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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굳건하게 서라 (갈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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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한국에서는 EBS에서 ‘김용옥의 요한복음 강의’ 때문에 말이 많습니다. 몇 가지 자료를 검토한 결과, 그의 강의는 정말 일고의 가치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구약성경이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은 이미 이단들이 오래전에 주장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여 기록한 성경을 인간의 작품으로 내려놓고 평가하는 그는 올바르지 않습니다.

그의 가정 배경을 내가 잘 압니다. 그의 부모는 천안의 전통적인 장로교회 장로와 권사입니다. 평생 새벽기도에 빠지지 않은 신실한 분들입니다. 그의 부친은 산부인과 의사입니다. 그의 형의 하나가 아버지의 병원을 물려받아 진료했습니다. 우리 어머니 담당 의사였고, 막내를 낳을 때 그가 왕진 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가정에서 기독교에 가장 해로운 사람이 났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는 신학대학에도 1년 다닌 적이 있습니다. 이런 저런 배경을 공개하면서, 그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성경을 잘 안다”고 공언합니다. ‘하바드 박사’라고 하지만, 그가 성경을 아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그는 그의 ‘큰 소리’와 달리, 성경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다른 분야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성경에 대해 주장하는 그의 태도는 틀렸습니다.

새삼 느끼는 것은, 적그리스도의 공격이 다양하고 다채롭다는 것입니다. 한국 기독교가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교회 성장이 멈췄고, 정체되었습니다. 아니, 교인 수가 감소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떠납니다. 이럴 때 우리가 바른 성경공부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감합니다.

교회와 모든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굳건히 서야 합니다.
구원의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세상 모든 것은 흔들려도, 교회와 가정은 굳게 서야 합니다.

어제 토요일 새벽기도를 위해 베이브릿지를 지나면서 뇌리를 치는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모든 출제자는 해답을 가지고 있다!

문제를 출제하고, 답을 모른다면, 그 문제는 잘못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풀다가 모르면, 출제자에게 물으면 됩니다! 시험 중에는 어렵겠지만, 끝나고 나면 친절하게 가르쳐 줄 것입니다.

인생의 문제는 시험 치르는 중에도 ‘출제자에게 물을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학교 시험과 인생 시험의 “차이”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영적입니다. 경제적인 문제, 인간관계 문제, 그밖의 사소해 보이는 모든 문제는 영적입니다. 모든 문제는 영이 잘 되어야 풀리는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Dear friend, I pray that you may enjoy good health and that all may go well      with you, even as your soul is getting along well.
      요삼 1:2

인생은 문제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인생은 “문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디에 있는가?”
      “어디로 갈까?”     
      “돈을 어떻게 벌까?” “어떻게 쓸까?”
      “무엇을 어떻게 먹을까?”
      “오늘은 누구를 만나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가?”

인생을 창조하시고,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께서 인생의 모든 문제를 출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문제를 아십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일 아닌 문제를 우리에게 출제하신 바 없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문제를 우리 주님께 여쭈어야 합니다.
문제를 혼자 풀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 지혜로 풀 수 있는 인생의 문제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답이 없습니다. 그것은 컨닝(cheating)입니다. 남의 것을 베껴서는 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그게 허락된 바가 아닙니다.

출제자는 해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를 출제하신 주님께 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해답을 주십니다.
기도입니다.
말씀읽기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풀어야 할 문제에 해답을 받았습니까?
주님께서 주시는 모든 문제의 해답은 같습니다. “평안”입니다.
주님의 응답을 듣고 나면, 마음속에 평안이 찾아옵니다.

기도에 응답이 있습니까? 그걸 어떻게 압니까? 알 수 없는 평안이 가슴에 들어찹니다. 그 때 우리는 이미 응답을 받았습니다.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마음에 주님께서 주신 평안이 있으면, “이미” 주님께서 그 문제를 “맡으신 것”입니다.

      이리 가지고 오너라.
      내가 풀어주마.

선생님께 문제를 맡긴 학생처럼 우리는 마음이 평안합니다. 우리는 “감사합니다, 선생님!”만 하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

십자가가 모든 문제 해결의 열쇠입니다. 십자가로써 모든 막힌 문제가 풀립니다. 경제도, 인간관계도, 모든 종류의 배반과, 근심과, 걱정, 이 모든 것이 십자가의 은혜로써 풀립니다.

