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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설날] 명절에는 주님을 만나야 하리라! (요 12: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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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는 주님을 만나야 하리라! (요 12:20~33)

시작하는 말

각 민족이나 나라마다 그들만의 고유한 명절은 있기 마련입니다. 이름 그대로 명절은 즐거운 절기이며, 축제입니다. 그러므로 명절은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축제의 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축제는 모든 이들이 모여서 즐기는 절기를 말합니다. 1년에 몇 번밖에 없는 절기입니다.

우리 고유의 명절은 주로 유교적인 전통이 그 뿌리를 하고 있습니다. 유교에는 조상숭배 사상이 그 기조(基調)를 이루고  있습니다. 명절의 차례 제사를 통하여 조상들에게 따뜻한 밥한 끼라도 대접한다는 취지이지만 세월이 지나는 동안 겉치레로 전락했고, 일말(一抹)의 형식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유교의 조상숭배 사상이 우리 기독교의 교리와는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명절이 즐겁기도 하지만 무거운 짐이 될 때가 많습니다.

성경에 명절은 “헤올테, έορτή”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축제, 향연, 전통적으로 해마다 일정하게 지켜 즐기는 날, 특히 종교적인 사건을 기념하여 지키는 절기”를 의미합니다.

명절이 축제가 되고, 즐거운 명절이 되기 위해서는 피차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많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심사숙고가 필요합니다. 명절에 허례허식을 버리고, 나보다는 가족들을 배려하는 아량이 필요합니다. 가족보다는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과 함께 즐기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명절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연합뉴스에 “명절이 싫어 !”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실렸습니다. 직장인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날 1위가 설과 추석 같은 명절로 나타났습니다.

취업포털 커리어에 따르면 최근 20-40대의 남녀 직장인 4522명을 상대로 1년 중 가장 피하고 싶은 날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25.2%가 명절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렇다면 명절을 없애면 좋겠다는 겁니까? 물론 그것은 아닙니다. 명절을 통하여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국민들의 숨통이 잠시나마 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명절을 지혜롭게 지내는 겁니다. 

명절을 가장 피하고 싶다는 응답자들은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많아서(41.8%) 피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른들이나, 남자들이나, 형제들이 젊은이들이나 여자들에게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할 겁니다.  스트레스가 될 만한 일거리를 만들어내지 말아야 할 겁니다.

명절은 모든 이들의 명절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명절은 만남의 절기요, 관계개선의 기회입니다. 가족들과 친족들끼리의 오해와 앙금을 풀어버리는 계기가 될수도 있습니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해서(17.1%)라고 대답했습니다. 현대인들은 남을 위해 봉사하는 일에 길들여 있질 않습니다. 더욱이 실속 없는 봉사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관심이 없는 봉사는 하기 싫어합니다. 짜증을 냅니다.

특히 제사 제물 준비하는 일, 대가족들의 음식 준비하는 일,  뒤처리까지 여자들의 몫이니 부담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 있습니다.  봉사하기를 싫어하는 젊은이들도 문제지만 일거리를 너무 많이 만들어 명절을 짜증나게 하는 어른들도 문제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금전적인 손실이 많아서(14.9%) 등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20대~40대까지 명절에 금전적인 손실이 많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유인지도 모릅니다. 결혼준비를 한다거나, 갖 결혼을 했거나, 집장만을 준비하고 있거나, 집을 준비했어도 아직 은행 융자가 정리되지 않은 시점입니다. 게다가 슬하의 아이들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고나면 자라나는 시점입니다. 심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상당히 쫓기는 시기입니다.

이런 시기에 명절을 당하여 간소하게 지내면 즐거운 명절이 될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음식값, 어른들 선물값, 어른들 용돈을 합치면 적게는 40-50만원, 많게는 100만원이 훨씬 넘어가는 예도 없지 않아 있다고 합니다.  이런 명절을 지나고 나면 탈진하고, 허탈감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겁니다. 이러고야 어찌 명절이 반가울 수만  있겠습니까?

어른들의 생각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녀들에게, 젊은이들에게 바라는 것이 많으면 서운할 일이 많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바라지 않으면 서운할게 없습니다. 어떤 부모는 자식이 자립도 하지 못했는데 지나치게 바라는 못난 부모도 있습니다. 어떤 자식은 살만한데도 부모를 만홀히 여기는 자가 없지 않습니다. 두 부류 다 잘못입니다.

