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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신을 정결케 하십시오! (느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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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봄맞이 대청소

아무리 꽃샘추위가 와도 봄은 봄입니다. 목련과 진달래와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뜨렸고요, 개나리도 곧 필 것입니다. 조금 가까이에서 숲을 보면 연한 초록의 안개가 낀 것 같습니다. 이러다 곧 그 초록이 짙어질 것입니다. 이렇게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혹시 봄을 맞아 ‘봄맞이 행사’를 해보셨습니까? 어느 분과 전화 통화를 했더니, 그 분은 ‘봄맞이 행사’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집안 대청소를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집안을 치우고 정리하면서 봄을 더욱 더 확실하게 느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청소를 해보니까 집안 구석구석에 필요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당시는 다 필요하다고 여겨서 넣어둔 것들인데, 이제서 보니까 별 필요 없는 것들이어서 그것을 정리하고 버리는 일이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계절의 봄을 맞아 대청소를 하듯, 영혼의 봄을 맞아 여러분의 내면이나 영적인 삶, 혹은 가정이나 인간관계에도 이와 같은 청소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바로 오늘 본문이 이와 관련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 성전에 있었던 도비야의 방

1) 본문의 배경

오늘 본문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이스라엘의 재건을 힘썼던 느헤미야 시대의 기록입니다. 느헤미야는 바벨론에서 귀환한 포로들을 인솔한 사람 중의 하나인데요. 그는 페르시아 왕궁의 장관으로 지내고 있었으나, 어느 날, ‘예루살렘이 큰 환난을 만나 능욕을 받았으며 성벽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다 불탔다(1:3)’는 소식을 듣고, 슬퍼하면서 며칠 간 금식 기도한 후, 왕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을 재건하게 해 달라(2:5)’고 청을 했습니다.

느헤미야를 아끼고 사랑했던 왕은 이러한 느헤미야의 청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삼림청장인 아삽에게 성을 재건축하는데 필요한 자재를 주라고 명하고, 군대장관과 마병까지 딸려 그가 고국으로 돌아오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주전 445년, 예루살렘에 도착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을 살펴보면서 그 심각함을 조사했습니다. 그 후 제사장, 귀족, 방백 등,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소집하여 성을 재건축하자고 제안을 했고, 그들이 모두 찬성하여 적극 협력하기로 약속을 받았습니다. 공사는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참여하여 각 구역을 분담하여 진행되었습니다. 건축 하는 동안에 사마리아 총독 산발랏과 그의 절친한 동료인 도비야, 그리고 주위의 여러 종족들이 심각하게 반대하며 위협을 가해오자(4장), 한 손에는 연장을, 한 손에는 무기를 들고 작업하는 등 어렵고 힘든 가운데서 이 일을 수행했습니다. 또 공사를 하는 동안에 이스라엘 내부적으로도 문제가 생겨 서로가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는 등 방해 공작은 안팎에서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정치적인 지도력과, 에스라의 영적인 지도력으로 똘똘 뭉친 이스라엘은 공사를 시작한 지 52일 만에 완공했고, 이 일은 그들 스스로 뿐 아니라 주변 종족들과 이스라엘의 대적들까지도 놀랄만한 일이 되었습니다(6:15,16).

그 후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속에 남아 있는 악습을 개혁하고, 법과 질서를 확립했으며,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쳐 은혜를 입게 하고, 또 초막절을 지키게 함으로써, 성만 재건축한 것이 아니라 신앙까지도 재건축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런 일들을 마친 느헤미야는 12년간의 임무를 마치고 바벨론으로 돌아갔습니다(BC 433, 5:14,13:6). 페르시아를 떠날 때에 왕에게 한 약속 때문이었습니다(2:6). 그렇게 페르시아로 가서 1년을 머문 후, 그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2) 성전에 있었던 도비야의 사무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떠나 있었던 그 1년 동안에, 이스라엘에는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는데요. 그것은 유대인들이 성전에 부정한 것을 갖다둠으로서 성전을 더럽히는 일, 안식일과 십일조에 관한 법을 어기는 일,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렇게도 금지했던 이방인과의 결혼이 다시 성행하는 일 등이었습니다. 성벽을 재건축하고, 말씀을 들은 후 대대적인 회개의 집회가 있었으며, 그 후 자신들의 삶을 말씀 위에 바로 세우고자 했던 그들이 이렇게 쉽게 그리고 빨리 변해버린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1년 동안에 이스라엘이 범한 잘못의 하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사장 엘리아십이 이스라엘의 대적 도비야에게 성전의 큰 방 하나를 내어 준 일입니다(느13:4,5).

