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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낮아지는 경험이 필요하다 (출 8: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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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낮아지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열가지 재앙을 살피고 있습니다.강개이파수도구황캄장 이렇게 앞자를 따가지고 열가지 재앙을 외울수 있다고 했습니다.강개이.강이 비가되는 것.개구리재앙.이재앙입니다.하나님께서는 일하실때 우리가 예측할수 없습니다.하나님은 예측가능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재앙을 주실때에도 다양하게 주십니다.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때에도 다양하게 주십니다.그래서 젊은이들가운데 어떻게 변화가 됐느냐 물어보면 변화되는 내용이 너무 다양합니다.어떤 사람은 큐티하다가 변화된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설교듣다가 변화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심지어 드라마 보다가 변화된 사람이 있습니다.어떤 사람은 전도하다가 변화된 사람이 있고.한 열명 물어보면 일곱까지 정도의 방법이 나오는 것 같아요.정말 하나님은 다양하게 일하십니다.재앙도 다양하게 은혜도 다양하게.

그러므로 여기서 알수 있는게 뭐죠? 자기자신의 경험으로 다른사람을 예단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하나님이 어떻게 일할줄 압니까.모른다라는 거에요.심지어 코리안파티하면서 음식만들다가 은혜받는 사람도 있습니다.다 다양하게 일한다는 것입니다.은혜가 다양하고 은혜주시는 것도 다양하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을 제한해서는 안됩니다.하나님은 용량이 크다고 그랬죠?작은 대접가지고 바닷물을 담으려는 시도가 어리석은 것과 마찬가지로.작은 경험과 이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담으려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이걸 깨달았던 마틴루터는 하나님으로 하나님 되게 하라.그런 얘기를 했잖아요.Let God! Be God! 하나님으로 하나님 되게 하라.하나님 제한하지 말라는 거죠.하나님은 어떻게도 일하실수 있다라는 것입니다.오늘 세번째 재앙을 살피겠는데.세번째 재앙이 주는 의미를 살피겠습니다.두가지로 살피겠습니다.

첫째는 낮아져야 영광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교만하면 비참해진다.두번째 재앙이 개구리재앙이었습니다.개구리 재앙 기억하시죠? 바로가 모세에게 기도를 요청합니다.그래서 모세가 기도했더니 개구리가 사라졌습니다.여기서 알수 있는게 무엇입니까.바로같은 사람이라도 기도하면 들어주신다는 거죠.잠시잠깐 바로왕이 낮아졌습니다.그랬더니 은혜가 임하잖아요.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여러분 삶가운데 어려움이 있습니까.뭔가 꼬인 것들이 있습니까.난관이 있습니까.순간적으로 낮아진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막가는 인생 살다가 새벽기도 나와가지고 하나님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그러는 순간에 은혜가 임해요.짤막한 낮아짐에도 은혜없이는 살아갈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은혜를 맛볼수 있게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신다는 것입니다.그런데 바로왕은 체질적으로 낮아지기 힘들었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그래서 또다시 교만해집니다.

두가지 인생이 있습니다.모세도 어렸을때 왕궁에서 자랐고.바로도 물론 왕궁에서 살았겠죠.그런데 모세는 광야생활을 통해서 낮아짐을 훈련했습니다.실패를 맛봤습니다.낮아짐이 익숙해졌습니다.겸손을 배웠습니다.그래서 광야학교가 좋은 것입니다.낮아져야 인물이 나와요.그래서 하나님께서 부르셨을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실때 무릎꿇잖아요.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뭐라고 그러죠?내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신을 벗는 다는 행동에는 문화적인 의미가 있습니다.노예들은 맨발로 다녔거든요.너는 이제부터 나의 노예가 되라 그런 뜻입니다.신발 벗으라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고 굴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네가 선 땅은 거룩한 땅이니 신발을 벗으라.내가 능히 노예가 되겠습니다.내가 왜벗어 뭐때매 뭐때매 안하고 그냥 벗잖아요.저는 거기서 모세의 낮아짐을 볼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낮아진 사람입니다.그런데 왕궁에서 자란 모세는 낮아질줄 알았는데 바로는 낮아지는 걸 못하는 거에요.급하니까 급한 불만 끄는 겁니다.발등에 불만 끄는 거에요.

