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기도의 사람(2) - 야곱 (창 32:22-32)

  • 잡초 잡초
  • 404
  • 0

첨부 1



(창 47:9)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험악한 세월”이란 말을 다른 번역본에서는 “고달픈 세월” 또는 “고통의 세월”이라 번역했다. 야곱의 생애 중에 가장 고달팠던 시기는 외삼촌댁에서 20년간 품군으로 지냈을 때였을 것이다.

야곱은 외삼촌 집에서 자기 가족들과 소유를 이끌고 도망치듯 빠져 나왔다. 이 사실을 알고 외삼촌이 사람들을 데리고 좇아왔다. 그때 야곱이 삼촌에게 이렇게 말했다.

(창 31:40)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
(창 31:41) 내가 외삼촌의 집에 거한 이 이십년에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 사년, 외삼촌의 양떼를 위하여 육년을 외삼촌을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값을 열번이나 변역하셨으니

아버지 이삭과 형 에서를 속여 축복기도를 받은 댓가를 외삼촌댁에서 톡톡히 받았던 것이다. 이제 그가 외삼촌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되었으나 그의 고달픈 세월은 끝나지 않았다. 또 다른 시련의 순간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곱의 고향인 가나안 땅에 가까이 이를 수록 그의 기억에 잊혀졌던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바로 형 에서였다. 20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마음의 맺혀졌던 분노가 삭혀졌으리라 생각하고 크게 근심하지 않았다. 그는 사환을 형 에서에게로 보냈다.

(창 32:3) 야곱이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로 사자들을 자기보다 앞서 보내며
(창 32:4) 그들에게 부탁하여 가로되 너희는 이같이 내 주 에서에게 고하라 주의 종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에게 붙여서 지금까지 있었사오며
(창 32:5) 내게 소와 나귀와 양떼와 노비가 있사오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고하고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 하더라 하라 하였더니

그러나 사환들로부터 받은 소식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형 에서가 복수하기 위해 군사 400명을 거느리고 이쪽으로 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야곱은 정신이 혼란해졌다. 에서는 20년간 오늘을 기다리며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던 것이었다. 성경은 야곱의 심리상태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창 32:7)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

그러나 야곱은 옛날 어머니의 도움을 받던 연약한 야곱이 아니었다. 20년 간 외삼촌 댁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강해져 있었다. 그는 이 위기적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자구책을 강구했다.

1)자신의 소유를 두 떼로 나누었다.
(창 32:7)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종자와 양과 소와 약대를 두 떼로 나누고 (창 32:8) 가로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야곱다운 생각이었다.

2)기도하기 시작했다.
(창 32:9) 야곱이 또 가로되 나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창 32:10)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조금 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떼나 이루었나이다
(창 32:11)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하옴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냄이니이다
(창 32:12)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정녕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그 기도의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구원해 주실 것을 간청하는 것이었다. 그는 형에서를 피해 다른 안전한 곳으로 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가지 않았다.

그의 기도 내용 속에서 야곱이 연단을 통해 믿음이 성숙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형을 속일 때는 눈 앞의 축복만 보여서 그것을 빼앗으려는 조급한 마음으로 비겁한 짓을 감행했으나 지금은 달라졌다. 주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대적이 있는 곳을 향해 위험을 무릅쓰고 왔던 것이다. 그는 지금 이와 같은 위기적 상황을 기도로 해결하려 하고 있었다.

3)형에게 보낼 예물을 준비했다(창 32:13-20)
그는 형을 위해 제일 좋은 우양으로 580마리를 준비했다. 그리고 세 떼로 나누었다. 그리고 각 떼마다 거리를 두고 종들에게 잘 일러 두었다.

(창 32:17) 그가 또 앞선 자에게 부탁하여 가로되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묻기를 네가 뉘 사람이며 어디로 가느냐 네 앞엣것은 뉘 것이냐 하거든
(창 32:18) 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하고

둘째, 세째 떼를 만났을 때에도 똑같이 말하도록 명하였다. 야곱이 이렇게 한 이유는 형의 감정을 풀기 위한 감동작전이었다.

