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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설날] 본향을 찾는 믿음 (히 1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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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민속 고유의 명절 설날입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각기 고향을 찾아 떠나셨습니다. 그리운 고향, 일가친척들을 만나서 그동안 못다 한 정을 나누는 것은 매우 아름답고 귀한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가셨고 또 오시기도 한 것 같습니다.
오고 가는 모든 것을 보면서 믿음이 삶도 마찬가지 같습니다. 만물이 주께로부터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께로 돌아간다는 말씀이 실감이 나는 것 같습니다.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방향이 바르게 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방향을 삐뚤어져 있으면 아무리 가더라도 결국 마지막은 잘못된 종점에 도착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방향을 설정하고 걸어야 하는 가? 이것을 오늘은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통해 잠시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대가 였습니다. 믿음의 선조 입니다. 믿음의 조상이었습니다. 믿음을 따라서 산 아브라함의 일생은 우리에게 믿음의 청사진을 제대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떤 믿음을 가졌는가를 함께 보시겠습니다.

1. 믿음으로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 있습니다.

8절에 보면 “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 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라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창 12장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아브람을 부르셨습니다. 창12장1절“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출생지와 친척들과 사랑하는 모든 것, 익숙한 것들, 정든 것들을 모두 남겨 두고 떠나라는 것입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확실한 것을 포기하고 떠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본토는 나라입니다. 이 말씀은 비단 문자적으로만 해석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옛사람을 말합니다. 옛 자아입니다. 세상적인 가치관과 철학입니다.  본토는 믿음의 길을 방해하는 세상 적 가치관입니다. 옛사람의 생활 습관을 청산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친척은 “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인간관계의 끈끈한 것, 사람들과의 이해관계, 가족 친척들을 말합니다. 잘못된 습관과 전통을 말하는 것입니다.  친척은 바로 못된 문화를 의미합니다.  ( 명절 )
아비 집은 무엇입니까 개인의 본성입니다. 나 자신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재능과 자격, 실력 등 입니다. 이런 것을 더 의지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성적으로만 생각하면 순종이 불가능합니다.

이상과 같은 것들을 떠난 다는 것은 , 버린다는 것은  아브라함의  일생에  일대혁신이 일어 난 것입니다. 새로운 시작의 삶을 그는 믿음으로 출발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으로 닻을 올렸습니다. 아브라함의 일생 가운데서 참 중요한 단어는 믿음과 순종입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었기 때문에 그는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순종의 제사를 통하여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는 복을 받았습니다. 만민이 복을 받는 시조가 되었습니다.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축복을 받았고 축복을 유통시켜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 같이 번성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도 불확실한 상태입니다. 언제 어떻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 할 수 없는 일들이 도처에 깔려 있습니다. 흔들리는 세상에서 불변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도의 믿음은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고정되어야 합니다.

살아있는 믿음은 어떤 믿음 입니까?  온전한 믿음은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그 어떤 것이라도  믿음으로 반응하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붙잡힌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항복하면 인생은 형통합니다.  하나님께 코치를 받는 인생은 결코 실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믿음의 파도를 타면 항상 즐겁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고 이루시는 것이 가장 최선의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기 원하는 성도들에게 연약한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부분적 순종이 발생되는 것입니다. 성도라 하면서 믿음을 지녔다고 하면서 온전히 주님을 쫓지 않는 것이 매우 가슴 아픈 일입니다. 애석한 일입니다.  (히3장 가나안에 못들어간 이유 불순종과 불신앙)
진실한 믿음은 상황에 따라 조건에 따라 좌지우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주님만을 우러러 보며 곧고 바르게 주안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마치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을 여행하는 탐험가가 나침반 한 장과 지도 하나에 의지하듯이 믿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견고하며 튼튼한 믿음 가운데 치우침 없이 더욱 주의 일에 힘쓰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2. 성도는 세상 안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존재 입니다.

9절 말씀에 보면 “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서 나그네와 같은 생활을 하였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족속들이 점령하고 있는 땅에 대해서 어떤 마음을 가졌을 까요?  하나님이 허락하신 땅이니까 마음대로 취하고 마음대로 가지고 마음대로 소유하였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에 있으면서 농장을 사지도 않았습니다.  집도 짓지 않았습니다. 그곳 사람들과 어떤 동맹도 맺지 않고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몇몇 부족들과는 동맹 관계를 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결코 소유를 주장하는 삶을 살지는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서 살면서 약속의 땅이지만 자신의 소유가 아닌 것을 인식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최선으로 애쓰고 힘쓴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사는 것을 가장 최고의 기쁨으로 여겼습니다.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가는 성도들은 이 세상에 대해서 정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도란 이 세상 안에 있으나 이 세상에 속한 존재는 아니라는 것 입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 살아가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요17장14절에 예수님의 기도에 보면 “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이니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성도는 세상의 울타리 안에서 살고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 살지만 세상과 벗이 되는 것은 금해야 합니다. 세상의 풍습과 생활양식은 주님을 따르는데 거침돌이 됩니다. 방해가 됩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가나안에 살고 있던 부족들의 생활과 종교와 문화와 모든 것을 쫓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거기에 있는 모든 것은 세상의 임금을 추앙하는 것입니다. 거룩하지 못한 것들이었습니다. 온통  우상의 문화이고 풍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성도들도 역시 세상의 어둔 문화와 죄의 영향력 아래 삽니다.  성도는  비성경적인 것들은 단호히 거부해야 합니다. 그것들을 개혁하고 거룩하게 만드는 존재가 바로 성도입니다.
이 세상을 허무하게 보거나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도 세상 가운데서 살아야 합니다.  다만 세상에 동화 되고 짝하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늘 말씀하시기를 “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1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의의 병기가 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창조하는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진리의 빛을 많은 사람들에게 비추는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선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는 믿음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산제사로 드려지는 복된 인생이 다 되시길 축원합니다.