출애굽기 8장 15절 두번째 재앙 보십시오.출 8:15 그러나 바로가 숨을 통할 수 있음을 볼 때에 그 마음을 완강케 하여 그들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도 이럴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잠시라도 낮아지면 되는데 그게 잠시 잠깐이라는 것입니다.낮아짐이 체질화 되지 않았기 때문에.그래서 신앙훈련이라는게 뭔지 아십니까.경건이 뭔지 아십니까.지속적으로 낮아지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 그게 신앙인격이에요.자기 자신을 부인할줄 아는 것.바로가 낮아지지 못했던 이유가 그것 같습니다.내가 적어도 저렇게 거렁뱅이같이 광야에서 나온 모세얘기를 듣고 낮아질순 없다.그런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내가 저런 얘기를 듣고 왜 낮아지느냐.

석학이 와서 얘기하면 모르겠는데.왜 저래가지고 낮아지느냐.그래서 강팍해지는 것입니다.우리도 마찬가집니다.강팍한것 그것만큼 어리석은 게 없어요.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실때 진흙이라그랬죠? clay 어렸을때 진흙갖고 놀아봤죠? 부드러우니까 손으로 주물럭 주물럭 해도 모양이 나옵니다.그럴땐 별로 아프지 않아요.진흙과 같이 자기 자신이 부드러워지면 하나님은 토기장이십니다.나는 진흙입니다.나를 빚어주십시오.그런 인생은 별로 고난이 없습니다.근데 바위같은 사람이 있죠.바위는 손으로 주물럭 주물럭 해서는 변형이 안이루어집니다.바위를 깨는 방법은 뭐죠.망치와 정.아프죠.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오늘 아침에 말씀으로 살폈던 사도바울을 한번 보십시오.사도바울이 다메섹 동산에서 예수님 만났던 장면이 사도행전 9장에 나오고 22장에 나오고 26장에 나온다 그랬죠.그런데 26장에만 나오는 독특한 표현이 한군데 있습니다.26장 14절 보니까.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뒤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천년 전에 소떼를 몰고갈때 우리는 이리야 하고 채찍으로 치잖아요.앞으로 가라고 그런데 소를 모는 방법으로 가시채.가시채로 이리야 하면 따끔따끔 하잖아요.그러면 가면 되는데.소가 성질이 있는 소가 있다는 거에요.계속 뒷발질.뒷발질 하면 할수록 어디찔려요.가시채에 찔리잖아요.그러니까 소기 어차피 끌려다니면서 일할꺼면 따끔하면 가면 되잖아요.근데 가시채하고 싸워서 뭐할라고.계속 뒷발질 하니까.고통이 두배죠.고통이 지속되는 거죠.사도바울에게 지금 부활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뭐에요.니가 이제까지 살아왔던 방식이 어떤방식이냐.가시채를 뒷발질하는 인생이었다는 거에요.열심을 냅니다.발버둥을 칩니다.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가시에 찔리는 인생이라구요.가시채를 뒤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이말씀을 고대로 적용할수 있는 사람이 누구에요.바로에요.개구리재앙쯤에서 끝내버렸으면 끝나는거 아니에요?끝까지 버티다가 강개이파수도구황캄장 10가지.골고루 차례대로.스테이지원 스테이지투 스테이지쓰리.매집도 좋아요.우리같으면 두세번깨지면 주님.항복.열복까지 버티는거 보면.완전히 망해버렸잖아요.여러분 인생도 잊지 마십시오.완고하고 고집불통인사람.가시채를 뒤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주님께서 그런다구요.뒷발질도 할 가치가 있는 것에 뒷발질 해야지.그러므로 교만만큼 큰 어리석음은 없다는 것입니다.완고함은 어리석음입니다.

