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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어나서 함께 가자 (아 2: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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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3월 첫 주일입니다. 바야흐로 새봄의 문턱에 들어섰습니다. 겨울을 닫힌 계절이라고 한다면 봄은 분명 열린 계절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긴 겨울잠에 빠져있던 삼라만상이 저마다 따뜻한 봄기운을 느끼면서 힘껏 기지개를 펴고 움직이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옛날 솔로몬왕은 그의 연인 술람미를 향해서 애정 어린 초대를 하였습니다.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치고 꽃피고 새가 노래하는 계절임을 강조하면서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희망과 낭만을 안겨 주게 될 3월 첫 주일에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하시는 주님의 초대에 부응하여 사랑과 행복에 젖어지기를 바랍니다.

1. 일어나라고 하였습니다.

새봄을 맞이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서 일어나야만 합니다. 그냥 죽치고 앉아 있는 사람이 입으로만 함께 가겠다고 한다면 이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름에 화답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일어나서 대기하고 있어야 합니다.

1) 죽음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경은 범죄한 인간의 실상을 죽은 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눅 9:60). 포로시대의 선지자 에스겔은 골짜기에 가득한 마른 뼈의 환상을 보았습니다(겔 37:1-10). 그것은 당시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의 실상을 나타내는 계시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지시대로 말씀을 대언하였는데 그와 동시에 생기가 작용하여 해골들이 살아나고 일어서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죽은 자를 세 사람이나 살려 내셨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서는 죽은 소녀를 “달리다굼”하시면서 손을 잡아 일으키셨습니다(막 5:41). 예수님은 생명의 주인이기 때문에 죽은 자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스스로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달리다굼” 곧 “일어나라”는 명령을 발하실 때 일어날 수 있도록 생명의 능력을 공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2) 잠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라고 하였습니다(롬 13:11). 하나님의 백성들은 마귀가 활동하는 죄악 세상에서 마음에 비상을 걸고 각성하여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말세를 사는 성도들은 영적으로 나태하고 게을러서 잠든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세상 문화에 도취된 채 쾌락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딤전 5:6). 신앙이 잠든 사람은 영적 감각을 잃어버린 자입니다.
성경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을 향하여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고 하였습니다(롬 13:12).

3) 무기력함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을 죽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약 2:26).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큼만 있어도 산을 옮기는 능력이 행사 된다고 하였습니다(마 17:20). 여기 일어나라고 하는 말은 믿음의 능력을 잃어버린 교회와 성도를 향한 주님의 경고입니다. 교회나 성도가 능력을 잃게 되면 맛 잃은 소금처럼 세상에서 버림을 당하고 맙니다.
성전 미문에 있던 앉은뱅이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하는 말을 듣고 즉시 자리에서 일어선 것처럼 앉은뱅이 상태에서 벌떡 일어서는 행동을 보여야만 됩니다. 앉은뱅이가 일어서게 되면서 그는 뛰며 걸으며 하나님을 찬송하였더라고 했습니다(행 3:1-8).
만물이 그 생명력을 과시하는 약동의 계절에 우리 모두 주님의 손을 잡고 일어서는 변화가 있어야만 하겠습니다.

2. 함께 가자고 하였습니다.

솔로몬과 술람미는 사랑의 반려자입니다(10절). 사랑하는 자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따로 놀아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예수님과 함께하는 임마누엘의 행복을 만끽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때와 장소에 구별 없이 이루어지는 신비로운 삶입니다.

1) 기도의 현장으로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성만찬을 끝낸 다음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등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십자가의 쓴잔을 앞에 두고 심각하게 기도하기 위해서입니다. 마태복음 26:37-38에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세 제자는 주님과 함께 기도하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잠든 제자들을 보시고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고 하셨습니다(41절). 그리고는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고 하셨습니다(46절).

2) 수고와 봉사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땅위에 오신 예수님의 사역은 섬기는 일입니다. 마가복음 10:45에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만찬의 자리에서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는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고 하였습니다(요 13:14).
우리가 사랑하는 자와 함께 하면서 같이 수고하며 섬기는 일을 하는 가운데 사랑을 느끼고 행복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29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3) 십자가의 삶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 된 삶을 산다고 할 때 세상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독특한 도덕성과 가치관을 요구하였습니다. 마태복음 7:13-14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마태복음 16:24-25에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하였습니다.

3. 목표가 있는 걸음입니다.

이상적인 교회는 새의 노래 소리와 꽃의 향기가 그윽한 낙원이요, 작은 천국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이 말씀 중에는 신랑이 신부를 불러 같이 가자고 하는 때와 가고자 하는 장소와 그곳의 특징이 나타나 있습니다.

1) 성령의 계절입니다.

11-12절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라고 하였습니다. 겨울이 지났으니 계절적으로는 봄이 되었습니다. 비가 그쳤다고 했는데 팔레스틴의 기후는 겨울이 비가 오는 계절입니다.
또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하는 때도 역시 만연한 봄의 정취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산천초목에 새싹이 돋아나고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로서 이는 성령의 사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6:2에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 하였는데 이도 역시 성령이 작용하는 때를 놓치지 말라는 뜻입니다.

2) 향기로운 동산은 교회입니다.

13절에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이 예찬하는 그 장소는 무화과와 포도 같은 과목이 있고 아름다운 꽃과 향기가 그윽한 동산입니다.
아가 4:12에는 이곳을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라고 하였습니다. 잡인의 출입을 막아놓고 오직 신랑과 신부만이 즐길 수 있는 비원(秘苑)을 뜻합니다. 죄와 마귀가 들끓는 험한 세상에서 주님의 교회는 참으로 사랑과 평화와 소망이 넘치는 곳입니다. 그 안에서 예수님과 그의 신부된 성도들이 신령한 교제를 하며 은혜로운 삶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3) 최상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솔로몬과 술람미는 두 사람 사이에 주고받는 사랑을 통하여 가장 큰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아가 2:5에는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음이라”고 하였는데, 6절에는 “그가 왼팔로 내 머리를 고이고 오른팔로 나를 안는구나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을 두고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성도들이 예수님의 사랑에 깊이 빠져들고 그 사랑의 맛을 알고 나면 세상에 그 무엇에도 비길 수 없는 가장 큰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때때로 여간한 환난이나 고난에 부딪치더라도 그런 것에 상관없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한 행복으로 더욱 즐기게 되는 것입니다(롬 5:3). 아가 4:16에는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열매 먹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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