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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대로 역사하시는 주님 (눅 8:4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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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경 이탈리아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게 귀족인 존 코드가 찾아가 [초상화를 그려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러면 그는 [한 1개월이면 그릴 수 있지 않을까요? 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못합니다] [그러면 6개월?] [글쎄요] [그러면 1년이면 됩니까?] 다 빈치는 잠시 침묵한 후 [그림 완성기간은 제게 맡겨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4년이나 걸려 그림을 그렸다. 그래도 [미완성]이라고 했다. - 세계적인 작품은 천재성만으로 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각고의 노력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하나님도 우리의 인생을 작품으로 만들어 가시기 때문에 때로는 우리들이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 듯합니다. 고난의 과정도 빨리 통과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일반적인 경우는 자신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만날 경우 포기해 버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포기해도 괜찮은 일이라면 포기할 수 있겠지만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일일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문에는 포기할 수 없는 두 가지 경우를 보게 됩니다. 먼저는 한 여인이 나옵니다. 그 여자는 12년을 혈루증으로 앓던 여자입니다. 혈루증은 여인이 하혈을 하는 병인데 피가 계속해서 흐르는 병입니다. 우리가 엄청난 고통을 당할 때 피를 말리는 고통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여인이 그런 상황입니다. 병이 낫기 위해서 배방으로 노력했지만 차도가 없었습니다. 유대 사회에서는 정결법상 하혈을 하는 여인은 부정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혈루증은 그 여인을 육체적, 정신적, 물질적, 영적으로 피를 말렸을 것입니다. 이 병에서 고침 받는 것은 그녀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또 한 경우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입니다. 그 아이의 나이는 12살입니다. 금쪽같은 딸이 병에 들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야이로의 직업은 회당장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회당에는 세 사람 정도의 통치자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그가 장이었습니다. 당시 회당장은 회당에서 이루어지는 업무, 즉 재판 주관, 설교자와 성경 봉독자의 선정, 설교의 심사 감독 등의 업무 일체를 모두 총괄하는 사회적으로 매우 영향력 있는 직책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상당한 위치에 있는 회당장 야이로가 한 낫 떠돌이 전도자 또는 미친 자로 여겨지던 자에게 자신을 낮추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위급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죽어가는 자식을 인간의 능력으로 살릴 길이 없어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부모의 심정일 것입니다. 주님은 야이로의 딸을 찾아가서 육체의 질병을 치료한 것만 아니라 죽었던 아이를 살려주셨습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이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두 사람은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의 능력으로 불가능한 상황이 가능으로 바뀌게 됩니다.
혹시라도 여러분 가운데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부딪혀서 내 능력으로는 극복하기가 너무나 어려운데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 속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의지하므로 주님의 능력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대로 역사해 주십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살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면 상대가 요구하는 대로 해줄 수 있는 넉넉함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주님이 거라사에서 귀신들린 자를 고치시고 다시 갈릴리로 돌아오시자 사람들이 주님을 환영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주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먼저 주님 앞에 나아온 사람이 회당장 야이로입니다. 야이로가 자신의 딸이 병들에 죽어 감을 말씀드리고 자기 집에 오시기를 청하니 주님은 거절하지 않고 회당장 야이로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가시자고 하니 가신 것입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집으로 가시다가 만난 여인이 12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입니다. 이 여인은 주님을 집으로 모실 생각은 못했고 주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나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주님은 그 여인의 집까지 가시지도 않았지만 그 여인이 가진 믿음대로 옷자락만 만졌는데도 능력을 베풀어주셔서 여인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야이로는 주님 앞에 나아갈 때, 딸의 믿음이 아니라 아버지인 자신의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랬더니 주님은 당사자인 야이로의 딸의 믿음을 보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인 야이로의 믿음을 보시고 치료해 주셨습니다.

