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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세상 (행 9:3-9,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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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인구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60억이나 산다고 합니다. 60억이 같은 지구 같은 환경에 사니까 같은 세상을 경험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60억의 인구는 각각의 주관적으로 다른 세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60억의 세상인 셈입니다. 60억의 세상을 다 설명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단지 좋은 세상과 나쁜 세상으로만 나누어 봅시다.

쉽게 말해 봅시다. 아무도 믿을 수 없고 서로 잡아먹는 세상인가요? 좋은 일만 일어나고 모두가 친구인 세상인가요? 괴로운가요 행복한가요? 이것저것 뒤섞여 있는 세상인가요? 죽도록 뛰어다니지만 집에 돈 한 푼 들여놓지 못했나요? 자식들이 우습게보나요? 일이 잘 되어 풍족하게 살고 있습니까? 운인가요? 팔자인가요? 이름이 좋고 나쁜가요?

좋은 세상에 사는지 나쁜 세상에 사는지는 본인이 압니다. 만족하고 행복한가요? 모든 게 감사하고 더욱 잘해보겠다는 의욕이 일어납니까? 미래에 대한 소망이 있어요? 그러면 좋은 세상입니다. 괴롭고 슬프고 불행한가요? 의욕이 없어요? 나쁜 세상에 살아요. 어떻게 좋은 세상으로 바꿀까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주십니다.

1. 새 세상을 선택하라

사울이란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최고 가문에서 최고 교육을 받았습니다.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요 베냐민지파요 가말리엘의 제자였고 로마시민이었습니다. 랍비 중에 랍비요 산헤드린 회원 곧 당시 평생 하는 국회위원이었습니다. 누가 보든가 그의 세상은 최고였습니다. 떠오르는 별이었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사람이었어요. 좋은 세상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세상은 어두웠습니다. 저는 살기등등한 사람이었고 예수 믿는다고 사람을 죽입니다. 나중에 하는 고백이 자신은 죄인 중에 최고 죄인이었다고 합니다. 죄와 사망에 법에 눌려서 자유가 없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낼 것인가!” 모두가 부러워하고 뒤를 따르지만 나쁜 세상이었습니다.

그러다 그는 밝은 빛을 보고 말에서 떨어집니다. 사흘이나 금식하며 고통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안수할 때 눈에서 비늘 같은 게 벗어집니다. 새로운 세상을 봅니다. 일반 세상 사람들이 보는 세상은 영적으로 비늘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오고 설교를 듣습니다. 그러면 비늘이 벗겨지고 보게 됩니다. 사울은 바울로 이름을 바꿉니다.

비늘이 벗겨지면서 그는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됩니다. 어떤 세상인가요? 그는 죄와 사망의 세상에서 해방되어 생명의 성령의 세상으로 옮겼다고 말합니다. 함께 일어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혀졌다고 선언합니다. 셋째 하늘을 보는 새 세상입니다. 그가 그 후로 한 일은 역사가 압니다. 그리스도를 온 세상에 전파해 새 세상을 줍니다.

한번은 죽도록 채찍으로 맞고 피투성이가 된 채로 손발이 묶여서 감옥에 던져집니다. 세상 사람들 보기에는 비참한 몰골입니다. 그러나 웬일입니까! 한 밤중이 되자 그는 찬송을 부릅니다. 함께 갇힌 죄수들이 듣습니다. 그들은 정말 죄인들입니다. 그러나 감동되어 눈물을 흘립니다. 죄수들과 바울은 같은 곳에 있지만 전혀 다른 세상에 살았어요.

얼마 못가 감옥은 교회가 됩니다. 모인 곳이 진동합니다. 옥문이 저절로 열립니다. 그러나 아무도 도망하지 않습니다. 죄수들도 그대로 있습니다. 간수가 어둠 속에서 문이 열린 것을 보고 자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외칩니다. “우리 모두 여기 있다.” 간수가 달려와 절하며 외칩니다. “선생님, 내가 어떻게 해야 이 세상에서 구원 얻겠습니까?”

그리하여 그 간수도 거기 있던 죄수들도 모두 새 세상으로 인도됩니다. 이 세상은 다른 데 있지 않아요. 지금 여기 함께 있습니다. 이 세상을 벗어나서 경험하는 게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경험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좋은 세상으로 만듭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다 극복해 내고야 합니다. 신자에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새 세상입니다.

이 새 세상은 본래 여기 없었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을 갈망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냥 이 세상에서 각자의 아픔을 가지고 망했습니다. 당신의 세상은 무엇인가요? 고통스러운가요? 행복한가요? 이 세상은 예수께서 넣어주셨어요. 받으면 새로운 세상에 들어가게 됩니다. 생명이 넘치는 성령의 세상입니다. 좋은 세상입니다.

2. 새 세상을 적용하라

사울이 바울로 바뀐 게 무엇을 의미하나요? 하나님을 만나고 이름이 바뀐 사람이 많습니다. 아브람은 아브라함으로 야곱은 이스라엘로 바뀝니다. 시몬은 베드로가 됩니다. 눈에 비늘이 벗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름이 완전히 바뀌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비늘이 덮였다가 다시 벗겨졌다를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상황입니다.

어떤 사람은 모태부터 교인이지만 아예 영적인 눈이 꽉 감겨있습니다. 하늘나라 갈 때까지 그럽니다. 얼마나 답답한지도 몰라요. 그러나 예수 믿어도 삶이 너무 힘들기만 합니다. 바울은 굶어도 매 맞아도 모든 역경을 신나게 극복하며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하나님을 보니까요. 하지만 영적 비늘은 그런 세상을 볼 수 없게 만듭니다.

