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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황홀한 평신도 사역자가 되라! (행 6: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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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평신도 사역자가 되라!
사도행전 6:8-15

현재 상영하고 있는 영화 가운데 '록키 발보아'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실베스타 스텔론이 기독교적인 선교용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린 아들에게 정체성을 찾게 해주는 아주 의미 있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예순살의 아버지 록키는 자기 정체성이 없이 갈등하고 방황하는 아들을 보면서 안타까워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아들 같은 세계헤비급 챔피언과 시합을 하기로 결정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들이 아버지를 찾아와서 시합을 그만 두기를 요청하면서 자신이 힘들고 어려웠던 자기 정체성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에 아버지 록키가 아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네 스스로가 사람들이 '넌 형편없어'라고 말하며 손가락질하도록 만드는 건 아니니?  일이 잘못될 때마다 무언가 비난하고 탓할 거리를 찾는 것은 옳지가 않아.  그건 음지 인생이야.
이 세상은 결코 따스한 햇살과 무지개로만 채워져 있지 않아.  온갖 추악한 인간사와 더러운 세상만사가 공존하는 곳이지.  그렇다고 세상을 거칠게 살라는 건 아니다.  그런 태도는 자신의 영혼을 갉아먹을 뿐이니깐.  하지만 너와 나, 그리고 그 누구도 아닌 사람들, 세상을 힘껏 살아야 돼.
네가 얼마나 성공적으로 사느냐가 아니라 네가 얼마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거야.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면서 그러면서 하나씩 얻어 나가는 거야.  계속 전진하면서 말이야.  그게 바로 진정한 승리야.
넌 옳지 않은 태도로도 세상을 계속 살아갈 수가 있어.  하지만 네가 정말 치열하게 살아볼 의지가 있다면 넌 타인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네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거야.  네가 네 스스로를 얻기 전까지는 그건 네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없을 거야."

그가 링에서 결정적으로 한 방을 맞고 다운되어 쓰러졌을 때 혼자서 이런 말을 하면서 다시 일어납니다.
"내가 아이에게 말했던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성공이라는 결과가 아닌 치열함이 묻어나는 과정이었지.
그리고 앞으로의 전진.  무엇을 배워나가며 앞으로 걸어갈 것인가?
일어서자.  일어나야 돼."

이 영화를 통해서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은 지난 록키에서 보았던 예정된 승리는 이제 중요하지 않습니다.  현란한 편집으로 각 라운드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마지막 권투 장면보다 더욱 값진 것은 영화 속에 자기 성찰에 가까운 고백들이 묻어있기 때문입니다.

록키 발보아에는 인생의 징검다리를 건너온 자만이 말 할 수 있는 자존적 성찰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시합이 끝나고 채점 결과가 울려 퍼지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사람들과 악수하면서 당당하게 걸어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은 언제나 환경을 탓합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진정한 자기가 아닌 또 다른 남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람들, 믿음의 사람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도 안됩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있어서 참으로 중요한 것은 성공이냐 실패냐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얼마나 최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로는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좌절을 맛볼 수도 있습니다.  뼈아픈 실패를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절망의 시작이 아니라 또 다른 희망을 향한 시작이어야 합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어떤 결과를 놓고 인생을 이야기하지는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너무 의식하지 마십시오.  내게 주어진 순간 순간의 삶을 통해서 얼마나 열심히, 최선을 다했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보고 싶어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사람에게 있어서는 내가 지금 어떤 환경에 있느냐 하는 문제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어떤 자세로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환경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마음입니다.  마음을 다스리십시오. 성경은 마음을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죽고 사는 권세가 마음에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인간 생명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근원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능력으로 내 마음을 새롭게 하십시오.  마음 한 번 잘 먹으면 인생사가 편안하지만 마음 한번 잘못 먹으면 만사가 귀찮습니다.  인생의 문제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이 무엇입니까?  신앙이라는 것은 언제나 최악에서 최선을 만들어내는 능력입니다.  우리에게 믿음만 있다면 최악의 상태가 최상의 상태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태도가 문제입니다.  환경이 나빠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믿음이 없어서 불행한 것입니다.