12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은 가족이 아닌 본인의 믿음으로 주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그랬더니 주님은 그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혈루증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저는 지금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로마의 군인 중에 한 백부장이 생각납니다. 그 사람이 사랑하는 하인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주님에게 보내어 오셔서 고쳐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자 주님이 가셨습니다. 주님이 백부장의 집을 향해서 가시는데 백부장이 사람들을 주님에게 다시 보냅니다. 그리고는 오실필요 없이 말씀만 하셔도 나을 것이니 말씀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랬더니 주님이 말씀만 하셨는데 백부장의 하인이 치료를 받았습니다. 주님은 오시라니 가셨고 말씀만 하시라니 말씀만 하셨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영성 가운데 물의 영성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물은 어떤 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서 모양과 색깔이 달리보입니다. 그러나 물의 본질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본질에 변화가 없이도 둥근 그릇에 들어가면 둥글게 보이고 네모란 그릇에 들어가면 네모났게 보입니다. 흰색 그릇에 들어가면 희게 보이고 빨간색 그릇에 들어가면 빨갛게 보입니다. 물의 영성 말은 쉽지만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대로 역사해 주시기 때문에 좋은 믿음 건강한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패배의 믿음, 궁핍한 믿음, 실패의 믿음을 가지면 패배와 궁핍함과 실패가 주어질 것입니다. 승리의 믿음 부요한 믿음, 성공의 믿음을 가지면 승리하고 부요하고 성공할 것입니다. 작은 믿음을 가지면 작은 역사가 일어나고 큰 믿음을 가지면 큰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부정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부정적인 일이 일어날 것이고 긍정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긍정적인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이 바뀌기 원하면 믿음을 바꾸십시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었던 사건을 생각해 봅시다. 물위를 걸어오시는 주님을 보고 베드로가 “주시라면 나를 물 위로 걷게 해 주세요.”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오라”고 말씀하셨고 오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은 베드로는 물 위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인류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물위를 걷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주님의 말씀이 있었기에 ‘나는 물위를 걸을 수 있다.’고 믿었을 때는 물위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물위를 걷던 베드로가 파도를 보고 ‘나는 물위를 걸을 수 없다.’라는 의심을 가지게 되니 그는 물위를 걷지 못하고 물속에 빠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불가능한 상황에 대해서 주님을 만난다고 뾰쪽한 수가 있겠는가라고 믿는다면 주님은 그 사람에게 그렇게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지금 나의 상황이 너무나 힘들고 어렵지만 주님은 모든 상황을 역전 시키실 수 있는 분이라고 믿는다면 주님은 또 그렇게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흔들림 없는 믿음에 응답해주십니다.

12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은 남다른 믿음을 가졌습니다. 마 9:21에 보니 그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이유가 나옵니다.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이 여인이 주님의 옷자락을 만진 이유는 옷자락만 만져도 자기가 병에서 해방 될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옷자락을 만질 때 주님으로부터 능력이 나가서 혈루증이 근원까지 치료가 되었습니다.

이 여인이 주님의 소문을 듣고 믿음을 갖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놀라운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주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낳을 것이라는 믿음까지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 여인이 살고 있던 지역에 주님이 오신 것인지 아니면 이 여인이 주님이 계신 곳을 찾아간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주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여인이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기 위하여 주님 곁으로 다가갑니다. 여인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있었을까요? 주님의 옷만 만지면 낳을 것이라는 생각만 가득했을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사단이 가룟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던 것처럼 이 여인에게도 불신앙의 생각을 집어넣었을 것입니다. ‘만진다고 역사가 일어나겠냐?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라 만진다고 치료가 되겠느냐?’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이 여인 속에 들어왔을 것입니다. 이 여인도 상식선에서 생각을 해보기도 했을 것입니다. ‘만진다고 무슨 변화가 일어나겠냐? 예수를 만나고 병에서 치유 받았다는 소리는 많이 들어봤는데 주님의 옷자락을 만져서 치유되었다는 말은 들어본 일이 없지 않느냐’는 등 별생각이 다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흔들림 없이 주님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주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할렐루야!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주님께로부터 능력이 흘러서 그 여인의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깨끗이 완전히 치료 되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그녀의 믿음이 결국 그녀를 승리하게 만들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도 포기하지 않는 믿음으로 승리했습니다. 회당장이 주님을 만나서 집으로 모셔오다가 혈루증 때문에 주님이 잠시 멈추셨을 때 야이로의 집에서 사람들이 왔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이 “당신의 딸이 죽었습니다. 선생님을 더 괴롭게 마옵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이 때 회당장 야이로의 믿음이 잠시 흔들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때 주님이 야이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흔들리던 야이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야이로의 딸이 구원을 얻은 것을 보니 확실한 믿음으로 반응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주님을 집으로 모시고 갔더니 아이는 이미 죽었고 사람들이 곡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 사회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삼일장이나 오일장을 지내는 풍습이 없고 사람이 죽으면 직업적으로 곡하는 사람들을 불러 곡하게 하고 그 의식이 끝나면 즉시 매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이의 죽음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야이로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의 믿음대로 주님은 죽은 아이를 불렀고 아이의 영이 돌아와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는 처음부터 믿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 못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처음에는 믿음이 있었는데 그 믿음을 계속 유지하지 못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믿음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간혹 보게 되면 과거에는 대단한 믿음을 가진 것 같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주님을 점점 떠나게 되고 나중에는 믿음을 버리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 사람의 과거의 믿음이 아무리 좋았다고 하더라도 지금 믿음이 없다면 그 사람은 주님과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어떤 특정한 일과 관련된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움직이다가 살짝 들어온 불신앙의 이론들을 받아드리게 되고 들어온 세상 이론으로 믿음이 흔들리게 되고 결국 하나님의 역사를 믿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령을 체험한 우리들의 시각에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이 형편없는 것 같지만 또 어떤 면에서 보면 대단한 면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보면 여리고성 붕괴 사건을 생각해 봅시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당에 들어갔을 때 기다렸던 첫 번째 장애물이 여리고성이었습니다. 여리고성 전쟁은 하나님의 특이한 명령으로부터 시작됩니다. 6일간은 하루에 한 바퀴 씩 성을 돌고 7일째 되는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라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었습니다. 지금까지 기적으로 인도함을 받았기 때문에 충만한 믿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출발을 믿음으로 한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끝까지 믿음으로 돌았다는 것도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7일간 여리고성을 도는데 마지막 바퀴를 돌고 큰 함성을 지를 때까지 전혀 아무런 변화가 없었는데도 끝까지 돌았다는 것은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의 흔들림 없이 13바퀴를 돌고 여리고를 붕괴시켰습니다.