성경에 보면 나아만장군이 나오죠.문둥병에 걸렸습니다.문둥병이 나아만 된다고 해서 나아만장군.포로로 끌려온 이스라엘 계집 여종이 있었습니다.성질죽이고 엘리사에게 가면 병 나을껀데.그얘기 듣고 가잖아요.그래서 어렵게 엘리사를 찾아왔습니다.찾아왔더니 아람의 장군정도 되면 친히 나와가지고 오셨습니까 하고 인사를 해야 될거 아니에요.나와보지도 않아요.종만 보냅니다.게아시를 보내가지고.친히 나오지도 않아요.성질 존심 상하죠.근데 뭐라고 하나면 종놈보내가지고 하는 소리가 뭐냐면 저가 요단강 가서 일곱번 목욕해.그게 답이에요.그럼 낫는데요.화가 머리끝까지 났죠.내가 예상하기로는 엘리사가 친히 나와가지고 극진히 대접하고 내상처부위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하거나 붙들고 안찰기도를 하거나 이럴줄 알았다는 거에요.나오지도 않고 요단강에서 목욕을 하라고?우리나라에는 물이 없어서 여기 왔는줄 아냐.성질을 냈다구요.근데 옆에 있는 사람이 그러잖아요.성질죽이시고 한번 목욕해보시지요.

나아만은 좋은 두가지가 있어요.첫째는 좋은 조언자가 있었고.약간의 겸손함.티스푼반정도의 겸손함.일곱번 목욕을 했어요.나았어요 안나았어요.낫다니까요.그래서 나아만이잖아요.잘보세요.겸손함이 그를 살린 거에요.만약에 교만해가지고 바로왕같이 내가 미쳤다고 목욕을 하냐.왜 일곱번이냐.아예 온양온천가서 빠져죽겠다.그랬으면 그 사람 못 나았다구요.근데 그 조언을 듣고 순종하잖아요.

언제나 마찬가집니다.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했을때 그때부터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거에요.사실 모든 인간은 교만이라는 병이 있습니다.예외가 없습니다.내성적인 사람이나 외향적인 사람이나 표현만 안할뿐이지 속에 있는 교만은 다 있어요.교만은 인간의 질병이에요.교만을 못고쳐서 우리 인생이 망하는 겁니다.무조건 목사도 겸손해야 되고 성도도 겸손해야 되고.젊었을때도 겸손해야 되고 나이들어서도 겸손해야되고 겸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는 거에요.

여러분 가운데 교만함이 어떤게 있는지 아십니까.교회도 큰 교회만 갈라고 그럽니다.왜 큰 교회만 갈라고 그러냐.이름이 알려진 교회 있죠.그 이미지를 사는 거에요.나정도 재산이 있고 나정도 능력이 있으면 그 정도 이미지에 들어가야지.어떻게 개척교회 쪼그만 교회 갈수 있느냐.뿌리를 찾아가다보면 그것도 교만이라고 생각합니다.교회 이미지하고 자기를 맞출려고 하는 거.삼일교회 오는 사람들은 거지들만 오나요? 주보보고 수요일이나 금요철야때 전화가 많이 온대요.오늘 설교 누가해요.담임목사가 한다그러면 한번 나와보고.부교역자가 한다그러면 안가그러고.왜 그런줄 알아요? 교만함이에요.하나님 말씀을 듣겠다는 겸손한 마음이 아니라.나정도 들을라면 그교회 담임목사 엘리사 정도 되는 사람에게 들어야지.어떻게 게아시가 나오냐.교만함 때문에.그러니까 은혜를 못받는 거죠.담임목사가 설교해야 은혜받습니까? 부교역자가 설교했을때도 내 인생에 꼭 필요한 말씀이 증거되서 뒤집힐때가 얼마나 많은데요.누가 설교하느냐가 아니라 그 말씀이 누구의 말씀인가.하나님 말씀이라 그러면.아멘하고 받아들일줄 알아야죠.겸손함이 있어야 된다구요.교회에서도 보면요.조금 무시당하면 못견뎌해요.세상에서도 무시당했는데 교회에서도 무시하느냐.좀 안알아주면 무시하고 간증한다고 했다가 안시키면 펄펄뛰면서 교회 옮긴다그러고.하나님께서 불러 쓰시면 쓰시는 거고 아니면 아닌거지 죽지 않는 자아가 있어서 그렇습니다.겸손함이 있어야 됩니다.

