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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야로의 부르심 (신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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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8: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 8: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신 8: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신 8:6)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교인들을 돌아보다 보면 어려운 시련을 만나 힘에 지나도록 씨름하는 모습들을 종종 맞닥뜨립니다.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들인데 왜 위기와 실패를 만날까요? 또는 심각한 질병을 만나거나, 지독한 핍박에 시달리는 것일까요?  또 어떤 사람은 시험을 만나 주저 앉거나 유혹을 만나 자주 넘어지는 것일까요?  저런 어려움이 없이 순조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는 없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갖습니다.
본문 2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하신 것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백성들로 하여금 광야로 내 몰아 고생을 맛보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 중에 고생하며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광야길을 걷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왜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고생을 하게 하실까요? 왜 우리들로 하여금 광야 길을 걷게하실까요?

1. 순종을 훈련시키기 위해서입니다.(2)

  광야의 길을 걷게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곧 바로 약속의 땅으로 이끌지 아니하시고 광야를 빙 돌아 지나가시게 하십니다.  40년이라는 긴 시간을 광야생활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였을까 짐작이 됩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크게 쓰신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광야생활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은 왕궁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고 동족을 위해 헌신하려는 모세를 곧바로 사용하지 않으시고 먼저 광야로  내 쫓으셨다가 40년동안 낮아질대로 낮추시고 충분히 다듬으신 후 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는 지도자로 세우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도 사무엘선지자를 보내 왕으로 기름을 부으시고 곧바로 왕위에 앉하시지 않고 광야로 내 몰으셨습니다. 광야에서 사울에게 쫓기며 피를 말리는 경험을 하게 하신 후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실제 다윗의 시편은 왕궁에서 보다 대부분 광야생활을 하면서 지은 것들입니다. 만약 다윗에게 광야생활이 없었다면 그도 사울처럼 왕위에 올라 존귀해졌을 때 처음처럼 하나님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하고 무너졌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낮추시려고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자만과 자기의로 충만한 다듬어지지 않은 사람을 그대로는 쓸 수가 없기 때문에 광야로 몰아가셔서 낮추시고 깍고 다듬어 교만과 자만 그리고 오만 등의 거치른 성품을 충분히 다듬으셔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을 만드신 후에 쓰시고자 하십니다.
세계 역사상 교회 음악 작곡가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요한 세바스챤 바하' 일 것입니다. 그는 황무지 같은 가정 환경 속에서 장미꽃같은 아름다운 음악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의 음악은 황무지에 핀 아름다운 한 송이 꽃과 같습니다. 그야말로 그의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어릴 때 돌아가셨습니다. 그를 키워준 형이 있었지만 형은 자기가 먹여 살려야만 되는 동생을 몹시 미워하였다고 합니다. 마리아와 결혼하였지만 일곱 자녀를 낳고 바하가 레오폴드 후작과 연주 여행을 떠난 사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바하가 집에 돌아 왔을 때는 이미 장례식까지 끝난 뒤였습니다. 다시 결혼하여 11명의 아들과 9명의 딸을 두었지만 그 중 10명의 자녀가 어려서 죽었습니다. 자식이 자신보다 먼저 죽는 모습을 본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황무지가겠습니까? 한 사람도 아니고 열 자녀가 먼저 갔습니다. 그의 자녀 가운데는 정신 박약아가 있었습니다. 노년에 자신도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 되고 말았고 뇌일혈로 쓰러져 반신불수까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둘째 부인 안나 마크달레나가 1760년 2월 27일에 죽었을 때 장례 치를 형편이 못되어 장례식은 빈민구제를 위한 조치로 치러졌을 정도입니다. 참으로 황무지 같은 환경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처절한 환경 속에서 작곡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영혼을 완전히 사로잡을 만큼 웅장하고 장엄한 찬양과 경배와 감사의 노래들, 그야말로 불후의 명작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는 늘 말하기를 "모든 음악의 유익한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보내고 사람에게 즐거운 감정을 솟아나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음악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다고 믿었고 음악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지 않으면 안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정직하게 그리스도는 자신의 구주인 것을 고백하며 황무지 같은 자신의 인생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힘을 힘입어 장엄하고 경건한 음악의 꽃을 피웠습니다. 그는 자신이 작곡한 칸타타나 오라토리오의 마지막 부분에 항상 S.D.G라는 글자를 적어 놓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의 첫 번째 글자들입니다. 그리고 오르간 연주만을 위한 작품들의 첫 부분에는 I.N.J 즉 "예수 이름으로"라고 적어 놓았다고 합니다. 현대 음악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바하의 가문에는 약 200년 동안에 걸쳐 저명한 음악가 50여명이 나왔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을 살피시며 시험하시고  명령을 지키는지 순종하는지 보려고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 하나님이 예비하신 기업을 받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신뢰하고 전적으로 의지하며 따르는 순종을 훈련시키고자 광야로 부르신 것입니다. 고난의 광야로 인도하실 때 순종의 사람으로 속히 변화되어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3)