믿음이 흔들리고 변질되고 포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주로 네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감당하지 못해서 믿음에 부정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릇이 되지 않는 사람에게 축복은 복이 아니라 화입니다. 감당할 그릇이 되지 않는데 축복 받으면 자기 잘나서 그런 줄 알고 눈에 뵈는 게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솔로몬도 그런 종류에 속합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아서 그의 명성이 온 땅에 퍼지자 점점 타락의 길로 접어들고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래도 받은 복이 솔로몬이 받은 정도가 되면 옳은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이해가 갑니다. 전무후무한 복이었으니 감당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복이 어마어마한데 쥐꼬리만큼 받아놓고 눈이 뒤집힌 것 보면 한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둘째, 환경이 너무 커 보이면 믿음에 부정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주님 앞에 나가고 주님을 찾고 주님에게 매달려야 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아는데 그게 잘 안 되는가 봅니다. 어려움 때문에 생각이 부정적이 되고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를 입습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스스로 받게 되는 상처들이 쌓이다보면 점점 믿음에서 멀어지는 겁니다. 환경은 내가 극복하기에 너무 커 보이고 자기는 그 환경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해 보이기 때문에 자기와 환경을 비교합니다. 하나님과 환경을 비교하고 믿음을 가져야 하는데 자기와 환경을 비교하고 불신앙을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셋째, 욕심이나 죄의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믿음에 부정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사람에게 욕심이나 죄 문제는 하나님의 은혜의 빛을 차단하는 먹구름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예의 빛이 차단되면 믿음은 식어지게 되고 믿음이 식어지면 하나님은 잘 보이지 않고 세상이나 문제만 보이게 됩니다. 결국 믿음에 부정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넷째, 사람 때문에 믿음에 부정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야이로의 믿음에도 부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야이로가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더 이상 선생님을 괴롭게 말라고 했던 사람의 말에 집중했다면 야이로의 믿음도 떨어졌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어쩔 수 없이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관계 속에서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하는 것이 우리들의 생활일 것입니다. 관계의 영향력은 커서 사람들의 믿음에 까지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이 좋고 인격이 훌륭한 사람을 만나서 교제하면 긍정적인 믿음의 변화가 일어나고 믿음이 없다든지 믿음은 있는데 인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을 만나면 부정적인 믿음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우리들의 믿음이 부정적으로 변화된다면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가 없습니다. 사람 때문이건 환경 때문이건 아니면 자신의 문제 때문이건 믿음이 흔들리거나 믿음을 버리면 안 됩니다.
요즘 기도하고 있는 제목이 있습니까? 힘들고 어려운 문제 때문에 주님 앞에 나아가고 있습니까? 좋으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우리의 믿음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오시라 하시면 오시고 옷만 만져도 낳을 것이라고 믿으니 그렇게 해주신 주님이십니다.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결코 포기하지 마시고 주님 앞에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시 40:1-3에 보면 다윗의 인생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내용이 나옵니다. 다윗의 인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인생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평범한 인생을 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부터 오랜 세월 고난을 받았고 그 고난의 과정 동안 하나님을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결국 승리하고 영광스러운 생을 살았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제목을 알 수 없는 시의 몇 구절을 소개하므로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내 마음이여, 조급하게 서둘지 말게!
하나님 안에서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세
하나님은 오래 끄시는 것 같지만
결코 늦으시는 법이 없다네
(마경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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