(창 32:20)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의 생각에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으리라 함이었더라
야곱의 입장에서 이 정도로하면 형도 감정을 풀 것이다 생각했다. 꾀돌이 야곱다운 치밀한 계획이었다. 그래서 예물을 형 에서에게로 보내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밤이 깊어갈 수록 잠이 오질 않았다. 성난 에서의 모습과 400인의 군사들이 무장하고 달려 오는 모습을 연상해보니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더욱 강하게 그의 마음을 사로 잡았을 것이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기 소유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두 떼로 나누고, 기도하고, 예물을 보낸 것 가지고는 효과가 날 것 같지 않았다. 만약 야곱이 보낸 예물을 받지 않고 형 에서가 독이 오른 기세로 쳐들어 온다면 그의 모든 가족과 소유는 살아남을 것 같지 않았다. 그 동안의 공든 탑이 일순간에 무너질 그의 생애 최대의 위기의 순간이 닥아온 것을 느낀 것이다. 야곱은 비로소 인간의 한계를 느낀 것이다. “아하, 내 힘으로 내 꾀로 될 일이 아니구나!”

20년 간,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품꾼 노릇을 하며 눈물을 많이 흘렸다. 그의 연단이 신앙의 성숙을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그는 이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는 믿음을 갖게 되었고,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자신의 실력을 의지하고 있었다.

20년 전, 에서를 피하여 하란으로 도망칠 때 그의 손에는 지팡이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가족과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거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지만 내 수고하고 노력하고 머리를 썼기에 이정도 된 거야!”
이젠 잔 머리를 굴려도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모든 소유를 강 건너편으로 보내고 홀로 남았다.

박윤선목사님은, 야곱이 홀로 남은 이유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기도하기 위함이었다”라고 해석했다. 지금의 기도와 앞서 9-12절의 기도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다. 앞에서의 기도는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않았다. 소망이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얍복강가에서의 기도는 절박한 상황에서의 기도였다.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가 아니라 반드시 도와주셔야만 합니다”의 기도였다. 자기를 포기한 상태가 된 것이다.

그때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야곱에게 다가 가셨다. 야곱은 그 사람을 붙잡았다. 야곱은 놓지 않았다. 날이 새도록 씨름했다.

수영할 줄 모르는 사람이 물에 빠졌을 때 살기위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구조자에게 달라붙듯이 그렇게 달라 붙었다. 얼마나 악착같이 달라붙었으면 천사가 야곱의 환도뼈를 쳤겠는가?

그래도 야곱은 놓지 않았다. 이제 전세는 완전히 역전되어서 천사가 이렇게 말한다.
(창 32:26)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결국 천사가 야곱을 축복했다.
(창 32: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창 32:28)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이 조심스럽다. 문자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으로 모습으로 오셔서 얍복강가에서 야곱과 한 판 씨름에 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어떤 사람의 존재를 천사라 해도 천사와 인간의 씨름에서 천사가 질 수는 없는 것이다. “천사가 져 줬다. 하나님께서 져 줬다”라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김홍전목사, “하나님을 이겼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넘어 오라고 하신 산을 잘 넘었다는 뜻이다”라고 해석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시험에 합격했다는 의미인 것이다. 대다수의 주석가들도 이 씨름을 야곱을 향한 하나님의 시험이었다고 본다. 골탕 먹이기 위한 시험이 아니라 그의 믿음을 더욱 강화시키기 위한 시험이라는 것이다. 이 해석이 옳다는 증거는 나타난 결과에 의해서 알 수 있다.