우리가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나가면 반드시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고난과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흐트러지지 않는다면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세상 사람들은 환경의 지배를 받지만,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강한 믿음이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고, 환경을 이기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땅 위에 실패한 사람으로 태어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역사에 귀한 일을 감당하고도 남을 사람들로 태어났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님의 능력으로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아볼 의지가 있다면 결코 다른 사람의 시선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들어서 쓰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당당하게 일어나 비전을 향해 달려가십시오.  아십니까?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은혜의 통로입니다.

오늘 말씀은 작년 3월 둘째 주일에 여러분에게 전했던 말씀입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여러분에게 다시 전합니다.  제가 이렇게 동일한 내용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한 번 밖에 살지 못하는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 앞에서 정말 한 번 멋지게 살아보자는 겁니다.  내 남은 삶을 주를 위해 한 번 뜨겁게 불태워보자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세가 되면 사람들에게서는 열심을 찾아보기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말세가 되면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만을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이기를 싫어하고, 헌신을 싫어합니다.  사람들은 어디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 앞에 바로 선 믿음의 사람을 원하십니다.  자신만을 생각하는 종교인이 아니라 한 생명을 주를 위하여 불태울 수 있는 제자를 원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제가 자주 드리는 말씀이지만 제발 종교인이 되지 마십시오.  감동과 감화가 없는 종교꾼에서 벗어나십시오.  우리가 종교꾼에서 벗어나려면 시간마다 때마다 하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제자로 세움 받고자 하는 거룩한 열망을 품어야 합니다.

간혹 교회 안에 어떤 사람들을 보면,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목사님, 저도 다 압니다.  저도 과거에는 다 누려보았습니다.  그래도 별거 아니던데요"
한마디로 자신도 과거에는 은혜를 받아보았다는 겁니다.  자신도 과거에는 은사를 체험해 보았다는 겁니다.  자신은 자꾸만 과거에 그런 은혜를 받아보았고, 누려보았지만 지금은 그 모든 것이 별로더라는 겁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분명하게 말씀하건데 이 사람은 정말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세상을 사랑하여 떠나간 데마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는 날마다 새로워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의 은혜를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지금 현재 내게 임하신 은혜를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과거를 말하지 마십시오.  신앙은 오늘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지금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가 시간마다 때마다 내 심령에서 흘러나게 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는 날마다 새롭게 흘러가야 합니다.  은혜가 흐르지 못하면 사해 바다와 같습니다.  사해 바다는 죽은 바다입니다.  거기에 사람이 들어가면 가만히 있어도 뜹니다.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를 못합니다.  거기에는 생명이 자라지 못합니다.  끊임없이 물을 받아들이기만 할 뿐 흘러보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죽은 바다입니다.

그렇습니다.  은혜는 끊임없이 흘러가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은혜는 순간 순간마다 새로워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과거에 받았던 은혜를 붙잡고 날마다 새로워지지 않으면 그 심령은 사해가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순간마다 때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매 순간 순간마다 위로부터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받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은혜는 한 번 받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때마다 누리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을 보십시오.  세상 사람들은 저들을 가리켜서 "새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들로 인해서 예루살렘의 온 도성이 진동했습니다.  저들이 가는 곳마다 거룩한 하늘의 진동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믿음의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거룩한 하늘의 진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믿음의 파장이 강하게 일어나야 합니다.

총독 베스도가 바울을 향해서 "네가 미쳤다"고 했습니다.  사실 바울은 미쳤습니다.  예수를 위해 살고, 예수를 위해 죽을 정도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 때문에 전에는 그렇게도 소중하게 생각했던 명예와 가문과 학벌을 다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 때문에 완전히 변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은 변해야 살고, 미쳐야 삽니다.  미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세상입니다.  제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있겠습니까?  돈에 미치고, 명예에 미쳐 살아갑니다.  육체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세상 살림에 대한 자랑에 미쳐 살아갑니다.

