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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행 14: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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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면서도 생각하기도 싫은 것이 있다면 바로 어려움입니다. 고난의 삶입니다. 아무런 어려움도 고통도 없이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모든 것이 풀려나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를 않습니다. 왜 그리도 살기가 힘든 지요? 작은 일에도 마음 상하고 괴로울 때는 또 얼마나 많은 지요? 특히 주님만을 위해서 살고자 작정하고 그렇게 살아가는데 왜 우리에게 그토록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이 계속되는 것일까요? 언제까지 이토록 힘들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까요? 몸도 마음도 다 지쳐서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싶을 때는 또 얼마나 많은 지요?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그렇다면 조금도 어려움이 없는 그런 삶을 살아간다면 참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요? 힘들고 괴롭기에 그냥 다 포기해 버린다면 그럼 더 이상 어떤 고통도 없는 것일까요?
 
먼저 생각할 것은 주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성도들의 삶에 어째서 고난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루스드라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을 전할 때 그 자리에는 태어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걸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말을 그 사람이 귀담아 듣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그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니, 그에게 고침을 받을 만한 믿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당신 발로 똑바로 일어나서시오” 하고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벌떡 일어나 걷기 시작했습니다.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자, 루가오니아 말로 “신들이 사람의 모습을 하고 우리에게 내려왔다”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바나바를 제우스라고 불렀고, 말하는 일을 주로 하는 바울을 헤르메스라고 불렀습니다. 그 도시 외곽에 제우스 신전이 있었는데 그 신전을 섬기는 제우스의 제사장이 소 몇 마리와 꽃을 성문으로 가져와 군중들과 함께 바울과 바나바에게 제사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바울과 바나바는 “우리도 당신들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하면서 그들을 말렸습니다. 그 때,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유대인들이 와서 사람들을 부추겨 바울을 향해 돌을 던지게 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죽은 줄 알고 도시 밖으로 끌어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과 바나바가 자기들이 신이라고 하면서 자기들에게 제사를 드리려고 하는 것은 말리지 않았다면 그래서 “맞다 우리가 신이니 우리들을 섬기도록 하라”고 했다면 이런 어려움을 당했을까요? 아마도 아닐 것입니다. 그들은 지극한 정성으로 제사를 드리며 그 이후에도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받들었을 것입니다.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유대인들이 와서 사람들을 부추겨 바울을 향해 돌을 던지게 하여도 그들은 “그건 말도 안 된다. 어떻게 우리가 신을 돌로 칠 수 있느냐? 그랬다간 큰 탈난다”고 하면서 오히려 선동하는 유대인들을 막아섰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과 바나바가 “아니다 우리도 당신들과 똑같은 사람일 뿐이라”고 했더니 그들이 합세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죽기까지 돌로 쳤다는 것입니다. 금방까지 바울과 바나바를 신이라고 하면서 떠받들던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듯 돌변할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적과 많은 역사를 보여주면 사람들이 다 믿게 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를 않습니다. 아마도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정말 신기하다고 하면서 그 가운데로 몰려들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점술가나 무당들이 어떤 사실을 알려줄 때 그들이 하는 말이 다 맞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 스스로도 말하다 시피 잘해 봐야 10%의 확률도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 10% 어쩌다가 하나 맞추기라도 하면 아주 신통하다고 하면서 그 앞으로 몰려듭니다. 틀리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말하지를 않습니다. 오직 열 가지 중에 하나 맞춘 것만 가지고도 정말 귀신같이 알아낸다고 말들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리 많은 것을 눈으로 보고 들어도 무덤덤합니다. 오히려 애써 그것을 부인 하려고만 합니다. 말도 안 된다고 합니다. 도무지 살 수 없다고 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놀랍도록 고쳐주시는 역사를 보면서도 그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 어쩌다가 그렇게 되는 일이 세상에서는 진짜 어쩌다가 일어나는 일인지 몰라도 우리 믿음 안에서는 흔하게 생겨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말을 하지 않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무슨 짓을 해도 무덤덤하게 지나갑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회 다니는 사람이 어떤 잘못을 했다 치면 어떻게 교회 다닌다는 사람들이 그럴 수가 있느냐고들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이 세상을 움켜쥐고 있는 악한 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그들은 세상의 부귀영화가 자기들로 인해서 주어지는 것인 양 속이고 있습니다. 거기에 속아 사람들은 미칠 듯이 쫓아다니고 있습니다. 아니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잘 되는 꼴을 정말 눈꼴사나워서 두고 보지를 못합니다. 자기들이 하는 것은 무슨 일을 해도 상관 안 하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사사건건 시비를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많은 고난을 당해야 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통해서도 알고 있는 것이요 바나바와 바울의 삶과 그 증거를 통해서도 우리가 배우는 바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옥토에서 자라야 합니다. 