바로왕 그당시 얼마나 교만했습니까.당시 최고의 국가 최고의 선진국이 애굽이었습니다.지금식으로 하면 미국쯤 될까요?세계 최강의 국가 가장 부유한 나라 제일 넉넉하게 살고 패션의 리더들이고 그런게 애굽이었다니까요.애굽패션 애굽에서 나온 옷이 최고고.메이드인애굽.그러고 잘난척하고 다닌다구요.하나님께서 그 교만을 치시잖아요.어떻게 쳐요? 이로.히브리어로 키닝인데 벼룩이라고도 번역할수 있다그럽니다.이나 벼룩이나 그게 그거죠.17절 보십시오.그들이 그대로 행할쌔 아론이 지팡이를 잡고 손을 들어 땅의 티끌을 치매 애굽 온 땅의 티끌이 다 이가 되어 사람과 생축에게 오르니.이 아시죠? 머리에 주로 많이 있잖아요.이어린걸 석해라그러나.어렸을때는 한반에 삼분의 이는 이가 있었다구요.근질근질하고.이잡는 거 아세요? 엄지손가락에 잡으면 피가 탁 튀기고.이가 있다는 것은 가난의 상징이에요.가난한 사람은 몸에 벌레를 키웁니다.몸박에 벌레를 키우는 것을 이라그러고 몸안에 키우는 것을 기생충이라고 그러고.기생충약 먹으면 녹아서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참빚이라는 거 있죠? 촘촘한거.머리를 한번 내리면 이가 열마리가 두두둑 떨어지고 발로 밟아서 죽이고 몰아놓고 놀기도 하고.애굽은 품위있는 나라 선진국 강력한 제국입니다.깨끗한 곳입니다.자부심이 있는 곳입니다.잘난척하는 게요 우리 럭셔리하게 살아요.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갑자기 이를 주셔가지고 무슨놈의 럭셔리.세상에서 젤 더러운 민족으로 만들어버렸어요.이가 득실댄다.가난하다는 뜻이라구요.목욕안했다 영양부족이라는 거에요.하나님이 낮춰버리잖아요.이걸 보면서 얼마나 통쾌한지.프라다 걸치고 있는 사람에게 이를 주셔가지고.하나님이 그렇게 비참하게 만들었어요.하나님이 낮추시면 이렇게 됩니다.교만하면 낮추셔요.

야고보서 4:6절 보니까.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지혜가 뭐에요.겸손해지는거.그래야 은혜가 떠나지 않죠.야고보서 4:10절 보니까.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뒤집어서 주앞에서 높여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낮추신다 그얘기 아니에요?자꾸만 낮아져야 됩니다.그래서 이스라엘 왕가운데.지혜로운 왕이 나올때마다 특징이 뭐에요.지혜로운 왕은 항상 자기를 낮춰요.티끌이 이가 되기 이전에 티끌을 무릅쓰고 일부러 왕이 왕복을 찢으면서 먼지같은걸 막 뿌리고 재가운데 뒹굴면서 그러면 어떻게 되죠? 거지꼴이 되요.왕이 거지꼴이 되면서 하나님앞에 부르짖어요,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왕이 스스로를 거지꼴 만드니까 하나님께서 높여주셔서가지고 구원을 주시잖아요.쥐뿔도 없는 주제에 계속해서 교만해지고.이게 얼마짜리 옷인이 알어 권세인지 알어..그랬더니 하나님이 티끌을 이로 만들어서 비참하게 더러운 민족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스스로 낮아질줄 아는 모습.그게 지혜라는 것입니다.많이 갖췄습니까.더 낮아져야 됩니다.

