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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픈 것이 복입니다 (삼하 1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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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질병이 생기면 아픔을 호소합니다. 그러나 병이 생겼는데도 아프지 않으면 그것은 아주 심각한 것입니다. 아픔이 없는 병이 있습니다. 문둥병이라 불리는 나병, 한센씨 병이라 불리는 병이 있습니다. 이 병은 나병 균이 말초신경을 파괴하여 감각을 잃게 하고 차츰 조직이 변성되게 합니다.  결과적으로 사지(四肢)가 변형되고 파괴되는 병입니다. 말초신경을 파괴시키기 때문에 피부가 헐고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도 아프지 않아 문제입니다.

또 하나 심각한 병은 암 병인데 특히 간암이 무서운 병입니다. 간은 신경이 없어서 상당한 상태까지 암이 진전이 되어도 통증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다른 부위로 전이되거나 간 즙이 쓸개로 내려가는 통로가 막혀 황달증세로 나타난 후에야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게 되고 그제서 간암으로 판명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픔의 통증이 없으니 심각하게 생각을 하지 않고 치료를 하지 않습니다.

결국 돌이키기 힘든 지경으로 발전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몸에 이상이 생기면 아픈 것이 복입니다.
무리를 하여 이상이 생기면 아파야 사람들이 쉬게 됩니다. 그러기에 아픈 것은 신호입니다. 이상이 생겼으니 빨리 조치를 취하라 라는 싸인입니다. 그만 쉬어라, 또는 빨리 치료하라는 싸인입니다. 그 통증이 없으면 사람들은 욕심에 사로잡혀 좀처럼 쉬지 않고 치료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도록 창조 되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범하여 타락함으로 탐심이 들어왔습니다. 그 탐심이 인간을 사단의 종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탐심에 이끌려 살다보니 질병이 찾아 왔고 그 결과 고통이 찾아온 것입니다. 정신적인 고통도 그렇고 육체적인 고통도 그렇고 인간이 견디기 힘든 고통들은 정상적인 삶을 누리고 싶어 하는 신호입니다.

빨리 이 고통에서 벗어나 안식하고 행복하고 만족스런 상태로 가기를 원하는 그 출발점이 아픔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아픔과 고통을 진통제나 마취제로 없애려 합니다. 그리고는 아예 잊으려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회복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픈 것 자체는 아주 좋지 못한 것이지만 그 아픈 것이 결국 나를 복되게 만드는 출발점인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고통과 아픔의 근원이 죄라는 것과 그 죄를 죄로 여기느냐가 것입니다. 사람들은 고통의 원인을 환경 탓으로 생각합니다. 주변 사람이 나를 고통 스럽게 한다고 보거나 가정환경, 또는 외부환경에서 원인을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가장 무서운 것은 죄를 죄로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를 해결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죄를 해결 받지 못하기에 영원히 안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제의 원인인 죄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1. 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죄가 무엇일까요?
세상이 말하는 죄는 사회 법규를 어겼을 때 죄를 지었다 하고 그것도 들키면 죄인이고 안 들키면 죄인이 아닙니다.
그래서 교도소에 가신 분들은 들킨 죄인이고 여기 있는 우리들은 안 들킨 죄인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법을 어긴 죄는 죄의 작은 한부분에 불과합니다.

