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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설날] 절뚝거리는 승리자! (창 32: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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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설날 아침에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면서 이 자리에 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시간 좌우를 돌아보시면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아주 뜨겁게 축복의 인사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민족의 명절인 설 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올해는 설 연휴 기간이 짧아서 고향 가는 것을 포기한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래도 지금 이 땅에는 민족 대이동 중입니다.  우리 교인들 가운데서도 고향을 찾아 이미 떠나간 분들도 있고, 아마 오늘 예배를 드리고 난 후에 고향을 찾아 떠나실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엄청난 교통체증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감수하면서 명절 때마다 고향을 찾는 것을 보면 고향이 얼마나 우리에게 소중하고 인간의 만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말해줍니다.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리운 것이 고향인가 봅니다.

사람들이 왜 그토록 고향을 가고 싶어합니까?  고향에는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곳에는 사랑하는 내 형제와 자매가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향을 떠난지가 오래되었어도 그곳을 그리워하는 것은 고향은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곳이기 때문일 겁니다.

특별히 명절을 앞두고 이 땅에는 대체로 두 종류의 얼굴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한 종류의 얼굴은 고향으로 가는 사람들의 얼굴입니다.  긴 시간동안 멀고 힘든 고향 길을 가지만 그들의 얼굴은 친지들을 만난다는 반가움에 기쁨과 소망이 가득 찬 그런 얼굴입니다.

그런가 하면 설날이 다가오면 오히려 부담이 되는 사람의 얼굴이 있습니다.  두고 온 고향, 가지 못하는 고향을 바라보면서 그야말로 회한의 눈물로 설을 맞이하는 얼굴입니다.  그리고 삶의 여력이 어려워 깊은 근심에 빠져 한 숨만 쉬는 그러한 안타까운 얼굴도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만의 명절이 아니라 이 땅 어두운 곳에서 어렵게 명절을 보내고 있을 이웃을 살펴볼 줄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고향을 찾아가는 한 사람을 보게 됩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야곱입니다.  지금 야곱은 20년 세월의 이민 생활을 정리하고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정든 고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잘 아는 사람입니다만은… 이 야곱이라는 사람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주 재미있는 사람입니다.  성경 인물 가운데 아마도 가장 교활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엄청난 축복을 받은 사람, 야곱.

사냥에서 돌아와서 배고파하는 형을 꼬드겨서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샀습니다.  나중에는 아버지 이삭도 교묘히 속여서 형 에서가 받아야할 축복의 기도를 가로챈 사람이 야곱입니다.  그런가 하면 야곱이라는 사람은 욕심도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은 어떻게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꼭 해내고야 마는 끈질긴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권모술수가 아주 능한 사람입니다.  아주 끈질긴 사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인 교활하고 야비하기 짝이 없는 이 야곱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참으로 많은 재물의 복을 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이라는 엄청난 명예를 주시고 이 야곱으로 하여금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으로 하나님께서 삼으셨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착한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 공의의 하나님이 어떻게 이런 불공정한 일을 하실 수가 있는가?  끝없는 신학적인 질문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세상에 무서울 것 없이 자신만만하게, 거침없이 인생을 살아가던 야곱이 사면초가의 위기에 빠져서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우리는 대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타나는 대로 야곱은 지금 외삼촌 집을 떠나서 고향으로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형 에서입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이미 다 세상을 떠나신 후였고, 고향에는 형 에서만 남아 있는데 야곱은 지금 형 에서를 무서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그 옛날 야곱이 형에게 한 짓이 있는데 말입니다.  아직도 형 에서가 그때의 분을 풀지 않고 야곱을 죽이려한다면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다.  야곱은 사실 지금껏 인생을 살아오면서 많은 난관을 당했습니다만은 그러나 그때마다 자기의 방식대로, 자기의 권모술수로 자기에게 당한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형 에서의 마음은 야곱의 마음이 아닙니다.  그러니 이것은 자신의 능력 밖의 일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우선 여러 가지로 생각합니다.  먼저 자기가 가지고 있던 가축들 중에 형 에서에게 보낼 가축들을 선물로 골라서 앞세워서 보냅니다.  한꺼번에 가축들을 다 보내는 것이 아니라 사이를 두고서 네 떼로 나누어서 가축들을 보냅니다.

