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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비전(vision)중에 임한 메시지 (창 15:1-7, 빌 3:17-4:1, 눅 1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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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vision)중에 임한 메시지

1.  우리나라가 한창 군사독재의 암울한 시대를 지날 때 함석헌 씨는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하는 글로서 당시 좌절에 빠져있던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운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정부 당국은 국민들의 눈도 귀도 막고 일방적인 독재를 강행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대안세력이 되어야 할 야당은 제대로 출범도 하기 전에 자리다툼으로 지리멸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부디 대동단결하여 독재를 막으라고 했지만 야당은 끝내 하나 되지 못했습니다.

    더 이상 이런 야당들을 향해 말해봐야 아무런 효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되자 함옹은 국민들을 상대로 입을 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꿈이 없으면 백성이 망한다”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은 잠언에서 인용한 말씀입니다. 잠언29:18의 개역개정판은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KJV에는 “Where there is no vision the people perish” 즉 “비전이 없으면 백성이 망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함석헌 옹은 아무리 군사독재가 온통 세상을 지배한다고 해도, 그리고 저 아무데도 쓰잘데없는 야당인사들이 국민들의 기대를 짓밟는다 해도, 그래도 이 땅의 주인인 국민들 가슴속에 비전만 있다고 하면, 꿈만 있다고 한다면 얼마든지 소망이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이것은 미국에서 흑인 민권운동 지도자였던 마르틴 루터 킹 목사의 말과도 같습니다. 그는 흑인을 향한 백인들의 우월의식과 차별이 물론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흑인인 자신들이 이런 현실에 안주하면서,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드리는 자세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흑인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사랑한 사람이 바로 구약 성경에 나오는 꿈꾸는 사람 요셉이었습니다. 그 가슴속에 꿈이 있었을 때 아무도 그를 이길 수 없었으며 만난을 극복하고 마침내 그 꿈을 이루고야 말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하나님은 요셉에게 꿈을 주셨고 그 꿈을 버리지 아니한 요셉을 크게 들어 쓰심으로 그 꿈을 이루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애굽은 물론 근동지방과 특히 이스라엘 가족들을 극심한 가뭄에서 구해 낸 것은 바로도 아니었고, 그 잘났다고 뻐기던 요셉의 형들도 아니었습니다. 꿈꾸는 사람 요셉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약에 와서 사도들이 오순절 날 성령 충만 받고 나서 몰려든 군중들에게 선포한 베드로의 첫 설교가 무엇이었습니까? “젊은이들이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이 꿈을 꾸게 되리라”는 요엘서의 말씀이었습니다. 초대 교회에서 성령 충만 받은 사람들이 바로 환상을 본 사람들이요 꿈을 꾼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들어 쓰셔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해 주셨습니다. 

    우리나라에서 1907년에도 그랬습니다. 원산에서, 평양에서, 재령에서, 그리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성령 충만 받은 사람들, 환상을 보고, 꿈을 꾼 사람들을 들어 쓰셔서 이 땅의 복음화를 이루셨고, 민족의 독립을 쟁취하게 하셨습니다. 결국 우리들의 문제는 상황이 아니라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 각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할 때,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환상과 꿈을 심어주실 때 상황은 오히려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 땅에서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돈 많은 사람, 학식 있는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 등 힘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레미야 선지자 때 예루살렘 온 거리를 다니며 의인 한 사람을 찾으라고 하신 하나님은 오늘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런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이루시고 이 땅을 용서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사야 선지자처럼 “내가 여기있나이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굽니까?

2.  오늘 구약 본문을 보십시오. 창15:1에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였다”고 했습니다.

(1)  “이후에”는 언제를 말합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갈대아 우르로 가라고 해서 순종하여 여기까지 왔으나 롯과의 불미스런 영역 다툼 때문에 좋은 땅을 모조리 롯에게 양보한 후를 말합니다. 소위 “약속의 땅”을 조카 롯이 선점해 버렸습니다.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과연 물거품이 되느냐 의심할 수밖에 없는 그런 현실입니다.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주변의 왕들이 동맹을 맺어 롯 일가까지 모조리 포로로 끌고 갔기 때문에 아브람이 사병(私兵) 318명을 데리고 추격해서 겨우 롯 일가를 구해오기는 했지만 저들이 언제 다시 반격해 올는지 알 수 없는 불안한 현실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하셨지만 발붙일 땅도 없고 나이는 100세를 바라보는데 아직도 자식에 대한 소망조차 가질 수 없는 현실입니다. 고향 떠나 수 천리 타향에 와서 이런 현실에 직면한 아브라함이 어찌 마음에 의심과 걱정이 없겠습니까? 소위 “약속의 땅”에 오기는 했는데 그에게 찾아온 것은 이만저만한 위기가 아닙니다. 말하자면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라는 말은 정말 아브라함의 입에서나 나올 수 있는 말입니다.