유교에서는 한자로 罪를 풀이하기를 四+非해서 네 가지 아닌 것을 罪라 했습니다.
1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을 보는 것이 죄요
2 들어서는 안 되는 것을 듣는 것이 죄요
3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함이 죄요   
4 행해서는 안 되는 것을 행함이 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四非가 合쳐서 罪 字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貪嗔痴(탐,진,치) 즉, 三毒이 罪라 했습니다.
1)貪: 탐하고 2)嗔:성내고 3)痴:어리석음 세 가지를 죄라 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성경이 말하는 죄란 그 정의가 매우 광범위합니다.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고 그분을 섬기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이밖에도 성경은 어떤 것을 죄라고 지적하고 있을까요? 여러 가지가 있는데
1)하나님 앞에 불의한 것이 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요일 5:17).
2)하나님 앞에서 선을 알고도 행치 않음이 죄라고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습니다.(약4:17)
3)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입니다. (롬14:23)
결국 하나님의 말씀 믿지 않는 것이 죄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죄란 하나님의 말씀에 벗어난 모든 것이 죄입니다. 남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안도와 주면 그것도 죄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런 것이 죄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가 무엇인지를 계명을 통해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계명과 율법이 바로 우리가 죄인인 것을 가르쳐 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법이 없으면 죄가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분명 악한 일을 했는데 처벌할 법규가 없어서 처벌치 못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처럼 하나님도 우리가 죄인인 것을 보여주시려고 성경을 주셨고 그 성경을 통해 우리는 우리 죄의 모습을 발견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그렇게 말합니다. “나는 양심대로 살기에 죄가 없습니다.” 양심에 걸리지 않는다고요? 인간의 양심은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타락했기에 불완전합니다. 어떤 이는 천원짜리 하나를 갚지 않고도 양심의 가책을 심하게 받지만 어떤 사람은 사람을 죽이고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그 양심이 우리의 잣대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죄를 깨닫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못한 것부터 작은 죄까지라도 느끼고 깨달아야 씻을 수 있습니다. 죄를 느끼지 못하면 죄를 씻을 길이 없습니다.
누가 목욕탕에 갑니까? 때 많은 사람이 가지 않습니다. 왠지 답답하고 개운치 못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갑니다. 목욕은 자주 하는 사람이 갑니다. 안가는 사람은 아무리 때가 많아도 답답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일 년에 한두 번 가고 그것도 마지못해 갑니다.
 
어느 대학에서 교수가 채플 시간에 성경을 가르치면서 죄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학생 하나가 손을 들고 질문을 합니다.
“나는 죄가 없는데요. 뭘 회개하라고 하는 것입니까?”
그러자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학생! 그런가?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죽은 사람 시신 위에 100kg 돌을 올려놓으면 무게를 느낄까요? 그 사람이 무겁다고 소리칠까? 감각이 없기에 아무 소리 못할 것일세. 질문에 대답이 됐나?”

성도 여러분!
그러기에 내가 내 죄를 느끼고 고통을 깨닫는다는 것은 복입니다. 그 죄 때문에 가슴이 답답하고 괴롭고 기도할 때마다 눈물이 나면 복입니다. 그 죄로부터 오는 고통이 느껴지는 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를 보내셔서 다윗의 죄를 책망합니다.
왜 하나님은 하나님의 종을 보내셔서 죄를 지적하고 경고하실까요?
다윗이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타락한 양심이 제 기능을 다 못하여 엄청난 죄를 짓고도 그 죄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를 지극히 사랑하시기에 당신의 종을 보내셨고 그 죄를 분명하고 명확하게 책망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게 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그 책망을 받고 그 자리에서 자신의 죄를 느낍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회개합니다. 할렐루야!

그러기에 다윗이 그토록 엄청난 죄를 짓고도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죄를 죄로 느끼고 그 죄의 고통을 느끼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엄청난 복을 누리고 계시는 분입니다. 혹시 엄청난 죄를 짓고도 죄로 느끼지 못하고 사셨습니까?
오늘 하나님이 이 말씀을 통해 여러분의 죄를 지적하고 계심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분 나빠하지 마세요. 그 죄를 죄로 느껴야 복이 있습니다. 죄를 죄로 알지 못하면 그것은 암병이 걸렸는데도 일지 못하고 사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죄를 죄로 여기도록 기회를 주십니다. 
 
2.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죄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죄가 참으로 무서운 것임을 수없이 많이 경고하고 있습니다. 죄는 인간에게 사망을 가져다주었고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을 사탄의 종노릇하게 하는 도구였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6:23절에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하신 것입니다.

왜 죄가 그토록 무서운 것일까요?
 
1)죄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차단합니다.
그래서 네게 임할 하나님의 은혜를 막아 버립니다. 그러니 얼마나 큰 문제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일반 은총도 누려야 하지만 하나님의 특별 은총을 누리고 살아야 할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 죄가 있으면 우리와 하나님 사이가 막혀 버립니다.
 
