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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3.1절] 그리스도께서 자유를 주셨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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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도 3월 1일은 3.1운동이 일어난 지 88돌이 되는 날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대로 1919년 기미년 3월 1일은 우리민족이 자주민(自主民)임을 세계만방에 선언하고 동시에 부당하게 우리나라가 일본과 합병을 당한 일에 대하여 세계에 고발하는 민족적 봉기의 날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1910년에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을 받아 강제로 합방을 당한 후 그들의 악랄한 식민지정책으로 정치, 경제, 문화, 예술 그리고 우리글과 언어, 종교에 이르기까지 우리민족의 모든 자유를 빼앗고 우민화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민족의 원한과 분노가 충천하였고, 결국 3.1운동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1. 3.1정신은 순수한 애국정신이었습니다.

기독교는 국경이 없습니다. 세계적인 기독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국경이 있고 조국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3.1운동은 나라를 잃은 민족이 나라를 되찾으려는 운동이었습니다. 3.1운동과 같은 애국운동은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나라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재산이나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맨주먹으로 저항정신을 발휘하였던 것입니다. 일본군의 무차별한 총격에 의해서 우리 동포는 7.500명이 살해당하고 15,961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46.948명의 무고한 양민이 체포되어 온갖 고문과 강제노역과 감옥에서 고난을 겪어야 했던 것입니다.

또한 많은 교회에서 3.1운동을 도왔다고 해서 47개의 교회당이 그들의 군화에 밟혀 유린되고, 기미년 4월 15일 수원 제암리교회는 독립만세를 불렀다는 죄목으로 교인들을 성전 안에 불러 모아놓고 밖에서 문을 봉하고 불을 질러서 몰살시키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당했던 것입니다. 3.1운동 당시에 상해에서 간행되었던 영자신문 ‘대륙보’의 외국인 기자였던 파이버씨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본 헌병이나 군대들이 아무리 총칼로 무찌르고 쏘아도 조선 사람들은 돌 하나 던지지를 않았다. 남녀학생들은 맨주먹으로 총칼 앞에 가슴을 내밀고 턱을 쳐들고 돌진하였다. 왜경과 왜병들은 피에 굶주린 호랑이 떼와 같이 붉은 피를 뒤집어쓰고 뛰어 다니며 칼로 베고 창으로 찌르고 발길로 차서 수 없는 조선 사람들을 죽였다. 그런 군중들은 한층 더 맹렬하게 만세를 불렀다.”

기독교는 애국적인 종교입니다. 이스라엘의 영도자 모세를 비롯해서 위대한 신앙의 인물들은 다 애국자들이었습니다. 이사야 예레미야,에스겔,엘리사,엘리야,에스라,느헤미야,에스더,다니엘 그리고 신약에 와서 바울이 애국자였습니다. (롬9:1-3,10:10) 특별히 우리 구주 예수님도 애국자였기 마23:37절에 보면 예루살렘을 내려다보면서 동족애의 눈물을 흘리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조국이 로마의 말발굽 아래 유린되어 예루살렘 성이 돌 위에 돌 하나라도 덧놓이지 아니하고 무너지고 망 할 것을 생각하니 통곡이 나왔던 것입니다. 당시에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사람들을 보면 기독교의 영향이 얼마나 컸는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불교인은 2명, 천도교인은 15명인데 기독교인은 16명이나 되었던 것입니다. 그 후 애국운동의 중심세력은 기독교였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 남강 이승훈 선생, 우남 이승만 박사, 김구 주석, 김규식 박사, 서재필 박사, 조만식 장로, 유관순 여사 등 많은 애국열사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이렇게 자주독립국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나라를 지키고 사랑하는 주인공들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성을 지키지 아니하면 파수군의 경성함이 허사라”고 하신 그 말씀대로 옛날 다니엘과 같이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2. 3.1운동 정신은 자주정신입니다

독립선언문 원문을 보면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此로써 世界萬邦에 告하야 人類平等의 大義를 克明하며, 此로써 子孫萬代에 誥하야 民族自存의 政權을 永有케 하노라.” 이것을 풀어 말하면 “우리는 여기에 우리 조선이 독립된 나라인 것과 조선 사람이 자주 하는 국민인 것을 선언하노라.”라고 선언했습니다. 이 말은 ‘민족자주정신’의 발로입니다. 한 나라와 민족이 다른 민족에게 주권을 빼앗기고 예속되어 종살이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며 민족평화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은 민족적 수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반만년 역사를 가진 문화민족이요 자주민족이었습니다. 자주정신은 곧 자립정신이요 독립을 뜻하는 것입니다. 독립의 반대 개념은 의존이며 예속을 의미합니다. 곧 종인 것입니다. 종은 주권이 없음을 뜻합니다. 우리나라는 이제 주권을 회복한 자주국가의 기회를 얻었으나 아직도 완전한 자주 독립은 아닌 것입니다. 