1)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얻은 것이다.
천사가 야곱에게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름을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니다. 야곱의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야곱은 아직도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그의 이름대로 “붙잡는 자” “속이는 자”의 상태로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스라엘”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 의미는 “통치하다”,“하나님의 왕자”라는 뜻이다. 이 씨름을 통해 그는 신분의 변화가 이뤄졌다. 세상적인 인생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로서의 명예와 영광을 얻었다.

2)하나님을 보게 되었다.
(창 32:30)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죄인인 인간이 거룩한 영이신 하나님을 볼 수 없다.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은 사람에 따라서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한 합당한 해석은 야곱이 이 씨름을 통해서 하나님을 대면하여 본 것 같은 강렬한 은혜의 체험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래서 야곱은 그곳을 기념하여 기억하기 위하여 “브니엘”이라고 이름 지은 것이다.

3)문제가 해결되었다.
(창 33: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아서 안고 목을 어긋맞기고 그와 입맞추고 피차 우니라

성경은 형제간의 감동적인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야곱은 예물로 에서의 감정을 풀려고 했으나 부질 없는 짓이었다.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을 어루만지시므로 20년 간의 맺힌 분노가 눈 녹듯 사라지고 서로 끌어안고 입맞추고 울었다. 야곱이 변화되니까 주위 사람도 변화되고 환경도 변화되는 것이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인생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답답하고 두려운 일을 만날 때가 있다. 그 때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야곱이 그 문제 해결의 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가 어떻게 기도했는가?

1)홀로 남아 기도했다.
붙잡고 있는 모든 것을 놓고 홀로 하나님을 만나라. 사람의 생각, 지략을 버리고, 분주함을 버리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람들은 고독을 피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때때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홀로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파스칼,“인생이 고난에 빠지는 이유는 고요하지 못한데 있다”라고 말했다.

배수의 진을 치고,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홀로 나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기도원에 정말 기도하려면 둘이 가지 말고 혼자 가라.

2)씨름하듯 하는 기도를 했다.
씨름 선수들이 붙잡고 땀을 흘리는 모습을 보았는가? 이기기 위해서 땀을 쏟고 기력을 다하는 것이다. 야곱은 씨름하다가 환도뼈가 위골되었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받기 원한다면 씨름하는 듯하는 기도를 경험해 보기 바란다.

(호 12:4)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3)응답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야곱은 환도뼈가 위골 되었음도 불구하고 붙잡고 놓지 않았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원하고 복 받기 원한다면 기도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모두들 야베스의 기도를 좋아한다.

(대상 4: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그렇다면 여러분! 야베스가 어떻게 기도했을까? 생각해 보았는가? 그냥 마음으로 바라고 입술로 몇 마디 중얼거리니까 이런 복을 받았는가? 성경에 나타난 기도의 사람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야곱의 기도를 악착같이 떼쓰는 기도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야곱의 생애를 이해하면서 살펴볼 때 그는 무조건 끈질기게 졸라대기만 했던 기도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속에 있었음을 알았고, 하나님의 뜻이 자신을 통해서 이뤄져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좁게는 자신의 가족과 소유를 위해서 기도했지만 멀리는 그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에게 하신 언약을 바라보았기에 얍복강가에서 씨름하듯 맹렬히 달라 붙었던 것이다.
(창 32: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

어떤 분은 말하기를 절름발이가 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겠다고 끝까지 버티고 나가는 근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야곱은 환도뼈가 위골되어 절었으나 그의 마음은 하늘을 나는 것처럼 가벼웠을 것이고 그의 심령은 하나님의 은혜와 감사로 충만했을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야곱이 아니었다. 그는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우리의 인생길에서 곤고한 일을 당할 때 낙심하지 말라. 그 위기가 새로운 삶의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야곱과 같이 기도로 매달려 보라.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을 얻었다. 우리의 영적 나태함과 불순종으로 인해 거룩한 이름이 땅에 떨어졌다면 야곱과 같은 기도로 그 명예를 다시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세상에서 폼나게 잘 나가지 못한다 할지라도, 야곱과 같이 절면서라도 찬송하며 감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바란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