부모가 형편이 돌아간다면 자식들에게 작은 봉투 받고 큰 봉투 쥐어주고, 작은 선물 받고 큰 선물 쥐어주어 보낸다면 왜 젊은이들이 명절을 싫어하겠습니까? 오히려 명절을 기다릴 수도 있을 겁니다. 음식도 부모들이 다 준비해 놓고, 자식들이 와서 즐겁게 지내고 가도록 배려한다면 분위기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겁니다.  물론 부모가 능력이 있을 때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어떻던 명절은 모두가 즐거워야 합니다. 어른들이나, 남자들은 즐겁고 여자들이나 며느리들이 괴로우면 이미 밝은 명절이 아니라 어두운 씀바귀를 뜯어 삼키는 성경의 무교절이 되고 말겁니다.

섬김의 주님을 만나야 함

섬김의 주님을 만나 섬기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피차간에 섬김으로 즐거움을 얻는 것이 명절입니다. 명절에는 어린이들을 섬기고, 노약자들을 섬기고, 어른들을 섬기고, 젊은 이들을 섬기고, 하나님을 섬기고, 주님을 섬기는 법을 배우는 명절이어야 합니다. 모두가 피차간에 몸으로, 물질로, 정성으로 섬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살로메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와 절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마20:22)고 물으셨습니다. 살로메가 자기의 두  아들을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혀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20:26-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고 말씀하셨습니다.

명절에는 예수님처럼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섬기는 자세로, 섬기는 자로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섬기는 자에게 평안의 축복으로 채워주십니다. 섬기는 자에게 은총과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섬기는 자에게 장래를 약속하십니다.

희생의 주님을 만나야 함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헬라인 몇이 제자들에게 부탁하여 예수님을 만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명절에 예수님을 만나 무슨 좋은 일을 보고자 했습니다. 혹시 덕을 볼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3-24)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명절은 영광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영광은 희생 없이는 절대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희생과 영광은 내외간의 조화입니다. 희생의 내조 없이는 절대 영광의 면류관이 없습니다. 영광의 배후에는 반드시 희생의 내조가 있습니다.

희생하는 방법을 한 알의 밀알을 비유로 들어서 설명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원리를 말씀하셨습니다.

명절에 여성들은 2중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합니다. 가사 노동과 친인척들의 잔소리라는 겁니다. 가사노동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친척들의 잔소리는 오히려 늘어났다는 겁니다. “애는 왜 안 낳느냐? 애는 왜 더 안 낳느냐?, 아범얼굴이 까칠하구나, 애들은 언제 대학 가느냐?”는 등등의 잔소리가 부담이 된다는 겁니다.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이를 “다빈치의 천사와 악마 효과”라고 분석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방방곡곡을 헤매 천사(혹은 예수)와 악마(혹은 유다)의 모델을 각각 찾아 그렸지만, 나중에 보니 결국 동일 인물이었다는 것입니다. 같은 말이라도 어떤 상황에서는 엔도르핀을 돋게 만드는 말이 될 수도, 분노를 일으킬 만큼 상처를 주는 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명절에 고부간의 갈등도 심화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부간의 갈등도 하기 나름입니다. 시어머니를 경쟁상대로 생각지 말고, 나의 남편을 세상에 태어나게 만든 어른이라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남편이 귀한 만큼 시어머니가 귀중한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니다.

며느리도 경쟁상대가 아니라는 개념이 필요합니다. 어미에게서 아들을 빼앗아 간 경쟁자가 아니라, 내 아들을 평생 즐겁고, 평안하게 해줄 사람으로 아들을 안심하고 평생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고마운 존재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존재가 내 며느리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쩌면 딸보다 며느리가 훨씬 더 귀한 존재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귀하고, 아름답고, 예쁘게 보일겁니다. 그렇다면 고부간의 사이는 훨씬 더 수월하고 아름다워지게 됩니다.

끝맺는 말

유월절에 한 마리 어린양이 희생됨으로 유대인들에게는 구원의 즐거운 명절이 되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한 마리 어린 양과 같은 예수 그리스가 희생됨으로 인류가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의 민족적인 명절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면, 그리스도인들이 흩어져서 만나는 이들에게 복음을 증거한다면 진짜 이 나라와 민족이 구원받는 명절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좋은 명절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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