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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의 불을 놓은 사람들 (눅 5: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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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불을 놓은 사람들( 눅 5:17-26)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오신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 우리가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얼마나 연약한 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은 능력이 많든 적든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할 존재입니다.
아무리 많은 부를 축척 했던 대기업 총수도 치명적인 병과 죽음 앞에서는 어떤 힘도 발휘하지 못합니다.

◈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시는 내용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말씀입니다.
먼저 생각해 볼 것은 예수님의 활동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복음 전파 사역과
병을 고치는 치유의 사역이 함께 있었다는 것입니다.
【눅 5:17】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 각 촌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나온 바리새인과 교법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교법사는 율법 교사를 말하는데 대체로 서기관을 가르킵니다.
이 사람들은 율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해석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근본적인 목적은 병을 고치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리고 구원의 복음을 이루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중심은 병고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구원의 복음을
전하시는 한 방법으로 병을 고치는 사역을 행하셨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각색 병자들이 몰려 올 때는 그들을 피하여 한적한 곳에
피하셔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말씀을 전파하시는 것과 병든 사람을 고치는 일 가운데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 예수님의 소문이 각 지역으로 퍼져갔습니다.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로 넘쳐났습니다.
이 때 방해하는 세력들이 나타났습니다. 바리새인들과 교법사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성경에 도통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있어서 오래 믿었고 바르게 믿는다는 자존심이 있는 사람들.
자기들은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에 찬물을 끼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분위기가 차갑게 식었을 것입니다.

◈ 이 때 악령의 방해를 이기는 힘은 더 강력한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께서는 모험적이고 창조적인 믿음을 가진 믿음의 사람들을 일으키십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역에 불을 놓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 혼자만의 역사였는데 이제는 믿음이 함께 역사하기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서 믿음의 씨가 자라서 잎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마가 복음에 의하면 네 사람이 환자를 메고 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름도 알 수 없습니다.
네 사람이 전부 또는 그 중에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이야기를 환자에게 전했을 것입니다.
환자도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환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를 침상에 누인 채로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벌써 많은 사람들이 마당부터 방까지 가득 차 있었습니다. 주님께 나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습니다. 그들은 지붕 위로 올라갔습니다. 유대의 집은 지붕에 계단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좁은 계단으로 환자를 들고 올라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업고 올라갔을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네 사람이 환자를 메고 올라가서 지붕 기와를 걷어내고 환자를 주님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만약 되돌아갔다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어려운 환경에도 나누어지지 않고 하나가 되어 있었습니다.
마음도 몸도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힘쓰고 애쓰는 믿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가로막힌 기와를 걷었습니다.

이런 행동은 인간적으로 보아도 불굴의 의지와 친구를 향한 사랑은 충분히 칭찬받을 만함.
말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주 강력한 믿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다해 놓고 이제 주님이 일하시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 주님은 믿음을 보셨습니다. 하나님의 시선은 언제나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의 교회 생활을 보십니다. 우리의 예배를 흠향하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충성하는 성도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사람들은 외모와 환경, 경력, 물질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 속에 있는 믿음을 보십니다.

본문의 돕는 사람의 모습은 시대를 초월하여 깊은 감동을 주는 장면입니다.
이 환자는 주변 사람들의 사랑과 믿음이 없었다면 평생 걸어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누군가의 사랑과 믿음에 빚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은 너무나 인색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의 마음이 너무나 메말라 있습니다. 조금만 방해를 받으면 금방 포기하고 맙니다.

우리는 같은 교회에 있지만 다를 수 있습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환경이 다를 수 있습니다. 습관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에서만은 온전히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이런 믿음을 주시길 바랍니다.
하나 된 믿음으로 우리 주변에 예수님을 만나도록 도와야 할 분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실천하시길 바랍니다. 힘써 복음을 증거하시기 바랍니다.