    나중에 이스라엘의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가 승천하고 난 후 엘리사가 “엘리야의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라고 부르짖던 일도 있었습니다만 지금 아브라함의 심정이야말로 “약속의 하나님, 당신은 도대체 어디 계십니까?”라고 부르짖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멀리 떠나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절박한 사정을 모르시거나 외면하시고 계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그야말로 죽음의 세월을 보낼 때 그들은 신음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신음조차도 마음 놓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놀랍게도 이스라엘의 그 신음소리도 다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고난의 현장에서 떠나계시거나 외면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 고난을 다 보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거기 계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을 아십니까? 때로 지금 내가 당하는 고난이나 어굴한 사정은 아무도 아는 이 없다고 생각되어 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낙심하고 좌절합니다. 심지어 하나님마저도 내 사정을 모르신다고 단정하고 믿음이 흔들리게 될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고난당하는 현장 바로 거기 나와 함께 계십니다. 다 보시고, 다 들으시고, 다 아십니다.

    흑인 영가에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내 겪은 고난 누가 알랴 아는 이 아주 없네.....내 겪은 고난 누가 알랴 아는 이 오직 예수!” 세상 사람들이 다 몰라주어도 우리 주님은 다 아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주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요청해야 합니다. 주님은 “내 너를 도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2)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였다”고 했습니다. 이 절박한 현실에 환상 즉 비전을 주신 이가 누구십니까? 하나님 이십니다. 여기 믿음의 위대한 능력이 있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에게 믿음이 없었다고 한다면 그가 어떻게 이 절망적인 현실을 이길 수 있었겠습니까?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가 형 에서의 복수의 칼을 피하여 도망갈 때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하나님께 복 받기를 원해서 한 일의 결과가 복은커녕 엄청난 고난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부모도 형제도 다 버리고, 약속의 땅도 버리고 야반도주해야하는 그런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하루 길을 갔지만 잠 잘 곳도 없어서 들판에 돌베개 베고 풍찬노숙하게 되었습니다. 그 밤도 고통스럽지만 날이 세면 갈 곳도 없으니 그것이 더 절망적이었습니다.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이요 내일에 대한 염려와 함께 밤의 한기가 온 몸을 뼛속까지 스며들었습니다. 나아갈 길도 없고 물러설 땅도 없었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이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하겠다, 지켜 주겠다, 다시 돌아오게 해 주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벧엘에서 야곱에게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이 되는 새로운 인생이 열려졌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그렇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여기가 바로 우리 교회의 벧엘인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여기 태화동 새 성전에서 새 출발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새롭게 찾아오시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새 역사를 창조해 나가야 할 우리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도착하고 났을 때, 다소는 긴장이 풀렸을 것입니다. 바로 그랬을 때 가족끼리 서로 영역 때문에 분쟁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롯이 좋은 땅을 다 차지하고 났을 때 감격은 사라지고 불안과 원망이 그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랬더니 엎친데 덮치기로 원주민들의 침략이 있었습니다. 사면초가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럴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우리가 허망한 꿈을 버리고, 현실을 직시하라는 주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다른 무엇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라고 하시는 주님의 섭리입니다. 지금 아브라함으로서는 오직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거나 바라볼 여지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고난이 오히려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님만 의지하게 되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비록 개인적으로 말로 할 수 없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오직 주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여러분의 모든 것을 아시므로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시고 해결해 주실 줄 믿습니다.


3. 신앙적 현실로 돌아와서야 하나님은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새롭게 해 주십니다.

(1)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사실 사방 적에게 둘러싸여 있습니다. 언제라도 저 동맹군들이 습격해 올 수 있습니다. 어떻게 마음 놓고 잠인들 잘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너의 방패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막아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오늘도 여러분의 방패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고 했습니다.

(2)  상속자에 대한 약속입니다. 아브라함이 후손에 대해 거의 포기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데리고 나가서 하늘의 별을 보여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것이 상식적으로 이해되거나, 정말 현실성에 대한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보시고 아브라함에게 “합격”의 도장을 찍어 주셨습니다. “의로 여기셨다‘는 것은 이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무엇보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격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하늘 문을 열어주십니다.

(3)  그리고 나서 7절을 보십시오.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로 삼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아무리 주변의 동맹국들이 아브라함을 노린다고 해도 하나님이 OK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결재하시면 아무도 그것을 취소할 수 없습니다.

    “내가 네 건강을 지키겠다”, “내가 네 물질을 지키겠다”, “내가 네 자녀들을 지키겠다”, “내가 너를 모든 원수의 손에서 지키겠다”, 이런 약속을 주님께로부터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복음서 본문에서 예수님은 헤롯의 칼날이 그를 노렸지만 “오늘 내일” 하나님이 함께하실 줄 믿기에 갈 길을 가겠노라고 하셨으며 “제 삼일”에 대한 약속을 굳게 믿고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서신에서 바울은 그래서 “우리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며 거기로부터 구원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환상, 예수님의 제 삼일에 대한 소망, 그리고 사도 바울처럼 하늘의 구원을 기다리는 여러분이 오늘 여기서 하나님의 도구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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