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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2계명 (출 20:4-6) : 예배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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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의 제1계명은 예배의 대상, 곧 누구를 예배해야 하는가에 대한 계명입니다. 성도란 유일한 참 신이신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사랑하고 소망하면서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존재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에도 신적인 가치를 부여하거나 예배해서는 안 됩니다. 이에 비해 제2계명은 예배의 방법, 곧 참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가에 관한 계명입니다.

제1계명과 제2계명 사이에는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초월적인 어떤 존재를 예배하면서 의존하려는 욕구가 있어서, ‘그들을 위한 우상’을 만듭니다. 흔히 미개하다고 여겨지는 소수 종족도 새겨서 만들든지 부어서 만들든지 그려서 만들든지 그들 나름의 부족신을 만들어 섬깁니다. 이처럼 예배의 대상을 바르게 알지 못하는 그들은 성경이 말하는 바른 예배의 방법 또한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해 바르게 알지 못하는 성도 역시 잘못된 방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됩니다. 바꾸어 말하면, 잘못된 방법으로 예배하는 것은 그들이 상상해낸 그들을 위한 우상을 예배하는 것이지 참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구약성경도 예배 방법에 대한 규정이 무척 엄격했고 그 규정을 어겼을 때의 처벌 역시 엄중했습니다. 레위기 10:1-2절에는 제사장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로 여호와께 분향하다가 여호와 앞에서 불이 나와 그들을 태워죽인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이 사건을 민수기 3:4절과 26:61절에도 기록해서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도록 반복해서 경고했습니다. 역대하 26:19-20에는 웃시아 왕이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는 분향을 드리다가 하나님의 진노로 문둥병에 걸린 사건을 기록합니다. 이 역시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예배 방법을 따르지 않은 자를 엄중히 다루셨음을 보여줍니다.

마태복음 6:7절에서 예수님은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중언부언하는 기도의 방법이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관념에서 나왔음을 지적하고 계심을 보게 됩니다. 이 역시 잘못된 기도, 즉 잘못된 예배 방법이 하나님에 대해 잘못된 관념을 가지게 하기 때문에 금지한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다른 신에게 예배하는 것이 우상숭배라면 그릇된 방법으로 하나님을 왜곡해서 예배하는 것 역시 우상숭배입니다.

제2계명의 목적은 참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법을 규정함으로써 인간이 고안한 어떤 예배방법으로 하나님을 왜곡하는 일이 없이 바르게 섬기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4a)라는 말씀이 요구하는 바를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96은 “결코 하나님을 형상으로 만들지 않는 것과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에서 명령하신 것 외에 다른 방식으로 그를 예배하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잘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을 형상으로 만들면 아무리 잘 만들지라도 참 하나님을 왜곡하게 됩니다. 그것은 인간이 상상해낸 산물이지 성경이 증거하는 하나님은 아닙니다. 결국 하나님 대신 자신이 상상해낸 다른 신을 섬기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출애굽기 32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시내산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주시기 위해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오랫동안 모세가 내려오지 않자 기다림에 지친 백성들은 아론에게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고 요구했습니다. 아론은 금을 모아 송아지 형상을 만들고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출 32:4)하였습니다. 백성들은 그 앞에서 축제를 벌이고 즐거워하며 숭배했습니다. 그들은 다른 신을 섬기려고 의도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단지 ‘자기들을 위해서’ 구원자 하나님을 송아지 형상으로 표현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모습을 보시고 부패하였고 목이 곧은 백성이라 하셨고 진멸하려 하셨습니다. 모세의 간곡한 기도로 전체가 진멸되지는 않았으나 그 날 삼천 명 가량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에 대해서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의 만든 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출 32:35)고 기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사람들이 하나님을 형상으로 표현하려는 이유는 ‘자기를 위해서’입니다. 보이지 않는 대상을 섬긴다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어디서나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가 지켜보고 계심을 의식하며 그분 앞에 늘 예배하는 마음자세로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만들어두면 형상이 있는 곳에서만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예배하면 됩니다. 내가 필요한 시간에 그 형상을 찾아가서 예배할 수 있고 나머지 장소와 나머지 시간들은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자유를 얻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패하게 하고 목이 곧은 백성이 되게 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옵니다. 이처럼 사람의 뜻에 의해 고안된 경배를 예수님께서는 ‘헛된 경배’(마 15:8-9)라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좀 더 잘 인식하고 잘 섬겨보려는 좋은 의도에서 시작했더라도 결국 형상을 만들게 되면 부패에 빠지고 진노를 가져오게 됩니다.