◈ 예수님은 이 환자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시며 사죄를 선언하셨습니다.
방해꾼으로 온 서기관들이 본색을 드러냅니다.
죄사함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니까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이유로 분개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충성으로 예수님을 신성 모독죄로 몰아 세우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한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 실제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죄가 있으면 희생제물을 가지고 예루살렘 성전까지 올라가서
희생 제사를 드린 다음에 제사장으로부터 죄 용서의 선고를 받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이 아닌 곳에서 제사장이 아닌 사람에게서 희생제사도 없이 죄 용서를 받는 다는 것은 그 당시의 사람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26절에 오늘날 우리가 기이한 일을 보았다는 고백을 하며 놀라고 있습니다.

◈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것은 그 자리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근본적인 목적은 한 중풍병자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통해서 자기가
메시야로서 죄를 용서할 권세가 있다는 것을 보이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메시야라는 사실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앞에서
중풍병자를 고쳐 보이심으로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라는 것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 본문의 모든 과정에 역사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입니다.
중풍병자의 친구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환자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일어나라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환자도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침상을 들고 일어나 집으로 갔습니다.

◈ 본문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환자에게 사죄를 선언하셨습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 중풍병자에게 '소자야 안심하라' 하시며 죄사함을 선포하셨습니다
.
1. 예수님은 죄의 문제에 관심이 있으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죄의 심각성보다 현상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 병이 낫을 것인가? 아닌가?에 관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문둥병이라는 병이 있습니다. 눈썹이 빠지고 고름이 생기며 살이 썩어 들어가는 병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눈썹이 빠진다고 발모제를 바르고 고름이 생긴다고 고약을 붙이는 것은 온전한 치료가 되지 못합니다. 피 속에 흐르는 균을 없애는 치료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온전히 치료가 되어 증상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 사람의 행복은 두발로 걸어다닌다고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많고 권세가 있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를 잘한다고 행복한 것도 아님.
내 속에 죄 문제가 있으면 사람은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아무리 멋진 옷을 입고 돈을 펑펑 쓰고 자기가 하고 싶은 짓을 다하고도
집에 돌아와서는 '아 나는 죄인이야' 하고 한탄할 수밖에 없다면 세상 부귀, 영화, 건강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눈길은 언제나 어디서나 눈에 보이는 현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중심에 닿아있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질병보다도 영적인 죄의 문제에 더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영혼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문제가 죄사함의 문제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2. 예수님은 죄사함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육신의 질병은 세상의 의학이 치료할 수 있지만 영혼의 죄 문제는 죄사함의 권세를 가진
예수님 앞에서만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3. 주님 앞에 나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죄에 대한 심각한 인식을 가지고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고 예수님 앞에 나아갈 때 죄사함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자유를 맛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열심히 적극적으로 앞서나가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이런 분들로 인해서 교회에 믿음의 불이 붙게 됩니다.

◈ 프랑스의 어느 마을에 참으로 고마운 의사 한 분이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을 정성스럽게 돌보아 주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의사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람이 제안을 했습니다.
“이번 우리 마을에서 거두어들인 포도주를 조금씩 모아서 의사에게 선물을 합시다.”
마을 사람들이 다 찬성했습니다. 포도주를 가져와서 큰 통에 부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통 속에 들어있는 것은 포도주가 아니라 물이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나 혼자 물을 넣어도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다 포두주 대신에 물을 넣은 것입니다.
감사하자고 제안한 것은 성령으로 되어진 일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시작된 일이 진행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생각 때문이 물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역사는 믿음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마쳐야 합니다.

◈ 중풍병자를 메고 온 사람들은 믿음에 새로운 불을 놓아준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교회에 새싹들입니다. 새 가지입니다. 열매는 새 가지에서 맺습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믿음의 새로운 가지들이 날마다 뻗어나가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역사하시게 될 것입니다.
영혼이 건강하면 육체의 질병을 이길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영혼을 먼저 고쳐주셨습니다.
그 다음에 육신을 고쳐주셨습니다. 먼저 영적으로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그 건강으로 육신의 질병을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영육간에 건강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가 우리 교회에 새로운 믿음의 불을 놓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날마다 체험하는 은혜가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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