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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왜 하늘을 쳐다보느냐 (행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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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으로 가셨습니다. 거기서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 가셨습니다. 그때 현장을 지켜보던 천사가 거기 서 있는 사람들에게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느냐”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에 경이감을 가지고 하늘을 쳐다보며 환송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넋을 잃고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제자들에게 정신을 차리게 하고 사명감을 일깨워 주려고 시도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도 교회 안에는 막연히 하늘만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느냐”고 하는 천사의 경고를 새겨듣고 우리의 신앙에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절망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어떤 경우 자기의 기대가 무너지거나 희망이 없다고 생각할 때 실망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성도들의 경우 하나님의 주권을 의식하는 삶을 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절망하지 않습니다(고후 4:8). 하물며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시는 희망적인 현장을 보면서 낙망한다면 이는 제자들의 자세라 할 수 없습니다.

1) 허탈한 모습으로 보지 말 것

옛말에 “닭 좇던 개 하늘 쳐다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큰 기대를 가지고 매진 해 왔던 일이 허무하게 끝나 버렸을 때에 쓰는 말입니다. 제자들의 경우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하며 보고 배운바가 많았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이적과 능력을 보면서 큰 기대를 가졌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로마의 속국에서 해방시키시고 세상 권력을 취하실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제자들 중에도 그럴 때를 대비하여 미리 자리 부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마 20:21). 성도들 중에도 예수께서 자기의 목적을 이루어 주시리라 기대했다가 그것이 성사되지 못할 때 원망의 눈빛으로 하늘을 쳐다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2) 요행을 바라지 말라는 것

옛날 유대인들은 하늘로서 내려오는 표적 보기를 원했습니다(마 16:1). 그들의 조상이 광야 생활을 할 때 40년 동안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를 먹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신비로운 능력을 체험하며 살았기 때문에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 버릇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역사적으로 기독교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하늘의 표적들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오순절 이후에는 성령의 역사로 신비로운 이적과 능력이 행사되었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는 성령의 은사와 신비를 추구하곤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것이 신앙의 본질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눅 10:2).

3) 현실 도피를 하지 말라는 뜻

사람들은 막연하게 하늘만 쳐다보면서 현실문제에 대하여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자기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자기의 할 일을 망각한 채 그저 하늘의 뜻만 기다린다거나 또는 자기가 못 다한 책임을 하늘의 뜻으로 돌려버리는 경우입니다. 계시 의존의 신앙이 없는 사람은 매사에 확신이 없이 막연하게 하늘만 쳐다보는 잘못된 신앙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2. 믿음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천사가 갈릴리 사람들을 향해서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느냐”고 하는 말 가운데는 그들에게 신앙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1) 약속에 대한 확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부터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관련된 모든 내용을 예언적으로 계시해주셨습니다(눅 1:1-2). 예수님께서도 지상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는 것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다음 부활 하실 것, 그리고 하늘로 올라가실 일을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마 16:21).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고도 하였습니다(요 14:1-3). 누가복음 22:69에 “그러나 이제 후로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2) 예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예수님 당시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두고 세례 요한이라 하기도 하고 엘리야라 하기도 하고 더러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한사람이라고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마 16:13-16).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은 예수님의 생애와 그의 사역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속죄 사역인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일, 무덤에서 살아나신 일, 그리고 하늘로 올라가신 승천의 사실까지 모두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의 구주가 되시기 때문에 반드시 수행하시는 은혜로운 사역임을 믿는 것입니다.

3) 소망을 갖게 됩니다.

골로새서 3:1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승천하시는 장면을 목격하는 제자들이 하늘 보좌에 앉으실 예수님을 생각하며 하늘을 쳐다보았다면 그들에게는 감격스러운 소망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냥 저희 곁을 떠나시는 예수님을 생각한다거나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목적의식도 방향감각도 망각하는 태도라면 분명 절망의 눈이 되겠지만 그것이 신앙의 눈으로 쳐다보는 것일 경우 엄청난 희망이 샘솟듯 하게 될 것입니다(엡 1:17).

3. 사명을 수행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시는 동안 제자들을 훈련시키시고 그들에게 강력한 은사와 권세를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12에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 보다 큰 것도 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그의 제자들로 하여금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1) 전도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말씀은 그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6:15에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하였습니다(딤후 4:2).

2) 교회를 설립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중심으로 지상에 자기 교회의 설립을 계획 하였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시며 교회 설립을 선언하셨습니다(마 16:18). 제자들은 예수님의 분부를 받들어 오순절 이후 지상교회의 모범이 되는 예루살렘 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감람산에서 승천하시는 예수님을 배웅하고 돌아온 제자들은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여 10일간 기도하던 끝에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의 권능을 힘입고 교회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행 2:1-4).

3) 세상을 변화 시키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산상보훈에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세상에 빛이요 소금이라고 하였습니다(마 5:13-16). 교회와 성도는 어둡고 부패한 세상에서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 세상으로 하여금 생명적인 변화를 도모 하여야 합니다. 예수께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실 때 회당을 중심으로 가르치며 전파하며 고쳐주는 일을 하셨습니다(마 9:35).
이와 같은 주님의 사역을 그의 제자들과 지상의 교회들이 계승하게 하였습니다(마 28:19-20). 동서양 어느 곳에서나 기독교의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는 예외 없이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역사가 이루어졌던 것을 보게 됩니다.

4. 성령을 받으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우연히 된 사건이 아닙니다. 이미 예정된 수순대로이며 그 과정을 통해서 다음 단계의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강림하는 사건입니다.

1) 약속된 성령

예수님께서는 진작부터 그가 하늘로 올라가시게 되면 세상에 보혜사 성령이 임하실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16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고 하였습니다.
승천하는 현장에서 천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늘만 쳐다보고 서 있는 것을 매우 딱하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은 지체 없이 다락방으로 달려가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려야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그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당부하신바 있습니다(행 1:4). 지금 당장은 예수께서 그들의 곁을 떠나시는 것이 아쉽고 답답하겠지만 그 이후에 오실 보혜사 성령으로 인하여 오히려 더 큰 은혜와 능력을 힘입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라고 하였습니다(요 16:7).

2) 성령으로 말미암는 은혜

그동안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보고 듣고 배워왔지만 번번이 그 말씀을 망각하거나 배운 바를 실천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고 한 때문입니다(마 26:41).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면 그들의 마음속에서 생각나게 하시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작용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요 14:26).
성령의 축복 가운데 하나는 성령이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게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10에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평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분별하고자 애를 써도 대부분은 자기의 주관적인 기준에 따라서 판단하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그르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마음속에 작용하게 되면 모든 일을 하나님의 기준에서 판단하게 하므로 하나님의 의도하시는 바를 쉽게 분별하며 살게 됩니다.

3) 능력을 힘입게 됩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복음전도의 사명을 받은 제자들은 먼저 주님의 분부를 따라 성령이 임하기를 기다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당부하시기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행 1:8). 실제로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다락방에 모여 기도에 힘을 썼고 그 결과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행 2:1-4). 이후부터 그들은 성령의 권능을 힘입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전도에 전념하였습니다. 성령의 능력에 이끌려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소아시아와 유럽에까지 전도의 영역을 넓혀 나갔습니다.

교회는 성령의 활동무대이며 우리 성도들은 성령께서 들어 쓰시는 도구입니다. 이 시대에 무기력해진 교회가 성령의 권능으로 회복되게 될 때 생명적인 능력으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막연히 하늘만 쳐다보는 신앙에서 행동하는 신앙으로 능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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