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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름 속에서도 폭풍우를 바라볼 수 있는가? (왕상 18:4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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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열왕기상 18:41-46 (구약 548)
제목: 구름 속에서도 폭풍우를 바라볼 수 있는가?

언젠가 중등부 예배 시간에 말씀을 전하면서 이런 얘기를 했다.

1. 유태민족의 우수성은 정평이 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유태인을 연구하면서 내린 결론이 있었다. 그것은 유태인에게는 어느 민족도 따라오지 못하는 열정(독특성) 2가지가 있는데 ① 교육에 대한 열정 ② 신앙에 대한 열정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사람도 참 우수하다. 머리가 뛰어나다. 교육에 대한 열정도 대단하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는 아직도 세계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을까? 무엇이 문제인가? 내가 보기에는 신앙의 열정에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는 그것이 부족하다.

머리도 우수하고, 교육에 대한 열정이야 그들을 능가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신앙에 대한 열정이 부족하다. 심지어는 믿는 가정에서조차 오히려 고3이 되면 신앙을 잠시 내려놓으라는 유혹을 부모들이 한다. 문제는 거기에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신앙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유태인은 구약성경의 모든 부분을 그대로도 다 지킨다. 또 그들은 모든 기회를 사용해서 자녀들을 신앙 교육한다. 신앙에 대한 열정이 오늘날에도 유태민족을 강하게 하고, 우수하게 만들고 있다. 여기까지가 중등부 학생들과 나누었던 얘기이다.

그 때 저는 이런 얘기를 했던 것이 기억난다. “왜 신앙이 사람을 우수한 사람으로 만드는가? 하는 것은 제가 기회가 되면 다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설교가 다 끝나고, 중등부 예배가 끝나고 중등부 전도사님이 오셔서 저에게 그렇게 말씀했다. “제 2탄을 기대하겠습니다.” - 이 뜻은 “왜 신앙이 사람을 우수한 사람으로 만드는지 다음에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뜻이겠다. 그래서 오늘은 여기에서부터 설교를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1. 왜 신앙이 사람을 우수하게 만들까? 과연 이것이 확실한 근거가 있는 얘기일까? 물론 우리는 그 근거를 성경에서 찾을 수도 있다. 성경에는 “여호와를 인정하는 사람이 지혜롭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확실한 근거가 되지만 사람들의 연구도 한 번 살펴보자.

  유태 민족은 고도의 논리적, 추상적 사고력을 요구하는 학문이나 사업 면에서 여러 인물들을 배출시키고 있다.
  이론 물리학에서는 앨버트 아인슈타인, 심리학에서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철학에서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확립한 칼 마르크스가 있다.

  상업 분야에서도 실제로 물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금융, 유통 등 돈이나 물건의 유통에 관계되는 비즈니스로 성공한 예가 많다. 뉴욕의 금융가인 월가에서 일하는 금융 중개인의 반 수 이상은 유태인이며, 미국인이 소매상품에 지불하는 금액 중 총액의 17%를 차지하는 카탈로그 판매회사인 ‘시어즈 로바크’도 유대인이 경영하고 있다. 왜 유태인은 우수한 민족이 되었을까?

  그것은 유태인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내는 논리적 사고와 추상력, 상상력이 뛰어난 이유가 어릴 때부터 ‘추상(상상)으로서의 신 개념’에 대해서 줄곧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왔기 때문이다. 유태인은 모든 우상숭배를 거부한다. 유태인은 오직 유일신 여호와를 믿는다. 유일신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우리는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그러나 유대교에서 하나님을 인간으로 그린 예는 없었다. 유대교에 있어서 신(하나님)은 언제나 추상의 영역에 있었고, 그런 뜻에서 유태인은 늘 ‘구상화(구체화)할 수 없는 신’을 생각하도록 훈련받아 왔다. 그래서 이런 것들이 사물을 논리적으로,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동기가 된다는 것이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존재하는 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크나큰 지적 자극이 되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늘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기독교신앙이 학생들의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그 반대이다. 수능시험에서 몇 점 더 맞는 그런 수준이 아니라 정말 인생을 살면서 자녀들이 지혜를 갖고 살기를 원하는가? 그러면 유태인들의 철저한 신앙교육은 우리들에게 중요한 통찰력을 준다. “항상 신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라.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존재하는 신은, 아이들의 논리력과 추상력을 키우는 지적 자극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유태인보다 한 발자국 더 나가야 한다. 유태인은 하나님을 추상적으로 생각한다. 절대로 보이지 않는 분을 보이는 분으로 구체화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들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이란 우리의 머릿속에서 추상적으로, 상상으로만 존재하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관련을 맺고,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우리를 인도하시며,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늘 동행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가르쳐야 한다.

