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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함이 없으면 (약 2: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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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 미국의 곡예사 촬스 블론딘(Charles Blondin)은 나이아가라 폭포 위에 외줄을 걸고 횡단할 것을 발표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이아가라 폭포에 몰려들었습니다. 그는 구경나온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이 장대 하나만 들고 무사히 건너갈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고 외칩니다. 그는 여유 있는 자세로 외줄을 타기 시작합니다. 외줄을 타는 동안 손에 땀을 쥐고 바라보던 사람들은 그가 안전하게 도착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환호합니다. 블론딘은 반대쪽으로 건너기 전에 다시 묻습니다. "이번에는 사람을 등에 업고 건너가려고 합니다. 그래도 건널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까?" 사람들은 믿노라며 크게 소리쳤습니다. 그는 용감해 보이는 청년에게 다가가 말합니다. "제 등에 업히시겠습니까?" 그러자 청년은 하얗게 질려 달아나 버립니다. 그때 블론딘은 사람들을 향해 말합니다.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 믿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하는 것이 진짜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곱 살난 자신의 딸을 업고 나이아가라 폭포를 건너 기네스북에 그의 이름을 올립니다. 믿음은 느낌이 아닙니다. 감정이 충만하다고 믿음이 충만한 것도 아닙니다. 믿음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를 가졌다고 믿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바른 믿음은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본문 야고보서 2장에 중요한 사실이 나옵니다. 행함에 대한 해석입니다. 야고보가 말하는 행함은 바울이 정죄하는 행함과 다릅니다. 바울이 비판적으로 말하는 행함은 구원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인간의 행위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야고보가 말하는 행함은 믿음을 입증하려는 행위입니다. 즉 바울이 믿음의 뿌리를 말했다면 야고보는 믿음의 열매를 말한 것입니다. 야고보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행함이 없는 믿음을 지적합니다. 22절입니다.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믿음이 온전케 되는 길은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할 때라고 말합니다.

하비 콕스(Harvey Cox)는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복음이 무효화되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라고 비판합니다. 즉 말씀과 일치되지 않는 행동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이 불신자보다 못하기에 믿음을 세상에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믿음과 일치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복음의 의미가 점점 퇴색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다같이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찬양합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이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 이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 이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 뒤돌아 서지 않겠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만일 우리의 믿음에 행함이 없으면,


첫째로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Leo Tolstoy)가 길을 가는데 걸인이 나타나더니 손을 내밉니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동전이 한푼도 없습니다. 톨스토이는 걸인의 손을 꼬옥 쥐며 속삭입니다. "형제여, 미안하오. 지금 가진 돈이 한푼도 없구려. 정말 미안하오." 그때 걸인은 미소를 지으며 톨스토이에게 말합니다. "저는 돈보다 훨씬 소중한 것을 받았습니다. 선생님께서 저를 형제라고 불러주셨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손에서 따뜻한 사랑을 느꼈습니다." 한 푼의 돈보다 귀한 것은 행동하는 사랑입니다. 믿음도 행함으로 나타날 때 유익의 역사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15절과 16절입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믿음이 좋아 존경을 받는 사람이 있었는데, 굶주린 사람이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런데 그가 말로만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면서 아무 것도 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도움을 요청한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자입니까? 아닙니까? 헐벗고 굶주린 이에게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옷 한 벌과 밥 한 끼를 먹여주는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행함이 없다면 아무리 큰 믿음을 가지고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다만 무익한 믿음일 뿐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가 나옵니다. 유대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 강도를 만나 돈을 빼앗기고 매를 맞아 죽게 되었습니다. 마침 길을 지나던 제사장과 레위인이 유대인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돕기는커녕 다른 길로 피하여 가버립니다. 본래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누구보다도 경건한 믿음을 가졌노라고 자부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는 앞에서 불쌍한 사람을 외면하였으니 행함이 없는 그들의 믿음이 바른 믿음입니까? 누구에게든 이익을 주지 못하는 믿음이라면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는 믿음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누구에게나 이익을 줄 수 있는 믿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무슨 구원이 있으리요

