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부흥케 하옵소서! (합 3:1~2)

  • 잡초 잡초
  • 204
  • 0

첨부 1


1. 부흥을 소망함

성도 여러분들께서 보시는 대로 새해 들면서 예배당 정면에는 똑 같은 내용의 두 개의 플랙카드가 새롭게 걸렸습니다. 그 안의 내용을 보시면, “부흥케 하소서”와 “Again 1907”이라는 글귀가 있고, 윗 부분에는 갓 쓰고 도포 입은 분들의 아주 오래된 사진이, 그 아래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 있으며, 맨 밑에는 이상한 도형이 하나 있습니다.

위에 있는 갓 쓰고 도포 입은 분들은 우리나라 장로교 최초의 일곱 분의 목사님들입니다. 이들은 우리 최초 신학교인 평양신학교의 제 1회 졸업생들인 서경조, 방기창, 양순백, 한석진, 송인서, 길선주, 이기풍 목사님들로서, 졸업한 그 해 9월 17일에 함께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래 사진은 이들이 목사로 안수를 받을 찍은 사진으로서 가족들과 교인들과 선교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며, 그 아래에 있는 도형은 사진에 찍힌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적어 놓은 것입니다.

이 플랙카드에 있는 “1907”, 즉 1907년은 한국 교회 역사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해입니다. 왜냐하면 사진에 있는 대로 평양신학교의 제 1회 졸업식이 바로 1907년에 있었고, 그 해에 일곱 분의 장로교 목사가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와 함께 1907년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해에 세계 교회가 깜짝 놀란 한국 교회의 대부흥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평양신학교 제 1회 졸업생 및 목사 안수자 사진과 “1907”이라는 숫자, 그리고 “부흥케 하소서”라는 글귀의 의미를 아셨을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은 한국 교회사에서 너무나 중요한 해인 1907년 이후 100주년이 되는 해를 앞두고, 성경이 말하는 부흥의 의미를 살펴보면서, 한국 교회에 다시 한 번 부흥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기도하는 시간으로 삼고자 합니다.

2. 하박국 선지자가 소망했던 부흥

1) 부흥을 구한 이유

오늘 본문을 기록한 하박국 선지자는 주전 612년에서 605년 경, 남쪽 유다 나라에서 선지자로 사역했던 분입니다. 당시 유다는 16대 왕인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에도 불구하고, 우상숭배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사회적인 불의와 불법이 만연하고, 개인적으로도 윤리와 도덕이 땅에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거룩하게 살아야 할 하나님의 백성이 공공연하게 우상숭배를 행하고 있었고,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불감증에 걸려서 온갖 죄악을 서스럼 없이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하박국보다 조금 앞서 사역했던 스바냐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거짓되고 위선적인 예배를 드리는 일, 우상숭배를 저지르는 것, 그리고 불의와 부정부패 때문에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이스라엘은 듣지 않았습니다. 하박국 역시 하나님을 향한 위선과 거짓, 우상숭배, 간악과 패역과 겁탈과 강포가 가득 찬 유다 나라를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면서 한편으로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으로부터 앞으로 유다를 어떻게 하실 지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들은 말씀은 “곧 심판이 있을 것이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신흥 강대국인 갈대아, 즉 바벨론을 일으키셔서 유다를 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죄로 인하여 성전과 왕궁과 백성들의 가정이 무너져버린 것을 하나님은 바벨론을 이용하셔서 심판하시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히신 것입니다.

이제 곧 이스라엘을 치게 될 갈대아 사람들은 사납고 잔인하며 무서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표범보다도 빠르고 이리보다 사나웠으며 그 기병은 독수리보다 빨랐습니다. 그들에게는 법이 따로 없었고, 그들의 힘과 말발굽이 곧 법이었습니다. 이러한 무지막지한 힘으로써 그들은 각 나라의 왕들을 업신여기고 통치자들을 비웃으면서 나라들을 짓밟았습니다. 머지않아 이 바벨론 군대가 유다를 침공하여 유다 나라와 그 백성들을 없앨 것입니다.

하바국이 들은 이 말씀은 유다에 대한 사형선고와도 같았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한 민족과 국가가 심판을 받아 없어진다는 것이니까요! 하박국은 하나님으로부터 예상 밖의 대답을 듣고 큰 혼란과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와 긍휼을 베푸셔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주실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바벨론을 사용하여 유다를 징계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항변했습니다. ‘아무리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피할 수 없는 일이라 해도, 더 악한 바벨론을 쓰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치시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완전히 없애버리게 되면 어떻게 할거냐’고도 물었습니다.