오늘은 “요람” 순서를 따라서, “갈라디아서”를 본문으로 삼고 말씀드립니다. 매주 각 책을 다룰 때, 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보고 설교합니다. 오늘은 갈라디아서 전체 주제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런데 그의 적용은 하나의 초점을 두겠습니다. ‘건강한 가정’입니다.

오늘 수많은 문제가 직장에도, 시정에도, 학교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정처럼 문제가 심각한 것도 없습니다.
가정처럼 문제가 ‘은폐’되어 있는 것도 없습니다.
가정처럼 사탄의 타깃(target)이 되어 있는 곳도 없습니다.

모든 심각한 문제는 ‘별것 아닌 것’이라는 포장을 하고 있습니다. 쉽게 풀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모든 문제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나 다 맞은 것 같아!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내 경험입니다. 요새 보니까, 내 아들도 그런 모습이 보입니다. “쉬웠어요.” 했는데, 결과는 아닙니다.

모든 뇌물은 “사과상자”에 담겨 있습니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이, 사과상자에도 사과가 없습니다. 이 무슨 이상한 현상입니까?
점심이나 하라고 봉투를 찔러줍니다. 무슨 점심을 100만원어치나 먹습니까?
택시나 타고 가시라고 손에 쥐어줍니다. 그런데 무슨 택시비가 10만원 씩이나 합니까?

그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위장’한 문제로 가득 차 있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평온하지만, 속은 곪아 터집니다.
특히 가정에 그렇습니다.

곪아서 터질 때까지 모르고 지내는 것이 가정문제입니다.
특히 남자들은, 그런데 둔하기 그지없습니다.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왜 진작 이야기 하지 않았어?” 합니다. 언제 이야기 할 기회를 주었어야 말이지요!

누가 여자는 ‘영혼’이 없다고 했습니까?
누가 여자의 영혼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까?
누가 여자는 그저 물질에만 관심이 있다고 했습니까?
실상을 말하자면, 오히려 남자들이 영적인 문제에 무관심하지 않습니까? 교회에 여자들 수가 더 많은 것이 이 사실을 증명합니다.


잠간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저희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말씀을 부족한 저의 입술을 사용하셔서, 온전히 전달할 수 있도록, 주여 저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성도들의 마음을 다스려 주셔서, 사탄 마귀의 시험에서 이기게 하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나는 두 가지로 오늘 말씀을 기둥 삼습니다. A. 끌어안기, B. 잘라내 버리기. 이것은 갈라디아서의 두 가지 주제이기도 합니다.


A. 끌어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가정생활에서 “끌어안고” 살아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은 천부적 재질을 품고 태어났습니다. 누구든지 그의 음악을 들으면, 삶의 새로운 경험 속으로 들어갑니다. 우리 찬송가에 그의 곡이 있습니다.

그의 부친은 이미 유명한 음악가였습니다.
그는 요셉 하이든(Joseph Hayden, 1731-1809)에게서 배웠습니다. 
모차르트는 베토벤의 천재성을 파악했습니다. 

그는 이미 20세 때 명성을 얻었습니다.
음악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재정적 어려움을 거의 몰랐던 최초의 자유 음악가였습니다. 작곡과 연주로써 이미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질병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난 것이었습니다.

그는 비극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비극과 함께 살았습니다. He lived with the tragedy.

UCLA 의과대학 수업시간이었습니다. 어떤 교수가 들어와 이런 상황을 소개했습니다.

      어떤 여인이 임신 중이었다. 현재 8명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다. 그중 셋은            귀머거리고, 둘은 장님이며, 한 명은 정신지체아였다. 그녀는 매독에 걸려 있었다.      임신한 이 아이를 어떻게 할까?

학생들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말했습니다. “인공유산시켜야 합니다!”  만히 듣고 있던 교수가 대답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베토벤을 죽였습니다!”

가정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공간입니다. 그러나 가정처럼 불완전한 사람이 모인 곳도 없습니다.
직장은 보기 싫은 사람이 있으면 옮깁니다.
사원이라면 ‘해고’해 버립니다.
그러나 가정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저 사람 없었으면 좋겠다!”
“그래. 내가 없어져야 이 집안이 편하지!”
이런 것은 비극입니다.

