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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설날] 복의 복을 받읍시다 (대상 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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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설날입니다. 전통적으로 우리 민족은 설날에 하루 종일 복을 빌고 좋은 말을 많이 하고 들으면 일 년 내내 좋은 일이 생기고 또 설날에 좋은 음식을 배부르게 먹으면 일년 내내 배부르게 살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적어도 이 날만은 좋은 말과 좋은 음식으로 가득한 명절이 되도록 힘썼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렷을적 아련한 추억을 떠올려보면 이 날을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성도 여러분들에게 그런 향수를 다시 한번 떠올려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정말로 여러분들에게 일년 내내 좋은 일이 생기고 일년 내내 배부르게 사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비록 좋지 못한 환경이 주어졌지만 복에 복이 넘치는 삶을 살았던 한 사람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들도 복의 복이 넘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야베스는 기도하여 복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기도는 반드시 복의 복을 가져옵니다.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야베스는 태어날 때부터 존귀한 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본래 야베스 라는 이름의 뜻은 "슬픔의 사람, 고통의 사람, 괴로운 사람"이란 뜻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슬픔과 고통이 있었는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가 그를 낳을 때 수고로이 낳았기 때문에 " 야베스"라고 이름을 지을 정도 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로 인생을 변화시켜나아갔습니다. 환경을 변화시켜갔습니다. 그는 그의 형제들보다  더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야베스가 구하고 받은 복의 복은 무엇일까요?

  1. 지경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영역, 지경, 한계가 넓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경이 넓어져야 합니다. 확장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믿음의 지경, 영적 지경이 넓혀져야 합니다. 내가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믿음의 세계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그러나 옳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가 경험하지 못했을 뿐이지 하나님의 능력에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셉은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상인들에게 팔려갔고 종살이와 감옥살이를 번갈아했습니다. 그 지경은 정말 좁은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양치기소년이였습니다. 그 지경은 정말 좁았습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정말 그 환경의 지경은 너무나도 좁아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을 힘입어 지경을 넓힌 사람들이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포로 끌려갔지만 왕 다음으로 위대한 사람이 되는 지경을 넓힌 사람입니다. 

  저는 우리성도들의 영향력이 넓어지기를 소원합니다.
우리 한광교회의 영향력이 더 넓어지기를 바랍니다.

  데일겔러웨이가 쓴 글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도무지 성장하기를 거부하는 한 교회가 있었는데 교회의 맴버는 4명이었습니다. 이 교회는 4명이 똘똘 뭉쳐서 더 이상의 성장을 거부했습니다. 왜 그랬을 것 같습니까? 데일겔러웨이가 이런 해답을 내렸습니다. 그 이유는 그 교회의 공동묘지가 4개밖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무덤자리가 4개밖에 안 남아서 거기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전부다 라이벌이었다는 것입니다.
많은 크리스챤들이 좀더 진취적이거나 좀더 진보된 신앙 생각을 갖지 못하고 과거에 답습되거나 너무 소극적이고 폐쇄적인 생각을 갖는 것을 왕왕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비전이 너무나 크고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너무나 분명한데도 우리의 신앙의 사이즈를 키우지 못한 채 과거에 혹은 세상 속에 국한시키는 이런 약한 모습들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지경 넓혀야 합니다. 꿈과 비젼을 키워야 합니다. 
우리 민족의 영향력이 더 넓어지기를 기대합니다.

  2. 주님의 손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터키 공화국 역사상 처음으로 자동차를 생산했을 때, 그 감격적인 순간을 축하하기 위해 국회의사당 앞에서 축제를 열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씨말 거셀(Cemal Gursel)이 시승을 하게 되답니다. 대통령을 태운 자동차가 붕 - 하는 소리와 함께 미끄러져 나가자, 지켜보던 사람들은 기뻐하며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러나 자동차는 300미터쯤 가더니 푸드덕거리며 시동이 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랑스럽게 시승했던 대통령의 웃음이 사라지고, 얼굴이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관계자들이 달려오고 기술자들이 뛰어가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체크하며 한참이나 긴장된 시간이 흐른 후에, 책임자가 와서 보고합니다.
"죄송합니다. 각하, 너무나 흥분된 나머지 자동차에 가솔린을 넣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아무리 좋은 차라도 기름 없이는 한 발짝도 갈 수 없는 법입니다.
기름은 자동차가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주님의 손은 돕는 손입니다. 지키시는 손입니다. 주님의 손은 의로운 손이십니다. 주님의 손은 우리를 위해서 못박힌 손입니다. 능력의 보혈이 흐르는 손입니다. 그 주님의 손길이 닿는 곳에 구원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죄로 죽게 된 영혼들이 되살아나고 병든 생명이 깨끗함을 얻습니다. 주님의 손이 함께 하시면 안전합니다. 주님의 손이 함께 하시면 표적과 기적이 있습니다. 주님의 손에는 부와 귀와 권세와 권능이 있습니다. 주의 손이 여러분과 함께 하여 붙잡아주시고 도우시는 축복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3. 환난을 벗나고 근심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미래학자들은 한결같이 앞으로 점점 환난은 많아질 것이라고 예고 하고 있으며 근심이 점점 많아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시풍속으로 자리잡은 많은 전통적이고 주술적인 것들이 모두 환난을 벗어나근심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생긴 것입니다. 이해가 됩니다. 인간은 강한 것 같으면서도 약합니다. 지혜로운 것 같으면서 우매합니다. 환난과 근심 앞에서는 한 없이 작아지고 흔들리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온갖 미신적인 일들도 하게 되고 의지할 것이 못되는 것들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예로 설날 밤에 야광(夜光)이라는 귀신이 인가에 들어와 사람들의 신을 신어 보아서 자기 발에 맞으면 신고 간다는 속설이 있는데, 만일 신을 잃어버리면 신 임자는 그해 운수가 나쁘 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아이들과 어른들이 모두 신을 방안에 들여놓습니다. 이날 밤에는 모두 불을 끄고 일찍 자는데, 야광귀를 막기 위해 대문 위에다 체를 걸어 두니, 이것은 야광귀가 와서 체의 구멍을 세어 보다가 잘못 세어 다시 또 세고, 세고 하다가 신을 신어 보는 것을 잊어버리고, 새벽닭이 울면 물러가게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여러분 주님없는 삶을 살 때는 우리가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주님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저 죽어가는 영혼들은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복음 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풍성하고 멋지고 아름다운 삶을 살도록 도와줘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도의 삶을 꾀제제하고 확신도 없이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고 살왔었다면 이 시간 완전히  자신감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의 삶이야 말로 풍성한 삶이며 멋진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복의 복을 주십니다. 그 지경을 넓혀주시고, 주의 손이 함께 하여 도우시며, 환난을 벗어나게 하시고 근심대신에 평안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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