하지만 그 옥토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밭을 만들기 위해서는 길가와 같이 딱딱한 밭은 갈아엎어야 합니다. 돌짝밭이라면 그 돌들을 일일이 옮겨놓아야 합니다. 가시떨기가 있다면 그것들을 다 뽑아버려야 합니다.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구슬땀을 흘리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고난입니다. 모두가 자기 잘 만 맛에 사는 세상에서 나 혼자 머리를 숙이고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려니 그것이 또한 고난입니다. 내가 한 대 맞았다면 두 대로 갚아야 하는 것이 세상인데 오히려 오른 뺨을 맞고도 왼 뺨을 돌려대야 하니 그것이 고난입니다. 가기 쉽고 편한 길이 아니라 좁고 가기가 어려워서 가는 사람이 적은 길을 우리는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고난을 당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 고백처럼 바울 스스로가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까? 여기 루스드라에서도 돌에 맞아 거의 죽기 직전까지 가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그는 다시 일어나 자리를 옮겨서 여전히 복음을 전하고 있지를 않습니까? 죽기 직전까지 돌에 맞았으니 그 모습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자리만 옮겨서 또다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들이 바로 이런 일입니다. 끊임없이 복음을 전해야 하고 생명을 건져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를 힘써야 하고 그 가운데 당하는 그 어떤 핍박과 어려움도 견디고 이겨야 합니다. 그럴 때 드디어 때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우리가 포기해 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입니까? 아니 나도 모르게 참지를 못하고 신경질을 부릴 때도 있지를 않았습니까? 하지만 이제는 달라야 합니다. 고난이 없이는 하늘나라가 없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고난이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고난이 없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까지 했던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일이 힘들게만 느껴집니까? 도무지 가족과 친지들이 그리고 이웃과 친구들이 믿음 안으로 다가서지를 못하고 오히려 이것저것 시비만 걸며 힘들게 하고 있지를 않습니까? 실망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럴수록 감사하십시오. 반드시 열매를 맺을 때가 다가올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낙심치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이 귀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넘쳐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고난 중에도 잠시도 멈출 수 없는 것은 복음을 증거하고 교회를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바울이 돌에 맞아 죽음에 이르렀을 때 돌로 치던 자들은 그가 죽은 줄로 알고 도시 밖으로 끌어내 던져 버리고 가버렸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바울 주위에 둘러섰을 때에 그가 깨어 일어나 도시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튿날, 바울과 바나바는 그 도시를 떠나 더베로 갔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더베에서 복음을 전하자, 많은 사람이 제자가 되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다시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안디옥은 얼마 전 바울과 바나바가 들러서 복음을 전했던 곳이 아닙니까?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었습니까?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이방인들은 바울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주님의 말씀을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로 선택된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은 온 지방에 두루 퍼졌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도시의 지도자들을 부추겨서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하게 했고, 마침내 자기들이 살고 있는 지방에서 그들을 내쫓았습니다. 그래서 이고니온으로 옮겨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주님께서 그들에게 기적과 표적을 행할 능력을 주셔서, 그들이 주님의 말씀을 전할 때, 그 은혜의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도시 사람들은 두 편으로 나뉘었습니다. 그래서 한쪽은 유대인 편을 들고 다른 쪽은 사도들 편을 들었습니다.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지도자들과 한 패가 되어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하며 돌로 쳐 죽이려 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을 피해 루스드라로 갔던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루스드라에서 죽기 직전까지 돌에 맞아 상처투성이가 된 바울이 오히려 자기들이 피했던 곳으로 돌아와 그곳에서 제자들을 격려하고, 믿음 안에 머물러 있으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고 말하고는 제자들을 위해 각 교회에 장로들을 임명하고 기도와 금식을 한 후, 그들이 믿는 주님께 장로들을 돌보아 달라고 맡겼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바울과 바나바의 하는 일이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입니다. 자기를 핍박했던 곳입니다. 그곳에서 이미 죽을 뻔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곳에 머물며 예수 믿게 된 사람들을 격려하고 그들을 위해 교회에 지도자로서 장로들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 온 몸이 터지고 멍들고 얼망진창이 된 몸으로 성도들을 격려하는 그 모습을 볼 때 성도들의 마음이 얼마나 뭉클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들에게 주어진 직분을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누가 나를 어렵게 만들고 심지어 나를 죽음에까지 내 몬다고 해도 그래서 잠시 그곳을 쫓겨나다시피 떠났다고 해도 그렇기 때문에 이젠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내가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한 사람을 끝까지 돌보아야 한다는 것을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내가 할 수 없을 때는 그들을 돌볼 수 있는 사람을 세워 그들로 하여금 교회와 연약한 자들을 돌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것이 바로 양떼를 돌보는 목자의 모습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어떤 경우에도 복음을 전하는 것과 세워진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또 다시 어려움이 닥친다고 해도 결코 멈추지 말아야 하는 것이 바로 연약한 성도들을 바로 세워나가는 일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을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이 귀한 사역에 정성을 다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을 함께 간증함으로 나누어야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장로들을 세워 그들로 하여금 교회를 돌보도록 부탁을 한 뒤 그들을 위해 금식하며 간절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그런 뒤에 두 사도는 비시디아를 거쳐 밤빌리아로 갔습니다. 