예화로 들기는 참 죄송한 얘긴데.이번 대만선교를 갔습니다.사림진리당에서 시멘트 바닥에서 잤습니다.유치원에서 쓰는 고무같은거 있죠.끼워 맞추는거 .그거 깔고 이불을 덮고 자는데.담요같은거 주는데 이불을 살까 옷을 살까 하는데 코트같은게 싸더라구요.한국에서 2십만원 하는게 7만원 밖에 안해요.코트를 하나 사가지고 이불대신 덮고 뒹굴고 잤습니다.근데 이상하게 냉기가 올라오더라구요.저는 뒹구는 버릇이 있는데.잘때는 이불 위였는데 깰때는 시멘트에요.그것도 일종의 낮춤이라면 낮출수 있죠.대만교역자들이 그러는데 큰 교회 담임목사가 시멘트바닥에서 추위에 떨면서 자는데 그걸 보면서 은혜를 받아요.이상하죠.남의 불행이 그 사람에게는 은혜인가봐요.계속해서 은혜를 받고 거기서 마음이 열리더라구요.낮아짐도 아니지만 이런게 낮아짐이라면 이렇게 낮아지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런생각을 해봤어요.일주일이잖아요 복음증거하기 위해서 잠깐 낮아진거 아니에요?망해가지고 갈데가 없어서 홈리스가 되어서 바닥에서 잔거 아니잖아요.왕이 티끌을 무릅쓰고 재가운데 뒹구는 것하고 똑같다고 생각합니다.잘나가는 인생들 부자집 아들 딸들 있습니까.더 낮아지셔야되요.바닥에서 구르는 훈련을 해야 됩니다.모세도 왕궁에서 자랐어요.근데 하나님께서 훈련시키잖아요.광야에서.스스로가 광야로 갈줄 알아야 되요.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를 인정해 주신다는 게요.

근데 어리석은 인생은 자기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라고 그래요.떨어질까 조심하십시오.넘어질까 조심하십시오.바로가 낮아짐이 없어서 그 인생이 비참해졌어요.삼일교회 많은 젊은이들 있습니다.저는 젊은이들 사랑합니다.능력있게 쓰임받기 원합니다.그러기 위해서 무조건 낮아짐을 훈련하십시오.광야에서 뒹구는 법을 배우십시오.재가운데 뒹구는 모습 티끌을 무릅쓰는 법을 배우십시오.여름철쯤 되면 수련회같은데 가서 티끌을 마련해줄테니까 머리에 막 뿌리십시오.몇년 지난 교회티같은거 입고 찢으십시오.주님 하면서 구약의 백성같이 한번 기도해보라구요.하나님의 은혜가 다릅니다.자기가 비천하다는걸 깨달아요.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요.그때 하나님께서 그를 높여 주실 것입니다.그게 능력이라는 겁니다.세번째 이재앙에서 깨달은거 낮아지지 않으면 비참해진다는거 잊지 말고 삼일교회 모든 청년들 낮아짐의 축복과 은혜가 임한 믿음의 신실한 종 되기를 바랍니다.