2)질서를 깨어 버립니다.
인간의 행복은 질서를 통해 임합니다. 그런데 그 질서는 하나님이 정한 질서가 있어야 하는데 죄가 우리 속에 들어오면 탐심이 가득하게 되고 결국 그 탐심이 질서를 깨게 만들어 버립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깹니다. ‘선악과’는 하나님과 나와의 질서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고 사람이 피조물 됨을 선을 긋는 것이 선악과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을 먹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을 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리를 인간이 차지하고 자신을 신처럼 여기는 교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질서를 깨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죄의 고통이 찾아 온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이 관계를 깨게 됩니다. 사람과 사람사이도 죄가 들어오면 질서가 깨어집니다. 서로 정죄하고 비판합니다. 그러니 엄청난 고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부 사이 갈등, 질서가 깨어져 생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부모 자식 간의 갈등, 성도와 목사와의 갈등, 성도와 성도와의 갈등, 역시 그렇습니다.
다윗을 보세요.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사랑하는 신하 가정을 파괴시킵니다. 사랑하는 신하를 전쟁터에 내보내 죽입니다. 엄청난 죄악입니다.

3)하나님을 대적하게 합니다. 
죄는 우리를 하나님을 멀리 하게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멀리하게만 하지 않고 나중에는 대적하게 합니다. 왜일까요? 죄의 배후에는 사단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죄를 그냥 넘기지 못하십니다. 적당하게 모르는 척하고 넘어가질 않습니다. 회개할 때를 기다렸다가 회개를 안 하면 경고하시고 경고해도 말을 안 들으면 매를 드시고 그래도 안 들으면 무섭게 심판하십니다.
그러기에 다윗처럼 하나님의 종이 말씀으로 좋게 말할 때 돌이키고 두 손 들면 하나님은 놀랄 정도로 깨끗하게 용서하시고 넘어가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사용하시는 방법입니다.
버림받은 백성은 온갖 죄를 지어도 그냥 넘어 가실 때가 많습니다. 교회를 대적하거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경우는 무섭게 심판하시기도 하지만 그러나 불신자들이 몰라서 죄를 지는 경우는 그냥 버려두십니다. 로마서 1장의 말씀처럼 내어버려 두십니다. 왜요? 그들은 원래 버림받은 자식들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24~27을 보세요.
“24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25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26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 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버림받지 않고 하나님 백성으로 택함 받은 자녀 됨을 감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윗을 찾아오셔서 경고하시고 책망하신 그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에게도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올바로 깨닫고 바르게 믿음으로 바르게 서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죄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죄를 안 짓고 사는 사람은 이 땅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또한 이 땅에 죄 문제를 해결치 않고 천국에 들어갈 사람도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그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이것을 저는 강조하고 싶습니다. 회개, 그것은 사실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죄의 고통을 느끼고 그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깨닫고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나오면  누구든지 용서를 받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회개도 가능합니다.
그 은혜를 모르면 회개가 불가능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은 사람이었습니다. 베들레헴 들판에서 목동으로 살던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인하여 선택되어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수많은 어려움과 고비들을 은혜로 넘겨 왔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누렸습니다.
일시적으로 죄를 죄로 모르고 엄청난 죄를 지었으나 그는 하나님의 경고하심에 즉각 회개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만약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않았다면, 그는 자신의 죄를 지적하는 나단 선지자를 단칼에 죽여 자신의 죄를 감추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나단 선지자의 경고를 듣자마자 그 즉석에서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합니다.
13절을 보세요.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대답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그러자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나단이 다윗에게 대답하되 그 즉석에서 곧바로 용서합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그토록 엄청난 죄를 지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용서 합니까? 그런 분이 하나님입니다.

사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할렐루야
 
왜 하나님은 회개한 자를 즉각 용서하시는가요?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그러기에 회개하면 인간처럼 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람은 회개해도 믿지 못합니다. “너 같은 놈을 어찌 믿느냐”며 절대 믿지 못하나 하나님은 우리의 회개를 그대로 받아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의 아픔을 느끼는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도록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에게 아픔을 주십니다. 그러기에 고통이 찾아오거든 주저 말고 두 손 두시기를 축원합니다.
육신의 아픔도 치료하라는 싸인 이지만 영적인 아픔도 회개하라는 싸인 입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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