사울은 위대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자기가 훌륭해요. 그래서 자기 힘으로 삽니다. 세상에 그런 분들이 많아요. 머리 좋고 인물 좋고 똑똑해요. 건강하고 의지가 강해서 도덕적으로 삽니다. 정직하고 신용 있습니다. 훌륭해요. 자신도 착하고 선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 필부의 힘만 나옵니다. 운명과 세상 앞에 사탄의 공격 앞에 무력합니다.

그러니까 사울은 고민합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없나니 원함은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 몸 안의 죄의 법이 나를 마음대로 하는구나. 피곤하고 짜증나고 우울하다! 이 사망의 세상에서 누가 건져내랴!” 그러나 바울은 외칩니다. “우리 주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 안에 있는 자는 새 세상을 보고 누린다.”

새 세상은 육신의 약함에 눌리지 않습니다. 생명의 법 성령의 법이 해방 시켰기 때문입니다. 바울이란 작은 자란 뜻입니다. 약하고 힘이 없어서 처음부터 자기 힘으로 서기를 포기합니다. 예수만 의지하려 합니다. 새 세상은 예수만을 의지하기를 선택할 때 열립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는 예수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긴다.”

비늘을 벗기는 방법이 이것입니다. 사울 되기를 중지하고 바울이 되는 겁니다. 야곱 되기를 중지하고 이스라엘 되는 겁니다. 눈에 보이고 들리는 것을 의지하지 말고 마음으로 새 세상을 보세요. 그로부터 오는 모든 격려와 도움을 믿으세요. 내 약함과 피곤함을 내려놓고 그 힘이 내게 부어진다고 믿으세요. 나는 작은 자요 하나님의 힘으로만 삽니다.

그동안 말씀 듣고 교회 생활했지만 여전히 믿음이 약해요. 기도할 때 믿음이 안 일어날 때가 많아요. 하나님이 정말 있는지 의심스러워요. 그래도 의지하세요. 귀신들려 귀먹고 벙어리된 아들을 둔 아버지도 그랬어요. “주여 내가 믿고 싶은데 믿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세요.” 이 정도만 마음을 정해도 새 세상은 열립니다.

날마다 불신앙의 비늘을 벗기세요. 믿음으로 새 세상을 보겠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나를 좋은 세상의 주인으로 만드셨다. 나의 죄를 다 없애고 저주의 그늘을 거두었다. 비록 내가 죄와 저주의 노예였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친 자식이다. 나는 바울처럼 새 세상을 인정하고 선택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 새로운 세상의 경험을 만들리라.”

3. 새 세상을 유지하라

새 세상을 믿는다면 그 세상의 사고와 감정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노예의 사고와 경험을 40년 동안 벗겨냈습니다. 바울도 자주 사울로 돌아가 고통했습니다. 힘들고 짜증나고 우울하면 옛 세상에 온 것입니다. 눈의 비늘이 세 세상을 못 보게 합니다. 예수는 나를 새 세상의 주인이 되게 했습니다. 말씀 따라 거기 맞는 감정을 만드세요.

사람들의 고통과 실패는 별안간 오는 게 아닙니다. 계속 생각하고 감정적으로 느끼는 게 어느 날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말씀을 듣는 사람은 거기 좋은 감정을 더해야 합니다. 가게에 손님이 안 옵니다. 높은 사람이 신경질 부립니다. 몸이 아픕니다. 어떤 감정을 가지고 경험하겠습니까? 바로 어떤 세상을 선택하느냐가 여기 달렸어요.

과거 상처도 그냥 두지 마세요.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고 하지 마세요. 내 안에 남아 계속 나쁜 감정을 일으킵니다. 그것을 좋은 경험으로 바꾸어서 다시 해석하세요. 시어머니가 남편이 아내가 상사가 내게 준 아픔을 스스로 좋은 감정으로 해석해서 치료하세요. 그러면 나는 좋은 세상에서 살아온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항상 좋은 경험을 만드세요.

하나님이 우리를 좋은 세상으로 초대합니다. 죄를 다 사해주셨습니다. 저주를 다 못 박았습니다. 몹쓸 병도 가난도 실패도 절망도 슬픔도 모두 해결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행복한 생각 하세요. 두려움과 미움을 버리고 성공한 사람 승리한 사람 건강한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이 좀 안 와도 여전히 두려워도 그렇게 도전해야 합니다.

행복한 세상을 위한 가장 중요한 일은 행복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행복한 세상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난 그럴 수 없어. 내 성질로는 안 되. 열 받아!” 무슨 소리! 새 세상을 선택해야 합니다. 속상한 일 생겼다고 소리 지르고 성질부리고 따지고 하지 마세요. 그렇게 나의 세상을 형편없이 만들지 마세요. 내 세상에는 저주가 없어요. 모두가 복이에요.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보십니다. 우리가 한 모든 선한 일과 복된 일 다 세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머리가 나빠서 잊지 않으시고 우리의 세상에 좋은 것들을 넣어주십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몰래 숨어서 한 일을 다 보고 계십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하신 봉사를 높이 평가하고 계십니다. 남이 모를수록 더 값진 것입니다.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그를 의지하라.”(신30:19) 하나님의 임재로 그의 말씀으로 항상 마음을 밝히세요. 나는 주의 성전입니다. 성전의 등불을 절대로 꺼서는 안 됩니다. 나의 세상은 행복한가요? 최고로 만들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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