  40년 동안 의복에 헤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발이 부릍지 않게 하셨습니다. 만나로 생활하게 하셨습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을 훈련하는 곳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기 위해 광야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좋은 옷과 좋은 신발이 없이 하루 하루 만나로 살아온 생활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계시록12: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교회를 양육하시느 곳으로 광야를 선택하시고  그곳으로 교회가 나아가게 하셨음을 말씀하시고 있읍니다.  교회는 항상 광야와 같은 세상에 놓여 있습니다.  초대 교회가 그러하였읍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위로가 있어야 사는 곳이 이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인도가 있어야 사는 곳이 광야와  같은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사는 곳이 광야와 같은 세상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씀을 하시는 광야는 어떠한  곳입니까?
1) 참으로 필요한 것들이 없는 곳입니다.
  마실 물이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적으로 물을 주셔야 사는 곳이었읍니다.
  그리고 먹을 것도 없읍니다.  하늘에서 만나를 날마다 내리시므로 사는 곳입니다.
  그리고 낮의 뜨거운 날씨와 밤의 추운 날씨로 인하여 살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구름으로 천막을 치시고 불기둥으로 추위를 이기게 하셨읍니다.
  이러한 광야에서는  오직 매 순간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곳이었읍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도 그러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려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만  살아야 하는 곳입니다.

2) 광야는 사람이 얼마나 무력한가를 알게 하여 주는 곳입니다.
  참으로 사람은 자신을 위하여서도 무엇을 해줄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광야는 사람들을 겸손하게 만드는 곳입니다.
  무엇이 잘 될 때는 자신을 의지하던 사람들도  위기에 처하게 되면 참으로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실패할 때, 곤경에 처할 때 참으로 우리가 연약함을 알고  스스로 겸손하여집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게 됩니다.

3) 광야는 잠시후에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지 못지 못하는 곳입니다.  이러한 어려운  곳에서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서 순종을 길을 가야합니다.

4) 이러한 세상에서 사단은 할 수있는대로 우리들을 시험을 합니다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는 찾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길을 인도하실 때에  때로는 광야를 통과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랑하시기에 어느때는 모든 길을 막아 버리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참으로 광야와 같다는 것을 느끼실 때가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을 하여도 사방으로 막히는 답답한 지경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전후좌우를 살펴 보아도 막연한 곳이 광야입니다 도무지 헤치고 나아갈 길이 없는 난관들을 만나게 됩니다.

  기가 막히는 일을 당하여 어찌할 줄을 알지 못할 때가 바로 우리의 광야입니다. 이러한 곳에서  우리들의 교만한 목을 숙입니다.
그리고 나의 도움이 되어줄 하나님께 무릎을 꿇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들의 눈을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향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훈련을  시키시는  장소로 광야를 택하신 것입니다. 광야 생활을 바르게 대처하는 사람들에게는 유익한 장소입니다.  세상의 모든 끈을 놓아버리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바라고 의지하며 붙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올바로 대처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고난과 위기를 만나면 낙심하고 주저 앉습니다.  신앙 생활을 하다가 시험에 들어서게 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교회 생활을 중단합니다.
  우리가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때에 바르게 대처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어려움들은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바르게 대처하면 유익이 됩니다. 그러나 잘못 대처하면 신앙의 패배자가 됩니다.  어려울수록 더 무릎꿇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풍성하게 받아 승리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금 가진 것이 없어도 말씀을 묵상할 수 있고, 말씀을 나눌 수 있고, 말씀의 가치를 알게하신 것을 감사드립시다.
광야의 힘겨움 속에서 말씀을 향한 마음들이 더 커지고 넗혀지고 삶의 기둥이 되게 하심을 감사드립시다.
광야에서의 불평이 찬양이 되고, 나의 생각이 죽고, 하나님의 말씀이 가치가 되고 의지가 되길 소망합니다.

무엇보다도 광야에서 감사를 배우고  비전을 품게 되기 바랍니다.
모세의 40년의 광야생활을 통하여 출애굽의 비전을 받은 것처럼, 이스라엘이 광야생활 40년을 통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의 비전을 품은 것처럼 우리도 광야생활을 통해 비전을 품어야 합니다.
  모세처럼 다윗처럼 광야로 부르심을 받을 때에 고난과 위기로 부르실때에 성숙과 믿음의 계기로 삼아 크게 쓰임받는 영적 거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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