그러나 여러분, 미쳐야 한다면 기왕에 거룩한 일에 미쳐야 합니다.  땅의 일이 아니라 하늘의 일에 미쳐야 합니다.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일에 미쳐야 합니다.  복된 일에 미쳐야 합니다.  진리에 미쳐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은 인간의 자원을 변화시키고 사람을 일으키는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우리 인생의 마지막 남은 때를 주를 위해 한번 미쳐보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있어도 하나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오늘 내가 믿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모름지기 역사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나를 구원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내 가정을 구원할 수 있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발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십시오.  세상을 움직이려 하지 말고, 사람을 지배하려 들지 말고, 하나님의 성령을 붙들고 먼저 자신부터 움직이십시오.  내 안에 내재해 있는 자기 파멸의 씨앗을 하나님의 성령으로 몰아내십시오.  내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쓴 뿌리를 성령의 불로 태워버리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환경보다 중요한 것은 삶의 태도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언제나 건강한 인격으로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은 그 사람의 환경을 고치기 전에 먼저 삶의 태도를 변화시킵니다.  아십니까?  나쁜 태도가 불행을 만들고 좋은 태도가 행복을 낳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는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내 안에 자리를 잡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과 파괴적인 문제의식을 제거하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감정의 포로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의 포로가 되십시오.  내 마음을 격동시키는 일체의 모든 감정으로부터 자유하십시오.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과 감화를 받아서 마음의 평화를 탐내시기를 축복합니다.

결코 사단이 일으키는 분노의 통로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미움과 저주의 통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안에서 믿음, 소망, 사랑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감동과 감화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쏟아 부어 주시는 은혜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나를 하나님의 도구로 마음껏 내어 드리십시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여, 나를 마음껏 써 주옵소서.
나를 당신의 은혜와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께 발견되기를 원하신다면 삶의 자세가 바뀌어져야 합니다.  가치관이 달라져야 합니다.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적인 가치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이 가치관이 변하면 행동이 변합니다.  행동이 변하면 습관이 바뀌어집니다.  습관이 바뀌어지면 내 인생의 운명이 바뀌어집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도 성령의 능력으로 여러분의 마음 밭을 갈아엎는 작업을 시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에게 수많은 기회의 씨를 뿌려주십니다.  수많은 축복의 씨앗을 뿌려주십니다.  그런데 그 씨가 뿌리를 내릴 수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 밭이 딱딱하게 굳어 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뿌려주시는 수많은 기회와 축복의 씨앗들이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 밭은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거둘 수 있는 옥토가 되어야 합니다.  옥토가 되어야 합니다.  옥토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축복의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브라함의 축복을 나도 받아 누릴 수가 있습니다.

무엇이 축복일까?  바로 알아듣는 것이 축복입니다.  말귀가 열려야 합니다.  말귀가 꽉 막힌 사람이 있습니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켜서 성경은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간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부족한 종의 입술을 통하여 들려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지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삐딱하게 듣는 것이 아니라 바로 들어야 합니다.  제대로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하나님께 충성하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십시오.  하나님의 축복을 탐내십시오.

우리의 신앙은 이론이 아니고 삶, 그 자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내가 만난 하나님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가 경험한 만큼만 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 가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을 더 많이 경험하십시오.  끝이 없는 복음의 능력을 성령 안에서 마음껏 누리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는 모든 성도를 예수님의 제자로 만들어 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이 교회의 사명이요, 기쁨입니다.  그저 예배에 한 두 번 참여하고, 어떤 프로그램에 한 두 번 동참했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한 마리의 새가 하늘을 솟아오르기까지 얼마나 퍼덕거리고 애를 쓰는지 모릅니다.  수 천 번 날개를 퍼덕거리며 날다가 떨어지고 날다가 떨어지면서 하늘을 날 수 있게 됩니다.

