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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러므로 (롬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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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1,2

  여러분, 지난밤에 편안하셨습니까? 강릉에서 발생한 규모 4.8의 지진 여파로 서울과 경기 일대에서도 진동을 느꼈다고 하더군요. 저는 오늘 새벽까지 하나님의 평화 가운데 잘 자고 아침에야 비로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국은 지진대가 아니라 좀처럼 그런 일이 없지만, 4.8이면 작은 규모가 아닌데 기왓장 몇 개 떨어지고 유리창 몇 개 깨지는 정도로 그친 것이 너무 고맙습니다. 지진은 자연현상의 하나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이 자연의 움직임을 잘 살펴야 합니다.

  구약성경, 특히 신명기 27장과 28장에서 자연현상과 인간의 상태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 악해지면 자연도 악해집니다. 사람들이 악해지면 그 땅이 반발을 합니다. 가나안 땅 사람들이 구제할 길이 없을 정도로 타락했을 때 성경은 “그 땅이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너무 역겨워서 모두 토해버렸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침략으로 모두 죽었습니다. 땅이 협력을 하지 않습니다. 채소도, 과일도 안 나오고 하늘에 비도 없고 이슬도 없습니다. “하늘이 마치 놋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놋으로 만들어져 자연에서 필요한 것들이 생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연환경과 이 땅에 사는 인간의 환경은 많은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번 지진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께서는 종말이 가까우면 지진과 재앙이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마24:7). 20세기에 들어와서 지진이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진 현상을 조사하면서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들어오는 시기에는 지진의 수를 나타나는 그래프가 하늘로 치솟는 형태를 보입니다. 이런 현상을 볼 때 마다 우리가 영적으로 자신을 살피고, 우리로 인해 이 땅이 하늘의 축복을 받게 되길 원합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 정계(政界)에도 지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금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감각을 잃고 있어요. 북쪽은 북쪽대로 남쪽을 흔들며 지진을 일으킵니다. 이 모든 것들을 볼 때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이 땅에 새로운 부흥을 허락하옵소서. 우리를 새롭게 하옵소서. 영적인 변화를 통해 혼란 가운데서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이 땅에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본문은 ‘그러므로’라는 첫마디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는 ‘therefore’ 즉 ‘결론적으로’라는 말입니다. 로마서 1~11장까지 언급한 몇 가지 말씀의 결론으로 12~16장까지 너희가 이렇게 변하라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2절). 금년에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살피고, 성령께서 영혼을 만져주셔서 새롭게 되는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부흥하면 여러분의 가정이 부흥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부흥하면 할렐루야교회가 부흥하고, 할렐루야교회가 부흥하면 한국교회가 부흥합니다. 한국교회가 부흥하면 이 나라가 새로워지고 이 땅에 하나님의 은총이 나타날 것입니다. 남한을 흔들려는 북한 땅이 우리의 기도로 녹아 축복의 땅으로 변하는 시발점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에게 권하노니”(1절).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체험했기 때문에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모든 자비를 인간에게 베푸셨고 그 결과로 우리가 달라졌습니다. 변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예수 믿지 않던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죽었던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된 것입니다. 부모님으로부터 한 번 태어났던 사람들이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 그 자비와 긍휼과 인자와 영원한 사랑을 듣고 변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받아 거듭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여러분이 예수님 때문에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을 아십니까? 한 번 태어난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또 한 번 영적으로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것을 아십니까? 우리는 죄의 노예요 가슴 속 죄성으로 말미암아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죄의 종이었습니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요8:34). 그런데 진리를 알게 되어 죄로부터 해방되고 이제는 영원히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우리는 아무 곳에나 흩어져 있는 부러진 나뭇가지처럼 얼마 후 몽땅 불에 태워질 그런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과 내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참 포도나무에 접붙임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솟아오르는 생명을 받아 영적인 열매를 맺으며 살 수 있는 우리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포도나무의 열매 있는 가지가 된 것을 알고 있습니까? 안다면 이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절).