그리고서 다음에는 종 출신인 두 아내, 그리고 그 두 아내에게서 난 아들들을 뒤를 세워서 가축 뒤에 따라서 보냅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첫 번째 아내 레아와 그 소산들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과 그 아들 요셉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맨 뒤에 야곱 자신이 섰습니다.  그야말로 안전지대에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그렇게 사랑하는 아내 라헬과 요셉, 그러나 야곱은 그 사람들까지도 자신의 안전을 위한 방패막이로 이용을 했습니다.  보통 사람에게는 있을 수 없는 그런 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보는 이 야곱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입니까?  야곱의 인간성을 아주 그대로 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모든 계략도 야곱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를 못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두 아내와 두 여종과 모든 식구들과 그리고 자신에게 딸린 모든 소유물을 얍복 강을 건너서 보내고 난 다음에 야곱은 뒤에 홀로 남아 있었습니다.

야곱이 세웠던 치밀했던 계략, 치밀했던 계획, 그 모든 것들이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가지고 있던 수많은 재산과 한 사람 이상의 아내와 11명의 아들….  지금 야곱에게는 그 모든 것들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이제 야곱은 철저하게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다 경험하는 일이겠습니다만은 세상을 살다가 어느 순간에 우리들은 갑자기 '결국 세상에 나 혼자구나!'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었음을 여러분은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평상시에 보통 생각하기를 우리가 무엇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나에게는 남편도 있고, 아내도 있고, 자식도 있고, 부모님도 있고, 형제도 있고, 친척도 있고, 친구도 있고, 그리고 회사에 가면 동료들도 있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내 편이고 나를 도와줄 사람일 것으로 믿고 든든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어느 날 우리가 갑자기 깨닫게 되는 것은 그 모든 사람들이 다 남이라는 사실입니다.  결국 나는 혼자다.  나는 혼자일 수밖에 없다.  나는 이 세상에서 혼자 남겨질 수밖에 없다 라는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때가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남편도 남이고 아내도 남입니다.  자식도 남이고 형제도 남입니다.  친구도 남입니다.  결국 내 삶이라는 것은 나 혼자 내가 당할 수밖에 없는 일임을 뼈저리게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인생이란 결국 혼자 살아가는 겁니다.  어느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 없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병으로 아파 보면 어떻습니까?  아픔이라는 것, 그것은 철저히 혼자 당해야 될 일입니다.  남편이, 아내가 아무리 병 간호를 한다고 하지만 긴 병 앞에는 효자도 없다고 했습니다.  인생의 외로움과 고뇌라는 것, 그것도 결국 혼자의 몫입니다.  누구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우리가 인생의 마지막에 맞아야 될 죽음, 그것은 철저하게 혼자 겪어야할 나만의 일입니다.  결국 인생이라는 것은 나 혼자 외롭게 홀로 걸어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얍복 강가의 야곱은 바로 이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은 것 같습니다.  사실 야곱이라는 사람은 지나온 삶 가운데 결정적인 어려운 순간에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그 어려움을 이기고 오늘에 이른 사람입니다.  그 옛날 형과 아버지와의 대결에서는 어머니가 도와주었고, 외삼촌과의 대결에서는 아내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절박한 순간에 어느 누구도 야곱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가 그렇게도 집착하던 재산, 수많은 재산, 그것이 지금 그에게는 아무 소용없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야곱은 지금 철저히 혼자입니다.  자신의 엄청난 운명과 철저히 혼자 맞서야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야곱은 이제 하나님과 단둘이 마주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야곱 사이에 놓여있던 사람들, 그 많은 재산들, 온갖 수단과 권모술수는 다 사라져 버리고 이제는 하나님과 야곱 단둘이 마주 보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하나님과의 대결입니다.

야곱은 동이 틀 때까지 밤새도록 하나님과 씨름을 합니다.  야곱은 전 삶을 건 운명의 피나는 사투를 밤새도록 했습니다.  동이 틀 무렵, 하나님과 야곱의 씨름은 끝이 났습니다.  야곱의 승리였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과 밤새워 씨름하는 과정을 통해서 야곱은 완전히 새사람으로 변하는 놀라운 사건을 겪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뀌었다고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만 야곱이 변해서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은 무엇을 꼭 쥐었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보면 야곱이 어머니 리브가의 뱃속에서 태어날 때 쌍둥이 형 발목을 꼭 잡고서 태어났습니다.  야곱의 이름 그대로 지금까지 그는 욕심스럽게 살아왔습니다.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왔습니다.  끝없는 욕심을 따라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야곱이 변하여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깊은 뜻을 발견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철저하게 혼자자가 되어서 홀로 하나님과 마주 서는 과정을 통해서만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 받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나님과 단둘이 마주 서 본 경험이 없다면 그는 진정한 인생의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단 둘이 마주 서 본 경험을 가진 사람, 내 인생의 문제를 놓고 하나님과 밤새워 씨름을 한 사람만이 새로운 인생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새로운 사람으로서의 변화가 있습니다.  새로운 차원의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