독수리가 그냥 독수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독수리는 집을 지을 때에 가장 높은 곳에 제일 먼저 가시덤불을 가져다가 놓습니다.  그 다음에 삐쭉삐쭉 찌르는 돌멩이들을 가져다 박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짐승의 깃털이나 새의 깃털을 덮어서 보금자리 둥지를 만듭니다.  어릴 때는 그 포근한 깃털 속에 잠을 재우고 먹이를 갖다 먹입니다.

어느 정도 독수리가 자라면 바깥으로 내쫓습니다.  그러나 새끼는 나가기 싫어 날개를 접고 안으로 더 들어갑니다.  그때 어미 독수리가 둥지에서 날개를 퍼덕거리면 깃털은 다 날아가고 가시덤불하고 삐쭉삐쭉 찌르는 돌멩이들만 남습니다.  거기서 견딜 수 없어 새끼들은 벼랑에서 뛰어내립니다.  새끼들이 잘 날지 못해 날개를 퍼덕이며 떨어집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어미는 쏜살같이 날아가 새끼를 날개로 엎어 안전하게 해줍니다.  그렇게 하기를 수십번, 수백번 하는 사이에 독수리는 하늘을 나르는 하늘의 왕자가 되어 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내가 스스로 훈련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 보금자리를 흔들어서라도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게 하십니다.  때로는 고난을 주고 시험을 줘서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이 예수님을 닮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가슴 아프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믿고 교회 다닌지 10년 20년이 되었지만 성장하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계속 기저귀를 차고 젖병을 빨며 영적 유아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왜요?  성장하기 위한 훈련과정에 몸을 던져 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성장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훈련과정에 참여하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훈련과정에 헌신해야 합니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성장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자녀는 태어납니다.  그러나 제자는 만들어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꿈꾸시고 디자인하신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이 황홀한 평신도 사역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 번 주님의 이름으로 비전을 전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황홀한 평신도 사역자가 되십시오.  황홀한 평신도 사역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평신도는 교회의 주체입니다.  평신도라고 해서 정기적으로 잠깐 교회에 나와서 경건한 의식에 참여하고 돌아가면 나의 의무가 끝난다고 하는 소극적인 방법으로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됩니다.  이들은 교인이라기보다는 관람객에 지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물건을 사기 위해서 일정하게 한 곳을 찾아가는 단골손님처럼 행동해서도 안됩니다.

잊지 마십시오.  평신도들이 잠자는 교회는 결코 비전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소비자에 머물러 있는 평신도로는 이 땅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구경꾼들로 가득찬 교회는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습니다.  우리는 소비자에 머물러 있는 평신도들을 생산자로 돌려놓아야 합니다.  황홀한 평신도 사역자가 넘쳐나는 살아있는 건강한 교회를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는 각자 하나님께서 주신 귀중한 달란트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달란트를 묵혀두지 말아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내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개발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섬겨나가기 위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썩히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신 것은 일하도록 불러주신 것입니다.  일하면서 우리의 신앙이 젊어지는 것입니다.  일하지 않으면 우리들의 신앙은 늙은 고목처럼 되고 맙니다.  인간은 자신의 능력을 끊임없이 사용하고 개발할 때 젊어집니다.  주님의 일을 손에서 놓는 순간 인간은 영적으로 후퇴하기 시작합니다.  육체적으로도 퇴보의 길을 걷습니다.  때문에 우리의 영적이고 육적인 건강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 주님을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세상의 재미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소홀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 일을 앞세워서 뒤로 물러서서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됩니다.  흔히들 예수를 믿기만 하면 영적 성장은 자동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영적 성장은 오토매틱이 아닙니다.  요술이나 마술이 아닙니다.  교회에 나오면, 예배에만 참석하면 믿음이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주일에 한번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생명줄만 부지하고 살아가는 것이지 성장은 어렵습니다.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것은 기초가 부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는 것도 기초가 부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생활의 기초를 다져야 합니다.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영적 성장에도 지름길이 있습니다.