      “내 동생이야!”
      “내 아들이야!”
      이렇게 끌어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게 가정입니다.

문제라고 다 잘라내 버릴 수가 없습니다. 서양의학(西洋醫學)의 맹점입니다. 칼로 잘라내면 다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떤 문제는 끌어안고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문제는 ‘기도’의 제목이 됩니다.
어떤 병도 일생 끌어안고 살아야 합니다. 의사가 말합니다.

      이제부터는 이 병과 친해지십시오. 이 병은 당신의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치료해 없애려고 애쓸수록 스트레스만 옵니다.

매일 먹는 약을, “이거 왜 먹어야 돼?” 그러면 힘이 듭니다. 즐겁게 먹읍시다. 이거 먹자고 해도 구할 수 없어서 못 먹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우리는 늙어갑니다. 기력이 쇠합니다. 그것을 막으려고 화장, 치장, 변장, 위장, 그런 것 해 보아야 소용이 없습니다.

     
한 손에 막대를 쥐고 또 한 손에는 가시를 쥐고
늙는 길을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을 막대로 치려 했더니
백발이 제가 먼저 알고서 지름길로 오는구나.

이제부터는 나이와 친해져야 합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합니다.

물론 “운동”하고 “노력”해서 건강을 “유지”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행복’한 일입니다.

우리 삶에 하나님께서 문제를 주실 때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하게 하시려는 뜻이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온유하게 하는 ‘도구’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식구”는 끌어안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여기는 ‘조건’이 없습니다.
무조건의 사랑이 있는 사람들이 ‘식구’입니다.

가정은 모든 가능성의 산실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가정에 모든 좋은 것을 다 주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은 ‘가시’까지 포함합니다.
장미에 가시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일평생 육체의 가시를 품고 살았습니다.
모든 가정마다 이런 ‘가시’가 있습니다.

가정생활에 잘라낼 수 없이, 품고 가야 할 사람,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그런 일도 있습니다.

가정을 굳게 세우는 것은 우리의 육적인 판단이 아닙니다.
그건 영적인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내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믿듯이, 다른 식솔들의 생명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이 가장 중요한 것은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들어낼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오는 불행과 저주, 온갖 슬픔은 우리 손으로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
방패, 산성, 바위, 이것은 하나님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막아주셔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은 모든 문제와도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삶의 모든 불행을 불평하는 태도는 진정한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가정을 굳게 세우는 것은 위험을 피하는 데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가정을 굳게 세우라.
      말씀 위에 세우고, 하나님의 영의 감동을 받으라.
      진정한 자유를 누리라.

흔들리지 않는 가정, 그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가정입니다. 

교회가 반석 위에 서야 한다면
가정도 반석 위에 서야 합니다.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스라엘이 반석에서 난 물을 마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서 난 물을 마십니다. 생명수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 뜻은,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 죄를 용서하신 깊은 뜻은, 우리도 용서하는 사람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식구들을 사랑합니다.
가정을 세운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의 주제는 “성령 vs 육체”입니다.
성령대로 사는 사람은 육체대로 살지 않습니다.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의 역사하심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다음과 같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But the fruit of the Spirit is love, joy, peace, patience, kindness, goodness, faithfulness, gentleness and self-control. Against such things there is no law.
Those who belong to Christ Jesus have crucified the sinful nature with its passions and desires.
갈 5:22-24

이 아홉 가지는 “하나”입니다. “열매”라는 단어가 “단수”이기 때문입니다.

사랑 love
희락 joy
화평 peace
오래 참음 patience
자비 kindness
양선 goodness
충성 faithfulness
온유 gentleness
절제 self-control

이 열매는 “믿음으로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성령의 선물”입니다. 아프더라도 가야 합니다. 힘들고 낙심이 오더라도 완주(完走)해야 합니다.

식구들에게 “물질”을 준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나누어 주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면, 그 가정은 “자유한 가정”입니다.

오늘 본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It is for freedom that Christ has set us free. Stand firm, then, and do not      let yourselves be burdened again by a yoke of slavery.


참 자유한 가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폭력이 없는 가정.
      2. 대화가 통하는 가정.

남자의 오해 1.      폭력으로 다스려진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남자의 오해2.      말을 해야 대화인줄 압니다.
          듣는 기술이 더 중요합니다.

