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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십계명 서론 (출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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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신 이유부터 생각해봅시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에게 계명을 주신 것은 그로 걸려 넘어지게 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아담이 창조 당시보다 더 이상적인 성품과 이상적인 인격을 가진 상태, 곧 “생명에 이르게 할”(롬 7:10) 방편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의도를 곡해하여 계명을 부담스럽고 거부감 느끼도록 만든 것은 사단이었습니다. 계명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던 하와가 계명을 범했던 것처럼, 율법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는 주의 말씀을 멀리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선한 목적으로 주어졌던 율법의 기능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계명은 범죄한 인간으로 생명에 이르도록 하는 작용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정죄하여 사망에 이르게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시 생명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고, 그 분 안에서 더 이상 율법의 정죄를 당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생명에 이르게 할 율법의 기능을 성취하셨습니다. 이로써 율법의 기능들이 인간에 대해서 죽고, 인간도 율법에 대하여 죽은 것처럼 되었습니다.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갈 2:19)

율법의 기능은 죽었습니다. 그러나 율법 자체는 여전히 선하며, 그 목적하던 정신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8)고 하셨고, 율법이 원래 의미하던 바가 무엇인지를 산상 보훈을 통해 다시 계시하셨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율법을 지켜서 생명에 이를 수 없으며, 주님 안에 있음으로 해서 율법의 정죄도 더 이상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원래 있는 정신에 대해서는 보다 더 잘 알아서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롬 7:4).

십계명(출 20:1-17, 신 5:6-21)은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서론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규범(1-4계명)과 하나님 백성들 상호간에 지켜야 할 규범(5-10계명)입니다. 서론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분이시며 어떤 일을 행하셨는가를 말합니다. 이러한 십계명의 구성 순서 자체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기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기 이전에 그분께 복종할 수밖에 없는 은혜로운 이유가 있음을 충분히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르지 않고서는 하나님 백성들 상호간의 윤리는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십계명 서론에 해당하는 출애굽기 20:2절을 보십시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은 그것을 잘 지키면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의미가 전혀 아닙니다. 다른 말로 율법은 지켜서 구원을 얻도록 하기 위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시기 전에 이미 ‘나는 … 너의 하나님’이라고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미 구출되었으며,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이 일은 일방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여호와’라는 명칭은 인간을 위하여 에덴을 창설하실 때 등장한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율법은 참으로 인간을 위하여 최상의 것을 주시기 원하시는 여호와께서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계명을 받았을 때는 출애굽 하고나서 석 달쯤 되었을 무렵이었습니다. 그들은 출애굽 과정에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놀라운 은혜들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실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은혜의 체험과 은혜 속에 잠겼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상이나 성품은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은 여전히 노예백성의 상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목적이 무엇인지, 그들에게 어떤 뜻과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지, 어떤 가치관과 인생관으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미성숙한 상태였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전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 맺는 삶을 살고 있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 맺는 삶이 될 수 있도록 먼저 그들을 애굽에서 구출한 목적을 밝히셨고 다음으로 율법을 주셨습니다.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출 19:4-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은 단지 그들이 불쌍해서 이제는 행복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당신님의 특별한 소유가 되게 하셔서 세계 열방에 대해 제사장 나라 역할을 하는 거룩한 백성들을 삼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제는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 더 이상 이방의 풍속을 좇지 않고, 사상과 성품에 있어서 하나님 백성답게 구별되기 원하셨고 이를 위해서 율법들을 주셨습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사건은 신약 시대 성도들의 죄로부터의 구속사건의 그림자입니다. 신약 성도들도 일방적인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 구속하신 목적 역시 동일합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우리는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앞서서 우리를 ‘어두운 죄의 삶에서’ 일방적인 은혜로 불러내셔서 당신의 백성 삼으신 은혜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야 합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들은 우리의 하나님 백성다운 사상과 성품과 삶을 통해서 그분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부터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담이 범죄하고 그 후에도 계속 인류는 범죄를 반복했지만, 하나님은 뜻을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을 택하여 그와 언약을 세우시되, 그의 후손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삼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겠다 하셨습니다. 그 언약을 기억하셔서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구출하셨고 그들을 통해 온 땅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충만하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하고 난 후에도, 이방인들 중에서 일방적인 은혜로 당신의 백성이 되게 하셔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좇게 하시고 아브라함의 언약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나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셨던 뜻은 모두 인류 보편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단지 개인이 인격을 수양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구별된 생각과 말과 행동을 통해서, 하나님 백성다운 사상과 품성을 형성하고, 하나님 백성다운 구별된 삶을 살아감으로써 그런 존재들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원대한 뜻의 차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계명들을 문자적 의미로만 축소해서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계명들을 문자적 의미로 축소하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이유는 모든 법률이 어떤 이상적인 목적을 위해서 최소한 지켜야 할 것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율법도 하나님 백성다운 삶을 위한 기준으로 삼을 수 있도록 주어진 최소한의 지침입니다.

예를 들면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단지 살인하지 않은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생명을 존중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적극적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사상과 품성과 삶이 나타나기까지 힘써야 함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제한하지 않으시고 마음의 간음까지 확대하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십계명은 하나의 도덕적 표준으로 제시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 백성이 동행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 맺는 삶은 십계명을 풍성한 의미로 지켜내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의 삶도 진정한 의미로 율법을 지키는 삶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율법은 이미 하나님의 백성된 사람들로 더욱 하나님 백성답도록 하시는 성령님의 독특한 도구입니다. (최동규 목사)
구원을 얻은 사람, 곧 성령께서 그 속에 계신 사람이라면 십계명 말씀이 원래 이상으로 삼고 있던 상태를 그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통해 나타낼 것이며, 점차 하나님 백성다운 사상과 품성과 삶을 형성해 갈 것입니다. 율법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은혜 가운데서 지켜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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