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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각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마 16: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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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은 우리들의 영혼의 친 아버지이시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자녀들이 아버지의 음성을 듣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인 신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하십니다. 몇 가지 정리를 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소리로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귀로 직접 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다메섹 도상의 사울은 주님의 음성을 직접 귀로 들었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사울처럼 주의 음성을 귀로 들었다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둘째, 문자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에게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성경입니다. 성경은 문자로 기록되었지만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습니다. 예배시간에 광고를 위한 메모지가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그 메모지를 저에게 보낸 사람은 저에게 글로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그림으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꿈이나 환상을 통해서 보여주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왕 바로에게 장차 되어질 일에 대해서 꿈으로 말씀하셨고 요셉을 통해서 해석하게 하신 일이 있습니다. 렘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살구나무 가지와 끓는 가마의 환상을 통해서 유다의 멸망에 대해서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환상대로 유다는 북방에서 온 바벨론의 공격으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넷째, 환경으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환경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가고 싶은데 하나님이 막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나는 가기 싫은데 갈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질 때가 있습니다. 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다섯째, 직관으로 말씀하십니다. 육체에 감각이 있는 것처럼 영혼도 감각이 있습니다. 이것을 워치만니는 직관이라고 있습니다(최근 번역에는 직감이라고 번역됨). 고전 6:17에서는 “주와 합하는 자는 주와 한 영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성령께서 내주하시는데 구체적으로 어디에 거하시는 것입니까? 사람의 영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마치 성전이 성전 뜰과 성소와 지성소로 구성된 것처럼 영과 혼과 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에 임재하실 때 지성소에 임재하신 거처럼 사람의 영, 혼, 몸 가운데 영 가운데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의 영과 하나님의 영이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신자의 영 가운데 주님의 뜻과 감정이 전달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손으로 차가운 물건을 만지면 차다고 가르쳐주지 않아도 차가운 것을 아는 것처럼 성령과 밀착되어 있는 우리의 영이 성령의 생각과 감정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려고 하면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것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 내면에 확신과 평안과 기쁨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여섯째, 사람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자신의 뜻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때 사람을 통해서 말할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도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했던 일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그 음성을 백성들에게 전파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 선포라고 하는 것도 동일한 원리입니다. 설교자가 기도하는 가운데 혹은 성경을 읽거나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일곱째, 생각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다른 표현을 사용하면 ‘마음속에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 가운데 세미한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마치 자신이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기도 한 신비한 음성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내적 음성이라고 말하기도합니다. 주님의 음성이 내면에서 들리는 이유는 신약시대에는 오순절 이후 보혜사 성령께서 신자 속에 와 게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내면에 계시기 때문에 음성도 내면에서 들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은 완전한 계시이기 때문에 성경이 완결된 후에는 하나님은 더 이상 성경 외의 방법으로 말씀하지 않으신다고 더 이상 말씀하실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 말은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편지를 썼습니다. 온 맘을 다하여 자신의 마음을 다 담아서 편지를 썼습니다. 그렇다고 그 이후로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편지에 자기의 마음을 다 담았어도 그 이후로 계속해서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은 완전한 계시이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계속해서 우리들에게 말씀 하실 수 있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설교는 생각을 통해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루려고 합니다.
  본문은 주님이 가이샤라 빌립보 지방에서 제자들에게 질문하심으로 시작됩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 질문에 어떤 제자가 대답했습니다.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주님은 그 제자의 질문을 들으시고 다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러자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의 훌륭한 대답에 주님은 극찬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비밀과 십자가의 비밀을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십자가의 비밀을 듣고 놀랐습니다. 주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고난을 받고 죽으시고 부활하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이 떨어지자 베드로는 즉시로 그리마시라고 주님을 막았습니다. 복음의 핵심이 십자가인데 베드로는 주님의 길을 막은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베드로를 심히 책망하셨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우리는 이 짧은 내용 속에서 세 가지 생각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사람의 생각이 있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대답한 제자는 자기 생각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평소에 사람들이 주님은 어떤 분이라고 판단하는 말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 제자의 머리 속에 사람들이 말이 정보로 남아 있다가 주님께서 질문하시자 자기 생각을 정리해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주신 생각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묻지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칭찬하시면서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고백은 베드로가 생각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셨기 때문에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언제 어떻게 가르쳐주셨습니까? 묻자마자 대답한 것을 보면 주님이 제자들에게 물으시자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곧 바로 가르쳐주셨습니다. 가르치신 방법은 베드로의 내면의 소리로 가르치신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생각나게 하신 것입니다. 만약 큰 소리로 가르쳐주셨다면 베드로만 아니라 주님과 다른 제자들도 다 들었기 때문에 베드로가 대답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셋째로 마귀가 주는 생각이 있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 후에 주님은 비로소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하실 것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주님을 붙들고 주님을 말립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베드로를 향해서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하시며 꾸짖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생각해서 주님이 가시는 길을 말렸지만 주님은 그 생각을 마귀가 베드로의 생각 속에 집어넣은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성경 다른 곳을 보게 되면 마귀가 사람의 마음속에 생각을 넣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가룟유다가 주님을 팔아먹을 생각을 했는데 그 생각은 처음에는 가룟유다의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사단이 가룟유다에게 넣어준 것입니다(요13:2). 가룟유다는 마귀가 준 생각을 물리치기 보다는 묵상하게 되고 결국 마귀가 가룟유다의 마음에 들어가서 에수님을 팔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또 성경은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도 생각을 주시고 가르치신다고 말합니다. 요14:26에 보면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님은  사람들에게 생각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럼 생각을 통해서 들리는 주님의 음성을 잘 들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순종의 자세를 가지십시오. 요 17:7에 보면 말씀을 행하려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음성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도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자구만 말하게 되고 불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입만 아프니까 더 말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둘째, 귀기울여들으려고 하십시오. 설교를 하면서 가장 힘든 사람은 교만한 사람도 불순종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귀를 기울이지 않고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생각 속에는 너무나 많은 생각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세상의 생각들은 너무나 큰 소리로 우리의 마음에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음성은 세미합니다. 집중해서 귀기울이지 않으면 듣기가 쉽지 않습니다.