3. 성도는 본향에 소망을 둔 존재입니다.

9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약속의 땅에서 장막에 거하였다고 합니다.  장막은 원래 기초가 없기 때문에 쉽게 치고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장막은 텐트를 말하는 것입니다. 장막은 안전하지 못합니다. 평생 살 처소가 되지를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한 이유는 하나님이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지으실 성을 보았습니다. 거룩한 도성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 나오는 새 하늘과 새 땅, 새 신부가 단장한 새 예루살렘을 믿음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가 소유하고 있는 것 보다 하나님이 주실 상을 더 바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이 땅의 재물과 부귀영화만을 구하는 자가 아닙니다.  비록 세상의 것들이 우리의 소유로 등기가 되어 있을 지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세상의 것이 조금 부족할 지라도 그것 때문에 불안 해 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바울은 “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4장12절라고 말씀합니다.

사도바울을 살펴보면 가질 것은 다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이었고 , 로마시민권을 가졌고, 학식 또한 풍부하였습니다.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는 사람이 바뀌었습니다. 자기가 소유한 것 보다  더 고상하고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였습니다.

그가 그토록 얻기를  원한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고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릴수만 있다면 목숨을 바치는 것도 아깝지 않게 여겼습니다.
자기가 쥐고 있는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았습니다. 오직 주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해 전심전력으로 달린 사람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이런 심정이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만족하고 하나님 때문에 울고, 하나님 생각하며 기뻐하는 하나님 제일주의 믿음이 되시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이 땅위의 부요함보다 이 세상의 상 보다 하늘의 상 받기를 위해 달음질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썩지 않고 쇠하지 않고 더럽히지 않는 영구한 상을 다 받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이 진리를  깨닫는 다면  최고의 발견을 하신 것입니다. 

성도들의 삶은 최고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땅 엣 것에 소망을 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에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잠시 잠깐 지나가는 풀과 같습니다. 오늘 피었다 지는  꽃과 같은 것이 인생입니다.  아침안개처럼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것을  인생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잠시 후면 그림자도 찾아 볼 수 없는 것에 마음  빼앗기는 것은 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성도는 하늘의 것 , 신령한 것, 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것에 소망을 두면 영원한 만족과 다함이 없는 기쁨을 얻게 됩니다.

모세는 시 90편 10절에서 “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라고 말합니다.
바울도 “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고후4:16-18)라고 말씀합니다.

인생은 짧다면 짧고 길 다면 깁니다. 다만 우리의 뜻대로 마음대로 조정되는 것이 인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이 세상에 태어나고 주님의 뜻대로 살다가 본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 아닐까요? 이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믿음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늘이 것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살아가십시요. 
골3:1-2절 말씀처럼“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을 것을 생각하지 말라 ”

  땅에 것 보다 하늘의 것을 구하면 하나님은 땅의 것도 풍성하게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토이고 연약함을 아십니다. 먹어야 하고, 자야하고, 써야 하고,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신령한 것과 이 땅의  기름지고 좋은 것으로 부족하지 않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최선으로 위의 것을 구하십시요. 확신합니다.

선한 목자 우리 주님은 땅의 것도 풍성하게 안겨 주십니다. 넉넉하게, 부족하지 않게, 쓰고도 남게, 내려 주십니다. 영육을 풍요롭게 하시는 좋으신 주님을 찬양하시길 축원합니다.

결론 /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성도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말씀과 순종이 함께 하면 형통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우리를 대적 할 자가 없습니다. 열매가 있는 삶을 삽니다. 증거가 나타나는 믿음이 됩니다.
  신자는 이 세상에 살지만 결코 세상에 속해서 세상을 사랑하면 안 됩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다는 증거 입니다. 주님과 최고로 사랑 하십시요. 그러면 주님도 우리를 최고로 사랑하시고 품어  주십니다.

  돌아갈 본향을  심령 속에 품으시는 믿음 생활을 하십시요. 천국을 그리는 믿음을 지니십시요. 하나님이 약속하신 천국을 마음속에 품으시면 어떤 고난이 와도 너끈히 이길 수 있습니다.  13절에 보시면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하는 것을 밝히 말씀해 줍니다. “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서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다.” 라고 말씀합니다.

성도는 영원한 본향을 향하여 걷는 순례자 입니다. 나그네와 같이 잠시 머물다 곧 떠나야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믿음의 삶은 나그네요. 외국인입니다. 잠시 살다가 곧 본향으로 떠나는 것입니다. 천국의 잔치 자리에 참여하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하늘의 소망을 둔 영혼은 주님께로부터 상을 받습니다.
  양의 큰  목자장 이신 예수님께서 시들지 아니하는  면류관 여러분
  머리위에 씌워 주실 것입니다.  면류관 받는 신앙이 되시길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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