그들은 버가에서 말씀을 전하고 앗달리아로 내려가서 배를 타고 안디옥으로 돌아왔습니다. 안디옥은 그들이 선교의 일을 위해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했던 곳입니다. 이제 두 사도는 그 일을 다 마쳤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 도착해서 교회의 신도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행하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교회 앞에 보고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는 그 곳에서 제자들과 오랫동안 함께 지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꼭 잊지 말고 해야 할 일이 바로 하나님의 도우신 손길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마다 말씀을 듣고 나서 다시 구역에서 모여 그 받은바 은혜를 함께 나누는 것이 그래서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는 이를 함께 나눌 때 더욱 큰 은혜로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전도 여행 동안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셨던 모든 역사를 자기들을 파송했던 교회로 돌아와서 보고를 합니다. 그 보고를 들을 때 얼마나 감동이 넘쳤겠습니까? 바울과 바나바가 당한 일들을 생각할 때는 한 편으로는 몹시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 함께 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생각하면 그것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그 모든 고난의 과정을 힘들었을망정 그 결과를 볼 때 역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베푸시는 역사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난 중에 그리고 그 고난을 통해서 더욱 크게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그 간증 보고를 통해서 성도들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그들이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아하 복음을 전하는 일이 이렇게 힘든 일이로구나 그러니 이제 더 이상은 복음 전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겠습니까? 아닙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결국에는 이런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로구나. 그리고 그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도우셔서 이루게 하시는 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래서 더욱 이 일에 힘을 다해야 하겠다는 마음과 더불어서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배후에서 기도로 도와야겠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감동과 역사가 우리들 가운데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 역시 살아가면서 그리고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서 나타났던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과 그 깨달음을 다른 성도들과 함께 나누는 간증의 시간을 항상 가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들의 삶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들을 나 혼자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들과 또 다른 성도들과 함께 나눔으로 더욱 감동과 새 힘이 넘치는 은혜의 시간이 계속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지난 수요일에 뜻하지 않게 도주환 선교사께서 향남교회를 방문하셨습니다. 이제 곧 선교지로 출발하게 될 터인데 마지막 인사와 더불어서 지금까지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하여 본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그 간증의 시간들이 얼마나 은혜로웠던 지요? 그 선교사님에도 정말 힘든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힘든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과 같이 복음을 들고 외칠 수 있도록 그리고 외칠 때마다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셨노라고 선교사님께서 간증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간증의 시간은 단지 선교사만이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제부터는 우리 모두가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당하는 많은 고난의 시간들도 지나놓고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 깨달은 바를 함께 나눌 때 얼마나 힘이 되는 지요? 얼마나 감사한지요? 당할 때는 힘들었지만 지나놓고 나서 보면 그 고난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얼마나 많이 믿음이 성장했는가를 깨닫게 될 때 그저 감사할 것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그럴 때 이미 고난을 겪은 사람들은 물론 지금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도 힘이 됩니다. 은혜가 됩니다. 새 힘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고난을 당해야 한다고 했는데 고난 중에 함께 하신 하나님의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와 사랑들을 함께 나눔으로 더불어 감사하는 우리들이요 그래서 어떤 고난이 와도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고난을 허락하신 줄로 알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모든 고난과 어려움을 견디고 이기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홍인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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