교회에 다닌 경력에 따라서 성장한 그리스도인이냐, 아니냐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예수를 믿은 연수와 영적인 성장과는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이 있습니다.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면 직분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그 직분이 신앙의 수준을 말해 주지는 않습니다.  훈련되지 못하고 성장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적 성장은 시간이 흐른다고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신앙이 성장되지 않은 채 경력만 쌓여져 가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전혀 다듬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훈련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훌륭한 신앙인이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착각에서 깨어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에도 일류가 있고, 이류가 있고, 삼류가 있습니다.  제발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삼류 따라지 믿음은 되지 마십시오.  이런 믿음은 마지막날 주님께서 오실 때에 내가 너를 알지 못한다고 버림받을 사람들입니다.  일류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원하시는 황홀한 평신도 사역자가 되겠다는 꿈을 꾸십시오.  황홀한 평신도 사역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과 양육을 통하여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교회가 실시하는 모든 양육 과정에 열심히 참여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를 통한 재생산이 일어나야 합니다.  자신의 셀을 열어서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내 어깨 위에 내 제자를 세워야 합니다.  재생산이 없는 리더는 참된 리더가 아닙니다.  재생산이 이루어지지 않는 셀은 암세포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들 모두 내가 했던 일들을 동일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도 예수님처럼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처럼 12제자를 만들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언양 영신가족 여러분, 훈련과정에 몸을 담고 헌신하십시오.  그것이 예수님을 닮아 가는 길입니다.  구원받은 우리가 왜 훈련을 받아야만 하겠습니까?  온전한 신앙인으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영향력 있는 평신도 사역자로 쓰임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아브라함의 복을 나도 받아서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내가 받은 복을 이 땅에 나누는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자녀를 얻었을 때에 얼마나 흥분했습니까?  나를 꼭 닮은 생명의 신비!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갈 때에 기뻐하십니다.  흥분하며 좋아하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목적은 편안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인격,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사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누구나 훈련, 성장, 성숙이 중단되면 "처음 되었으나 나중이 됩니다.  머리가 되었으나 꼬리가 됩니다."  그러나 지금은 미약해 보여도, 신앙이 어리고 연약해 보여도 앞설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가 제공하는 훈련과정에 몸을 던져 보십시오.  성장하고 성숙하는 일에 우선 순위를 부여하십시오.  하나님 나라 가치에 집중해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내 삶의 목적을 멋지게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자는 만들어집니다.  주님이 원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여러분 자신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황홀한 평신도 사역자가 되십시오.  이 교회 담임목사요, 여러분의 영적 지도자인 저는 여러분들을 황홀한 평신도 사역자로 세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여러분의 모난 성품과 쓴 뿌리들을 과감하게 만져갈 것입니다.  어쩌면 여러분들은 이것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게 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가슴앓이를 길게 하지는 마십시오.  건강한 인격은 수용성이 강한 사람입니다.  건강한 신앙은 담임 목사님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 신앙입니다.

1960년대에 인도네시아에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인도네시아에는 공산주의자들이 국가를 전복하려고 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3000개의 섬 중에 하나인 인구 100만명 밖에 안 되는 티몰섬에서부터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 1년 동안에 8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부흥 운동의 시작은 라투왈루라는 한 평신도의 기도로 시작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유명한 웨일즈 부흥 운동은 어떻게 일어난 줄 아십니까?  다름 아닌 13년간 하루 같이 성령 충만하기를 기도해 왔던 광부 출신의 이반 로보트라는 청년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깨뜨려 주시옵소서.  저를 부수어 주시옵소서"  그의 이 기도로 9개월만에 10만명의 사람들이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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