  옛날의 우리 모두는 죄인이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는 변했습니다.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는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압니다. 자연의 세계를 탐구해도, 어린 생명 하나만 들여다봐도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그 신비하고 놀라우신 창조주, 지혜의 하나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감사하지도 않는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어두워져서 서로서로 욕되게 했으며 진리를 거짓으로 바꿔 놓고 우상을 섬기던 우리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우리 마음에 두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모르던 죄인 된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두었고 합당치 못한 일을 했습니다. 불의하고 추악하고 탐욕과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와 살인과 분쟁과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어리석은 자요, 배역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였습니다. 죄가 인간을 이렇게 파괴시킵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간은 이렇게 산산조각이 납니다.

  아무 공로도 없이 죄의 종으로서 죄 속에서 살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긍휼하심 때문에 모든 죄를 사함 받았습니다. 죽었던 우리가 살아났어요. 옛 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마음속에 오셨습니다. 성령을 가슴속에 모시고 성령과 함께 사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아십니까?

  하나님의 자비를 체험한 사람은 자신을 하나님께 바칩니다. 여러분 중에 많은 분들이 자신을 하나님께 바쳤어요. 마음을 이미 정했습니다. “내가 이 땅에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리라.” 양쪽에 다리를 걸고 살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중에는 아직도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대강 살면서 하나님 앞에 헌신하지 않았다면 이 아침에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여러분께 권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 앞에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구원 받은 자의 마땅한 예배”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헌신할 때, 그 때부터 우리들은 변합니다.

  구원받은 사실을 분명히 알고 하나님 앞에 나 자신을 온전히 바치면 변화가 나타납니다. 헌신하기 전에는 변화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헌신이란 무엇입니까? 부흥을 체험한 사람의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한 사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 하나님의 자비가 무엇인지를 깨달은 사람들이 헌신을 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오늘 이 아침에 하나님 앞에 헌신하여 삶의 변화를 체험하게 되길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을 본받아 살고 싶지 않습니다. 본문에도 세상을 본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세상으로 끌고 가려고 합니다. 마귀는 우리를 악령들에게 끌고 가려고 합니다. 내 죄성 또한 움직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헌신을 하면 성령에 이끌려 살게 됩니다.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내 마음을 새롭게 해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면서 살자는 것입니다.