  셋째, 영적 지도를 잘 받으십시오. 사울은 신비한 체험을 하고서도 아나니아라는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영적 지도를 받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도 엘리제사장에게로 달려갔습니다. 엘리제사장은 사무엘을 부르시는 분이 하나님임을 알고 사무엘에게 대답하는 방법까지 가르쳐주었고 사무엘은 그대로 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넷째, 많이 들으면 풍성하게 들립니다. 사람이 보이지 않고 음성만 들리면 처음 듣거나 간혹 들은 사람의 목소리는 누구의 목소리인지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많이 들어본 사람의 목소리는 분명하게 분별해 낼 수 있습니다. 많이 들어본 음성은 너무나 분명하게 분별할 수 있지만 설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음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주 들어본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아주 쉽게 알아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설명은 어렵습니다.

  다섯째, 영적으로 성장하면 잘 들을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어린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하나님의 음성인지 모릅니다. 요12장에 보면 하늘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천둥소리로 알았고, 어떤 사람들은 천사의 소리로 알았고 주님과 몇 명의 제자들만이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았습니다. 사람들이 어릴 때는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도 부모님의 뜻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조그만 자라면 부모님이 말하지 않아도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영적인 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장할수록 하나님의 음성을 쉽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이 잘 들린다고 영적으로 성장한 것은 아닙니다.

  여섯째, 깨끗하면 잘 들립니다. 죄악이 사람의 영을 둘러싸면 영의 감각은 무뎌지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는 어두워집니다. 영적으로 깨끗해지면 영이 맑아지고 하나님의 음성을 풍성하게 듣게 되는 것입니다.

  일곱째, 자주 물으면 잘 듣게 됩니다. 주님은 인격자입니다. 우리도 인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  서 물으면 대답하시는 것입니다.

  여덟째, 내면에 집중하면 잘 들립니다. 제 목소리가 예배당 안에서 나는 것은 제가 예배당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밖에 있다면 제 목소리도 밖에서 들릴 것입니다. 마 10:19-20에 보면 복음을 증거 하다가 잡히면 무슨 말할 것을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 때에 할 말을 주시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은 우리 속에 계시는 아버지의 성령이라고 말씀합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게시기 때문에 내면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입니다.

  아홉째, 방언기도를 많이 하십시오. 사 28:11에 보면 하나님은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우리들에게 말씀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다른 사람들 보다 자신이 방언 기도를 더 많이 하는 것을 감사했을 것입니다. 성경은 방언을 금하지 말라고 말합니다(고전 14:39).

  열째, 성경을 가까이 하십시오. 앞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성경은 기록된 문자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앞에서 말한 아홉 가지 방법을 통해서 들은 음성은 성경으로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이 유일한 기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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