① 자, 제사장이 도비야에게 성전의 방을 준 일이 뭐가 문제일까요? 우선 이 도비야가 누군 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도비야는 이방인으로서 특별히 암몬 사람입니다. 제가 왜 “특별히” 암몬 사람이라고 합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공언을 했습니다(신23:3~6).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 암몬과 모압 사람들의 땅을 지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은 모압과 암몬 사람들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을테니 그냥 지나가게만 해 달라’고 사정을 했지만, 그들은 이스라엘이 지나가지 못하게 했을 뿐 아니라, 선지자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미인계로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하여 이스라엘을 우상숭배와 타락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이런 암몬 사람에 대해 하나님은 자신을 대항하고, 자기 백성의 신앙을 버리게 하여 타락하게 만들었기에 ‘용서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암몬 사람인 도비야가 이스라엘의 총회에 들어왔고, 더욱 심각한 것은 그가 이스라엘 일반인도 쉽게 드나들 수 없는 성전에 개인 사무실을 두고 마음대로 드나들었으니 얼마나 심각한 일입니까?

게다가 이 도비야는 사마리아 총독인 산발랏과 결탁하여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비방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훼방했고,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등 온갖 죄를 저질러 왔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부인하고 우상을 섬기는 자가 어떻게 성전에다가 방을 두고 거기서 자기 일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② 또 이스라엘로 볼 때도 문제입니다. 도비야에게 성전의 방을 제공한 사람은 다름 아닌 대제사장 ‘엘리아십’이었습니다. 느헤미야 6장 1절 이하와, 본문 4절로 볼 때 엘리아십은 전부터 도비야와 아주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으며, 또 엘리아십은 사마리아 총독인 산발랏과 사돈을 맺었습니다(13:28).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방인과의 결혼을 금지했고, 이것에 순종한 사람들이 눈물을 머금고 이방인 아내나 자식들까지 내보낸 일과 정반대 되는 행동이었습니다(10:28 이하).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데 모범이 되어야 할 대제사장이 스스럼없이 이방인과 인척관계를 맺었으니 얼마나 심각합니까?

그 뿐 아닙니다. 본문을 보면, 엘리아십이 도비야에게 “한 큰 방”을 갖추어 주었다고 되어 있는데요. 이 말은 성전에 있는 여러 개의 창고방을 터서 큰 방 한 개로 만들어 리모델링을 해주었다는 말입니다. 원래 그 방들은 소제물, 유향, 기명 등 성전에서 요긴하게 사용되는 거룩한 물품과 기구를 두는 방들이었는데, 그것을 다른 데로 옮기고 방들을 터서 한 개인의 사무실, 그것도 하나님을 부인하고 대적하는 자의 방을 만들어 준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이요, 그의 백성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지극히 거룩한 곳입니다. 그리고 성전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필요한 거룩하고 구별된 물품들을 보관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곳을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나서서 이렇게 망쳐놓은 것입니다.

이것을 안 느헤미야는 어떻게 대처합니까?