  연세가 드셔서 임종하게 되었을 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한두 시간 밖에 남지 않은 그 순간에 주님께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너무 감사한 일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자녀 되기를 원하시고, 모두 천국 시민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에 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임종을 앞 둔 분들에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이야기를 끝까지 해주려고 합니다. 어떤 분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만 그 마지막 순간에도 고집을 부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연세가 많으신 어느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임종을 앞두고 가족들이 제게 꼭 기도해주기를 부탁했습니다. 제가 찾아가자 자녀들이 “아버지, 목사님 오셨어요.” 그런데 그 분은 저를 한 번 쳐다보고는 고개를 반대로 돌리십니다. “목사님 보고 싶지 않아!” 마지막 순간인데 끝까지 하나님께 등을 돌리는 이런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저는 할아버지의 요청으로 밖으로 나왔습니다. 자녀들은 너무 가슴 아파했습니다.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붙들고 간곡히 말합니다. “아버님, 이제 조금 있으면 목숨이 끊어지시는데 끝까지 왜 그러십니까?” 가만히 보니 이 분이 다른 사람 말은 안 들어도 며느리 말은 듣더라고요. 예수 믿는 며느리와 친해요. 그러더니 얼마 후 저를 들어오라고 하셔요. 반대로 누워 계시던 분이 저를 향해 고개를 돌리셨어요. “하나님께서 할아버지를 사랑하십니다. 예전부터 사랑하셨는데 모르셨지요?” 그리고 복음을 전한 후 “하나님이 주신 저 천국의 영원한 생명을 받으시겠습니까?”하니 고개를 끄덕끄덕 하셨어요. 그 분은 신앙을 고백하고 천국에 가셨습니다. 마지막 순간에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서 인생을 마치는 것,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나 여러분, 그런 분은 그 많은 인생을 낭비한 것입니다. 구원 받은 것은 감사하나 수십 년의 인생을 낭비한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면, 죄로부터 해방시켜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을 안다면 모든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권하노니 여러분 자신을 살아 있는 제물로 바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호흡하는 그 순간에 바칠 것이 아니라 건강이 있고 힘이 있을 때, 정신이 멀쩡할 때, 아직도 시간의 여유가 있고 아직도 움직일 수 있을 때, 지금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헌신해서 여러분의 삶의 변화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금식 경험이 없는 어느 남자분이 지난 열흘간 처음 금식을 했습니다. 5일째 되는 날 이런 말을 하셨답니다. “금식을 하니 집이고 뭐고 다 가치가 없네.” 금식을 하면서 남은 생애를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는 헌신과 변화가 나타납니다. 물론 세상에 좋은 게 아직 많이 있지만 가치관이 달라지는 겁니다. 하나님이 제일 좋아집니다. 변화가 나타나요. 그 분이 이런 말도 했어요. “옛날에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에는 내가 필요한 것만 달라고 했지 하나님을 믿지는 않았습니다. 지난 날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며 살아왔지만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믿어야 되겠습니다.” 남편은 아내가 평생 들어 보지 못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고난 중에도 감사드리고 환란 중에도 감사드리고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드리는 것만이 믿음이라고. 바로 지난주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 나를 부흥시켜 주시옵소서. 나를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우리의 남은 시간이 며 칠일지 몇 년일지 모르지만 나를 하나님 앞에 드려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면서 나머지 인생을 살다가 하나님 곁에 가는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 연세가 89세입니다. 제 나이가 많은 줄 알았더니 89세가 되려면 아직 한참 더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목사님은 파킨슨병에 걸려 불편하신데도 작년에 큰 전도 집회를 하셨습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살고 계신데 한번은 그 지역 사람들이 목사님을 만찬에 초대했습니다. “목사님, 당신을 존귀하게 해드리기 위해 만찬을 준비했습니다.” “내가 이 나이에 어딜 갑니까?” “설교하시라는 것이 아니고 만찬 자리에 앉아 저녁 식사만 하시면 됩니다.” 목사님은 만찬에 참석하셨습니다. 그 자리의 많은 사람들이 목사님을 칭찬했습니다. 칭찬 받을 만한 세계적 인물이시지요. 마지막으로 목사님이 나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내가 오늘 여기에 오려고 새 옷을 한 벌 사 입었습니다.” 89세에 새 옷을 사셨어요. 얼마나 멋있습니까! 여러분도 변화되어 멋있게 사시기 바랍니다. “내가 죽으면 오늘 산 이 새 옷을 입고 갈 것입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최신식 옷을 입고 천국에 가실 겁니다. 그러면서 알버트 아인슈타인 박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아인슈타인 박사님이 연세가 많아 운전을 못하게 되었을 때 어딘가에 기차로 가시게 되었습니다. 차장이 표 검사를 하러 왔는데 아무리 찾아도 표가 나오질 않는 겁니다. 아인슈타인 박사는 차장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정직한 사람이오. 내가 분명히 표를 샀는데 아무리 뒤져도 표가 안 나타나니 어떡합니까?” “오, 아인슈타인 박사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는 당신이 아인슈타인 박사님인 것을 압니다. 편안히 안녕히 가십시오.” 차장은 그렇게 말하고 다음 칸으로 가려다가 잠깐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여전히 표를 찾으려고 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차장이 다시 “박사님, 못 찾아도 괜찮습니다. 나와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걱정 마세요.” 그랬더니 아인슈타인이 말했어요. “나도 내가 누구인지 알아요. 그러나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몰라요. 표를 봐야 알기 때문에 꼭 표를 찾아야만 돼요.”(I know who I am, but I don't know where I am going.) 그는 자기가 누군지는 알았지만 어디로 가는지는 몰랐습니다. 이 이야기를 마치며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말씀하셨어요. “나도 내가 누구인지 압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I know who I am, and I know where I am going.)

  여러분은 여러분이 누구인지 알고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십니까? 종착역을 알고 어디로 가는지 알기 때문에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을 압니다. 끝까지 가는 동안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면서 하나님을 위해 사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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