남자의 능력.      대화를 통하게 하는 기술입니다.
          처음에 결혼을 결심하게 했을 때, “이 남자라면 대화가 통하겠구나!”
          그런데 말이 통하지 않게 되면, 위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셨습니까? 대화가 통한 분이셨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온 사람들은, 말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정을 알아주셨습니다.
      편견을 갖지 않으셨습니다. 겉모양으로 미리 판단하지 않으셨습니다.

문제를 주신 분이 해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정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가정을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 그 해답을 가지고 계십니다.
      위기를 느끼십니까?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 왜 성경 읽지 않으십니까?

하나님께 구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참된 자유가 가정에 있어야 합니다. 

참 자유는 육신의 열매가 아니라 영의 열매를 맺습니다.
영의 열매.
진정한 은혜의 열매입니다.

참 자유한 사람은 문제를 예수님께 맡깁니다.
자기가 해결하려고 하면 되지를 않습니다.
자기를 상하면서 애를 써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B. 끊어내야 합니다.

모든 것을 품고 살 수 없습니다. 끊어내 버려야 할 것이 “분명히” 있습니다.

가정 안에 증오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증오는 “잘라내 버려야” 합니다.

지난 주중에 한국일보 본국지에 실린 기사입니다. 증오를 품고 있으면 어떤 결과가 오는가?

“60년 박대 이젠…” 팔순의 ‘마이웨이’
남편 외도·폭행에 파탄… “위자료 등 9억 지급”판결

팔순을 앞둔 할머니가 남편의 외도와 폭행 등에 견디다 못해 60년 가까운 결혼생활을 접고 황혼이혼했다.
1948년 11월 최모(79ㆍ여)씨는 한 살 연하의 고등학생이던 남편 김모씨와 결혼했다. 최씨는 50년 한국전을 전후해 사회주의 정치활동에 뛰어든 남편을 대신해 시부모를 모시고 7남매를 돌보며 가정을 돌봤다. 남편 때문에 정부기관에 불려가 갖은 고초를 겪기도 했다. 남편은 그러나 이런 최씨에게 “무식해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며 면박을 일삼았을 뿐 따뜻한 말 한마디 없었다.
그러다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된 64년 김씨는 몰래 다른 여자와 동거하면서 두 명의 아이를 낳았다. 최씨가 이 사실을 알자 남편은 용서를 구하기는커녕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했다. 간혹 남편에게 따질 때면 폭행만 돌아왔다.
김씨는 이후 사업이 번창해 부와 명예를 얻었지만 최씨는 매월 적은 생활비를 받아써야만 했다. 김씨는 동거녀에게는 3층 건물을 지어주고 매월 50만원씩을 주면서도 정작 대가족과 함께 사는 최씨에게는 30만~40만원만을 줄 뿐이었다. 남편은 70세 이후에도 다른 여자와 가깝게 지냈다.
2004년 최씨가 참다 못해 생활비가 적다고 따지자 김씨는 폭언을 퍼 붓고 집을 나가 또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리고 생활비 등을 끊었다. 몸이 허약해 병원을 다니는 최씨는 치료비마저 끊기자 ‘남은 생이라도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생각에 이혼을 결심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4부(부장 손왕석)는 25일 최씨가 김씨를 상대로 낸 이혼 및 재산분할 등 청구 소송에서 “위자료 및 분할재산 총 9억원을 지급하라”며 최씨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법원은 “김씨가 다른 여자와 장기간 동거하면서 부정행위를 하고 아내를 무시하며 폭언, 폭행해 정신ㆍ육체적 고통을 줘 혼인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에 이른 것은 이혼사유가 된다”고 판시했다.

사람이 결혼하는 것은, 서로에게 ‘속박’이 되게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족쇄”를 차려고 결혼하겠습니까?

결혼은 오히려 서로 풀어주고, 자유케 하려는 것입니다.
혼자 할 수 없는 것을 함께 하여 즐거움을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혼으로 속박 당하게 되었다면, 이보다 불행한 일이 또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서로를 풀어주는 자유를 배워야 합니다.
결혼함으로써 성공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문제를 끌어안고 살아가야 할 때도 있지만, 끊어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물론, 문제의 ‘성격’에 따른 판단이 있어야 합니다.