“저 사악한 사탄과도 같은 바벨론으로 유다를 치시는 것이 옳습니까? 아무리 유다가 범죄 해도 하나님의 백성이지 않습니까? 이 백성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십시오!” 간절하게 기도하고 기도하던 선지자에게 하나님은 바벨론 역시 장차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과, 나아가 2장 14절에 있는 대로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 하게 되는 날이 올 것임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즉 일시적으로 바벨론이 흥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망하는 것 같아도, 바벨론은 멸망 받아 없어질 것이고, 온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채워질 날이 올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백성들이 심각한 죄를 짓고, 그로 인하여 징벌을 받을지라도,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도에게는 그 다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일어서는 날, 다시 회복하는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2) 부흥의 의미

이 말씀을 들은 하박국은 바로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이미 세워졌다면, 그것을 빨리 행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 백성의 죄도 빨리 그치게 해 주시고, 갈대아를 통한 심판도 빨리 지나가게 해 주시고, 그리고 진정한 회복의 그 날이 속히 왔으면 좋겠다는 그의 진심을 드러내는 기도였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하게 되는 말이 바로 “부흥케 하소서”입니다. 성도 여러분, 부흥이 무엇입니까? “부흥(復興)”이란 “새로워진다. 부활(復活)한다. 다시 살아난다”는 말과 “흥한다. 일어난다”는 말이 합쳐진 것입니다. 영어도 이와 같은 뜻으로 “Revival”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이 말의 오늘 본문에서의 원어적인 의미는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현재 이스라엘이 죽어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즉 이스라엘은 현재 영적으로나 윤리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떠나 죽어 있으니, 하나님께서 하루 속히 그 생명을 다시 살려달라는 뜻으로 하박국은 “부흥”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떠난 개인은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 가정이 안정될 리가 없습니다. 그 사회가 건강할 리가 없습니다. 그 국가가 번영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박국은 죽은 것 같은 이스라엘을 다시 살려달라며 “부흥”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 시대에 부흥이란 무엇입니까? 부흥은 모두가 사는 길입니다. 부흥은 성도 개인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모든 것을 철저하게 회개하여 세상적인 것들을 모두 버리고 하나님의 진정한 형상으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또한 부흥은 불신자들, 즉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난 사람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옴으로 세상이 변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불의와 부정이 없어지고 대신에 정의와 진리와 정직이 살아나고, 사회가 깨끗하고 바르게 변합니다.

이와 같이 부흥은 성도 개인이 영적으로 충만하여 지고, 교회가 살아나고, 불신자가 회심하고, 교회 밖의 세상이 변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에게 이 부흥이 필요합니다.

3. 다시 한 번 한국 교회에 부흥을 !

1894년 청일전쟁이 일어났을 때, 조선 땅 선교를 위해 중국에 와 있던 선교사들 눈에 비쳤던 평양은 “기생과 환락의 도성”이요, “한국의 소돔”이었습니다. 사실 당시 우리나라 전국 방방곡곡과 백성들의 삶은 너무 너무 가난하여 초근목피를 양식으로 삼고 있었으며, 지도자들은 무능하고 그 아래 하급 관리들은 제 배만 채우고 있었으며, 외국 열강들은 끊임없이 우리나라를 집어 삼키려고 위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백성들의 심령을 위로해야 할 조선 500년의 유교는 아무런 감화를 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최악이고, 영적인 형편마저 공허하기 이를 데 없었던 것이 구한말, 일제 초기 우리나라의 상황이었습니다.

한국 교회의 부흥은 우리 민족이 이렇게 최악의 상황에 있을 때 일어났습니다. 그 시작은 원산에서부터였습니다. 1903년, 캐나다에서 파송되어 원산에서 선교하던 R. A. Hardie(1865~1949) 목사는 선교하다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만나자 그의 삶은 성령의 감동과 충만으로 가득 차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가 선교지에 와서 예수님을 제대로 믿게 되었다는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그래서 이것을 감추고 있던 하디 선교사는 넘쳐나는 기쁨과 감동을 도저히 감출 수가 없었고, 교인들 앞에서 간증을 했습니다. 그의 간증은 원산 지역 성도들로 하여금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열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가난하고, 착취당하고, 심령마저 공허하던 그들은 성경 사경회를 열었고, 뜨겁게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원산의 기독교인들에게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경회와 그 뒤를 잇는 기도회에 임재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느끼고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함께 계신 것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허물과 죄가 그대로 드러나자 그들은 회개했습니다. 부인 외에 첩을 거느린 것, 거짓말을 일삼은 것, 위선과 허세를 부린 것, 심지어 가족에게 불친절하고 형제를 미워하고 빚진 것까지 공개적으로 회개했습니다.

