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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권세 받은 인생 (눅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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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옆의 분과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성도님에게는 하나님 자녀의 신분과 권세가 주어졌습니다”. 오늘 본문은 참 복음을 알고 신앙생활하는 것과 형식적인 종교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복음은 창세기 3장 사건으로 인해 하나님을 떠나 죄와 저주 가운데 사단 종노릇하며 살던 인간에게 참된 자유함과 해방을 주었으며, 지금까지 자신을 사로잡고 있던 모든 흑암세력에 맞서 싸워 승리할 수 있는 특권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의 핵심을 알지 못하고 그저 교회를 왔다 갔다 하는 형식적인 종교생활을 하면 영적 성장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본질을 잘 붙잡아야 합니다. 어떤 것이 중요한 것이고 어떤 것이 우선순위에 있는지를 모르면 방황하며 세월을 허송할 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유대 사회의 최고 지도자라 할 수 있는 대제사장과 서기관, 장로들이 이러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하늘 권세를 가지시고 행하시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육신적인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위의 높고 낮음, 빈부와 귀천, 지식의 있고 없음에 상관없이 영적인 눈이 열리지 못하면 이렇듯 속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의 권세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얻고 그 권세를 사실적으로 받아 누리는 현장전도제자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예수님의 권세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말하여 가로되 당신이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세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눅 20:1~2)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셔서 성전을 청결하게 하시고 그곳에서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의 율법사나 서기관들은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는 율법적인 설교를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이와는 달리 참 생명을 주는 천국복음을 증거하셨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위기감을 느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로 나가 “무슨 권세로 이 같은 일을 하느냐?”고 따졌습니다.

당시에는 성전을 청결하게 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선택된 자들만 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들이 예수님께 따져 물은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눅 20:3~4)라고 되물으셨습니다. 이 질문 하나로 종교 지도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지경에 처했습니다. 만약 세례 요한이 하나님으로부터 권세를 받아 세례를 베풀었다고 답하면 세례 요한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송한 예수님도 하나님께 받은 권세로 사역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꼴이 됩니다. 그렇다고 세례 요한의 권세가 사람으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하면 그를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로 믿고 세례를 받은 백성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진퇴양난에 빠진 종교 지도자들은 결국 “어디서 온 것인지 알지 못한다”는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의 이런 거짓 답변에 예수님께서도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고 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어떤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몰라서 그렇게 답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가지신 권세는 분명히 하늘로부터 온 것입니다. 권세는 헬라어로 ‘엑수시아’라 하는데 이는 ‘본질로부터 흘러나오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은 곧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는 의미입니다.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의 저서 ‘권력이동’은 시대에 따른 권력의 종류에 대해 “역사적으로 볼 때 처음에는 완력이라는 권력이 있었다. 힘 센 사람이 제일이었다. 다음 단계는 경제력, 돈이 권력이었다. 그 다음에는 정신력, 지식이 권력이다. 기술이 있고 지식이 많은 사람이 권력을 휘두른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세상에는 다양한 권세들이 있고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을 얻으려고 온갖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권세를 다 얻는다 해도 한 가지 권세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권세-영적인 권세입니다.

하늘로부터 내려 온 예수님의 권세는 인생의 비극이 시작되는 창세기 3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권세이며, 흑암 세력을 꺾고 여섯 가지 불신자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는 생명을 살리는 권세입니다. 창조의 능력을 가진 이 권세는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강력한 권세입니다. 우리가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는 죄 사함의 권세와 심판의 권세를 함께 가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죄 사함의 권세로 생명을 살리시기도 하지만 장차 심판주로 다시 오셔서 알곡과 쭉정이를 분리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시간표가 오기 전에 더 많은 영혼을 건져내야 합니다. 불신 가족, 친구, 친지를 만날 때 그 영혼을 살리는 것에 모든 초점을 맞추시기 바랍니다. 이를 통해 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이 가정복음화, 지역복음화, 세계복음화의 증거를 남기시는 현장전도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성도가 받은 권세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한 가지 사실만은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하늘로부터 임한 예수님의 권세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확실히 붙잡을 때 어떤 문제와 사건도 넘어설 수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권세를 부여받은 존재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18~2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 여러분 안에 성령으로 함께 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 분이 가지신 권세를 여러분도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권세는 죄와 어둠의 창세기 3장의 세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특권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1~2) 우리는 죄와 사망과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기 때문에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어마어마한 특권이 주어졌습니다. 이 권세를 세상 삶의 현장에서 사용할 때 흑암이 꺾이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됩니다.

하나님 자녀의 특권의 이해를 돕는 한 예화가 있습니다. 어느 양반집 외아들이 아버지가 집에 계시지 않는 동안에 집안의 보물인 백자 항아리를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이 모습을 머슴이 보았는데 아들은 머슴에게 아버지께 이르지 말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이 머슴이 툭하면 아버지께 이르겠다고 겁을 주며 아들에게 물을 길어오거나, 장작을 패는 등의 힘든 일을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견디다 못한 아들은 아버지께 이실직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버지께 자신의 죄를 고백하자 아버지는 이미 사실을 알고 있었다며 아들을 용서하여 주었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머슴이 다시 아들에게 힘든 일을 시켰지만 이미 아버지께 용서를 받은 아들은 머슴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대가로 구원을 받은 하나님 자녀가 자신의 신분과 권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면 사단의 속임수에 놀아나 종노릇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죄의식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걸리는 무언가가 있다면 하나님께 고백하고 자유함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 1:9)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 받은 대속의 축복을 사실적으로 누려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주어진 권세를 당당하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권세를 사용하지 않으면 응답과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이 예수님을 통해 주어진 권세를 사용함으로 현장을 정복하고, 경제를 정복하고, 문화를 정복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연예인들의 연쇄 자살 사건이 이어지면서 ‘베르테르 효과’라는 말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작품에서 유래된 이 말은 소설 속 주인공인 베르테르가 이미 약혼자가 있는 여인을 사랑하면서 그에 따른 실의와 고독감을 이기지 못하고 권총 자살하자 이 책을 읽은 유럽의 많은 젊은이들이 이를 모방하여 자살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이후 자신이 존경하고 부러워하던 인물이 자살할 경우 모방 자살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5년 영화배우 이은주 씨가 자살한 다음 달에 하루 평균 0.84명이던 자살자 수가 2.13명으로 급증하는 현상이 생겼었다고 합니다. 현재 창세기 3장의 현장은 문제와 사건 속에서 스스로 자멸할 수밖에 없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인간을 파멸시키기 위해 더욱 교묘한 속임수를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이럴 때 일수록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과 권세를 분명히 붙잡아야 합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이를 놓치지 말아야 사단의 속임수에 속지 않고 자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모든 성도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권세를 가지고 삶의 현장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을 살려내는 현장전도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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