3) 느헤미야의 대처

8절에 “내가 심히 근심하여”라고 하는데요. 이 말은 4장 14절에 보면, 산발랏 일당의 군사적인 공격 가능성 때문에 전전긍긍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용되었던 단어입니다. 따라서 느헤미야가 엘리아십과 도비야의 일을 듣고는 이 일이 하나님의 공격, 즉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부를만한 심각한 일로 보고서 두려워 떨면서 긴장했다는 말입니다. 그것도 “심히”, 즉 엄청나게 긴장하면서 가슴을 졸였다는 뜻입니다. 마치 적들의 공격이 다가오고 있는 것처럼, 아니 그보다 더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으로 그가 엄청나게 두려워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다가 느헤미야는 그냥 있을 수만은 없어, 먼저 도비야의 세간, 즉 도비야가 성전 방에 갖다 놓은 물품, 용기, 기구 등을 그 방 밖으로 내던져버렸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성전을 장사치들의 시장으로 만들고 그것을 이용해서 치부하는 제사장들과 백성의 지도자들 때문에 시장 좌판을 뒤엎어버리고 장사꾼들을 몰아내신 것과 같습니다. 그 후에 느헤미야는 “그 방을 정결케” 했습니다. 그 방에다가 물이나 피를 뿌리는 정결 의식을 실시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에서 돌아 온 후, 성전에서 때 아닌 대청소를 실시했습니다. 그것은 그 방을 가득 채운 이방인의 물품을 내버리는 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물과 피로 씻는 작업까지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청소가 아니라 신앙적으로나 영적으로 더러워진 성전을 정결케 하는 대청소였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3. 우리 안에도 도비야의 방이 있다.

로버트 멍어가 지은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이란 작은 책이 있습니다. 그는 에베소서 3장 16, 17절을 인용하면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게 되면, 예수님께서 그 마음에 들어오셔서 정착하시는 주님의 집이 된다는 것을 설명했습니다.

성도는 예수님께서 들어오셔서 거주하시는 거룩한 집입니다. 그래서 멍어는 자신이 주님을 처음 믿던 날, 주님께서 자기 속에 오셔서 거주하시기 전에, 마치 그 집으로 이사할 사람이 사전에 미리 이곳 저곳을 살피듯, 그가 주님과 함께 자신의 내면의 방들을 하나씩 살피는 것을 소설처럼 꾸며서 이 책을 지었습니다.

그가 주님과 함께 가장 먼저 살펴본 것은 그의 서재였습니다. 이곳은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생각, 가치, 추구하는 것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그의 서재로 오셔서 책들, 잡지들, 벽에 걸린 그림들을 보셨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은 대부분 주님의 눈으로는 차마 볼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때 주님은 그에게 잘못된 책과 잡지와 묘한 그림들과 보아서는 안 될 것들을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주방으로 갔습니다. 거기에는 그가 주식으로 삼고 있는 “돈, 학위, 증권” 등과, 반찬으로 즐기는 명성과 행운에 관한 신문 기사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신 주님은 그런 것들이 영적 굶주림을 만족시켜 주는 참된 음식은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그러한 음식을 당장 버릴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다음 주님과 함께 거실로 갔습니다. 거기에는 벽난로, 푹신푹신한 쇼파, 책장 등이 있었고 분위기도 조용했습니다. 이 방에 대해 주님도 만족해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방은 참으로 좋은 방이로구나. 이 방에 자주 와서 나랑 만나자꾸나”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그 좋은 방에서 자신과 단둘이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내가 매일 아침마다 일찌감치 여기에 오겠다. 여기서 나와 만나 함께 하루를 시작하자.”