오늘우리가 할 일은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는 일입니다. 완전한 자주국방이 이루어질 때까지 여호와께서 성을 지켜주시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옛날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존낙스는 국방의 위대한 힘을 발휘하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스코틀랜드와 영국이 대결할 때 “스코틀랜드를 나에게 주시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내게 죽음을 주시옵소서.”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영국의 메리 여왕은 스코틀랜드의 모든 군함과 대포보다도 존낙스의 기도가 더 무섭다고 했던 것입니다. 나라를 위한 기도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3. 3.1운동 정신은 자유정신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일본에게 정치,경제,문화,예술,언론,학문,신앙까지 빼앗기고 생존권까지 압제를 받은 것은 완전히 자유를 빼앗긴 것이었습니다. 일본에 항거한 것은 자유회복을 원하는 운동이었습니다. 자유정신은 기독교 정신과 통하는 정신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에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럼으로 자유는 하나님이 인간에 주신 선물이요 특권이며 인간다운 본능입니다. 따라서 이 자유를 박탈당하면 본능적으로 저항하고 분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미국의 초기 독립 운동가였던 페트릭 헨리와 같은 사람은 ‘나에게  자유를 달라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죽음을 달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4.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 갇혀 손과 발이 착고에 묶여 있었으나 그들은 찬송하고 기도하였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비록 몸은 억압받고 묶여 있으나 그 내면의 세계에는 참 자유 했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평화는 내면의 평화, 자유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진정한 자유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죄로부터의 자유가 진정한 자유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몸은 자유 한데 죄에 묶여 양심에 자유가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이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흥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고 우리를 초대했습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했습니다. 아무리 죄를 지었어도 예수님에게만 나오면 그 죄를 용서 받습니다. 롬8:1절에 “그럼으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몸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죄로부터의 자유가 참 자유입니다.

둘째로 예수 안에 있는 자는 미신과 술수와 우상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종교성이 있습니다. “나는 아무런 종교도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그 내면에 들어가면 역시 종교심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제 1 감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무엇인가 믿지 않으면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공포에 의해서 믿습니다. 만약에 안 믿으면 큰일 나지나 않나, 서쪽으로 가면 어떻게 되나, 동쪽으로 가면 어떻게 되나 하면서 날을 받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이런 것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참 자유는 예수 안에서 술수와 미신과 우상의 구속에서 자유 한 것입니다.

셋째로 죽음에서의 자유가 참 자유입니다.

이 세상에 남녀노소(男女老少) 빈부(貧富)귀천, 영웅(英雄)호걸, 절세가인(絶世佳人) 유무(有無)식간에 죽음 앞에서 떨지 않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죽음의 문제에서 해방 된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롬6: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망이란 아주  멸망 받는다는 말입니다. 요3: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멸망은 영원한 멸망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은 멸망치 않습니다. 예수 안에서 죽는 죽음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일 뿐입니다. 또한 영생으로 들어가는 문일 뿐입니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은 죽음입니다.

요11;25절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살전4:13절에서는 ‘자는 자’라고 했고 ‘외인과 같이 슬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죽어도 부활의 소망이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넷째로 마귀로부터의 자유가 참 자유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귀에게 사로잡혀서 죄를 짓고 마귀의 종노릇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마귀가 손을 못 댑니다. 성령께서 주장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요8:32절에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했습니다. 요8:36절에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 하리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진정한 자유는 마귀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이미 창3:15절에 의하면 여인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뱀인 사단의 머리를 깨뜨리셨기에 예수 믿는 사람들은 마귀로부터 승리하고 참 자유하게 된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참으로 자유인입니다.

모쪼록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마시기를 바랍니다.(갈5:1) 그리고 3.1정신은 기독교의 정신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애국정신을 가지고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자주정신을 가지고 남에게 의존하지 아니하고 자주해야 하겠습니다. 국가적으로 자주국민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부디 위기에 봉착한 이 나라를 위하여 더욱 기도하시되 우리 신자들은 죄에서, 미신과 우상에서, 죽음과 마귀권세에서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자유하며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시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 우리 모두에게 영과 육이, 그리고 외면세계와 내면의 세계에서 참 자유와 평강이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윤정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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