야곱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새로운 삶으로 변화된 야곱이 새로운 차원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옛날에 야곱이었을 때에 그는 눈에 보이는 물질을 가장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그것이 내 목숨보다 더 소중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로 변화된 지금, 그 물질은 하나님의 축복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사랑의 도구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똑같은 물질인데 그 의미가 전혀 다르게 되었습니다.  옛날 야곱이었을 때 그의 11명의 아들들은 야곱의 삶의 울타리였습니다.  야곱의 큰 재산이었습니다.  야곱의 자랑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된 지금 그 의미 또한 전혀 다른 것으로 바뀌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과의 대결을 통해 야곱은 이제 이전의 삶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의 인생으로 변화된 것을 보게 됩니다.  철저히 자신과 자신의 네 아내와 아들과 가정만을 위해서 악착같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왔던 야곱.  그 옛 야곱은 이제 변해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 그리고 온 민족의 복의 근원이 되는 이스라엘의 삶으로 다시 태어나 변화된 삶을 살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 모두는 얼마만큼의 재산, 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재산, 돈이라는 것이 다 똑같은 돈이요, 똑같은 재산이 아닙니다.  전혀 의미가 다른 것일 수 있습니다.

삶 자체가 마찬가지입니다.  하루를 같이 살았다고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은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의미가 전혀 다른 질적인 차이가 사람마다에게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야곱과 같은 삶이 있고, 어떤 사람은 이스라엘의 삶이 있습니다.

야곱의 그 많은 재산, 그리고 그가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착같이 움켜쥐었던 수많은 것들, 그것이 옛날에는 야곱에게 있어서 큰 인생의 짐이었고 괴로움이었습니다만은 그러나 이제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으로 변했습니다.  야곱은 이제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무엇을 많이 가지면 그것이 행복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이가 없는 집은 아이가 있으면 행복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딸만 있는 집은 아들이 하나 있었으면, 아들이 있는 집은 딸이 하나 있었으면 참으로 행복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또 명예가 있었으면, 지위가 있었으면, 무엇보다도 돈이 많았으면 행복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단순한 생각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그 모든 것은 내가 가지므로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습니다.  왜 그런가?  그 이유를 구태여 설명 드리지 않아도 우리들 모두가 지나온 삶의 경험을 통해서 절절히 아는 사실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무엇을 가졌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들을 어떤 사람이 가졌느냐가 문제입니다.  야곱이 가지고 있으면 인생의 짐이요 불행이 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으면 인생의 기쁨이요 무한한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내가 무엇을 가질까를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를 고민하십시오.  내가 야곱인가, 내가 이스라엘인가 하는 문제에 고민하십시오.

오늘 본문에 보면 참으로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엉덩이뼈를 내려 치셔서 엉덩이뼈가 어긋났고, 그래서 야곱이 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재산은 좀 빼앗더라도 몸은 성케해 주셔야지 절뚝거리게 할 것은 무엇인가?  하다못해 아들 11명중 하나를 뺏든지 그렇게 하실 일이지 야곱을 그렇게 병신으로 만들게 뭐가 있는가?

여러분, 여기에 하나님의 깊은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아내 넷, 아들 열 하나, 그리고 셀 수도 없는 수많은 재산, 야곱은 거기에 더해서 하나님의 진정한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야곱이 얼마나 기고만장했겠습니까?

물론, 처음에야 이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다 라고 생각하고 겸손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마 야곱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제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교만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부끄러움을 주신 것입니다.  야곱의 환도뼈를 치셨습니다.  야곱이 걸음을 걸을 때마다 절뚝거리게 되었고 그때마다 야곱은 그 옛날 얍복 강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얍복 강가의 일을 야곱 스스로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교만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도록 절뚝거리게 했습니다.  잘난 척 못하게 했습니다.  부끄러움을 주셨습니다.  옛날 바울에게 주셨던 가시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절뚝거리며 걷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표시였습니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도록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야곱을 바라보는 다른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어떻게 야곱을 사랑하셨고, 어떻게 축복하셨는지를 그 절뚝거리는 모습을 보고 알게 하셨습니다.

야곱이 하나님과의 씨름을 통해서 승리한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환도뼈를 내리치셔서 부끄러움을 주셨습니다.  절뚝거리는 승리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들 가운데 때때로 우리들 자신에게, 우리들 가정에 부끄러움을 간직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들로 인해서 부끄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을 사랑하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의 표시입니다.  옛날의 야곱의 부끄러움처럼 말입니다.  여러분들의 부끄러움,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는지를 잊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부끄러움을 보고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얼마나 축복하셨는지를 알게 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표시입니다.

절뚝거리는 승리자 야곱의 모습은 오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가져야 할 모습이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절뚝거리는 승리자 야곱, 그의 모습은 오늘 우리들 신앙의 모습이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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