인>이라는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즉, 볼 수 없다는 것 이외의 자기가 가진 가능성을 다 동원하여 예수님을 향합니다. 우리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있는 것은 소중히 여기지 않고 없는 것만 달라고 합니다.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 없는 것투성입니다. 그리고는 가진 것까지도 그 능력을 부인합니다.“나는 안 돼”.“내가 할 수 있는 것 아무것도 없어”그것이 잘못된 우리의 믿음입니다. 물론 우리는 없는 것도 많지만 사실은 가진 것이 더 많습니다. 할 수 없는 것도 많지만 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오늘 바디매오는 눈은 없지만 손과 발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겉옷을 벗어 던지고 예수님 앞으로 달려 나가서 입이 있기에 소리를 질렀습니다.“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그는 없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을 극대화하려고 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란 우리의 없는 것을 채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극대화 할 줄 아는 것입니다. 못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먼저는 할 수 있는 것을 잘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이런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또 하나 현실적 자아를 극복할 수 있는 믿음이란 분명한 목적이 있는 믿음입니다. 48절에 보면“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그랬습니다. 바디매오가 예수님께 나아가려고 할 때 훼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디매오의 입장에서 보면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굉장한 압박감일 수 있습니다. 점잖게“조용히 하거라”하고 타이르는 정도가 아니라“조용히 하지 못해!”하고 날카롭게 다시는 예수님을 부르고 싶은 마음이 싹 가시게 하는 그런 말투였습니다. 사실은 장애를 가진 바디매오의 입장에서는 의기소침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라고 하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달려가는 바디매오의 열심 있는 믿음을 막지는 못했음을 봅니다. 개의치 아니 할 뿐만 아니라 더 크게 소리 질렀다고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하려고 하면 꼭 훼방꾼이 있습니다. 수요일 저녁, 일손을 멈추고 교회에 나오려고 하면“그렇게까지 나가야 예수 믿는 거냐”는 소리를 듣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이상하게 믿는다고 합니다. 헌금을 해도 핍박이 있습니다. 돈도 없는 것이 건방지다느니 어떻다느니 하며 말도 많습니다. 그래서 헌금하고 낙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예수님 앞에 제대로 나갈 때에는 핍박과 방해가 늘 있습니다. 맹인이 눈뜨는 것이 얼마나 귀합니까? 협조는 못할망정 꾸짖고 방해하는 사람이 뭡니까? 그런데 오늘날도 우리에겐 이런 방해가 꼭 있다는 사실입니다. 더군다나 믿는 다는 사람이 잘못 된 신앙으로 다른 사람의 신앙까지 망치게 하는 것은 더 문제입니다.

어느 할머니에게 목사가 세례문답을 하고 있었습니다.“할머니 십계명을 외우십니까?”“다는 못 외우지만 첫 계명은 외울 수 있습니다.”“그럼 외워 보세요.”“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첫째는 나 외에 다른 사람의 신을 신지 말라고 하셨느니라.”하시는 겁니다. 할머니는 교회에 와서 신을 자주 바꿔 신게 되는 것이 늘 불만이었는데 어느 날 목사의 십계명설교를 듣고“나 외에 다른 신을 신지 말라”하는 말로 잘못 듣고는“그것 아주 마음에 딱 드는 소리다.”하고 담아두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웃었습니다마는 우리의 신앙도 내 멋대로의 신앙이 적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남을 가르치려고 하면 안 됩니다. 나도 목적을 똑바로 보고 나아가서 승리하는 믿음으로 설 수 있어야 하겠지만 남도 방해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현실이 어렵습니까? 고난입니까? 없는 것, 부족한 것에 매이지 말고 있는 것을 극대화하고 무엇보다도 믿음의 목적이 분명하여 흔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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