함경도의 ‘김이은’이라는 성도는 5남 1녀를 낳으면서 30년을 살아온 소실과 헤어졌습니다. 그것이 죄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조만식 장로를 비롯하여 교회 지도자들 역시 회중 앞에 나가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서 회개했습니다. 이러한 회개의 고백은 매 예배마다, 부흥회마다 일어났습니다.

이 부흥의 불길은 Hardie 선교사가 1907년 평양에서 열린 장로교 감리교 연합집회에 와서 간증하면서 전국적으로 번지게 되었습니다. 부흥이 원산에서 평양으로, 평양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일본의 식민 통치 하에서 가난과 상처로 멍든 민족을 치유하고 꿈을 회복해주었습니다. 교회의 부흥이 절망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소망을 준 것입니다.

당시 한국 교회의 부흥을 지켜보았던 해리스 선교사는 “수천 명이 글 읽기를 배우기 시작했고, 술주정꾼 도박꾼 도적놈 오입쟁이 살인자 광신적 유학자들 구태의연한 불교신도들 수천 명의 잡신 숭배자들이 새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했습니다. 학교가 설립되고, 문맹 퇴치 운동이 일어나고, 병원이 설립되고, 금주 금연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으며,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고, 무속과 우상숭배에서 해방되고, 일제 식민지 정책에 대항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독립운동을 일으키게 만든 기초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부흥운동의 결과, “한국의 소돔”이라고 불리던 평양은 불과 15년 만에 거룩함으로 불타는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왜 1907년이 중요한지, 왜 우리가 1907년 이후 100주년을 앞 둔 시점에서 부흥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 아셨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우리 시대에 다시 한 번 조국 교회에 부흥이 일어나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이 땅에 다시 한 번 부흥을 주시옵소서! 한국 교회에 부흥이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국 교회의 부흥의 불길이 우리 교회로부터 시작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기도를 지금부터 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첫 번째 한국 교회의 부흥은 1907년 이전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 부흥은 1903년부터 원산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Again 1907”, 즉 1907년과 같은 부흥이 한국 교회에 다시 일어나려면 지금부터 기도하는 것도 이미 늦은 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부흥이 일어날 것입니다. 부흥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 우리 교회가 부흥을 위하여 기도한다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할 것입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부흥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한 교회를 알고 있습니다. 금요 철야 기도회 뿐 아니라, 부흥을 위한 별도의 기도 모임을 갖고서 부흥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성도 개인에게 부흥이, 교회에 부흥이, 그리고 한국 교회에 부흥이 일어나도록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기도하던 성도들이 변했습니다. 그들의 가정이 변했습니다. 그 교회가 변하고, 교회 주변이 변했습니다. 그 교회처럼 부흥을 위하여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놀라운 부흥을 경험하는 우리 교회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4. 부흥케 하소서!

교회가 부흥하면 성도들이 삶의 활력을 회복합니다. 성도들이 힘을 내고, 가정이 행복해지고, 사회적인 활기가 되살아납니다. 민족과 나라가 복을 받고, 온 세상이 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이야말로 너무나도 절실히 부흥이 필요한 때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흥 운동가인 스미스 목사에게 어느 날 한 사람이 찾아와 “신앙 부흥은 어떻게 하는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스미스 목사는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방문을 걸어 잠그고, 무릎을 꿇으십시오. 그리고 분필로 당신이 앉아있는 마루 둘레에 원을 그려놓고, 그 안에서부터 먼저 신앙 부흥 운동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도를 응답해주실 때 드디어 신앙부흥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부흥은 어디서부터 시작됩니까? 바로 여러분들 한 분 한 분에게서 시작됩니다. 즉 부흥이 가장 필요한 것은 여러분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예배를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찬송을 통해서, 저에게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제 안에 성령의 강력한 임재와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이제 여러분의 기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여러분의 신앙 부흥으로 “가정이 새로워지게 하시고, 직장·사업장도 번창케 하시고, 이 나라도 하나님의 축복으로 부흥되게 하옵소서. 경제도 부흥하게 하시고, 정치도 안정되게 하시고, 이 민족이 구원받게 하옵소서. 이러한 주의 역사가 이 수 년 내에 속히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