2. 가장 좋은 설교는 어떤 설교일까? 저는 “가장 좋은 설교는 설교를 듣는 사람들의 머리와 마음속에서 상상이 일어나는 설교”라고 생각한다. 뛰어난 설교학자 워렌 위어스비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가 그렇게 수많은 설교를 들으면서도 변화가 없는 것은 설교가 상상을 잃었기 때문이요, 그 설교를 듣는 우리 안에서 상상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의무적으로 출석해서 소위 성경적이라는 설교를 꼬박꼬박 듣는데, 교회 밖에 나가서는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름없이 사는 이유가 뭘까? 목회자들이 딜레마에 빠져 고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대체 연구하고 기도하고 설교해서 얻는 게 뭐냐? 하는 고민이 설교자에게 있다. 여기에 대해서 간단하게 답할 수는 없지만 나는 그 한 가지 이유가 교인들이 너무 상상에 주려 있기 때문은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성경도 많이 배우고 설교도 줄곧 듣지만, 한 번도 성경의 진리가 그들의 상상에까지 미치는 법이 없이 끝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머릿속에 성경지식을 차곡차곡 쌓고 누가 물어보면 그런 지식을 선뜻 꺼낼 수 있을 정도로 배우지만, 하나님과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관한 진리가 그들의 상상에까지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워렌 위어스비는 단호하게 말한다. ‘말씀을 듣는 사람’이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되지 못하는 까닭은 ‘말씀을 듣는 행위’가 ‘말씀을 보는 행위’로 전환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왜 그리스도인들이 불순종하는가? 왜 불순종이 우리의 체질이 되어 버렸는가? 워렌 위어스비에 의하면 이유는 한 가지이다. 사람들이 상상에 주려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설교를 들을 때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상상이 몇 번이나 일어났는가? 설교를 들을 때 ‘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면 이렇게 되겠구나! 이런 일들이 일어나겠구나!’ 가슴이 뛰어본 적이 있는가? 하나님에 대한 설교를 들을 때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선명하게 보였는가? 그 살아계신 하나님이 선명하게 상상이 되었는가? 순종에 대한 설교를 들을 때 순종하면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선명하게 보였는가? 기도에 대한 설교를 들을 때 내가 기도하고 난 다음 내 문제가 해결되고, 고통이 떠나가고, 평강이 찾아오고, 나는 말할 수 없는 기쁨 속에 있다는 것이 상상이 되었는가? 기도하면서 여러분은 상상을 사용해 본 적이 있는가? 기도하기 전과 기도하고 난 후에 모습이 선명하게 구분이 되었는가? 여러분의 신앙 속에는 이 거룩한 상상이 들어있는가?

3. 그렇다면 우리 안에서 이렇게 신앙의 상상이 일어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믿음이다. 상상은 우리가 아무렇게나 만들어내는 공상이 아니라 우리 안에 믿음을 가득 가질 때 품게 되는 환상이요 비전이다.