윌버 체프맨(J. Wilbur Chapman)이 청년시절에 무디(D.L Moody)의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날 구원에 대한 말씀이 증거되었습니다. 집회가 끝난 후 체프맨이 무디를 찾아가 말합니다. "무디 선생님, 저는 구원의 확신이 없습니다". 그때 무디는 묻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네, 믿기는 하는데 자신이 없습니다." 무디는 요한복음 5장 24절을 읽으라고 말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체프맨에게 이 말씀을 믿느냐고 물으니 믿는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영생을 얻었습니까?" "글쎄요". 무디는 한 번 더 읽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믿는 자가 영생을 얻었다면 당신에게 영생이 있습니까?" "제가 그것을 모르겠습니다". 이때 무디가 소리쳤습니다. "당신이 무엇인데 하나님을 무시합니까? 하나님이 믿는 자에게 영생이 있다면 있는 것입니다". 무디의 고함에 깜짝 놀란 채프맨은 "그러면 나에게 영생이 있는 것입니까?" 라며 되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있다면 있는 것이지" 라는 무디의 말에 체프맨은 구원의 확신없이 아무것도 행치 못하고 살아왔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체프맨은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어 무디가 은퇴한 후에 그 교회의 후임자가 되었습니다.

본문 14절입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뇨?" 여기에서 야고보는 "믿음이 능히 너희를 구원하겠느냐" 하지 않고 "그 믿음이" 라고 했음에 주의해야 합니다. '그 믿음' 은 일반적인 믿음이 아니라 믿음이 있노라하면서도 행함으로 나타나지 않는 불완전한 믿음을 말합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그 속에 행위가 있습니다. 22절의 '함께' 라는 단어는 '더불어' 라는 의미입니다. 믿음은 행함과 더불어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행하는 것을 보면 그의 믿음이 진짜인지 죽은 믿음인지 알 수 있습니다. 구원을 받았어도 행위가 바뀌지 않는다면 구원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구원을 받았는데도 죄에 머물러 있기를 좋아하고, 아직도 세상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중심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어느 편에 섰는가 하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마귀 편에 서서 마귀 일을 하던 사람이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자리에 있다면 구원을 얻은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지만 구원 얻은 믿음은 반드시 행위로 나타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행함이 있는 산 믿음으로 자신도 구원에 이르고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무슨 상급이 있으리요

어떤 집사가 천국에 갔습니다. 성경대로 천국문이 진주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이 닫혀 있습니다. 힘껏 두드리니 문이 열리며 베드로가 나타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집사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자 베드로가 말합니다. "천국에 들어오려면 증표가 있어야 합니다. 가지고 있습니까?" 아무리 찾아보아도 증표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정합니다. "증표를 찾아도 없네요. 허지만 수십년 동안 저는 교회에 출석하였습니다.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베드로는 단호히 말합니다. "증표 없이는 안됩니다. 믿음의 행함도 없이 교회 마당만 밟고 다녔으니 무슨 증표가 있겠습니까? 그만 돌아가시오" 라며 천국 문을 닫아버립니다.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그 후로 그는 이름뿐인 집사가 아니라 믿음으로 행하는 신실한 일군이 되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상급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행함으로 믿음을 입증하는 사람들에게 축복을 베풀어주십니다.

본문 23절입니다. "이에 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하나님은 행함으로 믿음을 입증한 아브라함을 의롭다 칭하시고 하나님의 벗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벗의 의미는 하나님과 동등한 수준으로 대우하셨다는 뜻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행함이 있는 믿음의 사람들을 축복하시며 상급을 베풀어주십니다. 벗으로 삼아주십니다. 반면에 행함이 없으면 귀신의 믿음과 다를 바가 없다고 경고합니다. 귀신들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믿어도 귀신들은 하나님을 위해 일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행함으로 믿음을 증거하느냐에 따라 천사가 될 수도 있고 귀신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상급 얻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성서학자 윌리엄 바클레이(William Barclay)의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게된 것은 신앙에 대한 이론에 설복이 되어서가 아니라 기독교인의 사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게 된 이유는 성경 내용을 믿을 수 없어서가 아니라 교인들의 불친절과 추한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바클레이의 말에서 우리는 행함의 신앙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게 됩니다. 문제는 우리가 몰라서 행함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알면서도 믿음에 행함이 따르지 않는 이유는 믿음이 온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믿음에는 반드시 행위가 따릅니다. 부디 행함이 있는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누구에게나 이익을 주는 믿음, 어디서나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는 믿음, 어떠한 일에도 상급을 얻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 되어 하나님께 인정받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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