제2계명은 먼저 우상 제조를 금합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4b)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4) 이 말씀은 어떠한 형상도 전혀 만들지 말라는 뜻일까요? 그렇다면 예술가들이 여러 가지 형상을 조각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여러 가지 형상의 장난감들도 금해야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해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97은 “하나님은 어떤 식으로도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표현할 수 없고, 또한 표현해서도 안 됩니다. 피조물들에 대해서는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표현할 수도 있으나, 그것들을 경배하기 위해서나 혹은 그것들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형상들을 만들거나 지니는 것은 하나님께서 금하십니다”고 답합니다.

성경은 어떻게든 하나님을 표현하려는 형상과 예배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형상을 제작하는 형상의 남용을 금한 것이지 모든 형상을 금한 것은 아닙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을 어떤 유한한 형상으로 제한하는 순간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이 손상되고 왜곡되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왕좌의 팔걸이 좌우와 여섯 층계 좌우편에 사자를 만들어 위용을 나타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일에 대해 진노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 형상의 조각품들이나 인형들은 그래서 허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조각품이나 그림들이라 할지라도 예배를 위해서 혹은 경건 생활을 돕기 위해서 사용된다면 마땅히 금지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약의 성전에 석류나 포도열매 모양의 조각들과 놋 바다를 바치고 있는 소 모양의 놋 조각품들을 허용하신 것이나, 모세에게 놋 뱀을 만들어 달게 하신 것, 그리고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이라는 형상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에 근거해서 경건 생활을 위한 교보재로 형상의 사용을 정당화해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98은 “그렇다면 형상들을 평신도들을 위한 책처럼 여겨서 교회에서 허용할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지혜로운 체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말 못하는 형상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의 말씀의 살아 있는 선포를 통해서 가르침 받기를 원하십니다”라고 답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직접 제작을 명하신 것들은 결코 하나님의 성품이나 존재를 왜곡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모양으로든 당신께서 기뻐하시는 방식으로 당신님을 표현하실 수 있으시며, 그것은 하나님께서 장차 나타내시려는 것의 그림자요 모형의 역할을 충실하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온전치 못한 인간으로서는 결코 하나님의 그림자나 모형조차 바르게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권위를 사람에게 주시지 않으셨고 명확하게 금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는 다른 형상을 제작해서 경건생활에 도움을 받겠다는 태도는 하나님보다 지혜로운 채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어떤 형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바르게 계시해주신 성경 말씀을 통해 경건 생활의 자극을 받기도 하고 그 분을 알아가야 합니다.

제2계명은 우상 제조를 금한 다음에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정당하게 만들어진 모형이나 기념물도 기념품 이상의 의미를 넘어서서 존중하게 될 때 문제가 됩니다. 예를 들면, 모세의 놋뱀은 정당하게 만들어졌으나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에 지나친 가치를 부여해서 분향했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 왕은 여러 우상들을 제거하면서 그 기념물도 부수어버렸습니다(왕하 18:4). 네 잎 클로버나 황금돼지 저금통을 행운을 가져다주는 어떤 것처럼 생각하는 것 역시 불신자들이 부적을 소중히 여기는 것과 같은 것이며 제2계명이 금지하는 일입니다.

역대상 13:9-10절을 보면 웃사가 하나님의 언약궤를 손으로 잡았다가 죽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일 때문에 예배당에서 사용하는 물건들에 대해서 과도하게 신적인 물건처럼 다루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언약궤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중에 함께 계신다는 임재 상징의 약속과 함께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마땅히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방법을 따라 주의하지 않았을 때는 엄중한 심판이 따랐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예배당 안에서 사용되어지는 어떤 물건이나 그림도 하나님께서 임재를 약속하신 것이 없습니다. 모든 물품에 대해 소중이 대하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이지만, 그 이상 신성을 부여하는 것은 마치 모세의 놋뱀을 섬겼던 것과 같은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열심히 고안한 방법을 따른 경배를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사람들 보기에 좋고 사람에게 유익이 된다고 마구잡이로 예배방식을 도입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이 어떻게 가르치는지를 바르게 알고 바른 마음가짐과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러한 자에게 천대까지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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