  오늘 성경말씀은 우리들에게 믿음이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 한바탕 지독한 영적 싸움을 벌였다. 그는 승리하였다. 그러나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이 하나 있었는데 그 땅에 3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던 지독한 가뭄이었다. 아직 그 땅은 메말랐다. 대지는 타들어 갈대로 타들어 갔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 타들어 가는 불덩이의 광야 속에서도 큰 비의 소리를 듣는다. 그래서 엘리야는 아합에게 그렇게 말했다.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그리고 그는 갈멜산 꼭대기에서 얼굴을 무릎 사이에 묻고 간절히 기도한다. 그는 기도하면서 상상했음이 틀림없다. 메마른 대지를 큰 비가 적시는 환상을 보았음에 틀림없다. 그의 기도에 거룩한 상상력을 불어넣었던 것은 엘리야의 믿음이었다.

  사환에게 바다 쪽을 바라보라고 했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엘리야는 일곱 번까지 그렇게 하라고 했다. 마침내 그렇게 하기를 일곱 번이 되었을 때 바다 쪽에서 손바닥만 한 작은 구름이 일어났다. 그러자 엘리야는 아합에게 말한다. “큰 비가 올 테니 비에 막히지 않도록 마차를 준비하고 내려가소서.”

  우리는 여기에서 엘리야의 거대한 믿음을 본다. 그는 타는 듯 한 대지 위에 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기도하는 가운데 작은 구름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도, 마침내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지금은 그 구름이 아이의 손만 한 작은 구름이라고 할지라도 조금 후에는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고, 하늘이 캄캄해지고, 뇌성이 일어나고, 큰 비가 오리라는 것을 보았다. 엘리야의 마음속에서 이 모든 것을 상상하고, 눈 속에서 이 모든 것을 바라보게 했던 것은 엘리야의 믿음이었다.

  사랑하는 교사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 엘리야의 믿음이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작열하는 태양에 대지가 거북등처럼 갈라지고 타들어가도 단비가 촉촉이 내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영혼이 세상의 물결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그의 가슴이 메마른다고 해도 하나님의 은혜의 단비가 부어질 수만 있다면 그의 영혼도 촉촉이 적셔져서 파란 대지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바다 쪽을 아무리 바라보아도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고,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해도 한 번 더 한 번만 더 바다를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바다와 같은 그들의 미래를 바라보면서 아무리 애쓰고 힘써도,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해도 낙심하지 않고, 다시 한 번 눈을 들어 그들의 미래를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비록 손바닥만 한 구름이지만 조금 후에는 바람이 일어나고, 세찬 폭풍우가 불어올 수 있다는 것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한 없이 어리고, 연약하고, 가능성이 없어 보여도 그들이 자라나면서 성령의 바람이 불어온다면 그들도 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지금은 작은 손만 한 구름 같은 가능성밖에 없어도, 그 가능성으로 인해서 우리들의 자녀를 큰 비와 같은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이 있었으면 좋겠다.

  제가 신대원에서 공부할 때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님이 오셔서 목회실습 과목을 가르치셨다. 그 분의 강의 가운데 기억나는 것은 “농부목회”라는 말이었다. 목사란 농부와 같은 심정과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었다. 농부는 차가운 대지위에 씨앗을 뿌린다. 흙을 그 위에 덮는 것도 모자라서 발로 밟는다. 그리고 그는 뒤돌아서 집으로 온다. 농부는 며칠 후에, 혹은 몇 달 후에 작은 씨앗이, 흙에 덮여버려서 없어진 것 같은 그 땅에서 아름다운 새싹이 필 것을 믿는다. 농부의 믿음은 대단한 것이다. 목사도 농부와 같은 마음과 심정을 가져야 한다고 하셨다. 뿐만 아니라 교사인 우리들도 농부가 되어야 한다. 내가 외친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져버리는 것 같지만 그 심령 안에서 싹이 나고, 성장하고, 열매를 맺혀가고 있는 것을 믿어야 한다. 나는 심었으니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인 것을 믿으며 뒤돌아설 줄도 알아야 한다. 심고, 북돋아주고, 자라날 것을 믿고 돌아서는 농부의 발길이 우리의 발길이 되어야 한다. 교사 여러분! 여러분은 구름 속에서도 폭풍우가 몰려올 것을 바라보는가? 여러분은 대지위에 뿌려진 씨앗에서도 열매를 따는 꿈을 꾸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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