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그리스도의 사람들 (롬 8:9-11)

  • 잡초 잡초
  • 247
  • 0

첨부 1


오랫만에 강단에 서면서 작년 10월 이후 중단하였던 로마서를 선물로 안고 왔습니다.

이제 특별한 일이 없는 경우에는 매 주일마다 로마서여행을 하면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하루 하루의 삶의 시간들속에서 만나지는 사건들속에서 우리는 종종 기분이 좋아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몇년 전에 공항에서 수속을 하고 있는데 항공사 직원이 저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이번에 가시면 몇일이나 있다 오십니까 하는 것입니다. 저는 너무나 놀라 제가 목사인지는 어떻게 아십니까 그러나 얼굴에 그렇게 쓰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한 주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서울에서 조카들하고 어딘가를 방문하고 함께 돌아오는 중에 갈비탕이나 먹고 가자하면 식당에 들어가는데 조차장에서부터 어서오십시오라는 소리가 차안까지 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차는 저희가 주차할테니 편안이 들어가라 합니다. 더더군다나 서빙 하는 분들한테 귀한 분들이나 잘 모시라 하는 것입니다. 갈비탕이나 먹고 갈려 했는데 귀한 분들이 갈비탕만 먹고 갈 수 없어서 갈비를 시켜 먹은 적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보신 적은 있으십니까 기쁘게 해 보신 적은 있으십니까 히11:5절은 에녹은 이 땅에서 삶을 사는 동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서 삶을 살았다고 하는데 무엇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여기에 로마서는 단호합니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단순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육신에 속한 육신 적 삶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저들이 가지고 살아가는 육신적 생각의 결국은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그가 어떤 사람이냐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그가 어디에 소속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중요한 것은 어디에 소속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인가 영에 속한 사람인가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영적인 부분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영적인 부분을 모른채 보이는 부분만 보기에 그가 어떤 사람인가에 무게 중심을 둡니다. 그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에 무게 중심을 둡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들이 삶속에서 가끔 덕을 세우지 못할 때는 무슨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저래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 기준이 이런 외적인 것에 있지 않습니다. 본질적 변화입니다. 이것을 과학적으로 표현하면 혼합작용이 아니라 화합작용입니다. 상추쌈을 먹다가 돌이 들어있어 다시 뱉어내는 것이 혼합이며 화합은 상추쌈을 먹고 나중에 뒷 쪽으로 다른 부분이 되어 나오는 것 이것이 화합니다. 상추 고기 마늘 양념인데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본질적 변화입니다. 더 착해지는 정도가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보니 나는 나인데 나가 아닌 것입니다. 여전히 죄인인데 죄인이 아닌 것입니다. 더 착해져서가 아니라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본질적 변화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또 하나의 소속의 변화입니다. 육에서 영으로 입니다. 죄인에서 의인으로 입니다. 법동에서 은혜동입니다. 여러분은 본질적 변화에 확신이 있습니까 내 안에 소속에 있어 변화에 확신이 있습니까

소속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소속의 변화입니다.

만일 너희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에게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합니다.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육에 속했던 사람에서 영에 속한 사람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영에 속한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육신의 소욕을 좇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나로 하여금 영에 속한 사람이 되게 하셨던 성령을 탄식하게 하는 일입니다. 영에 속한 사람은 끊임없이 깨어 자기 자신을 향하여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입니다. 육인가 영인가입니다. 영에 속한 사람이라 이것은 자기신분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신분입니다. 내가 영에 속한 사람임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더 착해져서 인가 성령으로입니다. 딤후 1:14절에 우리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입니다. 성령으로 민감할때 자기 신분에 대할 확신이 있고 이렇게 성령으로 충만할때 모든 환경에서 그리스도인의 자태를 잊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영에 속한 사람은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무엇으로 말하고 있는가입니다. 예레미야는 어떤 환경에서도 평생에 놓아버리지 않았던 것이 있는데 언어라 합니다. 영에 속한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언어을 놓아버려서는 안됩니다. 절망은 절대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희망은 희한하게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언어속에 소망이 묻어나면 모두가 어렵다 할때 아니라 합니다. 사랑이 묻어나면 사랑을 말합니다. 믿음이 묻어나면 믿음으로 말합니다. 시편1편에서는 복있는 사람은 하며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아니한 사람이다 합니다.

예수가 믿어지고 영접되었을 때 있어지는 내 안의 사건은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도 몸은 죽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여전히 우리의 보이는 몸은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라 혹시 이로 낙담하고 절망하십니까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라 여기 영은 육과 영를 구분해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니 생령이 된지라 했을 때의 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몸입니다. 그러나 영에 속한 사람은 영입니다. 내가 예수를 믿는 순간 엄청난 변화가 있으면 산 영이 된 것입니다. 영적존재로서의 회복입니다. 생령이라는 것은 영적인 존재를 의미합니다. 무엇으로 인하여입니까 의를 인하여 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의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입니다. 영에 속한 사람정도가 아니라 처음창조대로 영적존재로서의 회복입니다. 

내게 있어진 약속된 미래적 축복은 무엇입니까

너희 죽을 몸을 살리시로다 입니다. 죽을 몸은 죽을 것 육신을 의미합니다. 살리시로다는 주님의 재림때 우리 몸이 영광스러운 몸을 입고 살아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신경에도 고백하기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입니다. 우리의 몸을 가지고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영에 속한 사람은 우리 몸도 잘 관리해야 합니다. 구원받은 우리안에 죄가 자리잡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특히 음란한 죄는 몸 안의 죄이므로 삼가야 합니다. 다시 산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이여 몸의 부활교리를 든든히 잡고 있으십시요. 우리는 본질적으로도 같은 몸이지만 언제인가 영화롭게 된 몸을 입고 영원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죄와 타락이 가져 온 결과들과 영향들은 완전히 제거된 채 의가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영을 우리 몸안에 두셨습니다. 이 죽을 부패한 육체에 그의 영을 두신 것입니다. 그 사실로 인하여 나는 내가 부활하여 변화되고 새롭게 되리라고 믿는 것입니다. 더 이상 연약하지 아니하고 질병도 없고 더 이상 부패와 사망도 업는 완전한 구원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부활을 따른 우리의 부활로 있어질 것입니다. 내가 나의 죽을 몸에 부활과 궁극적 영화를 절대적으로 확신 할 수 있는 것은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사람인 내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몸의 구원받을 것이라는 보증서를 갖고 있습니다. 무엇이 보증서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영이 내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 거하시는 성령 자신의 그리스도인의 최종적 구원을 보증하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 여전히 죄를 짓고 있습니다. 물론 나는 지금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완전한 나의 구원의 보증은 내 의가 아닙니다. 죄인이었던 나를 의인되게 하신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나는 더 이상 육에 속한 사람이 아니요 영에 속한 사람임을 믿습니다. 그것은 내 안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의를 인하여 산 것이라 나는 더 이상 육이 아니라 영이요 산 영임을 믿습니다. 나는 언제인가 내 몸은 부활하여 재림하시는 그리스도를 맞게 될 것을 믿습니다. 나는 믿습니다. 그 영이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요 무엇보다 삼위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 아멘 - (유재명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