두번째로 살필수 있는 것 작은 응답에 예민하게 반응할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8절 술객들이 자기 술법으로 이같이 행하여 이를 내려 하였으나 못 하였고 이는 사람과 생축에게 있은지라.19절 술객이 바로에게 고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나 바로의 마음이 강퍅케 되어 그들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원어를 보면 하나님의 손가락 입니다.손가락을 권능이라는 말로 번역했는데 조금전에 일부러 이것을 해석하기 위해서  시편 8편을 찬양했습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3절에 뭐라그랬어요.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주신 달과 별을 내가 보오니..손가락이 뭐에요.권능.하나님만이 할수 있는 일입니다.이제까지 우리가 했던 일은 속임수 였습니다.이정도 자극이 있으면 겸비해져가지고 엎드릴줄 알아야 되는데 바로에겐 그게 없었다는 거에요.하나님께서 주신 작은 응답들.예민함이 있어야 됩니다.바로는 말씀과 기적에 대한 예민함이 없었어요.계속 터지는 거죠.하나님께서 기도한다음에 응답을 주실때가 많습니다.그래야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을 인정하죠.왜 기도가 중요한지 아십니까? 기도를 해야지 하나님에 대한 예민함이 생겨요.대만선교 갔다오고난 다음에 25기 김경현 자매 감사헌금을 낼때 내용이 그거더라구요.졸업반입니다.취직이 안됐었거든요.대만선교 갔다 오니까 취직이 된 거에요.거기 뭐라고 써있냐면 취직이 된 것 보다 더 감사한 것은 하나님앞에 기도했던 응답이 이렇게 신기하게 이루어 진게 감사합니다.그냥 취직됐다면 감사하겠어요?

근데 선교와 선교이후의 기도 모든 과정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느끼니까 예민함이 있잖아요.이건 내가 한게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다고 느끼잖아요.기도했기 때문에 헌신했기 때문에 그 제목을 놓고 간구했기 때문에.야 이게 기도의 능력이구나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일하시죠?응답에 대한 예민함을 가지라고.바로에게 이런 기회를 주셨죠.개구리 없앨때 기도하고 언제 없어진다구요?니가 원하는 대로 정해라 내일입니다..내일없어졌죠? 그런데도 또 불순종하잖아요.예민함이 없다구요.이건 어리석음 입니다.하나님에 대한 민감성을 길러야 됩니다.기도와 고난이 하나님에 대한 민감성을 기르게 만듭니다.고난당하면 하나님의 음성이 잘 들려와요.은사중에 가장 중요한게 뭐냐면 하나님에 음성에 대해서 민감성을 갖게 해 주십시오.어떤 사람은 설교시간에 들려오는 작은 메시지듣고 인생을 뒤바꾸는 사람이 있어요.반면에 수없이 많은 말씀을 듣고도 비평이나 할라고 하다가 다 놓쳐버리는 바로같은 인생이 있다는 것입니다.복이 뭡니까.말씀이 들리는게 복이에요.말씀을 듣고 민감성을 가지고 매 순간순간마다 순종할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 되길 바랍니다.

삼일교회 믿음의 젊은이들.말씀이 더 강력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씀의 민감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음성이야 하고 순종하고 나아갈때 복이 될수 있다는 것입니다.아무리 천상을 울리는 말씀이 된다 할찌라도 바로의 마음같이 강팍한 마음이 있다면 전달되지 않습니다.저주받은 마음이라는 거에요.예수님께서 마음밭을 얘기하고 있죠.길가에 뿌려진 씨앗의 얘기들.길가같은 밭이 있고.가시떨기 같은 밭이 있고 바위에 떨어진 밭이 있는데 어떤 밭이 되자구요? 옥토.옥토가 뭡니까.씨에 대해서 민감성을 가지고 있는 마음이에요.여러분의 마음이 옥토같은 마음이 되어서 잘 받아들일수 있는 믿음의 종이 되기 바랍니다.바로는 길가같은 밭입니다.떨어져도 들어가지 못합니다.푸르른 밭,비옥한 밭,옥토와 같은 밭이 되어서 어떤 말씀이 떨어져도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거두는 축복된 종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두가지 놓고 기도합시다.낮아져야 영광이 임합니다.자꾸만 낮아지고 티끌가운데 재가운데 하나님 앞에 엎드릴줄 아는 종이 되게 해주십시오.작은 응답에도 예민하게 반응할수 있는 믿음의 종 되게 해달라고 다같이 간구하도록 하겠습니다. (전병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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