그 다음은 주님께서 그에게 “작업실이 있냐?”고 물으셨습니다. 지하실 밑에는 작업대와 연장 몇 점이 있었는데요. 주님을 모시고 그리로 내려갔습니다. 주님은 “이 방은 설비가 참 잘된 곳이구나. 여기서 너는 무엇을 만들고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을 받고 보니, 그가 삶의 작업실에서 주님을 위하여 만들어 온 것들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세상에서의 성공을 위한 것들을 만들어 내려고 애쓰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주님은 그를 오락의 방으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가 혼자서 간직하고 싶어 했던 모임, 교제 활동, 취미생활이 거기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들은 거기서 주님과 함께 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다음은 침실로 갔습니다. 침실은 더더욱 주님과 함께 하기에는 부끄러운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주님께서 “집안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 무언가 죽은 것이 있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밑에 있는 벽장 공간으로 모시고 갔습니다. 거기에는 너무나 사적인 물건들이 쌓여있었는데요.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고, 더구나 주님께는 더더욱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들이 거기 있었습니다. 그것은 옛 생활의 찌꺼기들로서 그리스도인에게 합당치 않은 것들, 아직 버리지 못한 옛 습관이나 은밀한 사생활들이었습니다. 주님은 그 방도 깨끗이 비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 집의 주인이 아니라 손님일 뿐이로구나! 이 집에는 내 것이라고 할 만 한 것이 별로 없구나!” 이 말씀을 들은 그는 곧바로 소리쳤습니다. “아닙니다. 주님. 지금까지는 당신이 손님이었고 제가 주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제가 하인이 되겠습니다. 당신이 저와 이 집의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 그는 서둘러 금고로 달려가서 재산과 가옥의 부지와 매매 조건이 명시되어 있는 모든 문서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황급히 돌아와서 간절한 마음으로 서명을 한 뒤 무릎을 꿇고 그 분의 소유가 되도록 넘겨 드렸습니다. “자, 여기에 저의 모든 것이 있습니다. 이제 나라는 집의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전부, 삶의 전부, 마음과 영혼의 모든 방들을 주님께 드리셨습니까? 혹시 여러분의 삶에 은밀하게 따로 만들어 놓은 󰡐도비야의 방󰡑 같은 곳은 없습니까? 어느 분의 서재에 있는 달마상, 어느 분의 책상 은밀한 자리에 있는 야한 테이프 등, 하나님과 무관한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욕망들, 신앙과 무관한 옛 습관들과 옛 관계들, 경건하지 못한 취미와 부정하게 만드는 것들, 성령님께서 근심할만한 것들이 여러분에게 있다면 바로 그것이 도비야의 방입니다. 지금 그것을 버리십시오.

그리고 그 방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으로 채우고, 성령님으로 채워야 합니다. 만에 하나, 여러분의 삶에도 이와 같은 ‘도비야의 방’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 방을 정결케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방 때문에 성령님이 여러분에게 침묵하셨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고, 기도의 응답이 없었으며, 종종 패배하여 넘어졌으며, 원수의 비난과 조롱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이제 여러분 안에 있는 󰡐도비야의 방󰡑을 정리하십시오. 여러분의 삶이나, 가정이나, 인간관계, 그리고 생각이나 행동이나 마음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정결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지금 즉시 그것을 정리하고 내던져버리십시오.

4. 영혼의 봄을 부르는 삶의 청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롭게 움트는 새싹들을 보고, 피어나는 꽃을 보면서 기뻐하는 정말 좋은 계절인 봄입니다. 주님은 여러분들이 계절적인 봄만이 아니라 영혼의 봄, 삶의 봄, 은혜와 축복의 봄도 맞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여러분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혹시 영혼의 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내게 없는가?’ ‘혹시 주님이 거하실 처소인 내 속에 주님과 관계없는 것, 주님께서 싫어하시는 것, 세상적이고 인간적은 것들은 없는가?’ 살펴보십시오! 만약 그것을 찾을 수 없거든 이렇게 한 번 해보십시오. 만약 여러분의 영적인 상태가 얼어붙은 한겨울이라면, 성령님의 감화와 감동이 없고 무미건조하다면, 예배의 은혜와 하나님의 동행하심의 축복이 없다면, 여러분에게 “도비야의 방”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더러워진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을 차지하고 있던 것들을 내던져버리셨던 주님, 지금 제 속에도 오셔서 더러운 것들, 내 속을 차지하고 있는 도비야의 방을 정리하시고 내던져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정결케 되기를 원합니다. 내가 주님을 모시고 주님의 은혜 속에 거하기 원하며, 주님과 늘 동행하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주님의 새롭게 하심을 경험하여 영혼의 봄, 삶의 봄, 인생의 새봄을 맞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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