끊어내지 못하고 육체에 이끌려 살다 보면, 죽음의 열매를 맺습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So I say, live by the Spirit, and you will not gratify the desires of the sinful nature.
For the sinful nature desires what is contrary to the Spirit, and the Spirit what is contrary to the sinful nature. They are in conflict with each other, so that you do not do what you want. But if you are led by the Spirit, you are not under law.
갈 5:16-18

육신의 열매는 이와 같습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The acts of the sinful nature are obvious: sexual immorality, impurity and debauchery; idolatry and witchcraft; hatred, discord, jealousy, fits of rage, selfish ambition, dissensions, factions and envy; drunkenness, orgies, and the like. I warn you, as I did before, that those who live like this will not inherit the kingdom of God.
갈 5:19-21

이런 열매는 죽음입니다. 이런 열매를 맺는 것은 죽음입니다. 이런 열매를 먹는 것도 죽음입니다.

음행 sexual immorality
더러운 것 impurity
호색 debauchery
우상 숭배 idolatry
술수 wichcraft
원수를 맺는 것 hatred
분쟁 discord
시기 jealousy
분냄 fits of rage
당 짓는 것 selfish ambition
분리함 dissensions
이단 factions
투기 envy
술 취함 drunkenness
방탕함 orgies
또 그와 같은 것들 and the like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I warn you, as I did before, that those who live like this will not inherit the kingdom of God.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Are you so foolish? After beginning with the Spirit, are you now trying to attain your goal by human effort?
갈 3:3

우리는 영으로 시작한 인생입니다.
육체의 열매를 맺음으로써 “끝”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는 독수리와 같이 “영적인 성장”을 이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인 갈라디아서에 소개한 부부가 있습니다.

      1. 아브라함과 사라
      2. 아브라함과 하갈

아브라함은 두 명의 아내를 두었습니다.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결혼하고 살아온 아내입니다. 하갈은 육신을 따라 났습니다.

스페인어로 ‘남편’은 esposo입니다. ‘아내’는 esposa입니다. ‘아내’의 복수 형태는 ‘esposas'인데, 그 뜻은 놀랍게도 “수갑”(手匣, handcuffs)입니다. 

두 번째 아내 하갈은 아브라함에게 ‘족쇄’였습니다. 속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얻은 아내가 아니라, 인간의 욕심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자유케 하기 위해 하갈을 내보내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훌륭한 점이 많지만, 그때 하갈을 내보낸 결정은 참 잘 한 것이었습니다.

그 결정에는 하나님의 영이 함께했습니다.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아브라함의 가정의 예는, 오늘 참된 자유를 찾아야 하는 모든 가정에 해당하는 지침이 될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은혜를 따라야 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 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 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 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Now you, brothers, like Isaac, are children of promise.
At that time the son born in the ordinary way persecuted the son born by the power of the Spirit. It is the same now.
But what does the Scripture say? "Get rid of the slave woman and her son, for the slave woman's son will never share in the inheritance with the free woman's son."
Therefore, brothers, we are not children of the slave woman, but of the free woman.
갈 4:28-31

오늘 본문인 갈 5:1 말씀 직전에 주신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자유하는 여자, 즉 사라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이 자유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여기서 ‘자유’란 곧, ‘자유인의 신분’입니다. 우리가 하갈이 아니라 사라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십자가의 보혈로써, 우리의 죄를 사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육신의 정욕의 자녀가 아니라 영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갈을 내보낸 것처럼, 우리도 육신의 정욕을 따른 모든 ‘속박’을 벗어 던져야 합니다.

1. 육적인 관계를 끊어야 합니다.
2. 육신의 열매를 잘라내야 합니다.

1. 영의 관계를 맺고, 이어가야 합니다.
2. 영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3. 육신의 열매는 과감하게 잘라내야 합니다. 아니, 열매를 맺는 모든 악한 것은 그 생각부터 없애야 합니다. 싹을 잘라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은혜와 사랑으로 축복해 주신 우리 주님을 믿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부족한 사람을 택하셨습니다.
이런 주님의 ‘온전하신 사랑’을 오늘 우리가 본받습니다.

기도 Prayer
은혜의 주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예수님 안에서 온전한 가정을 이루어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은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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